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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적 질문들
앤서니 그레일링 지음, 윤길순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우리를 가르친 사람들을 떨치고 독자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합의된 것에서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주의를 돌리게 된다."(세네카, <자연의 문제들>중에서)
책을 펼쳐들자 첫 장에 있었던 이 말. 책을 읽어가는 동안 왜 저자가 이 말로 책을 시작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태어나 성장하면서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우리를 가르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가치들, 생각들에 대해 어느 순간 질문하고 회의하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분명히 혼란이지만, 더없는 기쁨이기도 하다. 저자의 멋진 표현을 잠시 빌리면,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선택에 따라 살려고 하고, 그러면서 어떤 좋은 것을 이루기 위한 것'(17쪽)의 첫 발자국을 뗀 경험은 누구에게나 강렬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선생님께서 칠판에 "한 우물을 파라"라는 속담을 적어주시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시는데 문득 '여러 우물을 파고 사는 건 안 돼?'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덟 살짜리가 그런 의문에 대한 논리적인 생각을 전개하기는 애초에 무리였고, 이 '한 우물 파기'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그 후 십 대, 이십 대까지도 꾸준히 이어져서 결국 '얕더라도 최대한 넓게 포진해서' 우물을 파겠다는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던 기억. 이 책이 던져주는 다채로운 철학적 질문들의 목록을 보며 그 때가 떠올랐다. 나 스스로 질문에 답하면서 생각의 꼬리를 물고 확대해가며 가슴 벅차했던 그 시간들이...
이 책은 101가지의 폭넓고 다양한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져주며 우리에게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저자의 생각을 단호하게 말하는 주제들도 있지만, 대체로 저자는 '질문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이 '대답에 대한 생각을 제공하는 것이지 그 대답이 무엇이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18쪽)며,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답을 찾는 데 쓸모가 있을지 모를 재료들을 제공하기'(16쪽) 위한 것이라서이다.
아, 이 재료들(여러 제안이나 주장들, 고려해야 할 점, 문제점과 딜레마 등)이 어찌나 풍성하고 싱싱한지, 지난 한 주 동안 이 책을 가방에 넣어다니며 틈틈이 읽으면서 참 행복했다(병원 대기실에서 읽고 있다가 내 이름 부르는 것을 놓치기도 했다^^;).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명쾌하게 정리할 수 없었던 명제들을 만나서 '그래, 딱 이거였는데!'하고 반가워하기도 하고, 여러 논의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진하게 공감하기도 하고, 전혀 고민해보지 않았던 뜻밖의 주제들을 통해 자극을 받고 내 생각을 넓힐 수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Thinking of Answers', 답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것은 사실 꼭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철학은 "1+1=2"처럼 명확한 답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질문에는 답이 없고 어떤 질문에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는 것'(17쪽)이기도 할 테니. 중요한 것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에 있다는 것, 그 여정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