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역습
에드워드 테너 지음, 장희재 옮김 / 오늘의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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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역습>, 매혹적인 제목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서문을 펼쳐들었다가 헉! 놀랐다.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 무려 16페이지나 되는 서문이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의 다른 점을 이제껏 특별히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나... 서문과 제 1테크놀로지를 읽으며 저자의 꼼꼼한 통찰력과 엄청난 자료 수집력에 연신 감탄했다.

저자는 이 책의 집필목적을 독자들이 평범한 것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눈을 뜨는 것’(19)이라고 했는데, 책을 덮고 주변의 물건들을 바라보는 느낌이 어쩐지 새롭다. 앞으로는 운동화 끈을 매면서도 이 단순해 보이는 신발끈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숨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될지도. , 이 오래된 테크놀로지는 신고, 벗고, 걷고, 뛰는 단순한 몸의 테크닉도 꽤 가치 있으며, 이로 인해 급진적인 혁명 대신 점진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16)을 보여주기도 한다지, 이렇게.^^;

 

어떤 목적에 맞게 환경을 변형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테크놀로지라면, 테크닉은 이런 변형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즉 구조물, 도구,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테크놀로지이고, 우리가 이를 사용하는 방법이 테크닉인 것. 이 책은 이렇게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이라는 두 단어를 통해 일상의 사물들을 촘촘히 바라본다. 태어나 가장 먼저 접하는 테크놀로지인 젖병부터 시작해서, 우리 몸의 맨 아래 놓인 발에 신는 조리와 운동화, 그리고 업무용 의자와 안락의자, 음악 건반과 텍스트 자판, 그리고 안경과 헬멧까지... 9개의 일상적인 물건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몸의 테크닉을 보완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중요한 혁신 중 일부는 사물의 발명보다는 새로운 사용법의 발전에 있었다는 점을 다채로운 예들을 통해 촤라락~ 명쾌하게 논증해내는 점이 이 책의 백미이다. 역사에 걸쳐 나타나는 테크닉과 테크놀로지 사이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이렇게 꼼꼼하게 추적해냈을까 신기할 따름이다(서문에 나와 있었던, 책의 집필을 도와준 이들의 이름 기나긴 목록에 절로 수긍이 가는 순간).

 

저자가 여러 차례 강조하듯이, 일상의 물건들을 통해 살펴본 테크닉과 테크놀로지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다. 새로운 사물은 행동을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는 항상 발명가나 생산가들의 예상대로만 진행되지는 않는 것이라는 얘기다. 만든 이들조차 자신의 발명품이 어떻게 쓰일지 완전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언뜻 모순되어 보이지만, 이런 예측불가능성덕분에 인류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물론 테크놀로지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해서 인류에게 재앙이 된 경우도 많았지만). 사람들의 행동 변화는 새로운 도구의 영감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구는 이어서 더 많은 혁신을 낳는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경이롭게 느껴진다. 역시 호모 파베르,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기에 인간인가.

 

그리고 이 책은 범상치 않은 서문뿐 아니라 후기도 참 충실하다. 특히 우리 몸이 새로운 테크닉들에 익숙해지면서, 다른 테크닉은 잊혀버린다.’(398)는 내용에 진한 공감을 느꼈다. 인류학자들에게 알려진 휴식을 취하는 다양한 자세는 의자에 앉는 자세로 대체되었고, 원래 건강을 위한 도구였던 안락의자는 게으른 생활의 위험을 경고하는 상징이 되었다. 타자기와 컴퓨터 자판의 발달로 개인의 독특한 서체는 사라져 가며, 헬멧은 위험을 회피하게 하는 것만큼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껏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앞으로도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은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할 수가 있고, 더 많은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형성하는데 테크놀로지가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지혜롭게, ‘인간답게테크닉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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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반전 : 거짓말주의보 지식의 반전 3
존 로이드.존 미친슨 지음, 이한음 옮김 / 해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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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에 완전한 진지함이란 없다."(플라톤)

"진실보다 재미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진실이라면 재미있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화이트헤드)

 

첫 문장은 책장을 넘기며 맨 처음 만났던, 속지에 있었던 문구. 그리고 두번째는 저자 중 한 사람인 존 로이드가 좋아하는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말이라고 한다. 둘 다 이 책의 성격을 어쩌면 이리도 잘 대변해주는 문장인가 싶다.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상식들, 근거없는 통념들이 속시원히 하나씩 파헤쳐지는 동안 유쾌했고 즐거웠다.

 

1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을 특히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통념과 달리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사실 아주 크며, 값싼 좌석에 앉았을 때 더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다(감사하다! 생존율이 가장 낮은 곳이 앞쪽 1등석이라니 1등석 승객들은 억울하겠지만^^;). 설탕이 든 달착지근한 음료에 흥분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닌 부모라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설탕 함량이 높은 식사를 준 쪽과 설탕이 안 든 식사를 준 쪽 아이들의 행동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관찰되지 않는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고 한다. 다만 '부모는 설탕이 과잉행동을 일으킨다고 예상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본다.'(63쪽) 는 것이다. 이건 뭐,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쪽에 있는 효과라 불러야 하나? 아무튼 놀랍다, 선입견의 힘이란 것이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지식의 반전' 퍼레이드는 계속된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혀의 어디에 있는 맛봉오리든 똑같이 모든 맛을 느낀다는 것! 학교에서 혀의 각 부위마다 담당하는 맛이 다르다고 그림 그려가며 배웠던 기억이 선명한데, 그것이 논문을 잘못 번역한 한 심리학자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니(올바른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써먹을 소재가 될 수도 있겠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 백과사전에서 본 이 '혀 지도'가 신기해서 작은 실험을 해본 적이 있었다. 짠맛을 느낀다고 나온 혀의 양옆에서 앞쪽 부위에 설탕을 올려놨는데 단맛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내 혀가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깔끔한(?) 결론에 도달했었는데, 생각할수록 아쉽기만 하다. 아주 오랫동안 공식적인 진리로 여겨져 온 혀 지도가 공식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진 것은 1974년이란다. 좀 일찍 태어나서 진실을 밝혀낼 수도 있었는데...^^;;

 

2부 '잔뜩 부풀어오른 세계사'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클레오파트라의 국적은 그리스인이었으며, 카이사르가 월계관을 쓴 이유는 승리해서가 아니라 머리가 휑했기 때문이었고, 잔다르크를 처형한 쪽은 영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이었단다. 오랫동안 '키 작은 야심만만한 남자'의 대명사였던 나폴레옹의 키는 169cm, 그 당시 프랑스인의 평균키였던 164cm를 훌쩍 넘는 키였다고 한다. '정직한 어린이'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 이야기는 창작물이었고, 전설적인 훈족의 왕 아틸라는 코피가 나는 바람에 잠자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고로 코피가 나면 뒤로 젖히지 말고 앞으로 숙여야 한다!).

 

세상은 넓고. 아직까지 베일에 쌓인 파낼 수 있는 '반전' 지식들은 무궁무진하다는 것,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거라는 것... 뭔가 기분좋은 좌절감(?)이 들게 하는 책. 그리고 호기심을 탐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애정을 품게 하는 책이다. 오늘도 옥스퍼드 털 스트리트 16번지의 술집 겸 서점에서는 이런 '호기심쟁이'들이 수많은 조작된 자료와 거짓 정보들과 즐겁게 씨름하고 있겠지? 그들에게 힘찬 격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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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쉬게 하라 - 나를 괴롭히는 집착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정은지 옮김 / 토네이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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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없이 바쁘고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현대인들은 저마다 숨가쁘게 달려간다. '생각을 쉬게 하라'라는 책 제목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지금 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들은 모두 '생각할 가치'가 있는 것들인지, 생각해봤자 의미가 없고 오히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생각들은 내 안에 얼마나 많은지...

 

저자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두 가지는 '열정'과 '휴식'이며, 우리가 쉼 없는 열정을 가지려면 역설적으로 반드시 '쉼'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휴식의 백미는 육체가 아니라 '생각'을 쉬게 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비가 거세게 내리면 들판에 잡초가 무성해지듯, 많은 생각과 넘치는 욕망은 불안과 걱정의 숲이 되어 우리를 에워싼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느라 지친 우리 자신을 재충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을 쉬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잠시의 짬만 있어도 하늘 한번 바라볼 여유없이 저마다 스마트폰을 경쟁적으로 들여다보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특히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사소하고 번잡한 잡념,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수많은 기우, 자고 일어나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집착... 이러한 생각들의 헌 옷을 벗어버리고 더 좋은 생각, 더 고결하고 삶의 근원을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은 생각의 옷장을 끊임없이 열어 생각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 이런 생각의 '샤워'와 '새 옷'을 제공해줄 이로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찾은 이가 바로 붓다다. '끊임없이 더 숭고한 생각으로 갈아타 마침내 자기 삶의 가장 큰 봉우리에 올라선' 붓다의 잠언 180개를 10개의 소주제로 묶어놓았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하고 명쾌한 붓다의 잠언들. 보통 이런 형식의 책들은 '잠언+지은이의 생각이나 에피소드'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책은 특이하게도 지은이의 개입이 없다. 각 소주제별로 붓다의 일화가 짤막하게 소개되고 바로 잠언으로 이어진다. 뭐 취향의 차이겠지만, 나는 이런 담백한 구성이 마음에 든다. 잠언을 읽고 내 나름대로 소화해보고 음미해 볼 수 있는 여백이 느껴져서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에,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날에, 뭔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순간에,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하나씩 읽어보고 지혜와 마음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잠언이지만, 마음에 던지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의미를 곱씹을수록 넓게 원을 그리며 멀리까지 퍼져간다. 특히 평범한 것들에 비유해서 삶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잠언들이 많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모든 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하라'고 할 때는 '햇살이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내리쬐듯' 온정을 베풀고 복을 나눌 것을 당부한다. 철에 들러붙은 녹이 서서히 철을 갉아먹듯이 나쁜 마음도 몸과 마음에 들러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므로 애초부터 나쁜 마음을 먹지 말 것을 경고한다. 나는 앞으로 빨래를 할 때마다 붓다의 아름다운 비유를 기억하고 싶다. 비누칠을 하고, 옷을 비비는 순간 깨끗했던 물은 순식간에 더러워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을 더러운 존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을 더럽히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깨끗한 옷이 되는 것처럼 불필요한 마음의 때를 없애기 위해서 고통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기다려라. 옷에서 먼지가 떨어지고 나면 물도 다시 깨끗해진다.'(111쪽) 이렇게 무심히 흘려보낼 수 있는 일상의 장면도 붓다의 눈을 통해서는 깊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보석같은 순간이 된다.

 

요즘 자꾸 마음이 옹졸해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생각의 '샤워'를 마치고 '새 옷'을 입으니 한결 나 자신이 넉넉해지고 평온해지는 것 같다. 물론 중요한 것은 책을 덮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이 마음을 잃지 않고 1g씩이라도 실천에 옮기는 것에 있겠지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불안과 걱정의 생각거리 속에서 또 허우적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또 다시 나를 담금질하고, 다시 일상에서 연습하고, 또다시 생각을 교체하고... 그렇게 나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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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바람길의 자급자족 농사일기 - 자연과 나누는 친환경 순환농법
여태동(바람길) 지음 / 북마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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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영어로는 'green thumb'이라고 한다지요? 바람길님은 정말이지 마법의 초록빛 손가락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문기자면 무척 바쁘실텐데 주말이면 어김없이 도시농부로 변신, 이른 새벽부터 흙에 파묻혀 땀을 흘리는 부지런한 삶을 10년째 꾸려오고 있다니 존경심이 절로 고개를 듭니다. 이 책은 그 10년간 도시농부로 살면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땀흘려온 바람길님의 농사일기입니다. 뭐랄까 말 그대로 일기여서, 철따라 여러 작물들을 심으면서 배웠던 여러가지 실용적인 지식들과 함께 심심찮게 등장하는 실패담에,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감칠맛나게 어우러져 펼쳐집니다.

도시농부 친구들과 함께 도와가며 일하고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시간, 각자 농장에서 수확한 채소들로 만든 밑반찬이며 김치를 서로 맛보며 여는품평회,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만든 너덜너덜한 두부로 두부김치를 만들어 아이들을 먹이며 행복해하는 아빠의 모습... 참 사람사는 맛이 느껴지는 따뜻한 얘기들이 가득하네요. 덩달아 흐뭇하고 푸근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람길님은 도시농부로서의 자신의, 친구들의 부지런함을 대견해합니다. '누가 일요일 새벽 밭에 나와 일하라고 시켰다면 무척 투정을 부렸을 터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니 얼마나 자발적인 모습인가'(132쪽)하고 말이지요. 정말 맞는 말입니다. 농사일은 고된 노동입니다. 하지만 몸이 욱씬거리고 힘이 들어도 신명나게, 즐겁게 일하고 자연에서부터 얻은 것에 감사해하는 도시농부 바람길님과 친구들의 모습은 참 해맑게 느껴지네요. 품이 많이 들어도 농약이나 인공 비료대신 친환경 자연농법을 실천하면서도 '뭐 대단한 일은 아니고 그저 최선을 다해 땅에 기대고 하늘에 기대는 정도'라 여기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 나누고 우리가 직접 재배한 먹을거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도시농부로 사는 즐거움'(267쪽)이라 말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넉넉함이 넘칩니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정직하게 땀흘리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지가 새삼스럽게 와 닿습니다.

 

도시농부로서의 삶은 여러 성찰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고구마를 캐며, 알이 굵은 녀석이 많았으면 했는데 자잘해서 아쉬워하던 바람길님은 그래도 '작은 고구마가 맛있다'며 위안을 삼습니다.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할 직업 농부가 아니니 이 정도 수확에도 기뻐하지만, 농사지어 자식 공부시켜야 한다면 걱정됐을 법하다며 우리나라 농업의 한계를 생각합니다. '땀 흘려 일하는 농민들이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나라는 언제나 오려는지'(34쪽)하고 말이지요.

감자를 캐며, 토마토 순을 따면서 '과유불급'의 교훈을 뼈저리게 깨닫기도 합니다. 많이 수확하고픈 욕심에 감자 눈을 여러 개 만들어 심었더니 자잘한 감자만 매달려 있었고, 토마토를 많이 얻을 생각으로 순을 두세 개 남겨두었더니 제대로 된 토마토가 열리지 않았대요.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더 넉넉해지고 풍요로운 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진리를 자연은 인간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고백하자면, 집에 들이는 식물마다 족족 짧고 굵게 생을 마감시키는 재주(?)를 가진 저는 'black thumb'입니다. 올봄에도 야심차게 키우기 시작한 화분 몇 개를 하나빼고 모두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저도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듭니다. 일단 베란다에서 상추랑 토마토 모종부터 정성스럽게 길러보는 것부터요. 그리고 꼭, 가까운 미래에는 작은 주말농장을 제 손으로 가꿔볼 겁니다. 조금씩이라도 내가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삶, 흙에 기대어 땀을 흘리고 그 정직한 대가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 이 책을 통해 그 꿈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었는지 배웠습니다. '실천하는 도시농부가 늘어나면 지구가 생글생글 웃을 것 아닌가'(35쪽), 저도 지구를 생글생글 웃게 만들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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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스님의 인도 성지 순례
송강 지음 / 도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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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만큼 다녀온 사람들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같은 곳을 갔더라도 어떤 눈과 마음으로 보았느냐에 따라 그 경험의 색깔은 다채로울 것이다. 수행자의 눈으로 본 인도는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

이 책을 쓰신 송강스님은 인도 성지순례가 오랫동안 아끼던 꿈이었다고 한다. 학자들의 기록과 유적 등을 통해 부처님의 생애를 수십 번 따라가고, 마음으로만 그 더위와 먼지 속을 걸어 다녔으나 막상 성지순례를 하면 그 마음 속 여행의 감동이 부서져 버릴까봐 계속 미루셨단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한다는 것이 수행자에게 얼마나 커다란 의미일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만났던 여행기와는 편집이 사뭇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10일간의 인도 성지 순례기인데 글과 함께 수록된 사진들이 무려 900여장(그래서 처음엔 10일이 아니라 100일을 잘못 봤나 했다^^;). 그리고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빼놓지 않고 곁들인 설명. 뭐랄까 마치 누군가가 세세하게 적은 일기나 블로그를 보는 것 같았다. 처음 공항에서 일행과 만나며 한 컷, 탑승을 기다리면서 한 컷, 비행기 사진 한 컷, 기내에서 한 컷, 공항에 걸려 있는 방문객 환영 포스터 한 컷, 이런 식으로 마치 여행을 하고 있는 스님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 보는 것 같은 구성이다.

 

스님은 호기심도 정도 많으시고 섬세하신 성격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친 꽃 한 송이, 호텔 로비 바닥의 연꽃 문양, 우연히 마주친 미소 짓는 아이들, 거리에서 어슬렁거리는 염소나 개, 떠돌이 가족이 빵 만드는 장면의 따뜻함까지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하신 걸 보면. 그런데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호텔 침상 사진들이라든가, 함께 순례에 오른 일행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장면들 같은 비슷비슷해 보이는 사진들은 적절히 솎아냈더라면 책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섬세함 덕에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의 여러 부처님상과 불화, 조각, 부조, 채색화와 장식 문양들까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인도 여행기를 여러 권 읽었지만 엘로라, 아잔타 석굴을 이렇게 다양한 사진들과 자세한 설명과 곁들여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송강 스님이 부처님상과 불화를 대할 때마다 느끼셨던 벅찬 감동이 내게도 오롯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엘로라 제10굴에서 스님이 부처님을 뵙는 순간 가슴이 터질 듯했다는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정면을 보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장엄하고 성스러운 만남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성상을 친견하면서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편안하게 걸터 앉으신 모습의 부처님(5m)께서 눈을 아래로 향하신 채로 양손을 들어 열심히 당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신다. ”잘 왔노라, 송강비구여! 내 오래전부터 그대와 늘 함께 하였노라.“’(55)

 

올해 나도 드디어,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인도로 떠난다. 뭐 나의 여행은 순례길은 아니겠지만, 엘로라와 아잔타를 가면 꼭 송강스님의 진지한 시선을 떠올리면서 부처님을 뵙고 싶다. 부처님이 반갑게 맞아주실 삶을 나는 살고 있을까, 나를 돌아보게 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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