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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놀이 -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곱 가지 심리치유 프로젝트
비수민 지음, 조성웅 옮김 / 이랑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내과의이자 심리상담사, 또한 여러 장편소설과 에세이를 낸 작가인 비수민이 안내해주는 일곱 가지 마음 놀이. ‘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놀이라기보다는 심리 치유 활동에 가까운 것 같다(제목을 보고 진짜 ‘놀이다운’ 것들을 기대해서 뭐랄까, 살짝 아쉬움이 들었다). 그럼에도 책 속에서 이 활동들을 계속 ‘놀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거부감을 줄이고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 보라는 의도인 듯하다. 백지 몇 장과 펜을 준비하고, 마음의 짐과 부담을 내려놓고, 놀이하듯 즐겁고 부담 없는 마음으로 나의 내면에 대한 탐험을 해 보라는 것.
작가는 시종일관 자상하고 다정한 어조로 일곱 가지 놀이를 하는 방법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일곱 가지의 놀이를 통해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것들, 우리가 어떻게 얽어 매인 마음의 실타래를 풀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책을 덮고 나도 백지 몇 장을 꺼내놓고 그 놀이들을 해 보았다.
놀이를 하면서, 새삼스럽게 사람이라는 존재가 품고 있는 약함과 강함에 대해서 놀라운 느낌이 든다. 사람이란 얼마나 한없이 약한 존재인가. 그 정도는 다를지라도 누구나 다 상처받은 기억을, 나름대로 절실한 아픔들을 가슴 한 쪽에 품은 채 살아간다. 책에서도 인용이 된 부분이지만,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는 특별한 결핍 없이 정성스럽게 보살핌을 받은 아이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남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이의 지력 발전에는 규칙이 있어서 어렸을 때는 모든 일을 온전히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한다. 때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도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상처 난 마음을 진단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놀이를 하면서 나도 나의 마음을, 내가 받은 상처들을, 나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중요한 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조금 슬퍼지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사실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나의 시각과 태도가, 어렸을 때의 나의 그것들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나는 자랐고, 강해진 것이다.
“이전의 일은 이미 일어났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한 사람의 성숙도는 나의 성숙도를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당신의 지금 이 순간만큼 중요할 수는 없다.”(185쪽)
일곱 가지 놀이 과정(?) 중에서, 특히 두 번째 놀이인 ‘누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타인인가’와 다섯 번째 놀이인 ‘부모 다시 고르기’가 좋았다.
작가인 비수민도 두 번째 놀이를 통해서 자기 인생을 바꾼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그녀가 열 한살 때, 학교 합창단에 들어가 연습을 하던 중 음정이 계속 틀리다는 이유로 모질게 내쳐 낸 젊은 음악 선생님이 있었다. 그러나 음악 선생님은 비수민을 다시 불러들이고 아이는 열심히 음정 연습을 해서 훌륭한 합창단원이 되겠노라고,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음악 선생님은 숫자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수민을 다시 불러들인 것 뿐, “입만 벌리고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며 집게 손가락을 세워서 어린 비수민의 입 사이를 가로막는다. 그 이후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음악 선생님이 치켜세운 집게손가락이 마치 주문처럼 그녀의 목청을 막았고, 그녀는 노래를 다시 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발언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린 비수민은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마음과 몸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더니,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깊었으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을까. 하지만 어른이 된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따뜻한 손을 스스로에게서 찾아냈다. 그녀에게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이 놀이는 결코 ‘중요한 타인’을 밭에서 무를 뽑듯 뿌리째 뽑아낸 다음 그것과 완전히 결별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긍정적 자극을 주는 ‘중요한 타인’은 이미 나의 정신 구조의 일부가 되었다...(중략)...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타인’의 눈빛 속이 아니라 나의 노력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 경험과 역사가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나에게는 이미 지나버린 옛일이다...(중략) 이 놀이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인간의 창조와 멸망은 내가 완성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나 자신의 주인이다.”(80~81쪽)
책을 읽으며 심리상담가로서의 그녀는 아마도 무척 유능하고, 내담자의 마음을 잘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명하고 따뜻한 심리상담가와 머리를 맞대고 속 시원히 내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 같은 개운한 기분.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나를 들여다본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