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 허허당 그림 잠언집
허허당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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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한 날씨, 눅눅한 공기...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마음속에 산들바람 한 줄기가 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목이 말라 답답했을 때 맑디맑은 샘물 한 모금을 머금은 듯한, 개운한 느낌이기도 하고.

 

거침없이 쓱쓱 그린 듯한, 여백이 많은 선화들도 참 좋다. 군더더기없고 간결한 스님의 시와 잘 어우러지고 어쩐지 마음이 탁 트이게 만드는 그림... 특히 새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좋았다. 동그란 아이같은 얼굴에 짧은 두 직선이 만든 앙증맞은 부리, 그리고 붓으로 휘갈겨 그린 깃털로 흰 여백 속을 자유롭게 노니는 새들을 보며 마음이 훈훈해진다.

 

오늘은 오늘을 살고 내일은 내일을 살자

바람 불 땐 바람 소리 듣고 비올 땐 빗소리 듣자

삶을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몰입하면

모든 것이 축복이다(70쪽)

 

바람 불 땐 바람 소리 듣고 비올 땐 빗소리 듣는 것. 그것이 보다 자유롭게, 통쾌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마치 아이들이 어제에 대한 후회나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즐기듯이... 늘 뭐가 그리 복잡했을까 싶다. 잠시 눈을 들어 거울을 바라본다. 요즘 일이 잘 안 풀린다는 이유를 들어가며, 이 세상걱정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만약 그대가 지금 행복하다면/ 마음을 잘 쓰고 있는 증거요/ 불행하다면 잘못 쓰고 있는 증거다"(126쪽) 나, 아무래도 요즈음 마음을 잘못 쓰고 있나 보다. 그러고보니, 힘들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내 넋두리 하느라 한동안 바빴던 것 같다. 그들도 나름대로 지치고 피곤할텐데, 내 힘든 것만 보고 내 이야기 하느라 바빠 그들에게 마음 나누어주는 것은 소홀하지는 않았던가.

 

일상 소소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와 위안이 되기 위해 마음을 쓰면

먼저 자신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자신이 먼저 행복해진다(126쪽)

 

참, 단순한 이야기지만 정말 되씹어볼수록 지혜로운 이야기다. 모든 이에게 우주의 중심은 나다. 아프리카에 아무리 수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해도, 당장 한 끼니가 늦어지는 내 위장만큼 절실하게 와 닿지는 않는 것이 (강도높은 수련을 거치지 않는 한) 인간이란 존재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위로받고 싶은 만큼 다른 이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먼저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기 위해 마음을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그것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럴때 인간은 비로소, 샤르트르가 말했던 "타인이 곧 지옥이다"의 명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이 지옥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을 위해, 그 세상을 위해 우리 하나하나가 채울 수 있는 자리에 대해, 스님은 시종일관 맑은 어조로 이야기하신다. '어찌보면 사람 사는 세상이 참/ 눈물겹게 서글프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사람이 안고 가지 않으면 누가 안고 갈 것인가'(166쪽), 그래서 힘들고 외롭고 슬퍼도 세상을, 서로를 꼭 안고 가라고 당부하신다. 마음 속에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본다. 그리고 빙그레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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