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린포체의 세상을 보는 지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지음, 이현 옮김 / 문학의숲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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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그는 전세계인의 영적 스승이자 살아있는 부처로 불리는 달라이 라마 이후 티베트 불교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명칭과 달리, 책 띠지에 나온 그의 사진은 동글동글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청년이 붉은 승복을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천진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어쩐지 장난기 있어 보이기도 해서 호감이 가는 느낌이다.

뜻밖에도 이 책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두려움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냈다고 고백한다. 서양 의학이라면 만성 공황장애라고 진단을 내릴 정도로 심각한 공포와 두려움이었는데, 그는 어떤 약물이나 병원 치료에도 의지하지 않고 그 고통을 정복해냈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과 명상을 통해 극심한 마음의 병을 이겨낸 것이다.

 

또한 정식으로 불교 수행을 시작하면서 그는 ‘내 삶에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치고 개인적인 성장을 가속화시켜준 새로운 전환’(24쪽)을 만났다고 한다. 칠레의 생물학도 프란시스코 바렐라를 만나 현대의 과학 이론과 발견들, 특히 뇌의 성질과 기능에 대한 연구들을 소개받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해본다. 후에 20세기 최고의 신경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젊은 생물학도가 이제 불교 수행을 시작하는 어린 욘게이 밍규르에게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장면을. 그의 설명에 흥미롭게 귀 기울이던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소년은 그 이후로도 현대 과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티베트 불교와 현대 과학의 원리들을 결합시키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게 된다. 많은 서구 과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심리학뿐만 아니라 최근의 양자물리학의 새로운 발견들로 얻어진 우주 이론들까지, 불교와 현대 과학의 주요 핵심들이 놀라울 만큼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하기도 했다.

‘불교와 현대 과학은 둘 다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해 줍니다. 그 둘이 합쳐진다면 더 완전하고 의미가 분명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25쪽)’

특히 공과 현상의 관계에 대한 불교적 이해와 양자역학의 원리 사이에 대한 유사점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동안 사용하는 단어들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양쪽 모두, 거의 무한한 숫자의 사건들이 원인이 되고 그것들에 조건 지어져서 순간순간 펼쳐지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자역학이 세워진 토대인 고전물리학의 원리들까지, 친절하게 핵심을 짚어 이야기해주는 욘게이 밍규르의 설명은 지적이고 매력적이었다.

생각할수록 신비롭기만 하다. 우리는 현대에 들어와서 통섭이라는 이름으로 학문들 간의 연결과 통합이 시도된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대에 연구된 심리학과 뇌신경과학을 비롯한 여러 과학의 이론들이 오래전부터 티베트의 불교 안에서 발전되어 왔다니...

 

이 책에서 욘게이 밍규르는 다양한 마음 수행의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명상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하고 엄숙해야 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깨고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펴들고 읽어도 마음에 와 닿는 글귀들을 만날 수 있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글들. 아, 하지만 불교 수행의 본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생각을 바꾸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내가 이미 다 갖추고 있고 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라고 했지. 내 마음에 본래부터 내재된 가능성을 자각하는 일. 그러면 이렇게 말하자.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이 괜찮은 존재임을 깨닫고 힘이 나게 하는 글귀들이 많다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은 그 자신 역시 배우고 성장할 기회가 천 배나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당신이 건넨 친절한 말과 작은 미소는 당신이 전혀 기대하진 않았던 방식으로 다시 돌아옵니다.(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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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2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2
은지성 지음 / 황소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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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머리 ‘저자의 글’에 나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의 한 토막은 내가 좋아하는 대목이기도 해서 반가웠다. ‘남이 만들어 놓은 지도’위에서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앨리스에게 말해주는 벽의 얘기다. 하나뿐인 내 삶을 어떻게 완성해갈 것인지를 알려줄 나만의 지도를, 나는 얼마나 충실히 그리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해 주는 이야기 같다.

 

어떻게 나 자신만의 삶의 지도를 만들어야 할 것인지, 그 지도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지, 지도를 향해 나아가다가 힘들거나 지칠 때면 어떻게 힘을 얻을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마더 테레사, 스티븐 호킹, 마리아 몬테소리, 앨리슨 래퍼, 넬슨 만델라, 앤드류 카네기, 제인 구달 등 널리 알려진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설적인 뇌성마비 세일즈맨 빌 포터나 한국인 최초로 미국 상원의원이 된 신호범, 의사에서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배우로 변신한 켄 정 같이 생소하게 들리는 인물들의 이야기들도 있다(개인적으로는 너무 유명한 인물들의 비율이 좀 더 줄었다면 더 읽는 맛이 있었을 것 같다).

 

특히 한국인 최초로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연거푸 다섯 번 더 당선된 신호범의 이야기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인생의 참맛은 폭풍 속에서 춤추는 것’이라 말하는 그의 인생역정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사소한 것에도 쉽게 실망하고, 폭풍은커녕 바람만 좀 세차게 불어도 금세 휘청거렸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부끄러워졌다. 더욱이 그가 성공을 거둔 후 용서와 화해로 세상을 대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숙모로부터 갖은 구박을 당하고 거지생활로 연명해야 했던 소년이 대학교수를 거쳐 미국인도 인정한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된 것은 분명 인생역전이고 빛나는 성공스토리다. 하지만 그 후 자신을 그리도 힘들게 했던 외숙모와 아버지를 용서하고 기꺼이 돕고, 고아들을 입양해 키우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사는 모습은 성공이란 단어를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소개되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고, 엮은이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아예 따로 ‘플러스 메시지’로 정리되어 있는 구성도 깔끔했다. 여러 훌륭한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엮은이 자신의 인생 얘기가 너무 자주 끼어드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봐 와서일까, 군더더기 없이 핵심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해 주어서 좋았다. 책 머리글에 나왔듯이 자기계발서라기 보다는 위인전 여러 권을 읽은 느낌이다.

남이 만들어낸 지도가 아닌, 자신의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만의 삶의 지도를 훌륭히 만들어 낸 사람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헛되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벅차온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라고 하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내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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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으로 가는 트랙터 - 세상에서 가장 느리지만 가장 용기 있는 여행
마논 오스포르트 지음, 신석순 옮김 / 시공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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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아주 작은 거라고. 거대한 일도 어느 누군가에 의해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시작되는 거라고. (65쪽)

 

털털거리는 초록색 트랙터를 타고 사람들의 꿈을 하나하나 모아, 유럽대륙과 발칸 반도를 거쳐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하여 세상 끝 남극으로 향하는 머나먼 길. 마논의 도전을 누가 단지 엉뚱하거나 무모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순수함, 용기, 꿈을 향한 굳센 믿음, 포기하지 않는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길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과의 교감과 우정으로 가득한 그녀의 특별한 여정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논의 여정에서 특별한 점 중의 하나는, 여행 중에 펼치는 그녀의 공연일 것이다. 공연예술을 공부하고 어릴 때부터 자신만의 공연을 꿈꾸어 왔던 마논은, 꿈을 주제로 한 극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어떻게 하면 용기를 구할까?’ 이것이 그녀의 공연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몸짓 언어로 스토리를 꾸미고, 공연을 통해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꿈을 수집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즐거웠다. 연극의 결말 부분에서 사람들의 꿈을 모은다는 발상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고된 여행을 하는 중에 다양한 배경의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한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공연할 장소를 찾아 애를 먹기도 하고, 어떨 때는 통역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기도 하고, 에티오피아에서는 ‘돈 좀 있는 외국인은 말썽거리만 될 뿐’이라고 시비를 거는 사람이 공연을 망칠 뻔 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녀는 무대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관중들과 소통하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공연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서슴없이 다가간다. 수감된 청소년들 앞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에너지를, 꿈에 대한 메시지를 마음껏 나눈다.

 

꿈을 모으는 순간은 매우 특별했다. 예상치 못했던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모두들 자신의 꿈이 곧 세상 밖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 거라고 믿는 듯했다. 그들의 꿈은 다른 꿈들과 함께 아무런 차별 없이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었다. 또한 온 세상 꿈의 영원한 상징으로서 남극에 묻힐 것이었다.(157쪽)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로 온 마논은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부딪치고 내적으로도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 물 부족과 기아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 각종 원조단체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해 그녀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동정에서 비롯된 무조건적인 후원보다는 지역 경제를 일으켜 ‘더 이상 구걸에 의존하는 사람들로 만들지 않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절감한다. 다만 얼마 전에 아프리카의 역사와 오늘날의 총체적인 상황을 분석한 인문서를 읽은 뒤라 그런지, 좀 더 아프리카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이 아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프리카가 지금의 모진 고통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은, 오랜 세월 그 대륙을 철저히 수탈했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니 그녀의 착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시각에 불편함이 느껴졌다. ‘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라는 책도 기억나는데 역시 서구인의 한계 같은 것일까. 뭐 인문서랑은 장르가 다른 여행기인데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일지도.^^;

 

암튼 이런 아쉬움도 있긴 했지만, 역시 이 씩씩하고 멋진 여성에 대한 내 마음은 응원과 격려다. 특히 케냐의 성폭력 예방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패션쇼 행사에서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용기는 특히 감동적이었다. 열아홉의 나이로 네덜란드에서 잔인하게 당했던 강간을 이야기하며 그녀는 케냐의 법이 변화하기를, 케냐의 여성들이 정의에 의해 보호받기를 염원한다.

온갖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하는 그녀의 여정을 힘껏 응원하고 싶다. 그녀의 꿈은 자신만의 꿈이 아닌,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달픈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함께 품고 있는 것이기에 더더욱. 다음 달이면 그녀의 트랙터는 드디어 희망봉을 떠나 남극에 도착한다고 한다. 부디 그녀가 무사히 남극에 도착해서(하필 겨울이라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꿈을 남극빙하에 잘 심고 오게 되길 바란다.

 

‘절대로 이상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가끔은 희망조차 없어 보이는 내 상황이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과 교차했다. 적적함, 과로, 마음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묵묵히 고군분투했다.(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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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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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늑대를 좋아한다. 늑대에 대한 내 애정의 출발은, 어렸을 때 시튼의 동물기에서 만났던 늑대왕 로보였다. 너무나 영리하고 지혜로웠던 늑대 무리의 지도자였던 로보가, 여자친구 블랑카가 죽은 이후 힘을 잃고 인간에게 잡혔던 장면,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장렬한 최후를 맞았던 장면에 얼마나 울었던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년 동거 일기’, 부제를 보는 순간 사로잡혔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이제 나의 로보랑, 또 팔리 모왓의 ‘울지 않는 늑대’에서 만났던 북극 늑대들이랑 함께 ‘브레닌’의 이름도 고이 넣어둔다. 책을 시각화(?)하며 읽기를 좋아해서일까, 저자가 묘사했던 ‘이른 아침 앨라배마의 안개 속을 헤치며 땅위를 조용하며 우아한 모습으로 유연하게 미끄러지듯 달리던’ 브레닌의 우아한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 것 같다.

매일 조깅을 시작할 때 나는 아무리 기분이 우울하더라도 그처럼 조용하고 활주하는 듯한 아름다움을 보면 항상 기분이 좋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되고 싶은 욕망 없이 그 아름다움을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149쪽)

 

 

어느날 젊은 철학자의 삶에 불쑥 들어온 늑대 브레닌. 저자에게 브레닌은 소울메이트이고,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의 형제이기도 하다. 또한 그에게 많은 철학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야생의 브레닌을 훈련시키면서, 브레닌의 놀이 본능을 지켜보면서, 브레닌과 함께 달리고 산책하면서, 토끼를 쫓는 브레닌을 관찰하면서, 병이 든 브레닌을 병원에 데려가고 곪아서 냄새가 나는 브레닌의 몸을 씻겨주면서, 더 이상 가망이 없게 된 브레닌의 앞다리 혈관에 치사량의 마취제를 투여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로 만들어진 브레닌의 유령을 만나면서... 그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인간이란 존재를 성찰한다. 브레닌을 통해 그는 우리도 한때 늑대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 안의 야성을 우리의 삶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탐색해간다.

 

그의 다채로운 철학적 성찰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대인의 행복에 대한 성찰이다. 철학자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가만히 엎드려 기다리는 브레닌을 보며, 브레닌에게 행복을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경직과 긴장의 고통, 인내의 시간 끝에 노리던 토끼를 잡은 적이 거의 없었으면서도 사냥이 끝나면 눈을 빛내며 껑충껑충 뛰어오는 브레닌을 바라보며 그는 깨닫는다. 행복은 토끼를 턱으로 물었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는 것을. 행복을 하나의 감정으로 생각하고, 감정에 강박적으로 집중하고 행복 중독자가 된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그의 성찰을 읽으며 무척 공감했다.

나는 길게 펼쳐진 잔디밭에 앉아 브레닌이 토끼 뒤를 몰래 쫓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삶 속에서 감정이 아니라 토끼를 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삶에서 가장 좋은 순간, 우리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은 즐거운 동시에 몹시 즐겁지 않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중략)... 때로는 삶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이 가장 가치 있기도 하다. (221쪽)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식의 수험생들 책상머리에 붙어있을 법한 글귀의 지혜와는 거리를 둔다. 그런 인과관계를 넘어, 행복 그 자체가 불편함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즐거움과 불편함이 하나가 되는 행복을 그는 ‘한쪽을 헐어 내면 모두 허물어지는 구조물’에 비유한다.

 

 

또, 병에 걸린 브레닌을 치료하고 돌보면서, 죽어가는 브레닌을 지켜보면서 품었던 사랑의 여러 가지 얼굴들에 대한 생각, ‘필리아’에 대한 성찰도 기억에 남는다. 아, 그리고 시간과, 영원회귀, 시지프스에 대한 성찰도 무척 매혹적이었다. 삶의 시간을 일직선이라고 생각하는 인간과 매 순간을 그 자체의 보람으로 받아들이는 늑대... 그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시간은 매 순간에 충실한 존재들에게는 무력하지만 우리에게는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303쪽)라는 생각에 이른다. 끄덕끄덕. 그러므로 인간은 만물의 영장 어쩌구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영장류 중심적인 좁아터진 시각인지.

 

그밖에도 매혹적인 성찰들이 책 곳곳에 빛난다. ‘영장류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하지만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의 사실이나 소유의 정도가 아니다.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늑대가 되느냐는 것이다’(318쪽)도 그렇다. ‘나는 소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지구를 말아먹을 듯 돌진하는 인간의 소유욕을 이렇게 늑대와 적나라하게 비교해 놓다니. 어쩐지 내가 한 마리 늑대가 된 듯 통쾌함마저 들었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끊임없이 낳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최상의 상태에 내가 어떤 존재였느냐는 것’(334쪽), 또한 한 걸음씩 더 나아간다. ‘최상의 상태에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최상의 순간들이라는 모습으로만 우리에게 드러난다. 하지만 내 순간들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중략)... 우리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두려운 순간들은 좋은 것이든 악한 것이든 타인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만 우리의 것이 된다.’(334쪽) 나는 원래 ‘순간’이란 말을 참 좋아하는데, 이 책에서 ‘무리의 순간’이라는 말을 처음 만났다. 철학자는 나직이 말한다. 나의 순간은 무리의 순간이며 나는 무리를 통해서만 나 자신을 기억할 수 있다고.

 

철학의 풍성한 향연을 맛보고 아쉬운 맘으로 책을 덮는데, 책 표지에 프란스 드 발이 써놓은 한 줄이 와 닿는다. ‘한 마리 동물이 이토록 깊은 성찰을 이끌어 내다니......’ 무척 공감되는 말이다. 하늘나라로 간 브레닌이 컹컹거리며 기뻐하고 있을 것 같다. 지상 2~5cm를 떠다니는 유령처럼 우아하게 허공을 활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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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 위기 이후 세계를 위한 토플러의 제언
앨빈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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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 출판사인 사우스엔드프레스가 너무나도 유명한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와 진행했던 인터뷰 내용을 담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느낌은, 이 인터뷰가 이루어지던 시점이 1983년이었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이었다. 혜안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거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산업사회의 한 가운데서 그가 예측했던 사회의 여러 가지 변화들은 너무나 예리하고 정확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갔다 온 것처럼(진부한 비유지만 자꾸 생각나서...^^;), 경제구조의 변화, 노동 특성의 변화, 정보 시대의 정치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짚어내고 분석해낸다.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어디선가에서 읽었던 기사 한 토막이 떠올랐다. 엘빈 토플러가 매일 아침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발행되는 여러 종류의 신문들을 읽느라고 손끝이 까맣게 되곤 한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여튼 그런 끊임없는 연구와 열정의 축적이 엄청난 깊이의 내공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예견’이라는 제목으로 경제, 노동,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정치와 성 역할, 문화 등의 다채로운 영역들에서 일어날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고 2부 ‘전제’는 엘빈 토플러의 개인적 배경과 연구 방식, 지식 모델 등에 대한 대화와 학문으로서의 미래학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가오고 있는 미래의 모습들을 예측하기 위한 도구들에 대한 논의 등을 다룬다. 1부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2부의 내용도 신선하고 자극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다른 대부분의 석학들과 달리 엘빈 토플러가 젊은 시절 블루칼라 노동자로서 수년간 일했다는 이야기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대학졸업후 공장에서 천공 프레스를 돌리고, 주물 공장과 자동차 공장에서도 일했다고 한다. ‘미국 중서부 지방에서 일을 하는 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길, 진짜 세상을 경험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포도 농사를 지었던 존 스타인벡과 바다로 나갔던 잭 런던을 생각하면서 ‘언젠가는 노동 계급으로서의 삶에 대한 위대한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엘빈 토플러를 떠올리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그렇게, 존경하던 소설가들을 가슴에 품고서 현장에 나가 노동을 했던 문학청년은 노동업계 소식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용접에 대한 글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노동계 언론사의 기자로, 프리랜서 기자로, <포춘>의 칼럼니스트로... 그리고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무명의 토플러를 세계적 지식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미래 쇼크>의 출간. 그렇게 얼핏 승승장구로 보이는 그의 이력 뒤에, 낭만적인 이상을 품고 있었던 한 젊은이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자기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기 훨씬 전부터 혼자 글을 쓰고 또 썼을 그 젊은이의 모습이.

‘박사학위가 없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법’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해 준 그 시절에 대해서는 일말의 후회가 없다고 엘빈 토플러는 말한다. 아마도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한 순간도 헛되이 살지 않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일 것이다.

 

우리가 현재에 취하는 행동은 미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토플러가 미래 그 자체를 위한 미래는 의미가 없다고 했듯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단 하나의 미래란 없으며 오직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할 뿐. 미래에 대해, 그리고 그 변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책을 덮기가 아쉬워 파라락 넘기다가 새뮤얼 버틀러의 이 말에 눈길이 간다. ‘삶이란 불충분한 전제로부터 충분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예술이다.’ 아마 엘빈 토플러의 삶도, 그의 연구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바라건대 우리의 삶도 그렇게, 불확실한 미래를 충만히 살아갈 수 있는 예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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