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친구 남녘 동무 - 통일이 되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원유순 지음, 이욱재 그림 / 국민출판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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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나. 이 동화의 설정처럼, ‘만일 통일이 된다면 우리 학교, 우리 반의 모습은 어떨까하는 상상을 (꽤 골똘히) 해봤던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정기적으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용감히 외쳤다는 이승복 어린이를 기념하는 웅변대회를 하고, 방학숙제로 반공글짓기같은 것을 해 갔던 때라 그런 상상 자체가 꽤 발칙한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아무튼 그 후 세상이 많이 변하고, 이제 더 이상 반공교육은 없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했던 때,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가까워지리라고 생각했던 통일은 아직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2015, 생각보다 일찍 통일을 이룬 한국의 초등학교 5학년 2반 교실. 통일 이후 혼란스럽기만 한 어른들의 세계 못지않게, 아이들의 세계도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6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벽이 막힌 채로, 서로 다른 제도, 다른 관습, 다른 생각과 다른 말투로 살아왔으니 그 틈새가 하루아침에 쉽게 메워질 리는 없는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낯선 시선 속에서 오해가 쌓이기도 하고, 남쪽 북쪽 편을 갈라 서로를 헐뜯고 업신여기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채기는 조금씩 아물고, 아이들은 어떻게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서서히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이들이 읽는 동화라고 해서 작가가 통일 한국의 미래상을 마냥 좋게만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실의 삶과 고민이 빠진 채 아이들에게 섣부른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넘어야 할 길이 많다는 것을 직시하게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다 하더라도 우리가 함께 걷는길이라는 것, 그렇기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념 속에서가 아닌, 피부로 느끼는 일상으로서의 통일... 그 일상의 풍경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의 삽화도 참 따뜻하고 정감 있다. 특히 마지막, 남북 어린이 성화주자의 마지막 불꽃이 모이는 장면을 보며 가슴이 벅찼다. 언젠가 이 불꽃처럼 남북이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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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 허허당 그림 잠언집
허허당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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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한 날씨, 눅눅한 공기...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마음속에 산들바람 한 줄기가 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목이 말라 답답했을 때 맑디맑은 샘물 한 모금을 머금은 듯한, 개운한 느낌이기도 하고.

 

거침없이 쓱쓱 그린 듯한, 여백이 많은 선화들도 참 좋다. 군더더기없고 간결한 스님의 시와 잘 어우러지고 어쩐지 마음이 탁 트이게 만드는 그림... 특히 새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좋았다. 동그란 아이같은 얼굴에 짧은 두 직선이 만든 앙증맞은 부리, 그리고 붓으로 휘갈겨 그린 깃털로 흰 여백 속을 자유롭게 노니는 새들을 보며 마음이 훈훈해진다.

 

오늘은 오늘을 살고 내일은 내일을 살자

바람 불 땐 바람 소리 듣고 비올 땐 빗소리 듣자

삶을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몰입하면

모든 것이 축복이다(70쪽)

 

바람 불 땐 바람 소리 듣고 비올 땐 빗소리 듣는 것. 그것이 보다 자유롭게, 통쾌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마치 아이들이 어제에 대한 후회나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즐기듯이... 늘 뭐가 그리 복잡했을까 싶다. 잠시 눈을 들어 거울을 바라본다. 요즘 일이 잘 안 풀린다는 이유를 들어가며, 이 세상걱정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만약 그대가 지금 행복하다면/ 마음을 잘 쓰고 있는 증거요/ 불행하다면 잘못 쓰고 있는 증거다"(126쪽) 나, 아무래도 요즈음 마음을 잘못 쓰고 있나 보다. 그러고보니, 힘들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내 넋두리 하느라 한동안 바빴던 것 같다. 그들도 나름대로 지치고 피곤할텐데, 내 힘든 것만 보고 내 이야기 하느라 바빠 그들에게 마음 나누어주는 것은 소홀하지는 않았던가.

 

일상 소소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와 위안이 되기 위해 마음을 쓰면

먼저 자신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자신이 먼저 행복해진다(126쪽)

 

참, 단순한 이야기지만 정말 되씹어볼수록 지혜로운 이야기다. 모든 이에게 우주의 중심은 나다. 아프리카에 아무리 수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해도, 당장 한 끼니가 늦어지는 내 위장만큼 절실하게 와 닿지는 않는 것이 (강도높은 수련을 거치지 않는 한) 인간이란 존재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위로받고 싶은 만큼 다른 이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먼저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기 위해 마음을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그것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럴때 인간은 비로소, 샤르트르가 말했던 "타인이 곧 지옥이다"의 명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이 지옥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을 위해, 그 세상을 위해 우리 하나하나가 채울 수 있는 자리에 대해, 스님은 시종일관 맑은 어조로 이야기하신다. '어찌보면 사람 사는 세상이 참/ 눈물겹게 서글프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사람이 안고 가지 않으면 누가 안고 갈 것인가'(166쪽), 그래서 힘들고 외롭고 슬퍼도 세상을, 서로를 꼭 안고 가라고 당부하신다. 마음 속에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본다. 그리고 빙그레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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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철학자 루푸스 - 앞만 보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에게 던지는 유쾌한 돌직구
안드레아스 슐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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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삶의 매 순간 지금, 그리고 여기에 우선순위를 놓아요. 고양이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가능하지 않겠어요?(68쪽)

 

스노우캣의 귀여운 그림체와 함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고양이의 재기발랄한 어조(?)가 매력적인 책.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 않지만, 고양이와 함께 살았을 때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저 녀석은 지금 무얼 생각하고 있는 걸까?' 고양이의 언어라도 배울 수 있어서 같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하곤 했지.

오늘, 범상치 않은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사는 슐리퍼 집에 업둥이로 들어온 고양이 카터른베르크의 루푸스, 일곱 번의 묘생을 거쳤다는 상당한 연륜의 이 고양이 철학자가 인간들에게 재잘재잘 쏟아내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우리집 고양이가 창가에서 햇살을 온 몸에 맞으며 사색(?)에 잠기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 머릿속에 든 것들을 끊임없이 궁금해하던 그 때가. 하여간, 고양이들은 역시 평범하지 않은 존재다!

 

아무튼 고양이 루푸스는 '인간들에게 고양이 철학의 지혜를 전수해 주겠다(12쪽)'는 박애주의 정신으로 우리에게 고양이 철학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고양이, 처음에는 의젓한 듯 굴더니 갈수록 꽤 수다스럽다. 일곱번의 묘생을 거치는 동안의 연륜과 그간 인간사를 지켜보며 쌓인 이야기들이 많았나보다.  '잠꾸러기 고양이, 신중한 고양이, 우아한 고양이, 행복한 고양이, 만족한 고양이, 애교쟁이 고양이, 방랑자 고양이'라는 부제가 붙은 7개의 장에서 루푸스가 전해주는 고양이의 일곱 가지 지혜... 마치 고양이의 발걸음같이, 사뿐사뿐 가볍게 말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단단하고 풍부하다.

 

이 호기심 넘치고 다정다감하고 박학다식한 고양이의 입에서는 인류역사에 존재했던 수많은 철학자들과 작가, 작곡가들의 이름이 고양이화(?)되어서 튀어나오는데, 어쩌면 그리 자기가 말하는 내용에 맞추어 적재적소에 그렇게 쏙쏙 잘 인용하는지 놀라울 뿐이다(역시 일곱 번의 묘생의 내공이란!). 키에르케고르는 키르케카츠가 되고, 모차르트는 마운차르트가 되고, 베토벤은 메토벤이 되고, 칸트는 카츠가 되고... 한술 더 떠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 카루스는 고양이 철학자 '루크레티우스 카투스'가 되어 쾌락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해준다. 끊임없이 패러디되는 이름들, 그들의 생각들을 버무리며 능청을 떨듯 술술 이야기하는 귀여운 루푸스!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 본' 고양이들의 일곱 가지의 지혜는 언뜻 단순하게 들린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어?'하고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아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려 일곱 번의 삶을 산 루푸스는 그런 인간의 어리석음을 알기에 윤년의 크리스마스이브에 이야기를 걸어온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분주해하고, 늘 탐욕을 부리고, 다른 이들의 행복을 시기하고, 무분별한 모습을 버리라고, 고양이가 말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들로 얼마나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지를 깨닫고 실천해보라고... 루푸스의 가르랑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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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기구 멘토링 - 10년의 국제기구 경험담과 GCF 유치과정 스토리
정홍상 지음 / 하다(HadA)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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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저자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막연하게 그려온 국제기구의 이상적인 구호 대신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뛴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생생함이 가득했다. 국제기구에 관심이 있다면, 언젠가 세계를 무대로 일해보고 싶은 꿈을 품고 있다면... 현장에서 직접 겪고 느낀 이야기들로 꽉꽉 찬 이 책이 훌륭한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제기구의 문화, 환경, 사람들의 사고방식, 채용 및 평가, 실질적인 업무 등에 대해 저자가 경험한 여러 에피소드를 읽고 있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 절로 실감이 났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내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의 또다른 커다란 줄기인, 녹색기후기금(GCF) 한국 유치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 흥미진진했다. 우리나라가 GCF 유치에 성공하고 나자 일부 언론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겼다고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유치를 놓고 끝까지 경쟁을 벌였던 독일, 스위스와 비교하여 모든 면에서 엄청나게 불리한 여건이었는데 결국 해낸 것이다. 기본적으로 과거에 비해서 엄청나게 높아진 우리나라의 국격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그 뒤에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부 내의 각 부처, 많은 공무원, 또 여러 기관의 전문가들이 온 정성을 기울여 해낸 일이었고, 국제기구에서 다양한 배경의 직원들과 함께 일해본 저자는 그때의 경험이 유치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GCF 유치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꾸준히 오래 쌓아온 인간관계가 결정적일 때 빛을 발하듯,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기가 필요할 때에만 뭐든 다 해줄 듯이 접근하다가 긑나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기 쉽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 또 국제사회에서 한번 한 약속은 가능하면 최대한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제 에피소드들을 통해 접하니 더욱 피부에 와 닿게 느껴졌다.

 

유치과정에서 우리나라는 CGF가 한국에 유치되면 사무국 내에 이슬람교도들이 기도할 수 있는 기도실 같은 공간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런 작은 약속부터 착실히 잘 이행하여 다른 나라의 종교와 문화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한국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덮고 신문을 읽다가 GCF 사무국이 첫 환경 분야 공적개발원조 사업으로 몽골 조림 사업을 지원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GCF의 항해가 시작되는가 보다. 부디, 많은 이들의 땀방울의 결과로 우리나라 최초로 유치에 성공한 국제기구 GCF가 국제사회에서 탄탄히 자기 역할을 해 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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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과 유토피아 - 니체의 철학으로 비춰본 한국인, 한국 사회
장석주 지음 / 푸르메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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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철학의 프레임을 통해 한국인의 마음과 욕망들, 그리고 한국 사회의 면면을 들여다본다는 발상이 신선하게 느껴진 책. 장석주 시인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처음 읽었을 때 삶의 바른 궤도에서 벗어나 음악 감상실이나 들락거리는 보잘것없는’ 19세 청년이었으나, ‘그때 뼈가 휘는 듯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27)고 회고한다. 지금도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다는 그는,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니체의 동물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와 엮어 이야기한다. 책의 제목처럼, 탐욕이 판치는 동물원 사회와 멀어져 간 유토피아에 대한 성찰이다.

 

그의 말대로, ‘니체만큼 다양한 동물 은유를 써서 삶과 세계의 본질을 통찰한 철학자는 드물다’(37)는 생각에 동의한다. 나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을 때(제대로 다 읽진 못했지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이런 구절들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니체가 사람과 사회에 대하여 은유했던 여러 동물들의 특징들을 한국인의 마음과 욕망에 연결해서 분석하는데, 참 어떻게 이렇게 동물 이미지들을 연결할 생각을 했을까 싶다. 사라져가는 아버지들의 자리에는 무거움의 정신낙타를, 행복강박증이 불러오는 불행들에는 부정 정신의 사자를, 학벌주의에 병든 사회에는 식물과 유령의 혼혈아라는 원숭이를, 가족 이기주의의 병폐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타조를 대입한다.

 

물론 저자가 한국사회에 대입한 동물들은 실제의 동물들이 아닌, ‘니체의 동물들은 존재론적 위계 안에서 발견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존재들의 기호’(36). 그 창의적인 발상은 높이 사지만, 동물들을 이렇게 인간의 눈에 맞추어 대상화하는 인간중심적 사고(?)가 솔직히 영 불편하다. 니체를 좋아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을 때 무수한 동물들의 등장이 거북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인간의 우월성과 이성의 유일성이라는 관념의 틀 안에서 동물들을 바라본다는 것, 그런 생각의 프레임을 대하는 것이 나는 참 힘들다. 그래서 이 책의 사유와는 별개로, 책을 읽는 내내 동물의 입장(?)에 선 변호사의 심정이 되어 끊임없이 구시렁거렸다. 며칠씩이나 물 없이도 견딜 수 있는 낙타는, 피하지방이 없어 체온이 40도 이상이 되지 않으면 땀을 흘리지 않는 동물이다. 무덥고 혹독한 사막을 그렇게 견디는 낙타같이 보송하고 가벼운 생명체가, 단지 등에 혹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무거움의 정신이 되어야 하다니!

 

얘기가 꽤 옆길로 샜으니(동물 하나하나 변론하다가는 날이 샐지도^^;) 다시 책의 중심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니체 철학의 은유로서의 동물들과 배치해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저자의 어조는 시종일관 꼿꼿하고 강직하다. ‘하면 된다의 구호 아래 한강의 기적, 경제의 눈부신 성장, 원조 수혜국가 최초 OECD 진입등 자랑스러운 성취만 애써 기억하려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그 구호에 함몰된 채 일직선으로 달려가던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예상치 못한 병폐와 도덕적 위기들을 함께 불러왔음을 인식하라고 말이다. ‘이제는 하면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될 것들을 정직하게 분별하고, 우리 삶의 실체적 진실을 차가운 이성으로 돌아보아야 할 때’(302)라는 그의 목소리에 우리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책의 도입부에서 한국인을 이야기하는데 왜 니체철학인가에 대해, 저자는 지금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니체 철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었던 시간은 때론 아프지만 유익했다. 거울 속에 비춰진 우리의 맨얼굴이 때론 감추고 싶고 부끄럽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들여다보기를 계속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멀어져 간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길일 것이다. 더디더라도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는, 그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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