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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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온갖 사람들의 가슴 속에 쌓여있는 응어리와 문젯거리들을 만나고,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과도 일상적으로 부대껴야 할 것이다.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이겠지만 제각기 다른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료한다는 일의 스트레스는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50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환자들을 돌본 세월을 회고하며 재미있었다고, 지나온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매번 완치 불가능성에 속상해하며 의사로서 죄의식을 느껴야 했다면 아마 나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을 것(164쪽)'이라고 말하며, '모든 환자에게 100퍼센트 정상인처럼 행동하는 완치를 기대하기보다, 어떤 환자에게는 단지 조금 나아지는 것이 100퍼센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에 환자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다(164쪽)'고 한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아마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기꺼이 마음을 나눠주고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보여주는 인간적인 의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라는 것이 무엇일까. 현대인들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재미에 익숙해져 있고, 그 재미는 갈수록 다이내믹해져서 왠만한 재미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관의 특수효과들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놀이공원의 기구들은 갈수록 더 짜릿한 스릴을 강조한다. 하지만 자신의 일상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재미에 대한 노학자의 소박한 철학은 깊이 음미해볼 만 하다.

 그는 '무엇이든 재미를 택하려고 애썼다(5쪽)'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재미있는 일만 선택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재미있는 쪽으로 만들어가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재미있게 그 일을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의미였다. 그는 좁은 진료실에서 하루 종일 환자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쏟아내는 아픔과 슬픔을 듣다보면 자신의 마음도 커다란 쇠공을 매단 듯 무거워졌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그들을 완벽하게 낫게 해 줄 수 없다는 데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역시 생각을 바꾸니 모든 것이 변화했다. 조금이라도 환자들을 나아지게 하는데 재미와 보람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는 정신과 폐쇄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고, 환자들이 속마음을 털어내는 사이코 드라마를 시도하고, 체력 단련실을 만드는 등 일을 만들어가며 신이 났고 즐거웠단다. 이렇게 그는 '재미있었기 때문에' 30년 동안 네팔에 의료 봉사를 하고, 40년 동안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며 꾸준한 실천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온 사람의 노후가 얼마나 아름답고 풍성한가를 느낄 수 있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준비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노후 준비가 너무 재정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어지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 듦에 대비한 경제적인 준비는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이겠지만, '나는 어떻게 나이들어 갈 것인가'는 자신의 노후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꼭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충실히 마음의 준비를 통해 노년의 삶을 그려가는 이에겐,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움만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테니.

먼저 인생길을 밟아온 선배가 한 잔 차를 나누며 나직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따뜻한 공감과 배움을 얻을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섣불리 가르치려 들지 않고 편안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해준다. '삶은 내가 남기는 것이 아니다... 훗날 누군가에 의해 들추어졌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이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3138쪽)'는 말이 마음에 묵직하게 남는다. 오늘 하루 하루를 귀하게 쓰면서, 나이 듦을 웃는 얼굴로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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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와 나 창비청소년문학 48
김중미 지음 / 창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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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전의 일인데도, 재개발에 밀린 괭이부리말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그 감동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래서 김중미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인 이 책에 더욱 기대감을 가지고 펼쳐 들었다.

 

 학교폭력의 구조적인 문제점, 그 속에서 고통받고 고꾸라지기도 하고 끊임없이 길을 찾으려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역시 너무나 현실감있게, 살아있는 목소리들로 그려냈다. 읽으면서 그들의 아픔이 너무나 생생하게 와 닿아서 마음이 아렸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어른의 눈높이에서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희망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지만, 그것은 단박에 문제점을 고칠 수 있다는 허황된 희망이 아니다. 근본적인 가치의 전환 없이는 거대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품는 가느다란 깜부기불같은 희망이다. 그래서 더 애처롭고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지도.

 

 흔히들 학교를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경쟁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학교 울타리 속의 청소년들에게만 교과서에 나오는대로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그래서인지,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특히 차별과 폭력을 방치하는 학교 현장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하는 것에 진한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성적순으로 우열반을 나누어 교실이나 선생님 배정 등에서부터 차이를 두는 것, 복장단속이라는 명분으로 선배들의 횡포를 묵인하는 것, 규율만을 강조하면서 불합리한 점이 생겨도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물론 소설 속에서는 좀 더 격하게 묘사된 부분이 있긴 해도, 엄연한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학교 폭력은 모든 이들의 묵인과 방조를 통해 생명을 이어 간다'(264쪽)는 이야기에 정말로 공감한다. 하지만 거대한 불의에 맞서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 용기와 양심을 지켜간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다수 속에 잠겨 있으면 불의를 불의라고 느끼지 못한다. 침묵하고 모른 척 한다는 것도 가해의 일부라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니까.

하지만... 모든 청소년들이 평등하게 행복할 수는 없더라도, 폭력의 사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만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학교가 축복의 장소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매일이 지옥인 곳이 되지만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지켜지지 않는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럼에도, 폭력에 저항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작은 용기들이 모여 언젠가는 현실을 변화시킬 거라는, 그런 작은 희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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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레시피 - 공자, 부처, 소크라테스, 예수를 식탁으로 초대하다
김경윤 지음, 최정규 그림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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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부처, 소크라테스, 예수를 한 가족의 식탁에 초대하여 함께 대화를 나눈다는 재미있는 발상으로 시작해서 그들과 가족이 나눈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4대 성인 모두 일상에서 제자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기며 자신의 지혜를 나누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성준, 민주네 아빠의 '소환마법'으로 차례대로 집으로 초대된 성인들은 시대와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한다.

 

제목에서도 '레시피'라는 말이 나왔고 식탁에 초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이야기니까 어떤 음식이 나올까, 성인들을 초대한 식탁 준비를 가족끼리 도와서 어떻게 할까 궁금한 마음이 일었는데, 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보다. 초대되는 성인 한 명당 한 페이지씩, '레시피 예습하기'라는 제목을 붙여 세 끼 식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나오는 것이 전부이다.

각 성인들에게 전해져오는 이야기와 상징에 맞추어 음식을 선정하고 의미를 부여한 소박한 식탁. 제자들과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던 공자의 삶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칼국수를, 부처가 극단적인 금욕을 깼을 때 한 여인이 공양해 건강을 회복시켜주었던 유미죽과 비슷한 우유 수프를, 산파였던 소크라테스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연상시키는 미역국을,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예수에게는 무지개떡과 고갈비백반을 준비한 식탁에서 성인들과 함께 대화를 즐기는 장면을 상상하며 읽으니 즐거웠다. 하지만 역시 '레시피'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 하긴 레시피가 주제가 아니라 성인들과 나누는 대화가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젯밥에 더 관심을 두는 취향 덕분이려나^^;)... 내친김에 가정주부인 엄마 혼자 성인들에게 내놓을 메뉴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 아이디어를 짜고 함께 도와 준비했으면 더 의미있는 식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런 아쉬움이 살짝 남긴 해도 이 책은 청소년들과 함께 부담없이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들을 나누고 대화하기에 좋은 책이다. 성인들이 깨달은 내용을 청소년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일상의 삶에 와 닿게 이야기로 풀어가려는 저자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본격적인 성인과의 대화 다음에 가족끼리 이번 초대에서 배웠던 점을 함께 나누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각 장의 마지막에 나오는 '인문학 디저트'인 만화도 맛깔스럽고 좋았다. 다만 만화를 디저트가 아닌 애피타이저로 대화 앞에 배치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초대한 성인이 활동하던 시대와 역사적 배경을 비롯한 여러 지식들이 만화에 풍성하게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고달픈 일이다. 정말이지 '너희들 때가 제일 좋다'라는 말을 하는 어른들의 무심함이 얼마나 기가 막힐까. 하지만 인류의 위대한 스승 4대 성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힘든 시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있을 거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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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당신도 깨닫게 될 이야기 - 내 인생을 바꾼 성찰의 순간들
엘리자베스 길버트 외 119명 지음, 래리 스미스 엮음, 박지니.이지연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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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내 인생을 바꾼 성찰의 순간들'... 무척 마음에 와 닿는 말이다. '순간'이 때로는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인생에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소중한 순간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순간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종군 사진기자, 작가, 영화배우, 음악가, 기업가, 법률가, 사회 활동가... 다채로운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진솔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삶의 조각들의 이야기... 읽으며 마음이 참 따사로워졌다. 뭐랄까, 성공학 책이나 자기계발서들을 읽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의 깊이있는 성찰와 삶의 다양성을 맛본 기분이다.

책은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각각 '지금'의 철학, '유머'의 가치, '성숙'의 시간, '이별'의 준비, '가족'의 가치, 행복을 선택할 '용기'와 '순간'의 미학을 주제로 한 글들로 엮어져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각 주제들을 한꺼번에 읽는 것보다, 랜덤으로 펼쳐들어 여러주제들의 이야기들을 섞어가며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읽으니까 정말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중에서 특히 마음을 두드린 이야기들을 몇 편 고르라는 것이 참 쉽지가 않다. 우리가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가족이나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릴 때 종종 그렇듯이, 많은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실타래를 만들고 있다.

말기 폐암인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떨리는 필체로 써 남긴, 장미 정원에 비료를 주는 법에 대한 설명서. 뇌졸증을 겪고 알츠하이머가 심해진 상태의 엄마를 위해 준비한 특별한 선물 은색 하모니카. 입양아의 손에 들려 있는, 봉인되어 있던 자신의 출생증명서와 친모의 사망증명서와 그녀의 손으로 쓴 편지가 담겨있는 노란색 마닐라직 봉투. 자신의 실수로 감옥에서 십여 년을 보내야 했던 한 남자의 용서를 받고, 그 남자와 함께 사법 개혁을 위해 일하고 있는 한 여성. 한 풋내기 작가지망생에게 보낸, 존 업다이크의 칭찬을 담은 편지 한 통. 실험실의 오류로 받은 에이즈 양성판정과 진실을 가르쳐 준 전화 한 통. 엄마의 신성(?)한 의무인 저녁식사 차리기를 늦추면서까지 붙잡고 계셨던 책 한 권. 뱃속의 아이를 잃고 우울증에 빠져있던 한 여성에게 희망이 되어 준 조깅... 색색의 실타래들이 들려주고 있는 삶의 진실들. 그 풍성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가 더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하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기적이란 없다고 믿고 사는 것과 어디에나 기적이 존재한다고 믿고 사는 것.' 그는 덧붙인다. '나는 후자의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어디에나 기적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해주는 120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도 내 내 삶의 기적들을 더 소중히 일궈가야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해 본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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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적 질문들
앤서니 그레일링 지음, 윤길순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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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가르친 사람들을 떨치고 독자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합의된 것에서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주의를 돌리게 된다."(세네카, <자연의 문제들>중에서)

 

책을 펼쳐들자 첫 장에 있었던 이 말. 책을 읽어가는 동안 왜 저자가 이 말로 책을 시작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태어나 성장하면서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우리를 가르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가치들, 생각들에 대해 어느 순간 질문하고 회의하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분명히 혼란이지만, 더없는 기쁨이기도 하다. 저자의 멋진 표현을 잠시 빌리면,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선택에 따라 살려고 하고, 그러면서 어떤 좋은 것을 이루기 위한 것'(17쪽)의 첫 발자국을  뗀 경험은 누구에게나 강렬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선생님께서 칠판에 "한 우물을 파라"라는 속담을 적어주시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시는데 문득 '여러 우물을 파고 사는 건 안 돼?'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덟 살짜리가 그런 의문에 대한 논리적인 생각을 전개하기는 애초에 무리였고, 이 '한 우물 파기'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그 후 십 대, 이십 대까지도 꾸준히 이어져서 결국 '얕더라도 최대한 넓게 포진해서' 우물을 파겠다는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던 기억. 이 책이 던져주는 다채로운 철학적 질문들의 목록을 보며 그 때가 떠올랐다. 나 스스로 질문에 답하면서 생각의 꼬리를 물고 확대해가며 가슴 벅차했던 그 시간들이...

 

이 책은 101가지의 폭넓고 다양한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져주며 우리에게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저자의 생각을 단호하게 말하는 주제들도 있지만, 대체로 저자는 '질문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이 '대답에 대한 생각을 제공하는 것이지 그 대답이 무엇이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18쪽)며,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답을 찾는 데 쓸모가 있을지 모를 재료들을 제공하기'(16쪽) 위한 것이라서이다.

아, 이 재료들(여러 제안이나 주장들, 고려해야 할 점, 문제점과 딜레마 등)이 어찌나 풍성하고 싱싱한지, 지난 한 주 동안 이 책을 가방에 넣어다니며 틈틈이 읽으면서 참 행복했다(병원 대기실에서 읽고 있다가 내 이름 부르는 것을 놓치기도 했다^^;).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명쾌하게 정리할 수 없었던 명제들을 만나서 '그래, 딱 이거였는데!'하고 반가워하기도 하고, 여러 논의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진하게 공감하기도 하고, 전혀 고민해보지 않았던 뜻밖의 주제들을 통해 자극을 받고 내 생각을 넓힐 수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Thinking of Answers', 답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것은 사실 꼭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철학은 "1+1=2"처럼 명확한 답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질문에는 답이 없고 어떤 질문에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는 것'(17쪽)이기도 할 테니. 중요한 것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에 있다는 것, 그 여정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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