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변화한다 - 모옌 자전에세이
모옌 지음, 문현선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가라고 불리는 모옌의 첫 회상록. 하지만 이런 거창한 수식어가 주는 무게를 사뿐히 내려놓고 읽을 수 있을 만큼 이 에세이는 편안하고 또 재미있게 읽힌다(혹은 진짜 대가는 쓸데없는 무게를 내려놓는 법인가?^^;). 이야기를 읽으면서 애틋하고 슬픈 느낌이 들다가도 또 한편으론 잔잔한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1955년 산둥 성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모옌은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이유(선생님에게 별명을 붙였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다면 학교에 몇 명이나 붙어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모옌은 별명을 붙인 장본인도 아니었는데)로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문화대혁명으로 학업을 포기한 후 열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목화 가공 공장 직공으로 일하게 된다. 이후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하게 된 그는, 고장난 지프를 타고 처음으로 베이징 시내에 입성하며 '내 마음속의 베이징은 이미 너무 거대해 심장이 벌렁거리고 마음이 요동을 쳤다'(75쪽)며 감격에 겨워 한다.

 

'그러고 보면 세상 모든 일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변화를 거듭하는 것 같다.'(125쪽)

중국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그와 그를 둘러싼 세 인물-루원리, 허즈우,류톈광 선생님-들의 삶과 함께 굽이굽이 쉬임없이 흘러간다. 이 책의 원제대로 모든 것은 '변화'해가는 것이다.

애초에 '지난 삼십 년 동안 중국에서 일어난 변화와 관련해 글을 써달라'(6쪽)는 원고 청탁의 초점을 가볍게 뛰어넘어 '어떻게 쓰든 내 마음대로' 또 '무엇을 쓰든 내 마음대로'(6쪽) 쓰기로 했다는 에필로그처럼, 그는 중국의 개혁개방 삼십 년 세월을 무게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회고한다. 물 흐르듯이, 자신의 삶의 변화에 따라서 담담하게. 중국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나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 뭔가 애틋한 것이 느껴졌다. 

무적의 소련제 가즈를 몰던 루원리의 아버지를 동경하며 '새하얀 장갑 한 켤레를 얻을 수 있기를'(33쪽)이 일생일대의 소망이었던 산골 마을의 소년들. 위풍당당한 국영농장의 자동차 운전기사의 딸로, 학교에 집중 훈련을 받는 탁구선수였던 예쁘장한 소녀 루원리. 학교를 무척 사랑했고 입이 큰 류 선생님에게 내심 깊은 정을 느끼고 있었지만 오해를 받아 학교를 쫓겨난 나. 담벼락 한구석에 몸을 기댄 채 잔뜩 웅크리고 탁구시합을 구경하는 나. 책을 찢고 인상적인 모습으로 학교를 떠났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 허즈우... 회상록이지만 한 편의 잘 짜여진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변화.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던 자오쯔 빚는 기계를 신기하게 구경하며 비계 가득하던 자오쯔를 먹었던 시대가 지나고 지금은 모든 자오쯔 가게가 '손으로 빚은 자오쯔'라는 것을 홍보한다. 가난한 산골 소년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가즈 자동차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속에서 화염에 휩싸여 생을 마감한다. 루원리를 짝사랑했던 허즈우는 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 엄청난 부자가 되어 승승장구하게 된다. 루원리는 두 남편을 모두 잃고, 마오창 시험에 등록한 외동딸을 부탁하려고 옛 친구를 찾아온다. 옛 친구 둘은 붉은 포도주를 마시며 잠시 옛날을 회상한다. 루원리는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만 위안이 든 봉투를 내밀고, 나는 한참을  생각 끝에 그 봉투를 받아든다.

 

삼십 년이란 세월, 특히나 파란만장하고 그 현대사와 사람들마다의 질펀하고 굴곡많던 세월을 어떻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모옌은 오히려 더 힘을 빼고,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렇게 자기와 친구들의 삶을 이야기한 것 같다. 책장을 덮으며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뭐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어떤 것이든 그냥 넘겨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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