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말벗 사전 - 언어와 놀면 지식이 쌓인다 천하무적 지식 시리즈
좋은생각 편집부 엮음 / 좋은생각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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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쓰고 있는 우리말이지만, 그 유래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과연 몇 개나 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고 있는 말들이 원래 어떤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는지 그 뿌리를 살펴볼 수 있어서 무척 흥미진진했다. 우리말 뿐 아니라 외래어, 외국어의 유래들도 풍부하게 실려있다. 추천사에 카피라이터 정철이 '말 가지고 노는 재미에 빠져라'라고 했는데, 정말 술술 책장을 넘겨가면서 말들과 신나게 노는 기분이 들었다.

절대 굴복하지 않아 '굴비'라니, '단골'이 늘 부르던 무당에서 유래한 말이라니, '이판사판'이 분업에 능했던 스님들을 가리키는 말이라니, '시달림'은 인도인들이 시체를 버리는 곳인 '시타바나'를 '시타림'으로 음역해서 나온 말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말랑말랑한 누가 사탕이 '그것이 우리를 망치게 한다'를 뜻하는 프랑스어 '일 누 가트(Il nout gate)'가 줄어들어 생긴 말이라니(누가가 든 초콜렛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던 다섯 살때부터, 어쩐지 마구 친숙하게 느껴지는 '누가'가 순우리말이라고 굳게 믿었더랬다. 암튼 그 누가 초콜렛 덕분에 충치가 제대로 생겼으니 그 프랑스어 어원이 맞긴 맞았군.^^;;)... 복잡다단한 인간사처럼 말 하나하나에 숨겨진 사연들, 얽힌 이야기들도 다들 다채롭기만 하다.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각 장마다 성격이 뚜렷하다. 말들의 유래를 알려주는 1장을 지나고 나니, 알쏭달쏭했던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풀어주기도 하고,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잘못 쓰고 있는 말들을 짚어주기도 하고, 순우리말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방송이나 매체에서 접하게 되는 각종 이론, 증후군, 현상들을 뜻하는 신조어들을 다양하게 소개해주는 7장을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또 유명한 사람들이 남긴 촌철살인 한 마디들을 소개해주고 각종 언어에 관련한 상식들을 알려주기도 하니 이 책 제목 '천하무적'이란 말이 아깝지 않다. 마치 잘 차려진 맛깔스런 말의 뷔페에 초대된 기분이라고 할까.

음, 하지만 뷔페의 다채로운 향연에 눈과 귀가 황홀하면서도 소박하고 정성스럽게 차려진 한 그릇 음식이 때론 그립듯이, 아쉬운 부분이 남기도 하다. 4장 '지적지수 확실히 높여 주는 고사성어'와 5장 '듣기도 말하기도 아름다운 우리말'은 다른 장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게 느껴져 아쉬웠다. 순우리말에 대해 오롯이 파고들어 만든 두꺼운 책을 어제 읽었던 여파가 남은 탓도 어느정도는 있겠지만.

 

그래도 이 책이 참 고맙다. 이 책 덕분에 말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더욱 키우고 가꿔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외국어 공부한다며 우리말에 대해서는 내가 많이 무심했구나 하는 반성도 했고. 앞으로 곁에 두고 자주자주 펼쳐보며 같이 놀아야겠다. 무척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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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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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를 무척 좋아하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의 국사시간은 꽤나 암울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재미도 감동도 없었고 어떤 의문이나 문제제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오로지 시험을 위한 암기 위주의 공부였다(물론 국사과목만의 문제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래서 이런 책을 만나면 행복감을 만끽함과 동시에, 옛날의 나에게로 살포시 돌아가 위안을 건네곤 한다.

 

OBS에서 방송한 교양프로그램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의 내용을 편집한 이 책은, 그동안 암울한 시기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우리의 근대사의 속살을 펼쳐 보여준다. ‘일본의 침략적 제국주의에 고통 받던 시대’라고만 정의내리기엔 너무나 다채롭고 생기발랄하게 느껴진다. 일제강점기라는 고난을 맞으면서도, 단발령과 창씨개명, 태평양전쟁을 겪으면서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자기 삶을 살았을 사람들. 새로운 문물의 홍수 속에서, 옛것과 새것이 뒤섞임 속에서 그들이 일구어갔을 일상생활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것이 거시사와는 다른, 미시사만이 지닌 힘이 아닐까.

 

광고, 대중음악, 사법제도, 문화재, 미디어, 철도의 여섯 가지 범주로 바라본 근대의 풍경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도 많았고, 또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속사정까진 잘 몰랐던 것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어 기쁘다. 가슴 아픈 이야기도 많았는데, 일제강점기 후진적이었던 사법 제도가 해방 이후 인적 청산과 개혁을 이루지 못한 역사에 대해서는 특히 확확 열 받았다. 으아아~

그리고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 때 민족 문화재 수집과 보호에 심혈을 기울여 문화재의 일본 유출을 막았던 간송 전형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고 앞장서서 수많은 문화재를 구해 낸 사람. 나라 잃어버린 백성이란 탓에 때로는 죄인 취급도 받고 각종 재판에 휘말려가며 구한 수많은 국보와 보물들... 당시 한글 말살 정책을 펴고 있던 일제의 눈을 피해, 오랜 노력 끝에 간신히 구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오동나무에 넣어 베개 속에 숨겨놓고 잤던 간송 같은 이가 있었기에 우리 문화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우리나라가 근대에서 현대로 빨리 넘어갈 수 있었다. 이런 이름을 우리는 왜 국사 시간에 배우지 못했을까?

 

인문학자 남경태 씨가 책의 대담 중에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찰리 채플린이 했던 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는 말을 거꾸로 뒤집어 인용한다. 즉 일제 강점기는 “롱 테이크로 보면 비극적이고 암울한 시대였는데, 일상생활은 희극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비극과는 다릅니다.(56쪽)”라는 것이다. 정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통찰이다.

맞다. 아무리 나라를 잃어서 서럽고 힘들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여전히 끼니때가 되면 배고픔을 느꼈을 것이고, 광고를 통해 본 새로운 물건들을 욕망하기도 하고, 당시엔 세련되게 여겨진 트로트 가요를 부르며 마음을 달래도 보고, 신문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날벼락처럼 일제강점기라는 현실에 떨어지게 되었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모습들... 그 일상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기고 있으니 왠지 애틋한, 그러면서도 한편 벅찬 마음이 든다. 이토록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삶이란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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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가 밝혀낸 세계 경제 권력의 향방
자크 아탈리 지음, 권지현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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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참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기억하기로는 미국이 No.1 이었는데 이제 미국의 세력은 빠르게 약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그 어느 국가도 미국을 대신해서 국제사회의 현안들을 이끌어갈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지금 발등에 불끄기 급급한 유럽연합이 그럴만한 역량이 있을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뜨는 태양으로 각광받는 중국이 그 주인공이 될 것인지. 하여튼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확실한 것은, 하나의 국가나 지엽적 연합체제로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세계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지배력과 역량을 가지기엔 역부족일 것 같다는 것이다.

 

읽기에 만만치 않은 부분도 있기도 했지만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혜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즐거운 여정이었다. 그의 말대로 하나로 연결된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들어가는 글에서 그는 이제는 탈환해야 할 바스티유 감옥도 없고 퇴위시켜야 할 군주도 없으며 장악해야 할 부처나 궁도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에 기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아예 조종실이 없는 형국(18,19)”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끄덕여지는 말이었다. 그것이 기존의 권력기구 속에 편입된 세계정부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전 지구적인 민주주의 정부를 우리가 구상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그가 제안하는 초국적 차원의 정부에 대해서 너무 낙관적이고 이상적인 미래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와 인류 전체의 이익을 돌보고, 약소국의 정체성과 문화 보호를 도우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권리를 존중하고... 과연 이런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자크 아탈리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도 현실 세계에서 그런 정부 설립은 불가능하니, 더 규모가 작고 실용적이며 기존의 기구들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가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그에 대한 전망과 가능성을 찾아 제시해 주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의 백미라는 생각이 든다. 고대부터 시작해 세계의 역사, 정치, 문화, 경제를 가로지르는 해박함과 통찰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덮는데 문득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중대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 문제가 발생했을 때와 같은 수준의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다.” 아마 자크 아탈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미래를 위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대안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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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 패러독스 - 30가지 경제학 이야기
김대환 지음 / 부엔리브로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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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 위기, 유로화 위기...... 우리 주변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경제 현안들, 대충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있진 못했다. 일단 경제학 개념이나 용어들 자체에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높은 벽이 느껴지는 것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개념들은 맞는데 정확하게는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일일이 찾아보거나 할 엄두는 안 나고. 경제학의 기본 원리와 주요한 개념들을 역사적 사실과 저자 자신의 경험, 그리고 우리에게 친근한 우화 등을 예로 들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는 이 책이 그래서 참 반갑게 느껴졌다.

 

반값 등록금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한미 FTA에 관한 두 가지 시선, 4대강 사업은 국민소득을 증대시켰는가, 정부의 주유소 운영이 기름값을 낮출 수 있을까 등, 평소에 우리가 관심 있어 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어 좋았다. 특히 저자가 경험하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통해 오늘의 우리 사회를 작동하는 경제 원리를 알기 쉽게 짚어주는 점이 와 닿았다.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벅스를 이용하다가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는 일이 잦아지는 경험을 이야기하며 외부효과와 그로 인한 비효율성을 없애기 위한 대응들을 설명해주고, 인터파크에서 받은 온라인 쿠폰 하트를 모아서 연극 관람티켓을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기피하고 확실성을 지나치게 선호한다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모리스 알레의 알레의 패러독스에 대해 설명해 준다. 역시 뭐든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풀어내줘야 쏙쏙 기억이 잘 되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이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도 인상이 깊었던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가 발전시킨 게임이론에 대해 설명한 장이었다. 내쉬의 아이디어는 내쉬 균형이라는 개념에 집약되어 있는데 저자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상황을 이야기하며 이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우리는 각자가 최선의 선택을 했을 때에도 그것이 전체에게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교훈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경제학의 창시자 아담 스미스의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인해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최선이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전략적 근거가 된다.

우리의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은 경제 원리와 개념들이 작동하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일만 하는 개미보다 경제와 금융을 이해하는 베짱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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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놀이 -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곱 가지 심리치유 프로젝트
비수민 지음, 조성웅 옮김 / 이랑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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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의이자 심리상담사, 또한 여러 장편소설과 에세이를 낸 작가인 비수민이 안내해주는 일곱 가지 마음 놀이. ‘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놀이라기보다는 심리 치유 활동에 가까운 것 같다(제목을 보고 진짜 놀이다운것들을 기대해서 뭐랄까, 살짝 아쉬움이 들었다). 그럼에도 책 속에서 이 활동들을 계속 놀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거부감을 줄이고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 보라는 의도인 듯하다. 백지 몇 장과 펜을 준비하고, 마음의 짐과 부담을 내려놓고, 놀이하듯 즐겁고 부담 없는 마음으로 나의 내면에 대한 탐험을 해 보라는 것.

 

작가는 시종일관 자상하고 다정한 어조로 일곱 가지 놀이를 하는 방법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일곱 가지의 놀이를 통해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것들, 우리가 어떻게 얽어 매인 마음의 실타래를 풀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책을 덮고 나도 백지 몇 장을 꺼내놓고 그 놀이들을 해 보았다.

놀이를 하면서, 새삼스럽게 사람이라는 존재가 품고 있는 약함과 강함에 대해서 놀라운 느낌이 든다. 사람이란 얼마나 한없이 약한 존재인가. 그 정도는 다를지라도 누구나 다 상처받은 기억을, 나름대로 절실한 아픔들을 가슴 한 쪽에 품은 채 살아간다. 책에서도 인용이 된 부분이지만,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는 특별한 결핍 없이 정성스럽게 보살핌을 받은 아이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남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이의 지력 발전에는 규칙이 있어서 어렸을 때는 모든 일을 온전히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한다. 때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도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상처 난 마음을 진단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놀이를 하면서 나도 나의 마음을, 내가 받은 상처들을, 나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중요한 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조금 슬퍼지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사실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나의 시각과 태도가, 어렸을 때의 나의 그것들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나는 자랐고, 강해진 것이다.

 

이전의 일은 이미 일어났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한 사람의 성숙도는 나의 성숙도를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당신의 지금 이 순간만큼 중요할 수는 없다.”(185)

 

일곱 가지 놀이 과정(?) 중에서, 특히 두 번째 놀이인 누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타인인가와 다섯 번째 놀이인 부모 다시 고르기가 좋았다.

작가인 비수민도 두 번째 놀이를 통해서 자기 인생을 바꾼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그녀가 열 한살 때, 학교 합창단에 들어가 연습을 하던 중 음정이 계속 틀리다는 이유로 모질게 내쳐 낸 젊은 음악 선생님이 있었다. 그러나 음악 선생님은 비수민을 다시 불러들이고 아이는 열심히 음정 연습을 해서 훌륭한 합창단원이 되겠노라고,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음악 선생님은 숫자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수민을 다시 불러들인 것 뿐, “입만 벌리고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며 집게 손가락을 세워서 어린 비수민의 입 사이를 가로막는다. 그 이후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음악 선생님이 치켜세운 집게손가락이 마치 주문처럼 그녀의 목청을 막았고, 그녀는 노래를 다시 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발언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린 비수민은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마음과 몸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더니,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깊었으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을까. 하지만 어른이 된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따뜻한 손을 스스로에게서 찾아냈다. 그녀에게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이 놀이는 결코 중요한 타인을 밭에서 무를 뽑듯 뿌리째 뽑아낸 다음 그것과 완전히 결별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긍정적 자극을 주는 중요한 타인은 이미 나의 정신 구조의 일부가 되었다...(중략)...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타인의 눈빛 속이 아니라 나의 노력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 경험과 역사가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나에게는 이미 지나버린 옛일이다...(중략) 이 놀이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인간의 창조와 멸망은 내가 완성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나 자신의 주인이다.”(80~81)

책을 읽으며 심리상담가로서의 그녀는 아마도 무척 유능하고, 내담자의 마음을 잘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명하고 따뜻한 심리상담가와 머리를 맞대고 속 시원히 내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 같은 개운한 기분.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나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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