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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었는가 - 한국인으로 태어난 우리를 지배하고 명령 내리는 것들
고진석 지음 / 갤리온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었는가. 제목도, 사유의 전개도 독특한 책이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어떤 목적을 위하여 지금의 우리로 프로그래밍된 것이다’를 전제로 깔고 있는 이 책의 제목부터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프로그래밍이라니. 내가 무슨 컴퓨터인가 하는 반발심이 들면서도 또 한편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의 틀이 과연 내가 원하는 틀이 맞는지, 언제부터인가 그 틀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왔던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불쑥 머리를 드는 것이다.
그 프로그래밍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 특히 근대사를 해부하며 여러 문제의식들을 풀어낸다. 우리가 일본을 통해 서양의 잘못된 제국주의의 근대를 수입했기 때문에,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를 위한 군국주의를 들여오고 내면화하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잘못된 프로그래밍의 명령 코드라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역사 뿐 아니라 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현대 물리학 등 여러 분야의 사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독한 독서광이라는 저자가 펼쳐내는 다양한 지식들의 네트워크를 좇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시에서부터 영화 ‘매트릭스’의 여러 의미 있는 대사들, 현대 물리학에서 바라보는 시간의 개념, 영국 BBC에서 실험한 버터 바른 토스트 떨어뜨리기 실험까지 다양한 비유들을 들어가며 저자는 자신이 확장해가는 사유에 우리를 동참시킨다.
‘지금의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나는, 나만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나일까?’라는 의문과 회의는 분명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런 회의는 인간으로 태어나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10쪽)’는 저자의 말에 진한 공감을 느꼈듯 그런 회의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과 대면하고, 더 자유로워진 자신을 만나는 과정은 크나큰 기쁨이다. 고통이지만, 살아있음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기분 좋은 고통(이렇게 쓰니까 좀 변태 같다^^;;)이라고 할까.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질문이야.(164쪽)”
저자가 인용했던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가 네오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이 말은, 나도 이 영화에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대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재프로그래밍하기 위해서는 먼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수많은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닌, ‘1등이 아니어도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실패자와 낙오자에게 가혹한, ‘죽도록 노력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닌, 조금씩 나누며 함께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해야 할 질문들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답을 제시해 준 책이 아니라, 많은 질문들을 던져준 책이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