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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말라 -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그래서 더 진실한 아프리카의 역사 이야기 ㅣ 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 1
김명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얼마 전에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윤상욱 지음, 시공사)를 읽었기 때문일까, 나의 아프리카에 대한 촉수는 한껏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자연히 책을 읽어 내려가며 두 책의 공통점과 두 저자의 시각의 차이점이 짚이게 되었다.
일단 두 저자 모두 아프리카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아닌,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의 저자는 주 세네갈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이었고, 이 책의 저자는 기획재정부 공무원으로 튀니지의 아프리카개발은행에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먼 나라에서 공무원으로서 자기 일을 하면서, 아프리카에서 근무한 경험과 나름대로 아프리카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렇게 책을 써냈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그것도 에세이 류도 아니고 인문/교양서인만큼,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이 책은 백인들에 의해 왜곡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의 제목이 말하듯 ‘백인의 눈’이 아닌, 그들을 지배했던 제국주의의 시각이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우리도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으면서 ‘신대륙의 발견’ 운운하는 교과서를 바라보며 느꼈던 허망함을 기억한다. 주체적인 시각으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 백번 공감하며 읽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를 읽으면서도 그랬듯이, 역시 이번에도 읽으면서 내내 가슴 아파야 했다.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이 겪어온 고통과 모순의 굴레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시에라리온 내전, 수단 내전, 다르푸르 분쟁, 르완다 인종대학살, 끝이 안 보이는 종교전쟁들……. 왜, 최초의 인류 ‘루시(아프리카 대륙의 이 여성에게도 이렇게 지극히 백인적인 이름을 붙였다)’가 태어난 땅이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왜 아프리카의 풍부한 자원이 오히려 ‘자원의 저주’가 되어 발전의 발목을 잡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 책은 절망만이 아닌 아프리카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아프리카의 희망을 (조심스럽게) 읽게 한다. 아프리카의 자존심 ‘메넬리크 2세’를 비롯한 수많은 아프리카 독립 운동의 영웅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독재권력을 포기하고 정치적 모범을 보인 지도자들, 아프리카의 노벨이라 불리는 ‘모 이브라힘’, 평생을 아프리카의 녹색운동을 위해 힘쓴 ‘왕가리 마타이’, 내전으로 황폐화된 라이베리아에서 철의 여인으로 선 ‘엘렌 존슨 설리프’등의 삶을 짧게나마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으로 만든 독재자들의 이름은 꽤 낯이 익은데, 이 이름들은 왕가리 마타이와 설리프를 빼곤 대부분 처음 접하는 이름들이었다. 아직 아프리카의 수많은 민중들에게 제대로 된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 식민지시대의 잔재와 이후 계속된 독재가 민중들의 자각과 제도 정비의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는 현실이 아플 뿐이다.
아, 하지만 아쉬움 하나. <닫는 글>에 나온, 아프리카인의 ‘식민지 근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아프리카인들의 역사를 존중하고 그들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갖는 것과는 별개로 이 식민지 근성은 아프리카에서 생활한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다(368쪽)’.
물론 저자는 아프리카에서 수년간 생활하고 아프리카인들과 더불어 일을 해 왔기 때문에 나름 객관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단정적인 명제의 근거로 제시한 개인적인 경험과 인상들이 얇다는 느낌이 들었다.
‘별로 웃을 내용이 아닌데도 가식적인 표정을 지으며 아주 큰 소리로 웃는다는 점이다...(중략)... 아마 백인들의 농담이 재미없어도 웃어줘야 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369쪽)’
그 밖에도 약속시간에 10분, 20분 정도 늦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잘못을 해도 미안하다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도, 식민지 근성이라고 딱지 붙이기에는 근거가 약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인들의 시각이 아닌 한국인의 시각으로 아프리카의 역사와 오늘을 바라본다는 생각으로 구성한 알찬 내용의 책이, 좀 더 깊이 있는 시각의 ‘닫는 글’로 마무리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