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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나처럼 소중하다 - 대한민국 최초의 인권대사 박경서, 그가 들려주는 세계 인권 이야기
박경서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2년 12월
평점 :
책장을 넘기다가 '인권은 먼 나라의 얘기도, 틀에 갇힌 학문도 아닌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184쪽)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는 흔히 하루하루 사는 일이 바쁘고 벅차다는 이유로, 인권에 대해서는 나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어떤 이상적인 세계의 것으로 생각해버리기 쉽다. 혹은 반인권적인 일은 우리와 무관한 곳에서 일어난다고, 아직 우리나라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너무나 많은데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들까지 어떻게 발벗고 나설 수 있느냐는 말을 하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민주주의가 갖추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고,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다른나라의 도움을 받았다. 물론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 가야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예전 모습처럼 가난하고 혼란한 나라들을 위해 해야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기를, 누구도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8쪽)을 기억하고서.
18년간 스위스에 있는 국제기구 WCC에서 일하며 무려 120여개의 나라들을 찾아 인도적 원조와 인권 수호를 실천한 저자의 이야기라 해서 긴장(?)을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이야기는 담담하게 편하게 읽혔다. 저자가 '가슴으로 낳은 딸'인 미치코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미치코의 질문에 대해 저자가 대답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성으로 인권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좀 더 친근하게 와 닿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친근한 문답식 구성 때문인지, 20여개국의 여러 나라들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소 숨가쁘게 진행해간다는 느낌도 들어서 아쉽기도 했다. 좀 더 자세히 알고싶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휘리릭 넘어간다는 느낌이랄까. 뭐 동전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니까.
달라이 라마에서 아웅산 수지, 넬슨 만델라처럼 유명하고 낯익은 인물들부터, 솔로몬제도의 열악한 통조림 공장에서 참치 뼈에 맨손을 찔려가며 일하는 이름모를 소녀들까지...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 특히 끔찍한 가족사를 딛고 중남미 인디오들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린 과테말라의 인권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추와 여성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무슬림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시린 에바디의 이야기는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참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감정적으로만 접근하거나, 아이들에게 우리가 잘못한 것은 숨기거나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인권은 남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만 진정으로 지킬 수 있는 거야. 우리나라 여성이 위안부 문제로 고통받은 것은 사실이지. 그리고 베트남 여성이 우리나라로 인해 고통받은 것 또한 사실이야.'(145쪽)
맞다. 그리고 저자의 바람대로, 책을 읽으며 우리가 살고있는 동북아시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를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었던 조선족 미치코를 위해 일본과 중국의 여러 사람들이 애쓰고 저자가 수양딸을 삼았던 것처럼. 앞으로 우리나라가 걸어가야 할 화해와 협력의 세계를 생각해본다. 누구도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