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담 醫對談 - 교양인을 위한 의학과 의료현실 이야기
황상익.강신익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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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의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한국의 의료현실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철학자와 의역사학자가 허심탄회하게 대담을 나눈다. 책장을 넘기면서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의 장면들, 호주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했을 때 따라갔던 병원에서 주치의와 함께 온갖 이야기를 나누던 그 집 엄마의 모습이 마냥 신기했던 경험, 친한 친구의 언니가 이름도 생소한 희귀병에 걸려서 온 집안이 어마어마한 병원비와 약값, 간병인비용까지 감당하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었던 것을 지켜봤던 일, 며칠 전 각막에 상처가 나서 안과를 찾았는데 1분쯤 진찰하고 너무나 무표정한 얼굴로 안약을 처방해주던  의사를 보며 씁쓰레했던 일...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인술'로서의 의학과 현실 속에서 '상술'화되고 있는 의학 사이의 간극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쉽게 경험하며 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의료제도들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3분 진료'의 문제, 부족한 의료비 재원을 확충하는 문제, 포괄수가제의 그늘, 의료인력의 수급 불균형, 의료기관 민영화...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내가 평소에 생각해왔던 해결책(?)들이 쑥스러울 정도로 참 단순하지 않은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고 고민해 볼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이 책은 인문학서지만, 의외로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었다. 두 학자는 여러번 '건강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건강은 질병과의 싸움에서 이겨 쟁취해야 할 전리품이나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주어진 일상에 충실한 가운데, 저절로 생기는 생물학적 상태 또는 인간적 가치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266쪽)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이 시대, 우리는 상업적인 문화의 부추김을 받는 우리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대해 언젠가부터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몸과 마음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일이 바로 행복이며 건강의 올바른 정의'(18쪽),'우리가 스스로 건강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아프면 무조건 의사나 약을 찾는 건 잘못된 일'(252쪽)이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말이면서도 다시금 되새기고 싶은 얘기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약이나 항생제 의존도는 따라올 나라가 없다는 말도 뉴스에서 자주 듣는다. 물론 진짜 몸에 이상이 있을 때는 제때 병원을 찾아야겠지만, 평소에 자기 몸의 소리에 스스로 귀를 기울이고 지나치게 의사나 약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위기상황에는 의사의 손길이 꼭 필요하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 때문에 의학을 절대화하기도 할 거예요. 그때는 의학의 힘이나 의사의 손길이 중요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란 말이예요. 그리고 더 건강한 삶을 살면 위급한 상황은 생기지 않거나 늦춰질 수 있어요."(261쪽)

 

또한 내심 반가웠던 것은, 그러면서도 '건강'이라는 개념이 개인주의화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두 학자의 인문학적인 사유의 깊이였다. 만약 건강을 국민의 권리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린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상품의 소비를 통해 건강을 사려고 한다는 점이 바로 문제죠. 문화든 건강이든 사회 시스템 측면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개인에게 맡겨버리게 되면 절대 해결할 수 없어요.'(253쪽)

'건강과 관련된 일은 의료 시스템과 같은 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부가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도입하느냐가 중요'(260쪽)하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국민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의료 서비스도 중효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인 환경, 자연환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평균수명과 영아사망률 등의 지표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고, 비교적 안정적이고 성공적으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계 최저인 출산율과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전체 국민 중 38%만이 주관적으로 자신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이는 낮은 행복지수와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건강한 삶을 위한 우리 각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생산하는 창조적인 과정'(228쪽)인 의학이, 우리의 사회적인 환경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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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변화한다 - 모옌 자전에세이
모옌 지음, 문현선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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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가라고 불리는 모옌의 첫 회상록. 하지만 이런 거창한 수식어가 주는 무게를 사뿐히 내려놓고 읽을 수 있을 만큼 이 에세이는 편안하고 또 재미있게 읽힌다(혹은 진짜 대가는 쓸데없는 무게를 내려놓는 법인가?^^;). 이야기를 읽으면서 애틋하고 슬픈 느낌이 들다가도 또 한편으론 잔잔한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1955년 산둥 성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모옌은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이유(선생님에게 별명을 붙였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다면 학교에 몇 명이나 붙어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모옌은 별명을 붙인 장본인도 아니었는데)로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문화대혁명으로 학업을 포기한 후 열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목화 가공 공장 직공으로 일하게 된다. 이후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하게 된 그는, 고장난 지프를 타고 처음으로 베이징 시내에 입성하며 '내 마음속의 베이징은 이미 너무 거대해 심장이 벌렁거리고 마음이 요동을 쳤다'(75쪽)며 감격에 겨워 한다.

 

'그러고 보면 세상 모든 일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변화를 거듭하는 것 같다.'(125쪽)

중국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그와 그를 둘러싼 세 인물-루원리, 허즈우,류톈광 선생님-들의 삶과 함께 굽이굽이 쉬임없이 흘러간다. 이 책의 원제대로 모든 것은 '변화'해가는 것이다.

애초에 '지난 삼십 년 동안 중국에서 일어난 변화와 관련해 글을 써달라'(6쪽)는 원고 청탁의 초점을 가볍게 뛰어넘어 '어떻게 쓰든 내 마음대로' 또 '무엇을 쓰든 내 마음대로'(6쪽) 쓰기로 했다는 에필로그처럼, 그는 중국의 개혁개방 삼십 년 세월을 무게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회고한다. 물 흐르듯이, 자신의 삶의 변화에 따라서 담담하게. 중국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나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 뭔가 애틋한 것이 느껴졌다. 

무적의 소련제 가즈를 몰던 루원리의 아버지를 동경하며 '새하얀 장갑 한 켤레를 얻을 수 있기를'(33쪽)이 일생일대의 소망이었던 산골 마을의 소년들. 위풍당당한 국영농장의 자동차 운전기사의 딸로, 학교에 집중 훈련을 받는 탁구선수였던 예쁘장한 소녀 루원리. 학교를 무척 사랑했고 입이 큰 류 선생님에게 내심 깊은 정을 느끼고 있었지만 오해를 받아 학교를 쫓겨난 나. 담벼락 한구석에 몸을 기댄 채 잔뜩 웅크리고 탁구시합을 구경하는 나. 책을 찢고 인상적인 모습으로 학교를 떠났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 허즈우... 회상록이지만 한 편의 잘 짜여진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변화.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던 자오쯔 빚는 기계를 신기하게 구경하며 비계 가득하던 자오쯔를 먹었던 시대가 지나고 지금은 모든 자오쯔 가게가 '손으로 빚은 자오쯔'라는 것을 홍보한다. 가난한 산골 소년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가즈 자동차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속에서 화염에 휩싸여 생을 마감한다. 루원리를 짝사랑했던 허즈우는 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 엄청난 부자가 되어 승승장구하게 된다. 루원리는 두 남편을 모두 잃고, 마오창 시험에 등록한 외동딸을 부탁하려고 옛 친구를 찾아온다. 옛 친구 둘은 붉은 포도주를 마시며 잠시 옛날을 회상한다. 루원리는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만 위안이 든 봉투를 내밀고, 나는 한참을  생각 끝에 그 봉투를 받아든다.

 

삼십 년이란 세월, 특히나 파란만장하고 그 현대사와 사람들마다의 질펀하고 굴곡많던 세월을 어떻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모옌은 오히려 더 힘을 빼고,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렇게 자기와 친구들의 삶을 이야기한 것 같다. 책장을 덮으며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뭐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어떤 것이든 그냥 넘겨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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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말 하얀 말 단비어린이 그림책 2
차오원쉬엔 글, 치엔이 그림, 김선화 옮김 / 단비어린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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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가 무척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림책. 하얗고 커다란 달을 배경으로 하얀 말과 검은 말이 뒷다리를 든채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전체적인 책의 그림들이 모두 무채색이고, 그림책답지 않은 듯한(?)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의 거친 선들과 무거워보이는 듯한 분위기... 독특하다. 그린이가 <루쉰 작품전집>의 목판화 작품들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는데(찾아봤다. 역시 강렬하고 멋지다), 이 그림책에서도 그런 판화적인 색깔이 물씬 풍긴다.

 

좋은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감동을 주고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법이다. 이 그림책 <검은 말 하얀 말>도 역시,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어른들에게도 묵직한 울림과 교훈을 주고 있다. 상황에 따라 대상을 대하는 것이 너무나 쉽게 변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진정한 우정이란 것에 대해, 우리가 살면서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이와 함께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검은 망아지와 하얀 망아지는 점점 멋진 말로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에 전쟁이 터지고 집집마다 말 한 마리씩을 전쟁에 내보내야 하게 되었다. 고심하던 주인이 항아리 안에서 꺼낸 돌은 하얀 돌... 그렇게 하얀 말은 전쟁에 나가게 되었다.

특히 전쟁터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 뒤섞인 말과 사람들, 전쟁터의 혼돈과 공포가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운 하얀 말은 큰 공을 세워 유명해지고 영웅 대접을 받게 된다. 고향에 잠시 들른 하얀 말을 서로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든다. 맛있는 먹이를 가져다주고, 한 번이라도더 쓰다듬어 보려고 하고... 그에 비해 밤낮으로 묵묵히 농사일을 계속하는 검은 말. 하지만 검은 말은 하얀 말의 성공을 배 아파하기는커녕, 그의 소식을 듣는 것을 기뻐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은 바뀌게 된다. 하얀 말은 전쟁터에서 심하게 다쳐 마을로 돌아와야만 했고, 처음에는 잘 돌봐주던 주인은 얼마지나지 않아 '쓸모없는 말'이 되어버린 하얀 말을 언제까지 보살펴줘야 하느냐고 짜증을 낸다. 농사일을 하는 검은 말에게는 좋은 먹이를 주면서도 하얀 말에게는 누렇게 시든 풀만 주고...

전쟁터의 영웅으로 추켜세우며 자랑스러워 할 때는 언제고, 자신에게 쓸모없어져 버렸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주인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세상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렇지 않은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몰려들면서 추락할 때는 외면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나 자신도 그런 적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검은 말은 상황이 변해도 한결같은 마음을 잃지 않는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검은 말과 하얀 말이 서로 몸을 기대어 있는 장면인데, 검은 말이 하얀 말을 감싸듯이 부드럽게 핥아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둘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서로 변함없이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가 느껴진다.

검은 말은 욕심쟁이 주인이 하얀 말에게도 좋은 먹이를 주도록 나름의 시위(?)를 펼치기도 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하얀 말을 놀리며 괴롭히는 아이들을 겁주기도 하며 꿋꿋하게 하얀 말을 격려한다. 마침내 친구의 정성으로 인해 일어서고, 예전처럼 다시 뛸 수 있게 된 하얀 말.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으로 끝이 난다.

 

"... 전쟁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요.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던 날, 검은 말과 하얀 말은 강가에서 같이 풀을 뜯었어요. 멀리서 바라보니 검은 말과 하얀 말은 희미해져 같은 색으로 보였답니다."(39-40쪽)

사람들이 일으킨 전쟁은 하얀 말에게 영웅의 지위를 주기도 하고, 부상과 추락을 경험하게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 변함없이 자신을 믿어주고 위해주는 친구 검은 말이 있었다. 부디, '같은 색'이 되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두 말에게 앞으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다가오는 사람들에 의해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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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나처럼 소중하다 - 대한민국 최초의 인권대사 박경서, 그가 들려주는 세계 인권 이야기
박경서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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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다가 '인권은 먼 나라의 얘기도, 틀에 갇힌 학문도 아닌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184쪽)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는 흔히 하루하루 사는 일이 바쁘고 벅차다는 이유로, 인권에 대해서는 나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어떤 이상적인 세계의 것으로 생각해버리기 쉽다. 혹은 반인권적인 일은 우리와 무관한 곳에서 일어난다고, 아직 우리나라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너무나 많은데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들까지 어떻게 발벗고 나설 수 있느냐는 말을 하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민주주의가 갖추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고,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다른나라의 도움을 받았다. 물론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 가야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예전 모습처럼 가난하고 혼란한 나라들을 위해 해야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기를, 누구도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8쪽)을 기억하고서.

 

18년간 스위스에 있는 국제기구 WCC에서 일하며 무려 120여개의 나라들을 찾아 인도적 원조와 인권 수호를 실천한 저자의 이야기라 해서 긴장(?)을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이야기는 담담하게 편하게 읽혔다. 저자가 '가슴으로 낳은 딸'인 미치코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미치코의 질문에 대해 저자가 대답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성으로 인권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좀 더 친근하게 와 닿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친근한 문답식 구성 때문인지, 20여개국의 여러 나라들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소 숨가쁘게 진행해간다는 느낌도 들어서 아쉽기도 했다. 좀 더 자세히 알고싶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휘리릭 넘어간다는 느낌이랄까. 뭐 동전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니까.

 

달라이 라마에서 아웅산 수지, 넬슨 만델라처럼 유명하고 낯익은 인물들부터, 솔로몬제도의 열악한 통조림 공장에서 참치 뼈에 맨손을 찔려가며 일하는 이름모를 소녀들까지...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 특히 끔찍한 가족사를 딛고 중남미 인디오들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린 과테말라의 인권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추와 여성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무슬림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시린 에바디의 이야기는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참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감정적으로만 접근하거나, 아이들에게 우리가 잘못한 것은 숨기거나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인권은 남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만 진정으로 지킬 수 있는 거야. 우리나라 여성이 위안부 문제로 고통받은 것은 사실이지. 그리고 베트남 여성이 우리나라로 인해 고통받은 것 또한 사실이야.'(145쪽)

맞다. 그리고 저자의 바람대로, 책을 읽으며 우리가 살고있는 동북아시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를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었던 조선족 미치코를 위해 일본과 중국의 여러 사람들이 애쓰고 저자가 수양딸을 삼았던 것처럼. 앞으로 우리나라가 걸어가야 할 화해와 협력의 세계를 생각해본다. 누구도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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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의 멘토 - 현장에서 삶을 배우는 UNGO 활동가들
UNGO아카데미 강사진 엮음 / 책마루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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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삶을 배우는 UNGO 활동가들'이라는 부제를 읽고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올해 여름 개최되었다는, 14개의 NGO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14명의 젊은 활동가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아카데미의 내용을 정리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UN과 NGO, 하면 여러가지 멋진 이미지들이 떠오르는데 사실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컸다. 책에서도 한비야씨의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사실 국제구호 NGO 활동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롤 모델로 한비야 씨를 바라보지만 사실 그렇게 사회적인 명성을 얻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라는 것, NGO 활동가는 철저히 현장 지향적이고 어깨가 낮아져야 하는 자리라는 것-'이름도 빛도 없이 살 수 있는가?(330쪽)'-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 월드비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유엔난민기구, 한국국제협력단, 대한민국교육봉사단, 에코프론티어, 푸른아시아, 평화누리, 기아대책... 너무나 친숙한 이름부터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까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각자의 역할들을 치열하게 수행하고 있는 NGO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젊은이들. 어떻게 보면 쉽지 않은 선택을 한 용기있는 그들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참 귀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만 앞서 나가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 많은 것을 감수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하는 생각도 새삼스럽게 들었고.

 

옛날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날의 NGO와 NGO활동가들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대우는 열악하다. 이런 현실에서, '혼자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213쪽)'는 말을 머리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발로 뛰며 실천하는 삶을 택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존경심이 일었다. 일반 기업체에 비해 급여는 넉넉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NGO활동가가 존경받는 직업군으로 널리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책에서 대한민국교육봉사단에서 일하는 활동가가 소개해 준,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금융가에 취직하면 2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젊은이들이, 미국의 낙후지역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NGO인  TFA에서 연봉 2~3만 달러를 받고 일하려고 수만명씩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감명받았다. 우리나라도 몇 년 후, 몇십년 후에는 그런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물론 젊은이들만의 인식변화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을 선택하고서도 사회적인 안전망이 탄탄하게 확보되어있는 인프라 구축이 먼저가 되어야겠지만).

이상이 아닌, 현실의 눈으로 NGO활동가들의 무대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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