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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현 - 조선 최고 어의가 된 마의
장웅진 지음 / 황금책방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조선시대에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원도 대접받지 못했는데, 하물며 말을 치료하는 의원은 얼마나 더욱 하찮게 여겼을까. 그렇게 백정보다 천대 받던 마의가, 목장에서 말을 돌보며 익힌 의술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나아가 임금을 보좌하는 어의 자리에까지 오르기까지 얼마나 숱한 역경과 사연들이 있었을까. 이제 후반부로 가고 있는 드라마에 한창 빠져 있던 터라 더욱 흥미가 생겼던 소설 <마의 백광현>, 역시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이 많아서 단숨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특히 나라 안팎이 어지러운 시기였다. 두 차례 전란 이후 피폐해진 민중의 삶, 서인과 남인의 당파싸움으로 불거진 예송과 환국, 계속되는 가뭄과 대기근... 영웅은 난세에 난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백광현은 흠 하나 없는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뇌하고 때론 분노하고 좌절하기도 하는 인간의 모습이어서 더욱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어의 노릇을 해도 늘 대신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을 지겨워하기도 하고, 사색당파와 외척 세력의 추파를 모두 거절한 덕에 그들로부터 적 취급을 받는 것을 분해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그런 고단한 시대였기에, ‘권세도 부귀영화도 다 필요 없다. 그저 자신에게 베푼 자를 알아보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들의 종기나 치료해주며 조용히 살고 싶다’(160쪽)고 생각하던 광현은, 내의원에서 5년째 말단에 머무르며 어린 자들에게서마저 무시당하고, 세력 있는 이들의 후원을 받으며 그를 감시하고 들볶는 자들에게 시달리며 출세를 갈망하게 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대로 숨을 쉬며 일할 수 있기를 꿈꾸는 그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정의에 얼마든지 눈을 돌릴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인가. 힘 있는 자들은 당파를 가리지 않고서 광현을 경계하고, 임금에게도 광현에 대해 온갖 모함과 반대를 서슴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어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종기로 고통 받는 대비를 치료해서 구했지만 신료들은 왕명을 어긴 죄를 물어야 한다며 들고 일어선다. 종묘에 제사를 올리거나 청국이나 왜국에서 좋은 약을 구해오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며 회피하던 신료들이, 실패한다면 능지처참을 당할 각오로 목숨을 구한 광현을 벌해야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난리를 피우는데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그 후에도 자객에게 목숨을 잃을 뻔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는 등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의술로서 힘없는 백성들을 구하는데 정성을 다한다. 그런 그의 삶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나 한번 뿐인 인생,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