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
마이클 모퍼고 지음, 마이클 포맨 그림, 김은영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지금 이 아이한테 우리 집에 살던 코끼리 이야기를 하던 중이야. 이 아이는 내 말을 믿어주는군그래. 자네는 안 믿지?”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알아. 여기 사람들은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 하지만 칼은 믿지.”(13쪽)

 

요양원에 들어온 지 한 달가량 된, 여든 두 살의 리지 할머니는 다른 환자들과 좀체 어울리지 않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지내고 계신다. 할머니의 닫힌 마음을 눈 녹이듯 녹이고 추억을 펼쳐내 보이게 한 마법은, 역시 때묻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헛소리를 하시는 거라고,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 얽혀있다고 단정 지었던 아이의 엄마도 차차 아들과 함께 마음의 문을 연다. 두 모자는 할머니의 침대 곁에 앉아 할머니가 겪었던 일들, 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드레스덴 폭격 중에 가족과 코끼리와 함께 피난을 떠났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드레스덴 폭격사건. 영국의 처칠과 미국정부 등 연합국에 의해 기밀사항으로 되어 있다가 후일 드러난 전쟁범죄사건이라 읽었던 기억이 난다. 2차 대전 후반, 독일이 밀리기 시작하고 연합군이 독일 본토 공격을 가속화하던 시기였다. 수많은 독일의 피난민들이 모여있던 이 예술의 도시 드레스덴으로 연합군의 가혹한 폭격이 시작되었고, 드레스덴은 삽시간에 쑥대밭이 되고 수만 명의 민간인들은 거의 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분명 2차 대전 중에 나치가 지은 죄는 막중했지만, 왜 민간인들이 그에 대한 비뚤어진 보복을 당해야만 했나.

 

그 처참한 상황에서 리지의 엄마와 리지, 동생 칼과 코끼리 마를렌이 서로 용기를 북돋으며 한발 한발 나아가는 여정은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처참하게 파괴된 도시와 부상을 입고 피 흘리며 울부짖는 사람들, 전쟁터에 나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 극심한 피로와 추위와 굶주림, 언제 전쟁이 끝날지 모르는 하염없는 기다림... 그럼에도 끝내 인간애와 희망을 잃지 않는 그들. 그들은 드레스덴에서 격추당했던 영국군 소속 피터와 함께, 부모와 집을 잃은 성가대 아이들과 함께, 꿋꿋하게 서로를 격려하며 나아간다.

 

“모두 살아 있다는 게 행운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참 이상하게도, 그때 우리가 겪어야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을 것 같은데도 말이야. 우린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웃음을 터뜨리는 때가 훨씬 더 많았어.”

“그 긴 여행의 마지막 몇 주 동안 기억나는 건 피로나 추위 혹은 굶주림이 아니야.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건 아이들의 노래야... 멀고 먼 길을 걷는 우리에게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어둠 속의 등댓불 같았지. 다 함께 부르는 노래로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렸어.”(205쪽)

 

거의 전쟁의 막바지에서 다다랐을 무렵, 탱크 소리에 놀라 달아난 마를렌과의 이별.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정에서 큰 용기와 기쁨을 불어넣어주었던 가족, 마를렌과 헤어졌다는 사실을 슬퍼하면서도 난민 수용소에서 엄마와 로지는 수용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희망을 이어간다. 전쟁은 끝나고 히틀러는 죽었고, 그들은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 그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딛고, 삶은 그렇게 면면히 이어진다. 사람들은 상처를 딛고 서로를 보듬으며 다시 일어서고, 잿더미가 되었던 드레스덴의 하늘 위에는 다시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희망이 있는 한, 삶은 계속된다’고 되뇌었던 어린 소녀는 전쟁을 겪으면서도 성장하고, 어느덧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시간이 흘러 마를렌과 감동적인 재회를 하고, 첫사랑 피터와 가정을 이루고 60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녀는 이제 요양원 침대에 누워있다. 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어린 시절의 동생과 꼭 닮은 소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서 미소를 짓고 있다. 피터와의 추억이 깃든, 그 전쟁속에서 항상 길을 가르쳐주었던 소중한 나침반을 소년의 손에 꼭 쥐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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