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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철학자 루푸스 - 앞만 보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에게 던지는 유쾌한 돌직구
안드레아스 슐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평점 :
고양이는 삶의 매 순간 지금, 그리고 여기에 우선순위를 놓아요. 고양이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가능하지 않겠어요?(68쪽)
스노우캣의 귀여운 그림체와 함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고양이의 재기발랄한 어조(?)가 매력적인 책.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 않지만, 고양이와 함께 살았을 때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저 녀석은 지금 무얼 생각하고 있는 걸까?' 고양이의 언어라도 배울 수 있어서 같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하곤 했지.
오늘, 범상치 않은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사는 슐리퍼 집에 업둥이로 들어온 고양이 카터른베르크의 루푸스, 일곱 번의 묘생을 거쳤다는 상당한 연륜의 이 고양이 철학자가 인간들에게 재잘재잘 쏟아내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우리집 고양이가 창가에서 햇살을 온 몸에 맞으며 사색(?)에 잠기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 머릿속에 든 것들을 끊임없이 궁금해하던 그 때가. 하여간, 고양이들은 역시 평범하지 않은 존재다!
아무튼 고양이 루푸스는 '인간들에게 고양이 철학의 지혜를 전수해 주겠다(12쪽)'는 박애주의 정신으로 우리에게 고양이 철학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고양이, 처음에는 의젓한 듯 굴더니 갈수록 꽤 수다스럽다. 일곱번의 묘생을 거치는 동안의 연륜과 그간 인간사를 지켜보며 쌓인 이야기들이 많았나보다. '잠꾸러기 고양이, 신중한 고양이, 우아한 고양이, 행복한 고양이, 만족한 고양이, 애교쟁이 고양이, 방랑자 고양이'라는 부제가 붙은 7개의 장에서 루푸스가 전해주는 고양이의 일곱 가지 지혜... 마치 고양이의 발걸음같이, 사뿐사뿐 가볍게 말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단단하고 풍부하다.
이 호기심 넘치고 다정다감하고 박학다식한 고양이의 입에서는 인류역사에 존재했던 수많은 철학자들과 작가, 작곡가들의 이름이 고양이화(?)되어서 튀어나오는데, 어쩌면 그리 자기가 말하는 내용에 맞추어 적재적소에 그렇게 쏙쏙 잘 인용하는지 놀라울 뿐이다(역시 일곱 번의 묘생의 내공이란!). 키에르케고르는 키르케카츠가 되고, 모차르트는 마운차르트가 되고, 베토벤은 메토벤이 되고, 칸트는 카츠가 되고... 한술 더 떠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 카루스는 고양이 철학자 '루크레티우스 카투스'가 되어 쾌락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해준다. 끊임없이 패러디되는 이름들, 그들의 생각들을 버무리며 능청을 떨듯 술술 이야기하는 귀여운 루푸스!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 본' 고양이들의 일곱 가지의 지혜는 언뜻 단순하게 들린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어?'하고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아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려 일곱 번의 삶을 산 루푸스는 그런 인간의 어리석음을 알기에 윤년의 크리스마스이브에 이야기를 걸어온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분주해하고, 늘 탐욕을 부리고, 다른 이들의 행복을 시기하고, 무분별한 모습을 버리라고, 고양이가 말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들로 얼마나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지를 깨닫고 실천해보라고... 루푸스의 가르랑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