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느끼는 시간 - 밤하늘의 파수꾼들 이야기
티모시 페리스 지음, 이충호 옮김, 이석영 감수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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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은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을 바라볼 때 즐거운 감정이 끓어오를 수 있는 감수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마음을 기다린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이다.”(356~357)

 

어떤 책은 끊임없이 싸워가면서 읽어야 한다. 얼른 책장을 넘겨서 다음 내용을 빨아들이고픈 마음과, 아까워서 차곡차곡 아껴가며 읽고 싶은 마음을 끊임없이 교차해서 들었다 놨다 하면서 야금야금 읽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또, 아무래도 깜깜한 밤에 읽어야 한다. 슬프게도 지금 내가 사는 곳의 밤하늘에는 별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참, 따뜻했다.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저장되어 있는, 별이 쏟아지던 밤하늘들을 호출해 가면서 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

 

평생 동안 열정적으로 하늘을 관측해 온 아마추어 천문가인 저자 티모시 페리스. 어린 시절부터 하늘을 관측하면서 느꼈던 감동을, 자신의 평생을 바치게 만든 그 경이를 그는 유려한 문장으로 생생하게 묘사해주었다. 페리스는 열네 살 무렵 별들이 낮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낮에도 쉬는 시간에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 서서 다 쓴 페이퍼타월 롤로 만든 원통을 들여다보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이런 노력은 가끔 보상을 받았는데, 바다처럼 파란 하늘 가운데에서 빛의 점이 반짝이는 것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우리가 광대한 어둠 가운데에 존재하는 눈부신 오아시스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356)

그렇게 끊임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을 찾던 소년은 후에 자신의 천문대를 만들고, 천문학에 대한 수많은 글과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두 대의 보이저호에 실어 보낸 인류 문명 소개 유물 음반을 제작하고, NASA의 지구 접근 천체 운영 위원회에서 일하게 된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는 앙드레 말로의 말이 떠오르는, 꿈을 좇아온 아름다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꿈을 좇는 삶이라는 의미에서, 티모시 페리스가 만난 수많은 아마추어 천문가들의 이야기들도 생생하고 찬란했다. 혜성 사냥꾼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레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만나는 이름들이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수많은, 남들이 모두 잠이 든 시간에 끈기와 열정으로 밤하늘을 관측하고 있을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있을까를 잠시 상상해본다. ‘아마추어란 단어는 프랑스어 아마퇴르(amateur)에서 유래했고, 그것은 라틴어로 사랑하다란 뜻인 아마토르(amator)에서 유래했다(59)‘고 한다. 그 어원 그대로, 그들은 밤하늘의 경이를 사랑하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그 경이를 찾고 탐구하는 것에 바쳤다. 티모시 페리스와 함께 대화하며 쏟아내는 그들의 열정적인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가슴이 절로 두근거렸다.

 

내 눈에 들어오는 빛이 영겁의 시간 동안 우주를 여행한 뒤에 지금 도착했다는 사실과 내가 그것을 보도록 허락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경이로워요.’(127쪽, 아마추어 천문가 바버라 윌슨의 말)

 

요즘은 빛 공해 때문에 까만 밤하늘을 찾기가 참 어렵다. ‘축복받은 밤의 어둠’(475)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책을 덮고 (깜깜하다 상상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는데, 어렸을 때 참 좋아했던 어느 그림책이 문득 기억났다. 고대인들이 우주를 훌륭한 춤이라고 여겼다는 이야기였다. 행성들과 혜성들을 포함한 모든 별들이 저마다 리듬감을 갖고 스스로 춤을 추고 있다는 것... 티모시 페리스의 표현대로, ‘인간의 생애에 비해 훨씬 넓은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324)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저 밖에 우주 전체가 있고 우리가 바로 저기에서 살고 있으니 절대로 겁을 먹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487) 우주를 오래 눈에, 그리고 가슴에 품은 사람은 철학자가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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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억의 힘 - 과거를 바꾸고 미래는 만드는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홍성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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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상상,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딱히 후회를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요즘 들어 타임머신 가동률이 부쩍 높아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하는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시간을 사는 나를 한참 맛보다가 현재로 짠! 돌아오는 순간은 늘 쌉싸래하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강한 충격은 현재가 과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는 고정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임머신을 타고 신나게 여행을 떠났다가 현재로 돌아오는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대로 차곡차곡 과거의 시간들은 접혀져 내 마음속 어딘가에 보관되는 거라고 상상하곤 했다.

저자는 분명히 이야기한다. ‘과거를 바꾸기 위해 타임머신을 탈 필요는 없다. 자신의 시점을 바꾸면 과거도 바뀌기 때문이다’(13)라고. 기억은 과거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과거를 만들어내는 기능이라고 한다. 많은 심리 실험을 통해 기억을 상기할 때의 심리 상태에 때라 기억되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흥미진진하고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서 떠올린 기억에는 지금의 심리 상태와 가치관, 욕구가 크게 관계되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1600년 전에 인간의 기억에 대해 간파한 내용을 소개해주는데 퍽 인상적이었다.

 

마음은 위장과 같고, 기쁜 일과 슬픈 일은 달콤한 음식과 씁쓸한 음식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일이 일어난 시점에서는 달콤함과 씁쓸함을 맛보지만, 기억이 되면 위 속으로 들어가 맛볼 수 없게 된다. 떠올리는 것은 일단 위에 들어간 음식을 되새김질로 꺼내는 것이므로 그때의 혀로 맛보게 된다.’(30)

 

뭔가 근엄하게만 보이던 교부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비유를 생각해 냈다니.^^ 당장 내 기억 속에 입력시켜 놓았다. 앞으로 우울한 기억이 덮칠 때면 이 비유를 떠올릴 것이다. 힘든 기억도 내가 튼튼한 위장으로 소화시켜 놓았으니, 되새김질할 때 쓴 맛을 느낄 이유가 없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의 성장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2. 올해 목표인 프랑스어 능력시험에 도전한다고 처음 광고(?)했을 때, 주변의 반응 중 적지 않았던 것이 "그래... 열심히 해 봐. 근데 지금은 힘들지 않을까?"였다. 그렇다. 우리는 기억력이라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감퇴한다는 것을 상식쯤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더 해보고 싶은 분야가 우수수 늘어나는 사람에게는 이런 괴상한 상식이 참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공부는 때가 있다"라는 말도 거기에 맞장구치는 듯 하고. 하긴 이 말은 십대 청소년들을 꽉 잡아놓는 데 더 일조하고 있지만(물론 공부에 때가 있긴 하다. '살아있을 때'만 해야 하니까).

 

"흥미로운 것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나빠진다는 믿음이 확산되어 있는 문화권에서는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저하된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확산되어 있지 않은 문화권에서는 나이에 대한 기억력 저하는 거의 볼 수 없다."(136)

 

오호라! 책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앞으로 내가 새 우물을 팔 때마다 시비 거는 사람이 있으면 꼭 이 얘기를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신념은 우리의 기억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기억력이 해마다 나빠지는 것을 당연하게 믿는다면 기억력은 착실하게 저하되고, 내가 노력한다면 나이가 들어도 기억력은 쉽게 감퇴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기억력은 단련되고 오히려 더 발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척 격려가 되는 이야기다.

 

3.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런 잠재기억을 저자는 발상의 보물창고라고 부른다. 인생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은 전부 잠재의식 속에 들어있는데, ‘매일 특히 신경 써서 반복적으로 행한 일이나 강렬한 경험’(203)은 특히 잠재의식 속에서 꺼내어 활용하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늘 강렬한 경험을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피곤해서 48시간 안에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매사 진지하게 마음을 담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잠재의식을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203)이란다. 그렇다. 매일매일 별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이라 하더라도, 소중하게 마음을 기울여 마주하는 것이 내 잠재기억을 돌보고 성장시키는 방법인 것이다.

 

이 책을 앞으로 종종 꺼내보게 될 것 같다. 공부하다가 바쁘다는 핑계, 나이 핑계대고 게을러지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우울한 기억이 불쑥 튀어나와 한없이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되돌릴 수 없다고 여겨질 때. 내 발상의 보물창고라는 잠재기억을 잘 키워서 뭔가 건져내 보고 싶을 때... 지금도 현재는 내 과거를,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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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성귀수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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탯줄이 목에 감기면서 태어난 후유증으로 세상 빛을 보자마자 뇌성마비를 앓고, 세 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장애인 요양 시설에서 1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알렉산드르 졸리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의 모토는 자기 운명에 대한 한탄이나 신에 대한 원망이 아닌,'무조건적인 즐거움을 누려보자'(5쪽)였다고 한다.  스피노자가 남긴 '의연하게 행동하고, 스스로를 즐겨라'라는 말을 마음속에 새기며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했을, 한 뇌성마비 청년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책을 읽어나갔다.

 

저자의 글 곳곳에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인류의 오랜 지혜들이 사이좋게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금강경'을 비롯한 불교사상,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들이 남긴 명언, 교황 요한 바오로 23세의 일기글, 시인들의 혜안이 스며있는 싯구들... 그는 이런 다양한 인용문들에 비추어, 자신의 체험에서 느끼고 깨닫게 된 삶의 철학들을 담담하게, 경쾌하게 이야기한다.

 

이따금, 자칫 제 자신을 망가뜨릴 수도 있었을 잘못된 만남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 그땐 오히려 그 만남 덕분에 저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만큼의 성장이 이루어졌음을 느낍니다...(중략)... 연못에 돌을 던지면, 그 돌이 계속해서 물수제비를 이루는 가운데 수면의 파문이 점점 커져, 결국에는 둥근 물결이 연못 전체를 채우는 광경에 대해 말입니다. 이 이미지가 말해주듯, 가까운 사람들과의 참된 우정이 인류 전체에 미치도록 확대시켜 나가지 못할 이유가 대체 무어란 말입니까?(24~25쪽) 

 

상처받지 않으면서, 좋은 만남만을 경험하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피할 수 없이 때로는 고통을 경험하고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로 인해 힘들어하기도 한다. 잘못된 만남을 왜 피하지 못했을까 하고 전전긍긍하기보다 오히려 그 만남 덕분에 나에게 그만큼의 성장이 이루어졌음을 깨닫는 것... 확실히 쉬운 경지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큰 마음가짐을 닮고 싶다. 그런 성숙한 눈으로 내 주변 사람들과 나 자신을,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신의 삶의 중요한 숙제가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알렉산드르 졸리앙. 사실 나는 그동안 '내려놓는다'는 말을, 뭐랄까 현실을 외면하거나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개념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내려놓음'이란 포기나 단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자신을 흔쾌히 내려놓을수록 더 능동적이 되고, 삶의 여러 상황에 보다 적절히 반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가진 내면의 상처들을 깡그리 치유하는 것에 목매지 말고, 치유가 꼭 아니더라도 상처와 더불어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으라는 것. 내 삶의 결핍들이 내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좀 더 귀를 기울이고 그를 친구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라는 것. 이 책에서 건져올린 지혜들을 내 삶의 자양분으로 삼고싶다. 마음이 따스해지고 깊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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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 손정의의 '자기가 원하는 인생' 특강
소프트뱅크 신규채용 라이브 편찬위원회 엮음, 정은영 옮김 / 마리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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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손정의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었던 때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한 소년잡지의 열혈 애독자였는데, 그때 손정의의 삶에 대해 짤막하게 다루었던 기사를 읽었고 큰 충격을 받았다.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광산노동자로 일했던 할아버지, 생선 행상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가던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조센징이라는 놀림을 수없이 받고 자랐지만 '고래 꿈'을 품은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한 길을 꿋꿋이 나아갔다는 이야기는 가슴에 오래오래 남았다.

그 후에도 간간이 손정의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는 그가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품었던 그 큰 꿈을 떠올렸다. 가끔 내 인생의 고비(지금 생각하니 그리 대단했던 것은 아니었다해도)가 찾아왔을 때도, 뭔가를 하고 싶은데 주변의 몰이해에 부딪쳤을 때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열 여섯살의 당찬 소년을 생각하며 용기를 얻곤 했다.

 

이 책은 소프트뱅크 그룹이 매년 신규채용을 위해 실시하는 '소프트뱅크 신규채용 라이브'에서 손정의 회장이 젊은이들에게 던진 메시지 중 핵심내용을 담아낸 것이다. 회사의 신규채용 라이브 편찬위원회에서 펴낸 책이라, 혹시 '회장님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칭송 일색'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살짝 있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물론 칭송은 있다-아니 많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닌 글들이라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읽으면서 그의 강한 에너지와 열정에 나도 전염되는 기분이 들었고, 뭐랄까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 온 거인이 철썩! 내 등을 두드려 주며 '뭘 꾸물거리고 있나? 자네도 얼른 해 보게!'하고 나를 일으켜세워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개인의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말랑말랑한 위로보다는 힘찬 격려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손정의 회장이 전해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묵직하게 와 닿았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다음 두 가지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내 인생을 걸고 무엇을 이루어낸 것인가?'(6쪽)

 

얼핏 단순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이다. 하지만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손정의는 이 화두를 말하며 '오를 산'을 결정한다는 비유를 든다. '일자리 찾는 것에 급급해하지 말고 인생 전반에 걸쳐 무엇을 추구할지 머리가 터질 정도로 깊이 생각해서 '오를 산'을 결정해보라'(17쪽)고 이야기한다. 열 다섯살 때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의 인생을 걸고 추구할 무언가를 찾아낸 소년은, 자신이 오를 산으로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결심했고 그 혁명에 말 그대로 목숨을 걸었다.

 

자신의 영웅을 만들고 그를 닮기 위해 나를 끊임없이 담금질하는 일.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내가 도전할 산을 정하는 일. 그리고 목표를 정했으면 이 산과 저 산을 저울질하지 않고, 배회하지 않고 거기에 오롯이 나 자신을 던지는 일...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에 대한 이정표를 진지하게 다시 정리해보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더 담대한 내가 되고 싶다는 그런 열망도 들었다(아, 그런데 워낙 괴물(?)같은 사람이다보니, 담대해지기는커녕 더욱 내가 쪼그라든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손정의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하루 5분씩'을 쪼개서 하루에 한 가지 무언가를 발명하는 일에 썼다는 에피소드는 요즘 아이디어를 짜느라 물같이 시간을 쓰고있는 나를 절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_-;; 공부가 아닌 다른 일에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사치였다면서, 하루 5분이라는 시간에 이제까지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것을 한 가지씩 발명해보며 머리를 단련시켰단다. 그래서 그 5분씩이 모여 1년간 250개의 발명을 했고 그 중 하나가 세계 최초의 풀 키보드 포켓 컴퓨터가 되었단다. 괴물...^^;).

 

한 번 뿐인 인생, 내가 오르고 싶은 산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깊은 손 회장과의 만남이었다. 내 인생을 무엇에 걸고 싶은지 마음속에 굳게 정하는 것. 뜻은 붕새처럼 크게 품고 생활은 개미처럼 부지런해질 것. 가슴이 벅차다.

 

"오늘은 인생에서 가장 멋진 날이 될 것이다. 매일 아침 그러한 생각을 한다면 자신이 바라는 일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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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너무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이미선 옮김 / 솔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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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어로 '돌로 세운 요새'라는 뜻의 신기한 이름을 가진 아르토 파실린나. 이 작가의 신선한 상상력이 거침없이 가지를 뻗어나가는 듯한 느낌의 소설, '천사가 너무해'를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정말 천사가 해도 너무했다. 이런 트러블 메이커 천사라면, 부디 나한테는 영영 붙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싶을 정도로.^^;

무슨 일을 하든 자꾸 꼬이고, 좋은 의도로 하려던 일이 항상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머피의 법칙'의 최대치가 어디까지인지를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허점 투성이 수호천사 '술로 아우비넨'. 전직 종교교사로서, 막 수호천사 교육과정을 마친 초보 천사로서 자신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자 활활 불타는 그의 의욕은 항상 뜻하지 않은 실수와 좌충우돌 사고로 이어지고 만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보호하려고 한 인간 '아로 코르호넨'(핀란드 이름들의 독특한 느낌이 좋다!). 수호천사가 안 붙어있을 때까지는 꽤 탄탄대로의 삶을 살고 있었던 이 평범한 남자는, 운 나쁘게도 이 의욕만 넘치는 초보천사의 피보호자로 낙점된 덕분에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고난'들을 고스란히 맞게 되는 처지가 된다.

술로 아우비넨의 헌신적인 도움(?) 덕에 아로와 그의 친구가 탄 낡아빠진 영구차는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게 달리다가 대형사고를 내고,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부딪치기도 하는 등 뇌진탕을 세 번이나 경험하게 된다. 이 뿐인가. 피보호자의 창업 자본을 대주고 싶은 기특한 마음으로 아로의 계좌에 입금해 준 거액의 돈 때문에 아로는 한동안 경찰의 조사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리고 피보호자에게 알맞은 짝을 찾아주겠다는 마음으로 연결해 준 여자 때문에 아로는 두 여자의 신경전 사이에 끼이게 되고, 또 그렇게 얽힌 여자관계는 다른 대형사고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집과 가게가 불에 타고 엄청난 열차 사고까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시트콤 수준의 사고 종합세트들. 많은 일들이 '지옥같이' 잘못되어 간다.

 

하지만 나에게 인상깊이 남은 장면들은 따로 있다. 자신이 좋은 의도로 벌인 일들이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질 때마다 애처로울 정도로 풀이 죽고, 마음 아파하고, 때론 그 결과들에 기진맥진하여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는 술로 아우비넨의 모습들이다. 영문도 모르고 하늘이 내린 고난 종합세트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아로도 불쌍하지만, 이 야무지지 못하고 요령없는 늙은 수호천사가 하늘을 훨훨 나는 대신 해안가 바위 위로 기어올라가 날개를 땅바닥에 축 늘어뜨린 채 울고있는 장면을 떠올리니 마음이 짠했다(나도 요령이 없고 자주 실수를 저지르는 편이라 공감이 갔는지도^^;).

 

그리고 또 감동적이었던 것은, 이 늙은 수호천사의 엄청난 회복력이랄까 상처 회복력 같은 것, 내면의 강인함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다. 그렇게 날개를 축 늘어뜨리며 울고 자학하고 케리매키(천사 본부)로부터 소환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코,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수호천사는 우울한 기분으로 사고 현장의 하늘을 떠돌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 엉망진창으로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좀 더 힘을 내어 더 이상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201쪽)

 

얼핏 읽으면 평범해보이는 저 마지막 문장. 하지만 한두 번의 실패가 아니라 수십 번의 실패 뒤에 저렇게 평범하게 '좀 더 힘을 내어 더 이상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다시 일어서기란 얼마나 쉽지 않을 일인가. 하지만 이 늙은 천사는 정말 오뚝이처럼, 마치 체념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천사지만)처럼, 신기할 정도로 매번 툭툭 털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명언을 남긴다.

'대패질을 하면 당연히 대팻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209쪽)

 

그래, 맞다. 열심히 쓱싹쓱싹 대패질을 하면 온전한 재목만 남는 것이 아니라, 수북히 떨어진 대팻밥이 남는 것이 당연하다(작가가 전전한 직업들 중에 벌목 인부와 목수도 있었다는 것이 왜 자꾸 생각나지? 경험에서 우러나온 비유는 역시 와 닿기 마련인 듯...^^). 그런데 우리는, 우리 사회는 대팻밥에 대해서는 한사코 눈을, 마음을 닫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대패질의 결과로 나온 매끈한 재목만이 가치있는 존재라는 듯이. 수없이 많은 대팻밥이 떨어지고 쌓였기에, 반질반질 윤이나는 나뭇결이 더욱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우리는 외면하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앗, 반갑게도 옮긴이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다.

'대패질을 잘못해 재목을 망치고 대팻밥만 잔뜩 만들 수도 있는데, 작가는 그래도 대패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노력하는 한 방황하지만, 진심이 있는 한 좋은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준다.'(258쪽)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내가 깎아낼 재목보다 내 발 아래 수북히 쌓인 대팻밥에 마음이 쓰여 우울해지는 어느 날, 대팻밥 제조기(?)였던 이 늙은 수호천사를 떠올리고 싶다. 그리고 힘차게 외쳐주는 거다. 대패질을 하면 당연히 대팻밥이 떨어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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