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신화 - 쾌락적응, 생존에는 유리자히만 행복에는 불리한
소냐 류보머스키 지음, 이지연 옮김 / 지식노마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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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면 행복할 수 없어, 싱글은 행복할 수 없어, 돈 없이는 행복할 수 없어, 병에 걸리면 행복할 수 없어, 꿈을 이루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어, 인생의 절정을 지나면 행복할 수 없어... 책의 챕터들은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경험하는,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행복에 대한 신화'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각자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단계에 따른 그림 같은 것을 마음속에 그린다.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고, 안정적인 직업을 바탕으로 경제적인 풍족함을 누리고, 자녀를 기르며 기쁨과 자부심을 얻고... 마음속에 그런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 그림을 다 성취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럴 때 '~라면 행복할 수 없어'하고 미리 단정짓고 행복을 포기하는 것 말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자세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 책은 그 부분을, 즉 우리 대부분이 받아들이고 있는 행복의 신화들에 존재하는 오류를 파헤치고 그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잘못된 배우자를 만나거나, 짝이 아예 없거나, 돈이나 직업을 잃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깊은 후회를 겪거나, 나이가 드는 것이 비극적 상황으로 빨려들어 가는 두려운 전환점이 될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중략)... 나는 행복의 신화를 그대로 믿는 것이 해롭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싶었다. 잘못된 예상과 오해는 예상할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들을 엄청난 위기상황으로 바꾸어 버린다.'(305쪽)

 

저자 소냐 류보머스키 교수는 이런 행복에 대한 여러 잘못된 신화들을 분석하는데 '쾌락적응(hedonic adoption)'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책에서 처음 접해보는 용어인데, 꽤 흥미로운 개념이었다. 쾌락적응이란 쉽게 말하면, 인류가 생존을 위해 진화과정에서 발달시켜온 심리적 면역체계이다. 이 면역체계는 '삶의 대부분의 변화에 대해 점차 길들여지거나 단련되는 놀라운 능력'(35쪽)을 인간이 갖게 해 준다. 이 쾌락적응 때문에 승리의 쾌감도, 패배의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약화되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정말 흥미로운 점은, 쾌락적응이 긍정적 경험의 영역에서 가장 확연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에게 일어난 대부분의 긍정적 사건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맞는 얘기다. 어렸을 적, 늘 동생들과 방을 쓰다가 꿈에 그리던 내 방과 내 침대를 갖게 되었을 때 나는 세상이 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흥분은 영원히 가는 것이 아니었다. '몇 주, 몇 달이 지나면 우리는 개선된 새로운 상황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게 되어 새로운 기대치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즉 '행복 침체기'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35쪽)

 

쾌락적응이라는 심리적 면역체계가 없었다면 인간은 이렇게 눈부신 진화를 이룩하고 문명을 발전시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의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해 온 '쾌락적응'은 알고보니 행복을 향유하는 데에는 아주 불리하게 설계된 녀석인 것이다. 저자는 행복에 대한 관습적인 생각을 버리고 쾌락적응에 저항하려는 노력을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하는 법을,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제시해 준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많다. '물건보다는 경험에 돈을 써라'(192쪽), '몇 번의 커다란 즐거움보다 여러 번의 작은 즐거움에 (돈을) 써라'(195쪽), '행복했던 순간은 재생하고, 불행했던 순간은 분석하라(293쪽)... 등등.

 

행복에 대한 담론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너무나 행복에 대한 이야기들이 범람해서, 오히려 어떤 것이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길인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 속에서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뒤에 붙은 만만치 않은 양의 미주를 보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저자는 이 분야를 꾸준히 오랫동안 과학적인 연구를 해 온 사람이라 막연한 '카더라'류의 행복론과는 질이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야만 한다'라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투가 아니라서 좋다(이건 번역 쪽 얘긴가? 아무튼, 전반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것). 행복에 대한 잘못된 관습과 신화에서 벗어나는 법을 차근차근 조언해주는 목소리는 오만하지 않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논증을 제시하지만 이면에 어쩐지 다정함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나를 영원히 행복하게, 혹은 불행하게 만들 거라는 믿음이 삶의 도전이나 변화에 대한 내 반응을 완전히 지배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어떻게 해야 행복과 번영,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선택할 준비를 할 수 있다...(중략)...

인생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의 기쁨을 주거나 비참함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307쪽)

 

그렇다. 이것은 냉소적인 삶의 자세가 아니라, 더 자유로워지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삶을 사는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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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 마스터 Word Master 중등 고난도 (2016년용) - 최신 개정판, 중학 영단어, 암기용 MP3 파일 제공, 중3~예비고1
박혜란 외 지음 / 이투스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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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이 어려운 점은 아쉽지만... 미리 고등학교 영어준비를 하려는, 똘똘한 중학생이라면 도전해 볼만한 책입니다.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어 연상하며 외울 수 있어서 좋고 tip도 상당히 유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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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의 선물 -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필생의 가르침
에릭 시노웨이 & 메릴 미도우 지음, 김명철.유지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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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나는 이제 남은 내 인생을 세상에 대한,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선물처럼 살아갈 생각이야."(276쪽)

어느날 교정을 걷다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기적적으로 소생했던 한 노교수가 제자에게 건네는 이 말이 마음 깊이 남는다. 이 말처럼 하워드 교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삶과 경험, 생각들로 그들에게 성찰과 지혜를 선물한다. 그리고 나도, 그의 귀한 선물을 받고 힘찬 격려를 얻는다. 새 힘이 솟는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난 하워드 교수와 제자 에릭이 3년동안 나누었던 대화들의 기록을 읽으며 여러번 가슴이 뜨거워졌다. 주로 산책을 하며 나누는 그들의 다채로운 대화는 "만족스러운 삶과 필생의 일을 어떻게 설계해 나갈 것인가?"라는 큰 틀에서 촘촘한 가지를 뻗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뻗어간 대화의 주제들에서마다 여러 사람들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열심히 일했으나 의지하던 상사가 직장을 떠나고 난 후 부서가 없어질 위기에 처해 있는 미셸, 맨해튼의 고급 보석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몸'만 회사를 다니는 채로 또다시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루디, 직장생활 10년이 넘은 시점에서 자신의 역량과 자신의 일이 맞지 않다는 걸 인식하고 갈등하는 제임스, 너무 경직되고 꽉 짜인 조직문화에서 바라는 능력이 자신이 가진 능력과 맞지 않아 송별회의 주인공이 되고 만 버트... 주로 에릭이 물어다(?) 주는 인물들이고, 제임스처럼 10년 만에 찾아온 하워드 교수의 옛 제자도 있다.

어쨌든 하워드 교수는 그들이 '인생의 전환점'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이야기를 듣고, 에릭과 함께 대화하며 진지하게 그들의 상황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성찰한다. 그 전환점에서의 선택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기회로 만들 것,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과 필요한 것 사이에서 강력한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것, 끊임없이 전진해 나갈 수 있도록 '저글링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 갈 것...

 

무엇보다 하워드 교수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는 딱딱한 권위와 근엄한 표정 대신, 유머와 인간적인 매력으로 가득하다. 에릭과의 대화 중 에릭이 핵심을 잘 짚어내면 "빙고!"를 외치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상으로 '별 스티커'를 주겠다고 농담하고, 배고픈 제자를 위해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좋아한다. 그리고 그의 설명에는 쉽고 인상적인 비유들이 풍성하다. 어떤 선택이 내가 추구하는 '자아'와 '차원'에 제대로 연결되는지 설명하기 위해 하워드 교수는 칠판에 저울을 그린다.

"자, 여기에 금 1온스와 납 1온스가 있지? 둘 다 무게는 같지만 본질적 가치는 엄청나게 다르잖아? 마찬가지로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1시간과 친구들이랑 포커를 치는 1시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어."(139쪽)

 

앞으로 살면서 전환점을 만나 막막해질 때, 혹은 도망치고 싶을 때, '결국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갈 것이며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완전하고 다차원적인 그림을 가지고 있어야만 해(227쪽)'이라고 말한 하워드의 목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또한 '삶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완성되고 싶은가?'(62쪽)라고 했던 것도. 하워드의 조언대로, 나의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본다. 부디 그가 준 귀한 선물을 값어치 있게 쓰면서 살 수 있기를 & 그를 살린 휴대용 제세동기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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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터문 에디션 D(desire) 4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함유선 옮김 / 그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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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함정을 판, 내 욕망을 끄기는커녕 부채질하는 덫을 놓은 그녀를 원망하는 대신 그녀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사실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이 달콤한 지옥을 사랑하고 있었고 내가 아주 다른 사람인 것을 발견했다."(337~338쪽)

 

'인간 내면에 숨겨진 은밀한 욕망의 세계를 탐험하고, 나아가 인간이라는 가장 불가해한 존재에 대해 깊이 이해' 하게 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는 에디션 D시리즈의 '비터문'. 그 목적의식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한계를 모르고 치달아가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과 증오, 환상과 파괴가 뒤얽힌 정말 '불가해한'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한없이 침잠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심연이다.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둡고 은밀하고 비참한 끝까지를 끝내 파고들어가고야 마는 심연. 근데 뭐랄까, 너무 캄캄하고 섬뜩하기까지해서 그냥 눈을 돌리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외면하지 못하고 눈을 가린 손가락 틈 사이로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대책없는 심연이다.

 

사실 이야기 구조는 꽤 단순하다. 아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고... 아니다, 단순하다(지금 내가 뭐라는 건지^^;; 충격의 쓰나미였던 결말을 막 읽고 난 후라 정신이 혼미한 듯).

막 서른 살이 되던 해, 파리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디디에는 애인 베아트리스와 함께 인도를 향한 여행을 나선다. 베아트리스의 직업은 이탈리아어 교수고, 둘은 소르본느 대학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이후 5년 동안 충실히 사랑을 키워오다가 드디어 오랫동안 꿈꾸던 여행을 위해 터키 국적 여객선 트루바 호에 탑승한 것. 도대체 어떻게 해서, '우리는 행복했다. 세상에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이든 과감히 맞서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13쪽)라며 시작했던 이 커플의 달콤한 '허니문'이 쓰디쓴 '비터문'으로 바뀌게 되었을까. 

 

지성과 상식, 또한 자신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동양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차 있던 순진남 디디에에게 접근한 '악의 그림자(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진짜 이 놈 밉다...징글징글하다)' 프란츠. 초췌한 얼굴에 얼굴로 봐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휠체어를 탄 불구자인 그는 말 그대로 세 치 혀로 디디에를 쥐락펴락한다. 마치 자신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듯이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듣게 하는 프란츠에게 디디에는 처음부터 거부감을 느끼지만, 마치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에 매일밤 귀를 기울이는 샤라알 왕처럼 그의 방으로 향한다.

그리고 프란츠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레베카. 작가가 공들여 묘사하고 있는 레베카는, 뭐랄까 너무나 많은 겹을 가진 여자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계속 든 생각... 도대체 이 여자 정체가 뭐야!!! 처음에는 그저 남자를 홀리는 팜므파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암튼 치명적일 정도로 관능적인 것만은 틀림없는, 베아트리스와는 너무나 다른 매력을 가진 이 여자에게 디디에는 마음을 제대로 잠금해제시켜버린다. 그리고, 나흘 동안 이어지는 세헤라자데 프란츠의 이야기...

 

세헤라자데의 다층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샤라알 왕의 마음을 녹게 했지만, 이 세헤라자데 악의 버전은 디디에를 서서히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프란츠와 레베카의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 변태적이고 기이한 육체관계, 욕망과 배신과 타락으로 뒤범벅된 이야기를 들으며 불쾌감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디디에는 그 심연으로 젖어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불에 탈 줄 알면서 뛰어드는 부나방같이.

넷째 날, 프란츠의 이야기는 거의 매듭이 지어지고, 트루바 호에서는 신년축하파티가 벌어진다. 그리고 다섯 째날...은 이야기하지 못하겠다(스포일러 자진검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가끔, 인생에서는 일어나기도 한다...

 

만약 디디에와 베아트리스가 트루바 호에서 프란츠와 레베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들은 그냥 평범하게, 함께 책을 읽고 동양에 대한 환상을 품고서 사이좋게 나이들어 갔을까. 혹은 열정이 식고 단조로워져서, 프란츠&레베카 급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자신들의 내면을 건드리는 유혹에 이끌려 파탄에 이르게 되었을까. 인간이라는 존재의 내면을 그 밑바닥까지 그대로 들여다보는 일은, 제목처럼 쓰디 쓰다.

 

아, 그리고 또 하나. 파스칼 부뤼크네르야말로 진짜 세헤라자데가 아닐까 싶은, 풍부하게 흘러넘치는 지적인 비유들이 페이지마다 빼곡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용만 후루룩 빼 읽기보다, 인상적인 표현을 곱씹으며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안성맞춤일 듯.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자신의 예술론을 이렇게 표현했던 것이 문득 기억난다. '내게 픽션은 거칠게 말해 미학적 지복을 주는 한 존재한다'. 그렇다, '비터문'은 비록 읽어서 기분이 상쾌해지거나(오히려 반대이다-비위가 약해지기도 하고^^;),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서 치열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미학적 지복을 넘치도록 선물해준다. 그래서 분명히,'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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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현 - 조선 최고 어의가 된 마의
장웅진 지음 / 황금책방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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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원도 대접받지 못했는데, 하물며 말을 치료하는 의원은 얼마나 더욱 하찮게 여겼을까. 그렇게 백정보다 천대 받던 마의가, 목장에서 말을 돌보며 익힌 의술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나아가 임금을 보좌하는 어의 자리에까지 오르기까지 얼마나 숱한 역경과 사연들이 있었을까. 이제 후반부로 가고 있는 드라마에 한창 빠져 있던 터라 더욱 흥미가 생겼던 소설 <마의 백광현>, 역시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이 많아서 단숨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특히 나라 안팎이 어지러운 시기였다. 두 차례 전란 이후 피폐해진 민중의 삶, 서인과 남인의 당파싸움으로 불거진 예송과 환국, 계속되는 가뭄과 대기근... 영웅은 난세에 난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백광현은 흠 하나 없는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뇌하고 때론 분노하고 좌절하기도 하는 인간의 모습이어서 더욱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어의 노릇을 해도 늘 대신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을 지겨워하기도 하고, 사색당파와 외척 세력의 추파를 모두 거절한 덕에 그들로부터 적 취급을 받는 것을 분해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그런 고단한 시대였기에, ‘권세도 부귀영화도 다 필요 없다. 그저 자신에게 베푼 자를 알아보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들의 종기나 치료해주며 조용히 살고 싶다’(160)고 생각하던 광현은, 내의원에서 5년째 말단에 머무르며 어린 자들에게서마저 무시당하고, 세력 있는 이들의 후원을 받으며 그를 감시하고 들볶는 자들에게 시달리며 출세를 갈망하게 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대로 숨을 쉬며 일할 수 있기를 꿈꾸는 그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정의에 얼마든지 눈을 돌릴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인가. 힘 있는 자들은 당파를 가리지 않고서 광현을 경계하고, 임금에게도 광현에 대해 온갖 모함과 반대를 서슴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어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종기로 고통 받는 대비를 치료해서 구했지만 신료들은 왕명을 어긴 죄를 물어야 한다며 들고 일어선다. 종묘에 제사를 올리거나 청국이나 왜국에서 좋은 약을 구해오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며 회피하던 신료들이, 실패한다면 능지처참을 당할 각오로 목숨을 구한 광현을 벌해야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난리를 피우는데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그 후에도 자객에게 목숨을 잃을 뻔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는 등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의술로서 힘없는 백성들을 구하는데 정성을 다한다. 그런 그의 삶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나 한번 뿐인 인생,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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