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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과 유토피아 - 니체의 철학으로 비춰본 한국인, 한국 사회
장석주 지음 / 푸르메 / 2013년 6월
평점 :
니체 철학의 프레임을 통해 한국인의 마음과 욕망들, 그리고 한국 사회의 면면을 들여다본다는 발상이 신선하게 느껴진 책. 장석주 시인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처음 읽었을 때 ‘삶의 바른 궤도에서 벗어나 음악 감상실이나 들락거리는 보잘것없는’ 19세 청년이었으나, ‘그때 뼈가 휘는 듯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27쪽)고 회고한다. 지금도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다는 그는,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니체의 동물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와 엮어 이야기한다. 책의 제목처럼, 탐욕이 판치는 ‘동물원 사회’와 멀어져 간 ‘유토피아’에 대한 성찰이다.
그의 말대로, ‘니체만큼 다양한 동물 은유를 써서 삶과 세계의 본질을 통찰한 철학자는 드물다’(37쪽)는 생각에 동의한다. 나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을 때(제대로 다 읽진 못했지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 이런 구절들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니체가 사람과 사회에 대하여 은유했던 여러 동물들의 특징들을 한국인의 마음과 욕망에 연결해서 분석하는데, 참 어떻게 이렇게 동물 이미지들을 연결할 생각을 했을까 싶다. 사라져가는 아버지들의 자리에는 ‘무거움의 정신’ 낙타를, 행복강박증이 불러오는 불행들에는 ‘부정 정신’의 사자를, 학벌주의에 병든 사회에는 ‘식물과 유령의 혼혈아’라는 원숭이를, 가족 이기주의의 병폐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타조를 대입한다.
물론 저자가 한국사회에 대입한 동물들은 실제의 동물들이 아닌, ‘니체의 동물들은 존재론적 위계 안에서 발견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존재들의 기호’(36쪽)다. 그 창의적인 발상은 높이 사지만, 동물들을 이렇게 인간의 눈에 맞추어 대상화하는 인간중심적 사고(?)가 솔직히 영 불편하다. 니체를 좋아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을 때 무수한 동물들의 등장이 거북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인간의 우월성과 이성의 유일성이라는 관념의 틀 안에서 동물들을 바라본다는 것, 그런 생각의 프레임을 대하는 것이 나는 참 힘들다. 그래서 이 책의 사유와는 별개로, 책을 읽는 내내 동물의 입장(?)에 선 변호사의 심정이 되어 끊임없이 구시렁거렸다. 며칠씩이나 물 없이도 견딜 수 있는 낙타는, 피하지방이 없어 체온이 40도 이상이 되지 않으면 땀을 흘리지 않는 동물이다. 무덥고 혹독한 사막을 그렇게 견디는 낙타같이 보송하고 가벼운 생명체가, 단지 등에 혹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무거움의 정신’이 되어야 하다니!
얘기가 꽤 옆길로 샜으니(동물 하나하나 변론하다가는 날이 샐지도^^;) 다시 책의 중심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니체 철학의 은유로서의 동물들과 배치해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저자의 어조는 시종일관 꼿꼿하고 강직하다. ‘하면 된다’의 구호 아래 한강의 기적, 경제의 눈부신 성장, 원조 수혜국가 최초 OECD 진입등 자랑스러운 성취만 애써 기억하려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그 구호에 함몰된 채 일직선으로 달려가던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예상치 못한 병폐와 도덕적 위기들을 함께 불러왔음을 인식하라고 말이다. ‘이제는 하면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될 것들을 정직하게 분별하고, 우리 삶의 실체적 진실을 차가운 이성으로 돌아보아야 할 때’(302쪽)라는 그의 목소리에 우리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책의 도입부에서 한국인을 이야기하는데 왜 니체철학인가에 대해, 저자는 지금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니체 철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와 ‘우리’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었던 시간은 때론 아프지만 유익했다. 거울 속에 비춰진 우리의 맨얼굴이 때론 감추고 싶고 부끄럽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들여다보기를 계속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멀어져 간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길일 것이다. 더디더라도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는, 그런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