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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늑대를 좋아한다. 늑대에 대한 내 애정의 출발은, 어렸을 때 시튼의 동물기에서 만났던 늑대왕 로보였다. 너무나 영리하고 지혜로웠던 늑대 무리의 지도자였던 로보가, 여자친구 블랑카가 죽은 이후 힘을 잃고 인간에게 잡혔던 장면,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장렬한 최후를 맞았던 장면에 얼마나 울었던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년 동거 일기’, 부제를 보는 순간 사로잡혔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이제 나의 로보랑, 또 팔리 모왓의 ‘울지 않는 늑대’에서 만났던 북극 늑대들이랑 함께 ‘브레닌’의 이름도 고이 넣어둔다. 책을 시각화(?)하며 읽기를 좋아해서일까, 저자가 묘사했던 ‘이른 아침 앨라배마의 안개 속을 헤치며 땅위를 조용하며 우아한 모습으로 유연하게 미끄러지듯 달리던’ 브레닌의 우아한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 것 같다.
매일 조깅을 시작할 때 나는 아무리 기분이 우울하더라도 그처럼 조용하고 활주하는 듯한 아름다움을 보면 항상 기분이 좋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되고 싶은 욕망 없이 그 아름다움을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149쪽)
어느날 젊은 철학자의 삶에 불쑥 들어온 늑대 브레닌. 저자에게 브레닌은 소울메이트이고,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의 형제이기도 하다. 또한 그에게 많은 철학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야생의 브레닌을 훈련시키면서, 브레닌의 놀이 본능을 지켜보면서, 브레닌과 함께 달리고 산책하면서, 토끼를 쫓는 브레닌을 관찰하면서, 병이 든 브레닌을 병원에 데려가고 곪아서 냄새가 나는 브레닌의 몸을 씻겨주면서, 더 이상 가망이 없게 된 브레닌의 앞다리 혈관에 치사량의 마취제를 투여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로 만들어진 브레닌의 유령을 만나면서... 그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인간이란 존재를 성찰한다. 브레닌을 통해 그는 우리도 한때 늑대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 안의 야성을 우리의 삶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탐색해간다.
그의 다채로운 철학적 성찰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대인의 행복에 대한 성찰이다. 철학자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가만히 엎드려 기다리는 브레닌을 보며, 브레닌에게 행복을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경직과 긴장의 고통, 인내의 시간 끝에 노리던 토끼를 잡은 적이 거의 없었으면서도 사냥이 끝나면 눈을 빛내며 껑충껑충 뛰어오는 브레닌을 바라보며 그는 깨닫는다. 행복은 토끼를 턱으로 물었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는 것을. 행복을 하나의 감정으로 생각하고, 감정에 강박적으로 집중하고 행복 중독자가 된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그의 성찰을 읽으며 무척 공감했다.
나는 길게 펼쳐진 잔디밭에 앉아 브레닌이 토끼 뒤를 몰래 쫓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삶 속에서 감정이 아니라 토끼를 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삶에서 가장 좋은 순간, 우리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은 즐거운 동시에 몹시 즐겁지 않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중략)... 때로는 삶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이 가장 가치 있기도 하다. (221쪽)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식의 수험생들 책상머리에 붙어있을 법한 글귀의 지혜와는 거리를 둔다. 그런 인과관계를 넘어, 행복 그 자체가 불편함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즐거움과 불편함이 하나가 되는 행복을 그는 ‘한쪽을 헐어 내면 모두 허물어지는 구조물’에 비유한다.
또, 병에 걸린 브레닌을 치료하고 돌보면서, 죽어가는 브레닌을 지켜보면서 품었던 사랑의 여러 가지 얼굴들에 대한 생각, ‘필리아’에 대한 성찰도 기억에 남는다. 아, 그리고 시간과, 영원회귀, 시지프스에 대한 성찰도 무척 매혹적이었다. 삶의 시간을 일직선이라고 생각하는 인간과 매 순간을 그 자체의 보람으로 받아들이는 늑대... 그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시간은 매 순간에 충실한 존재들에게는 무력하지만 우리에게는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303쪽)라는 생각에 이른다. 끄덕끄덕. 그러므로 인간은 만물의 영장 어쩌구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영장류 중심적인 좁아터진 시각인지.
그밖에도 매혹적인 성찰들이 책 곳곳에 빛난다. ‘영장류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하지만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의 사실이나 소유의 정도가 아니다.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늑대가 되느냐는 것이다’(318쪽)도 그렇다. ‘나는 소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지구를 말아먹을 듯 돌진하는 인간의 소유욕을 이렇게 늑대와 적나라하게 비교해 놓다니. 어쩐지 내가 한 마리 늑대가 된 듯 통쾌함마저 들었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끊임없이 낳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최상의 상태에 내가 어떤 존재였느냐는 것’(334쪽), 또한 한 걸음씩 더 나아간다. ‘최상의 상태에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최상의 순간들이라는 모습으로만 우리에게 드러난다. 하지만 내 순간들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중략)... 우리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두려운 순간들은 좋은 것이든 악한 것이든 타인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만 우리의 것이 된다.’(334쪽) 나는 원래 ‘순간’이란 말을 참 좋아하는데, 이 책에서 ‘무리의 순간’이라는 말을 처음 만났다. 철학자는 나직이 말한다. 나의 순간은 무리의 순간이며 나는 무리를 통해서만 나 자신을 기억할 수 있다고.
철학의 풍성한 향연을 맛보고 아쉬운 맘으로 책을 덮는데, 책 표지에 프란스 드 발이 써놓은 한 줄이 와 닿는다. ‘한 마리 동물이 이토록 깊은 성찰을 이끌어 내다니......’ 무척 공감되는 말이다. 하늘나라로 간 브레닌이 컹컹거리며 기뻐하고 있을 것 같다. 지상 2~5cm를 떠다니는 유령처럼 우아하게 허공을 활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