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여행 - 로키에서 태평양까지, 캠핑카로 돌아보는 국립공원
김남국.윤인섭 지음 / 시공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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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과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마치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듯한 신비로운 풍경들이 가득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그저 모든 말을 잊고 압도당할 수 밖에 없는, 영화 속 풍경 같은 국립공원들을 이렇게 눈으로라도 둘러볼 수 있는 호사가 감사하다. 활판인쇄술의 발명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는 순간.^^

또한 멋진 사진들뿐만 아니라 미국 서부의 국립공원과 캠핑장들에 대한 상세하고 친절한 정보들, 각 국립공원마다 특징있게 갖추고 있는 풍성한 레인저 프로그램들에 대한 소개, 캠핑 여행을 위해 알아두어야 할 깨알같은 팁들까지 무척 든든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정말, 일상을 훌훌 벗어던지고 캠핑카로 미국 국립공원 한바퀴를 하고픈 마음이 꿈틀꿈틀 용솟음친다.

 

믿음직한 가이드라면 여행에 대한 정보와 팁뿐 아니라 여행지와 관련된 각종 곁다리 얘기들에 특히 능한 법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여행을 한결 풍성하고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책 중간중간에 국립공원과 관련된 사건이나 인물, 동물에 대한 얘기, 설화나 체험 등이 소개되어 있어 책을 읽는 맛을 더했다. 원주민 언어로 '그들은 살인자다'라는 뜻이라는 '요세미티'가 국립공원 이름이 된 이야기, 자이언트 세쿼이아를 자라게 하는 산불, 미네랄 킹 지역에 꿈의 리조트를 지으려고 했던 디즈니사가 결국 포기하게 된 소송사건, 당나귀 브라이티가 노스 림의 마스코트가 된 사연, 콜로라도 강 신혼부부 실종사건... 쏠쏠한 이야깃거리들은 입담좋은 현지인 친구와 여행하는 듯한 푸근한 기분이 들게 했다.

특히 미국의 국립공원의 기틀을 다진 사람, 스티븐 매서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이 사람은 일찍이 성공한 사업가로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쥐고 있었지만 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단다. 광활한 서부 대자연의 품에 안겨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그는, 자신이 경험한 자연의 치유력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기에 보다 많은 사람이 편하게 국립공원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때때로 우울증 발작이 일어나던 그에게 생의 의지를 북돋워주며 함께 일했던 부하 올브라이트와의 이야기도 감동적이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함께 고군분투하여 국립공원을 지켜냈던 두 사람의 아름다운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날 수많은 이들이  잘 관리된 국립공원에서 휴식과 위안을 얻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리라. 그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도 삶의 여유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면서 오토캠핑이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 중에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캠핑장비 싸들고 일상을 탈출하여 밤하늘을 이불삼아 잠드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이 여럿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한 대로, "자연에 안겼다기보다는 파묻혀버린 느낌, 그 어마어마한 왜소감은 늘 통쾌했다"라는 그 느낌을 자연에게서 받는 것, 그 속에서 인간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고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캠핑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아, 나도 기꺼이 대자연 앞에서 무장해제당하는, 그런 일생일대의 경험을 다시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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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
마이클 모퍼고 지음, 마이클 포맨 그림, 김은영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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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아이한테 우리 집에 살던 코끼리 이야기를 하던 중이야. 이 아이는 내 말을 믿어주는군그래. 자네는 안 믿지?”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알아. 여기 사람들은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 하지만 칼은 믿지.”(13쪽)

 

요양원에 들어온 지 한 달가량 된, 여든 두 살의 리지 할머니는 다른 환자들과 좀체 어울리지 않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지내고 계신다. 할머니의 닫힌 마음을 눈 녹이듯 녹이고 추억을 펼쳐내 보이게 한 마법은, 역시 때묻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헛소리를 하시는 거라고,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 얽혀있다고 단정 지었던 아이의 엄마도 차차 아들과 함께 마음의 문을 연다. 두 모자는 할머니의 침대 곁에 앉아 할머니가 겪었던 일들, 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드레스덴 폭격 중에 가족과 코끼리와 함께 피난을 떠났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드레스덴 폭격사건. 영국의 처칠과 미국정부 등 연합국에 의해 기밀사항으로 되어 있다가 후일 드러난 전쟁범죄사건이라 읽었던 기억이 난다. 2차 대전 후반, 독일이 밀리기 시작하고 연합군이 독일 본토 공격을 가속화하던 시기였다. 수많은 독일의 피난민들이 모여있던 이 예술의 도시 드레스덴으로 연합군의 가혹한 폭격이 시작되었고, 드레스덴은 삽시간에 쑥대밭이 되고 수만 명의 민간인들은 거의 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분명 2차 대전 중에 나치가 지은 죄는 막중했지만, 왜 민간인들이 그에 대한 비뚤어진 보복을 당해야만 했나.

 

그 처참한 상황에서 리지의 엄마와 리지, 동생 칼과 코끼리 마를렌이 서로 용기를 북돋으며 한발 한발 나아가는 여정은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처참하게 파괴된 도시와 부상을 입고 피 흘리며 울부짖는 사람들, 전쟁터에 나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 극심한 피로와 추위와 굶주림, 언제 전쟁이 끝날지 모르는 하염없는 기다림... 그럼에도 끝내 인간애와 희망을 잃지 않는 그들. 그들은 드레스덴에서 격추당했던 영국군 소속 피터와 함께, 부모와 집을 잃은 성가대 아이들과 함께, 꿋꿋하게 서로를 격려하며 나아간다.

 

“모두 살아 있다는 게 행운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참 이상하게도, 그때 우리가 겪어야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을 것 같은데도 말이야. 우린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웃음을 터뜨리는 때가 훨씬 더 많았어.”

“그 긴 여행의 마지막 몇 주 동안 기억나는 건 피로나 추위 혹은 굶주림이 아니야.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건 아이들의 노래야... 멀고 먼 길을 걷는 우리에게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어둠 속의 등댓불 같았지. 다 함께 부르는 노래로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렸어.”(205쪽)

 

거의 전쟁의 막바지에서 다다랐을 무렵, 탱크 소리에 놀라 달아난 마를렌과의 이별.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정에서 큰 용기와 기쁨을 불어넣어주었던 가족, 마를렌과 헤어졌다는 사실을 슬퍼하면서도 난민 수용소에서 엄마와 로지는 수용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희망을 이어간다. 전쟁은 끝나고 히틀러는 죽었고, 그들은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 그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딛고, 삶은 그렇게 면면히 이어진다. 사람들은 상처를 딛고 서로를 보듬으며 다시 일어서고, 잿더미가 되었던 드레스덴의 하늘 위에는 다시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희망이 있는 한, 삶은 계속된다’고 되뇌었던 어린 소녀는 전쟁을 겪으면서도 성장하고, 어느덧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시간이 흘러 마를렌과 감동적인 재회를 하고, 첫사랑 피터와 가정을 이루고 60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녀는 이제 요양원 침대에 누워있다. 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어린 시절의 동생과 꼭 닮은 소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서 미소를 짓고 있다. 피터와의 추억이 깃든, 그 전쟁속에서 항상 길을 가르쳐주었던 소중한 나침반을 소년의 손에 꼭 쥐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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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하루 선물 (보급판 문고본) - 365일 희망 메세지 나를 위한 하루 선물
서동식 지음 / 함께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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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 때문에 연이어 신경이 쓰인다. 결막염 때문에 한동안 안약 넣고 약 먹고 이제 좀 나아졌나 했더니, 지금은 양쪽 눈에 다래끼가 나서 퉁퉁 부은 개구리 눈을 하고 있다. 안과에 가 봤더니 무더위에다가, 피곤이 겹쳐서 이런 거라고 좀 쉬라고 한다. 엎어진 김에 쉰다고 했던가, 공부해야 할 두꺼운 책은 일단 구석에 홀가분하게 밀어넣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읽다가 마음에 남는 구절을 발견하면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도 보았다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위한 하루 선물>, 제목처럼 365일 매일을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짧은 격언을 읽고 생각하게 하는 컨셉의 책이다. 위인들이나 유명인들이 남긴 명언 외에도 영화 속의 명대사나 책에서 발췌한 글귀들이 먼저 나오고, 그 글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와 '오늘의 확언'이라는 실천팁 같은 것이 따르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사실 자기관리서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 사진이 담긴 예쁜 표지와 내면에 힘을 보태어주는 담백한 글귀들은 자기관리서라기보다는 명상집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묵직하고 부담스러운 명상이 아니라, 더 일상적이고 편안하고 따뜻한 위로이고 응원이다. 마치 힘들고 지쳤을 때 오랜 친구가 말없이 내밀어주는 따뜻한 손 같은.

 

이런 책은 매일 한 장씩 착실히 순서에 따라 읽는 것 보다는, 랜덤으로 아무 페이지나 불쑥 열어서, 약간은 점 치듯(?) 오늘의 나에게 맞는 위로와 격려를 흡수하는 편이 훨씬 맛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아, 그럼 다래끼로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어쩐지 매사가 시들하고 의욕이 없는 오늘의 나를 위한 선물은 과연? 179번째 선물, 당첨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기적이란 없다고 믿고 사는 것과 어디에나 기적이 존재한다고 믿고 사는 것,

나는 후자의 삶은 선택하기로 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준 선물이다. 반쯤 감고 있던 눈에 다시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다.

이런 것이 명언의 힘이 아닐까 싶다. 과거의 선배들이 삶에서 건져 올린 보석같은 지혜들을 오늘의 내 삶에 귀한 영양분이 되게 하는 것. 내 삶의 하루하루가 그 영양분으로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게 하는 것. 가끔은 그 하루 하루란 것이 너무나 지리멸렬하여 도무지 그 보석을 걸쳐올릴 곳이 없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굳건히 나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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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말라 -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그래서 더 진실한 아프리카의 역사 이야기 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 1
김명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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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얼마 전에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윤상욱 지음, 시공사)를 읽었기 때문일까, 나의 아프리카에 대한 촉수는 한껏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자연히 책을 읽어 내려가며 두 책의 공통점과 두 저자의 시각의 차이점이 짚이게 되었다.

일단 두 저자 모두 아프리카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아닌,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다<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의 저자는 주 세네갈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이었고, 이 책의 저자는 기획재정부 공무원으로 튀니지의 아프리카개발은행에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먼 나라에서 공무원으로서 자기 일을 하면서, 아프리카에서 근무한 경험과 나름대로 아프리카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렇게 책을 써냈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그것도 에세이 류도 아니고 인문/교양서인만큼,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이 책은 백인들에 의해 왜곡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의 제목이 말하듯 백인의 눈이 아닌, 그들을 지배했던 제국주의의 시각이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우리도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으면서 신대륙의 발견운운하는 교과서를 바라보며 느꼈던 허망함을 기억한다. 주체적인 시각으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 백번 공감하며 읽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를 읽으면서도 그랬듯이, 역시 이번에도 읽으면서 내내 가슴 아파야 했다.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이 겪어온 고통과 모순의 굴레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시에라리온 내전, 수단 내전, 다르푸르 분쟁, 르완다 인종대학살, 끝이 안 보이는 종교전쟁들……. , 최초의 인류 루시(아프리카 대륙의 이 여성에게도 이렇게 지극히 백인적인 이름을 붙였다)’가 태어난 땅이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왜 아프리카의 풍부한 자원이 오히려 자원의 저주가 되어 발전의 발목을 잡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 책은 절망만이 아닌 아프리카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아프리카의 희망을 (조심스럽게) 읽게 한다. 아프리카의 자존심 메넬리크 2를 비롯한 수많은 아프리카 독립 운동의 영웅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독재권력을 포기하고 정치적 모범을 보인 지도자들, 아프리카의 노벨이라 불리는 모 이브라힘’, 평생을 아프리카의 녹색운동을 위해 힘쓴 왕가리 마타이’, 내전으로 황폐화된 라이베리아에서 철의 여인으로 선 엘렌 존슨 설리프등의 삶을 짧게나마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으로 만든 독재자들의 이름은 꽤 낯이 익은데, 이 이름들은 왕가리 마타이와 설리프를 빼곤 대부분 처음 접하는 이름들이었다. 아직 아프리카의 수많은 민중들에게 제대로 된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 식민지시대의 잔재와 이후 계속된 독재가 민중들의 자각과 제도 정비의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는 현실이 아플 뿐이다.

 

, 하지만 아쉬움 하나. <닫는 글>에 나온, 아프리카인의 식민지 근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아프리카인들의 역사를 존중하고 그들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갖는 것과는 별개로 이 식민지 근성은 아프리카에서 생활한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다(368)’.

물론 저자는 아프리카에서 수년간 생활하고 아프리카인들과 더불어 일을 해 왔기 때문에 나름 객관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단정적인 명제의 근거로 제시한 개인적인 경험과 인상들이 얇다는 느낌이 들었다.

별로 웃을 내용이 아닌데도 가식적인 표정을 지으며 아주 큰 소리로 웃는다는 점이다...(중략)... 아마 백인들의 농담이 재미없어도 웃어줘야 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369)’

그 밖에도 약속시간에 10, 20분 정도 늦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잘못을 해도 미안하다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도, 식민지 근성이라고 딱지 붙이기에는 근거가 약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인들의 시각이 아닌 한국인의 시각으로 아프리카의 역사와 오늘을 바라본다는 생각으로 구성한 알찬 내용의 책이, 좀 더 깊이 있는 시각의 닫는 글로 마무리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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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을 그리다 - 문학과 회화의 경계
위안싱페이 지음, 김수연 옮김 / 태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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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배웠던 귀거래사와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쟁쟁한 이름이 너무도 생생히 남아있어서일까. 도연명이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주목받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시들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사랑받고 있다. 4,5세기경에 살았던 중국의 시인이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 문화 자산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 위안싱페이는 도연명의 시가 지닌 특유의 매력은 읽을수록 새롭고, 캐낼수록 샘솟는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에는 사람의 마음을 일깨우는 지혜도 담겨 있다.”라고 말한다.

 

160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많은 화가들이 그와 그의 작품 세계를 그림 속에 담았다. 각 화가들 나름대로 열심히 상상하고 머릿속에 그렸을 도연명과 그의 시의 이미지를, 정성스럽게 붓 끝으로 그렸을 그 순간을 상상해본다. 이 책의 제목처럼 그를 그리며, 그리워했으리라. 도연명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문학사와 회화사가 다채롭게 어우러지는 이 책을 읽는 것은 그 섬세한 그리움의 결들을 따라가 보는 것이었다.

 

추화시란 옛사람을 추모하여, 그 사람이 지은 시의 운자를 따서 지은 시를 말하는데, 이 추화시 가운데서 특히 도연명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를 따로 화도시라고 한다고 한다. 아예 따로 장르 이름을 지었을 정도라니, 도연명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과 존경의 깊이를 알 만하다. 이 화도시는 내용도 다채롭고 그 양도 방대하다고 한다. 후대 시인들은 생전에 적막하게 지냈던 도연명의 삶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다투어 화도시를 지었단다.

재미있는 것은 속세를 떠난 은사, 망한 왕조의 유민, 불가의 승려, 귀양 온 유배객, 정계에 진출하지 못한 불우한 선비들처럼 도연명 파(?) 색깔이 분명한 이들뿐 아니라 높은 관직의 귀족 관료와 존귀한 지위의 제왕들까지도 화도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뭐 나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겠지만,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구차하게 독우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고 벼슬을 그만두었던 도연명이 이들이 자신에게 바치는 찬사를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했을지.

 

책을 읽으며 또 내심 감탄한 것은, 중국 고전문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라는 저자 위안싱페이가 그림 속 도연명을 주목하는 자세랄까 시선이었다. 문학사의 각도에서 회화사를 결합하여 교차 연구한다는 야심찬 기획을 세웠을 만큼, 저자는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쪽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종일관 겸허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미술 작품 속의 도연명과 그의 시의 이미지를, 그리고 시대별로 화가들이 녹여낸 제재와 형식의 변화를 차분히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시 풀이와 해설도 이해하기 쉽게 찬찬히 잘 설명해주어서, 음 뭐랄까 대가면서도 잘난 척하지 않는 느낌이 좋았다. 나도 도연명을 상상하며 그리는 화가의 마음이 된 듯, 자유롭게 여러 상상을 해 볼 수 있었던 푸근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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