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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스님의 인도 성지 순례
송강 지음 / 도반 / 2013년 5월
평점 :
인도만큼 다녀온 사람들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같은 곳을 갔더라도 어떤 눈과 마음으로 보았느냐에 따라 그 경험의 색깔은 다채로울 것이다. 수행자의 눈으로 본 인도는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
이 책을 쓰신 송강스님은 인도 성지순례가 ‘오랫동안 아끼던 꿈’이었다고 한다. 학자들의 기록과 유적 등을 통해 부처님의 생애를 수십 번 따라가고, 마음으로만 그 더위와 먼지 속을 걸어 다녔으나 막상 성지순례를 하면 그 마음 속 여행의 감동이 부서져 버릴까봐 계속 미루셨단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한다는 것이 수행자에게 얼마나 커다란 의미일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만났던 여행기와는 편집이 사뭇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10일간의 인도 성지 순례기인데 글과 함께 수록된 사진들이 무려 900여장(그래서 처음엔 10일이 아니라 100일을 잘못 봤나 했다^^;). 그리고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빼놓지 않고 곁들인 설명. 뭐랄까 마치 누군가가 세세하게 적은 일기나 블로그를 보는 것 같았다. 처음 공항에서 일행과 만나며 한 컷, 탑승을 기다리면서 한 컷, 비행기 사진 한 컷, 기내에서 한 컷, 공항에 걸려 있는 방문객 환영 포스터 한 컷, 이런 식으로 마치 여행을 하고 있는 스님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 보는 것 같은 구성이다.
스님은 호기심도 정도 많으시고 섬세하신 성격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친 꽃 한 송이, 호텔 로비 바닥의 연꽃 문양, 우연히 마주친 미소 짓는 아이들, 거리에서 어슬렁거리는 염소나 개, 떠돌이 가족이 빵 만드는 장면의 따뜻함까지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하신 걸 보면. 그런데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호텔 침상 사진들이라든가, 함께 순례에 오른 일행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장면들 같은 비슷비슷해 보이는 사진들은 적절히 솎아냈더라면 책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섬세함 덕에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의 여러 부처님상과 불화, 조각, 부조, 채색화와 장식 문양들까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인도 여행기를 여러 권 읽었지만 엘로라, 아잔타 석굴을 이렇게 다양한 사진들과 자세한 설명과 곁들여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송강 스님이 부처님상과 불화를 대할 때마다 느끼셨던 벅찬 감동이 내게도 오롯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엘로라 제10굴에서 스님이 부처님을 뵙는 순간 가슴이 터질 듯했다는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정면을 보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장엄하고 성스러운 만남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성상을 친견하면서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편안하게 걸터 앉으신 모습의 부처님(5m)께서 눈을 아래로 향하신 채로 양손을 들어 열심히 당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신다. ”잘 왔노라, 송강비구여! 내 오래전부터 그대와 늘 함께 하였노라.“’(55쪽)
올해 나도 드디어,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인도로 떠난다. 뭐 나의 여행은 순례길은 아니겠지만, 엘로라와 아잔타를 가면 꼭 송강스님의 진지한 시선을 떠올리면서 부처님을 뵙고 싶다. 부처님이 반갑게 맞아주실 삶을 나는 살고 있을까, 나를 돌아보게 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