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티베트 린포체의 세상을 보는 지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지음, 이현 옮김 / 문학의숲 / 2012년 11월
평점 :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그는 전세계인의 영적 스승이자 살아있는 부처로 불리는 달라이 라마 이후 티베트 불교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명칭과 달리, 책 띠지에 나온 그의 사진은 동글동글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청년이 붉은 승복을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천진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어쩐지 장난기 있어 보이기도 해서 호감이 가는 느낌이다.
뜻밖에도 이 책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두려움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냈다고 고백한다. 서양 의학이라면 만성 공황장애라고 진단을 내릴 정도로 심각한 공포와 두려움이었는데, 그는 어떤 약물이나 병원 치료에도 의지하지 않고 그 고통을 정복해냈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과 명상을 통해 극심한 마음의 병을 이겨낸 것이다.
또한 정식으로 불교 수행을 시작하면서 그는 ‘내 삶에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치고 개인적인 성장을 가속화시켜준 새로운 전환’(24쪽)을 만났다고 한다. 칠레의 생물학도 프란시스코 바렐라를 만나 현대의 과학 이론과 발견들, 특히 뇌의 성질과 기능에 대한 연구들을 소개받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해본다. 후에 20세기 최고의 신경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젊은 생물학도가 이제 불교 수행을 시작하는 어린 욘게이 밍규르에게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장면을. 그의 설명에 흥미롭게 귀 기울이던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소년은 그 이후로도 현대 과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티베트 불교와 현대 과학의 원리들을 결합시키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게 된다. 많은 서구 과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심리학뿐만 아니라 최근의 양자물리학의 새로운 발견들로 얻어진 우주 이론들까지, 불교와 현대 과학의 주요 핵심들이 놀라울 만큼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하기도 했다.
‘불교와 현대 과학은 둘 다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해 줍니다. 그 둘이 합쳐진다면 더 완전하고 의미가 분명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25쪽)’
특히 공과 현상의 관계에 대한 불교적 이해와 양자역학의 원리 사이에 대한 유사점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동안 사용하는 단어들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양쪽 모두, 거의 무한한 숫자의 사건들이 원인이 되고 그것들에 조건 지어져서 순간순간 펼쳐지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자역학이 세워진 토대인 고전물리학의 원리들까지, 친절하게 핵심을 짚어 이야기해주는 욘게이 밍규르의 설명은 지적이고 매력적이었다.
생각할수록 신비롭기만 하다. 우리는 현대에 들어와서 통섭이라는 이름으로 학문들 간의 연결과 통합이 시도된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대에 연구된 심리학과 뇌신경과학을 비롯한 여러 과학의 이론들이 오래전부터 티베트의 불교 안에서 발전되어 왔다니...
이 책에서 욘게이 밍규르는 다양한 마음 수행의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명상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하고 엄숙해야 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깨고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펴들고 읽어도 마음에 와 닿는 글귀들을 만날 수 있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글들. 아, 하지만 불교 수행의 본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생각을 바꾸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내가 이미 다 갖추고 있고 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라고 했지. 내 마음에 본래부터 내재된 가능성을 자각하는 일. 그러면 이렇게 말하자.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이 괜찮은 존재임을 깨닫고 힘이 나게 하는 글귀들이 많다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은 그 자신 역시 배우고 성장할 기회가 천 배나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당신이 건넨 친절한 말과 작은 미소는 당신이 전혀 기대하진 않았던 방식으로 다시 돌아옵니다.(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