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을 그리다 - 문학과 회화의 경계
위안싱페이 지음, 김수연 옮김 / 태학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때 배웠던 귀거래사와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쟁쟁한 이름이 너무도 생생히 남아있어서일까. 도연명이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주목받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시들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사랑받고 있다. 4,5세기경에 살았던 중국의 시인이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 문화 자산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 위안싱페이는 도연명의 시가 지닌 특유의 매력은 읽을수록 새롭고, 캐낼수록 샘솟는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에는 사람의 마음을 일깨우는 지혜도 담겨 있다.”라고 말한다.

 

160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많은 화가들이 그와 그의 작품 세계를 그림 속에 담았다. 각 화가들 나름대로 열심히 상상하고 머릿속에 그렸을 도연명과 그의 시의 이미지를, 정성스럽게 붓 끝으로 그렸을 그 순간을 상상해본다. 이 책의 제목처럼 그를 그리며, 그리워했으리라. 도연명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문학사와 회화사가 다채롭게 어우러지는 이 책을 읽는 것은 그 섬세한 그리움의 결들을 따라가 보는 것이었다.

 

추화시란 옛사람을 추모하여, 그 사람이 지은 시의 운자를 따서 지은 시를 말하는데, 이 추화시 가운데서 특히 도연명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를 따로 화도시라고 한다고 한다. 아예 따로 장르 이름을 지었을 정도라니, 도연명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과 존경의 깊이를 알 만하다. 이 화도시는 내용도 다채롭고 그 양도 방대하다고 한다. 후대 시인들은 생전에 적막하게 지냈던 도연명의 삶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다투어 화도시를 지었단다.

재미있는 것은 속세를 떠난 은사, 망한 왕조의 유민, 불가의 승려, 귀양 온 유배객, 정계에 진출하지 못한 불우한 선비들처럼 도연명 파(?) 색깔이 분명한 이들뿐 아니라 높은 관직의 귀족 관료와 존귀한 지위의 제왕들까지도 화도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뭐 나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겠지만,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구차하게 독우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고 벼슬을 그만두었던 도연명이 이들이 자신에게 바치는 찬사를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했을지.

 

책을 읽으며 또 내심 감탄한 것은, 중국 고전문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라는 저자 위안싱페이가 그림 속 도연명을 주목하는 자세랄까 시선이었다. 문학사의 각도에서 회화사를 결합하여 교차 연구한다는 야심찬 기획을 세웠을 만큼, 저자는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쪽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종일관 겸허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미술 작품 속의 도연명과 그의 시의 이미지를, 그리고 시대별로 화가들이 녹여낸 제재와 형식의 변화를 차분히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시 풀이와 해설도 이해하기 쉽게 찬찬히 잘 설명해주어서, 음 뭐랄까 대가면서도 잘난 척하지 않는 느낌이 좋았다. 나도 도연명을 상상하며 그리는 화가의 마음이 된 듯, 자유롭게 여러 상상을 해 볼 수 있었던 푸근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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