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그리고 향기 - 향수 만드는 남자의 향기 이야기
임원철 지음 / 이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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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는 추억을 부른다. 마들렌을 홍차에 적시며 유년기를 기억해 냈던 마르셀처럼, 누구에게나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부르는 향기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향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조향사이다. 직업상 향기를 탐색하고 연구하는 그는, 항상 향료들이 탄생한 곳, 그 자연과 토양에서 형성되는 특징들이 궁금하고 신기했다고 한다. 향기라는 것이 지역과 식물에 따라, 바람과 흙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라벤더는 프로방스 지방으로 여행하는 느낌을 주고, 샌들우드는 인도, 베르가못은 이탈리아 남부 카랄브리아, 바닐라는 마다가스카르, 파촐리는 인도네시아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로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8쪽)'. 이 구절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 본다. 그러고보면, 여행을 하면서, 항상 낯선 땅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가장 먼저 다가왔던 것은 '익숙하지 않은 공기의 냄새'였던 것 같다.

 

하지만 '향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일 줄 알았던 나의 기대와는 살짝 방향을 틀어, 이 책은 뉴욕, 런던, 파리와 밀라노, 도쿄의 대표적인 명품 향수들에 이야기의 초점를 맞춘다. 명품 향수들의 탄생 배경,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과 얽힌 일화... 유명한 향수들에 숨겨져있던 다채로운 스토리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물론 이 명품 향수들이 세계 향수 시장을 거머쥐고 있으니, 향수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지역과 식물에 따라, 바람과 흙에 따라' 달라지는 향기들의 속내를 엿보고 싶었던지라,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마지막에, 에르메스의 전속 조향사인 장 클로드 엘레나가 했던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꼭 만들고 싶은 향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바람의 향기'라고 대답했다는...

또 책에서 소개된,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로 유명한 레이 가와쿠보의 향수의 재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불에 탄 고무향, 모래언덕과 불이 붙은 바위향을 이용해 '흙과 나무로 만든 집'을 연상시키는 향이라니 무척 궁금하다. 향기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상상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지, 얼마나 무궁무진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낀다.

인간은 오랜 역사를 통해 향기에 심취했고, 수많은 향수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제 바람의 향기, 물과 흙의 향기를 만들어내고 싶어한다. 자연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향수들... 앞으로는 또 어떤 향수들이 세상에 태어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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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달린다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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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젊음의 자유는 흘러넘치는 삶의 자유이자 몸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 담아 두기 어려운 힘의 자유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 느낌은 점점 줄어든다. 살아가면서 멈추어야 할 수많은 이유를 너무나 잘 알게 된다...(중략)... 그러나 운이 좋다면, 정말로 운이 좋다면, 그 이유들이 아무리 거칠게 으르렁대도 나를 강제할 수 없음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노년의 자유이다.(75~76쪽)

 

달리기의 심장박동을 경험하는 것은 플라톤의 선을 가장 강력하게 경험하는 것이리라.(88쪽)

 

젊음의 자유와 노년의 자유. 모든 달리기는 고유의 심장박동이 있다는 것. 원초적 놀이의 본질을 지니고 있는 달리기. 노화의 의미. 쾌락과 환희와 행복... 중년의 한 철학자가 달리면서 성찰하는 다채로운 주제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지금 마이애미 마라톤 대회의 출발선에 서 있다. 하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는 커녕, 종아리 근육 파열 때문에 재활 채료를 거치고 마라톤 대회의 직전 2개월간은 달려보지조차 못한 상태이다.

왜 그는 (누가 봐도 무리로 보이는) 마라톤에 도전장을 내밀었을까? 중년의 나이에 무언가 벅찬 목표를 이루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얻기 위해? 아니다. 그는 '능력 이상의 성취' 가설은 자신에게 설득력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내가 달리기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성취의 허무함'(46쪽)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달리기가 주는 즐거움, 쾌락 때문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막 끝낸 42.195km의 달리기는 쾌락과 아무 상관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263쪽)고 하는 걸 보니. 사실 그가 첫 마라톤을 끝낸 방법은 달리기와 스트레칭을 끝없이 반복하다가 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걷기도 하는 등, 날렵한 마라토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너무나 깊게, 심지어 혐오스러울 만큼 극도로 행복했다.'(263쪽)고 이어 말한다.

 

그에게 달리기의 목적과 가치는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자신의 달리기에 목적을 갖다붙였다. 자신의 집과 재산을 '세 마리까지 불어난 개과 동물들의 무자비한 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115쪽)였다. 늑대 브레닌과 개 니나, 그리고 브레닌의 딸 테스의 파괴본능(?)을 소진시키기 위해서 함께 시작한 달리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개들과 달리면서, 달리기의 심장박동을 경험하고, 온종일 달리던 어린시절을 기억해내고, 여러 사상가들의 생각들과 조우하고, 다채로운 사유를 펼쳐 나간다. 아이들을 언제까지 지켜줄지 확신할 수 없는 아버지의 애틋함, 사랑하는 개와 늑대들을 떠나보낼 때의 가슴아픔이 중간중간에 오버랩된다.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철학자의 냉철한 이성적인 사유, 자신의 삶의 여러 풍경을 기억하고 관조하는 감성, 그리고 종종 등장하는 독특한 비유적 표현과 깨알같은 유머(특히 자신의 노화를 이야기하며 이 모든 것이 공룡 탓이다. 똑똑한 파충류인 공룡의 후손들이 우리와 공생했더라면 나의 부러움을 꽤 샀을 것이라며 투덜대는 대목은 압권이었다^^)까지... 이 모든 스펙트럼을 한 사람이 품고 있는 것이라니 놀랍다. 달리기는 분명 한없이 단순한 움직임인데, 그의 두뇌는 쉼없이 팽팽 돌아가고 있었을 듯.

 

'달리기의 목적과 가치는 그저 달리는 것이다. 달리기는 의미나 목적이 멈추는 삶의 장소 중 하나이다. 따라서 달리기는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이다.'(247쪽)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내 어린시절, 숨이 차오르도록 뜀박질하며 마냥 즐거웠던 날들을 떠올려보았다. 그의 말대로, 그때 나의 달리기의 목적은 '그저 달리는 것'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단순한 놀이인 달리기. 그 순수한 기쁨을 언제부터 잊고 살았는지.

'삶의 초기에 내가 알았지만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서 잊기를 강요받았던 것'(19쪽)을 기억해내는 달리기, 그 기억의 문을 열어준 이 책에 감사한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더위도 이제 물러갈 시간, 가을의 공기가 상쾌하다. 구석에 박아뒀던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오랜만에 마음껏 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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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일광욕 습관 - 일광욕으로 햇볕을 듬뿍 쐬면 의사도 약도 필요없다!
우쓰노미야 미쓰아키 지음, 성백희 옮김 / 전나무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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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며칠 전, 우연히 지나가다 본 TV 프로그램에서 비타민D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의 체내 비타민D 수치가 세계적으로(!) 낮다는 것이었는데, 어느 정도냐면 차도르를 쓰고 종일 생활하는 이슬람권 여성들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햇볕을 피하는 생활을 하길래 이렇게 된 걸까. 아침에 근처 산책로를 돌다보면 헉! 할 때가 많다. 이른 시간이라 햇빛이 그리 강한 것도 아닌데, 선캡에 얼굴을 다 가린 희한한 마스크를 쓴 분들과 종종 마주쳐서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외선을 차단하려는 노력이 눈물겹기도 하고, 일단 본인들은 안 갑갑한가 싶기도 하고.

물론 이런 '자외선 경계증'은 비단 '하얀 피부'를 원하는 여성들만이 아니라, 냉난방이 완비된 실내에서 쾌적하게 지내는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 우쓰노미아 미쓰야키 의학박사가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자외선을 차단하는 현대인들을 얼마나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지가 뚝뚝 묻어난다. 특히 새하얀 피부를 지킨답시고 고마운 태양의 은혜를 저버리는 '미백열풍'을 두고는 분노의 기운마저 느껴진다.^^;

'우선 경고부터 하겠다. 피부가 새까맣게 탈까 두렵다는 이유로 햇볕을 피하다 보면 머지않아 자리보전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19쪽)

 

이렇게 가끔 협박(?)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책은 전체적으로 햇볕처럼 푸근하다. 어렵고 복잡한 전문용어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자외선에 대해 우리가 오해했던 것을 하나하나 풀어주고, 햇볕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칼슘 대사에 힘을 쓰는 비타민D의 합성으로 뼈를 튼튼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인체에서 일어나는 여러 활동들을 정상화하고, 우울증을 예방하고, 수면장애를 해소하고,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대사증후군을 개선시키는 등... (헉헉, 나열하기 힘들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혜택을 '아낌없이 주는' 햇볕.

특히 '일광욕이 최고의 안티에이징 요법'이라는 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안티에이징 업계(?)에서 자외선은 '공공의 적 No.1'쯤으로 취급받는데, 이게 무슨 얘기일까. 햇볕을 정기적으로 쐬면 내분비계의 기능이 개선되어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져서 '회춘 효과'를 촉진한다고 한다. 또한 피부 모세혈관의 혈류를 개선하고 피부의 대사기능을 향상시킴으로써 피부를 싱싱하고 윤기 있게 만든다니, 적당한 햇볕이야말로 비싼 화장품보다 더 귀한 '무료 안티에이징 센터'인 셈이다.

 

'약도 없고 질병의 원인도 몰랐던 시대에 인류는 햇볕을 쐬어 건강을 되찾았다'(193쪽)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약에 의존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편의점에서도 쉽게 약을 살 수 있는 시대, 우리몸의 자연치유력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은 자신의 몸속에 최고의 명의를 두고 있다"고, 그리고 자신의 일은 다만 '그 명의를 불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의 '명의'는 자연치유력이고, 히포크라테서가 명의를 불러내기 위해 추천한 방법이 바로 일광욕이라고 한다. 일광욕을 지속하면 몸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기능과 잊고 있었던 기능까지 회복시킨다고 하니, 이것이 곧 자연치유력의 상승인 것이다. 나이팅게일 역시 크림전쟁 때 과감히 부상병들을 실외로 옮겨서 치료에 커다란 성과를 올렸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터에서 귀국한 뒤 병원을 지을 때 채광과 통풍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이 책을 통해, 햇볕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제라도 자외선에 대한 편견을 말끔히 걷어낼 수 있어서, 자외선이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많은 이득을 주는지를 알게 되어서 정말이지 다행이다.

점심을 먹고 의자에서 뒹굴고 싶은 맘을 꼭꼭 접어넣고, 잠시 짬을 내어 햇볕 속을 걸어본다. 저자의 표현대로, '햇볕은 모든 인간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권리'(195쪽)라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햇볕을 통해 생명을 얻고 있는 지구상의 한 개체가 새삼스럽게 느끼는 이 경이로움. 고맙다, 햇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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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가격 -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인생을 만드는 삶의 미니멀리즘
태미 스트로벨 지음, 장세현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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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건이 우리 삶에 미치는 숨겨진 영향을 세심히 살피는 것, 나는 이것이야말로 상황을 변화시키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애니 레너드)

'물건은 의미 있는 목적에 보탬이 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물건이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물건의 가격>,54쪽

 

마침 애니 레너드의 <물건 이야기>를 읽고, 뭔가 변화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인터넷 쇼핑몰 위시 리스트에 '사려깊게' 고이 넣어두었던 목록들을 향해 과감히 '삭제' 버튼을 누르고, 또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참으로 시의 적절하게 이 책 <행복의 가격>을 만났다. 그리고, 이 책이 전하는 삶의 방식에 진하게 공감했다. 이 마음이 식기 전에, 타성에 젖기 전에 얼른 움직여야지! 지금 내 방과 창고에 쌓인 물건들을 '꼭 필요한 것','친구들에게 나누어주거나 기부할 것','팔 것'으로 열심히 분류하고 있는 중이다.

 

원제가 'You can buy happiness(And it's cheap)'인데, 음, 뭐랄까 원제도 한글제목도 그리 와 닿진 않는다. 너무 '행복'이란 말이 남용(?)되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지, 아무튼 무슨 비지니스쪽 자기 계발서 제목같은 느낌을 주는 책 제목이 좀 아쉽다. 좋은 책인데, 혹시 제목 때문에 선입견을 갖고 쳐다보지 않는 독자가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오지랖이 고개를 든다. 부디, 책 표지의 사진-꼬마 집 앞에서 환히 웃으며 손 흔드는 사람들-을 보시고 호기심을 발동시켜 주시길!

 

저자 태미 스트로벨은 2007년의 마지막 날, 작고 아담한 바퀴 달린 주택의 삶을 소개한 짤막한 유튜브 영상 한 편을 보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리고 삶을 단순화한다는 발상에 매료되었고, 자신의 삶을 서서히 '다운사이징'하기 시작했다. 전환점을 맞이하기 전까지 소위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태미는, 그러나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그때의 자신을 돌아본다.

 

'행복해 해야 마땅한, 지극히 운 좋은 사람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이상형의 남자와 결혼했고, 안전한 동네에 자리 잡은 근사한 투룸 아파트도 있었고, 옷장에는 옷이 가득했고, 괜찮은 자동차도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왜 이리 우울한지 알 수 없었다.'(42쪽)

 

신용카드 빚, 자동차 구입비 대출, 주택담보 대출 등을 갚느라 일에 매달려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고... 이렇게 일과 소비만 되풀이하는 악순환에 빠져서, 커다란 아파트를 꼭 갖고 싶지도 않은 물건으로 가득 채우며 사는 삶. '나는 소유한 물건을 유지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태미의 삶은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자동차를 팔고 자전거로 이동하고(태미 부부는 전보다 날씬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5년에 걸쳐 계속 물건을 줄이고 세 번의 이사끝에, 지금은 바퀴 달린 3.6평의 '작은 집'을 짓고 가족과 이웃들과 풍요로운 공동체 생활을 꾸리고 있단다.

 

'소박하게 사는 법을 배운 덕에 내 삶에는 크나큰 기쁨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일정한 시점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며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나는 물건이 아닌 삶을 사랑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때로는 보기보다 만만치 않은 일임을 느낀다.'(265쪽)

그렇다,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완료형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라는 것, 그리고 '보기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 태미와 남편 로건의 이야기에 많은 공감이 되는 이유는, 스트레스를 TV와 쇼핑으로 풀던 평범한 중산층 부부가 어느날 갑자기 짠!하고 '소박한 삶'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바뀌는 것에는 시간이 걸리고 좌충우돌하는 순간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담담하게 전해주는 그 과정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절로 내 삶의 모습도 돌아보게 된다.

 

태미는 물건을 처분하고 간소한 생활을 하자는 로건의 제안에 처음에는 불안해한다. 사람들에게 가난하게 보이기도 싫었고, 여전히 교외에 그림같은 집을 장만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우리 물건을 자선단체에 내준다는 건 멍청한 생각 같았다. 이 물건들을 사 들이느라 쓴 돈이 얼만데 이걸 왜 남들에게 거져 준다는 건가?'(48쪽)의 솔직한 이야기에 키득키득.

로건과 작은 집을 짓는 일에 대해 의논하며 활기와 행복을 느끼다가도, 물건 목록을 만들며 '절대로 다 안 들어갈 텐데'하고 걱정을 숨기지 못하기도 하고. 자연재해에 대비해 여분의 식량을 보유하는 게 좋다고 주장하는 로건과, 곡물을 배량 보관하는 문제를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태미는 로건을 다람쥐라 불렀고 로건은 태미에게 무책임하다고 함^^;). 그 뒤로도 옷이나 책 등 물건을 줄일 때가 되면 다른 형태로 거듭 되풀이되는 논쟁들! 그러나 항상 서로를 격려하고, 삶의 다운사이징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작게 살고 크게 생각하자'는 서로의 약속을 재차 확인하면서 태미의 두려움도 잦아든다. 그렇게, 날마다 쌓인 작은 실천과 노력이 모여 이윽고 큰 변화의 물결로 이어진다.

 

이 책에는 태미 부부 외에도 실제로 소박한 삶의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많은 이들이 끝없는 소비주의의 사슬에서 벗어나 삶의 방향을 틀고, 진짜 자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특히 태미와 이들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지역사회에 대한 자원봉사활동이다. 소유보다는 공유 속에 더 큰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가짐이 아닌 나눔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은은하게 내 안에 퍼지는 것 같았다. 물건이 아닌 삶을 사랑하는 것,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는 것... 마음이 훈훈해진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분명 정해진 정답은 없다. 우리 모두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만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니까. 그런 중에, 이렇게 멋진 답안을 보게 된 것은 분명,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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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전쟁 - 우리가 몰랐던 에어컨의 진실
스탠 콕스 지음, 추선영 옮김 / 현실문화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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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방을 통한 온도 조절은 에너지 사용이나 탄소 배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에어컨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여러 차원에서 형성해왔다.’(95쪽)

‘창문을 열고 에어컨의 스위치를 끄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는 에어컨이 유발한 폐단을 바로잡을 수 없다. 온도 조절에 관련된 여러 가지 딜레마는 사회구조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원래 상태로 돌이킨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64쪽)

 

덥다. 정말 지구온난화가 심각한가보다. 그렇지만 차가운 물 한 잔을 들이켜고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이 책을 열심히 읽는다(빠져서 읽는 동안은 찜통더위를 잠시나마 잊는다).

이 책은, 단순히 에어컨이 여러 가지 폐단을 양산한다고 비난하거나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려는 책은 아니다. 에어컨이 점점 늘어나는 복잡한 환경문제, 사회문제, 경제문제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의 원인과 결과를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단순히 에어컨 사용을 금지한다고 해서(금지하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충분한 수준의 정치, 경제, 사회, 환경적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그리고 에어컨이 여러 차원에서 형성해온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겹겹을, 냉방과 에너지와 환경의 삼각관계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찬찬히 설명해준다.

 

어렸을 적, 처음 에어컨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울 정도로 실내 공기를 차갑게 만들어주는 신기함보다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실외에 달린 상자의 팬에서 나오던 숨 막히는 열기였다. ‘에어컨이 안은 시원하게 해 준대도, 바깥을 더 뜨겁게 만들잖아!‘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어렸을 적 느꼈던 그 의문, 혹은 분통(?)에 대한 엄청나게 상세한 답을 듣는다.

놀랍다. 막연히 생각해왔던 것보다 에어컨의 영향력은 막강했고, 에어컨으로 인한 전반적인 사회의 변화는 실로 광범위했다. 에어컨 때문에 실내 생활과 실외 생활의 불균형이 커지게 되고, 건물들의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고, 교외화가 진행되고(이건 미국의 경우지만), 자동차가 커지고, 생산과 소비가 분별력을 잃고 가속화되고... 심지어 최근 수십 년 사이 벌어진 이라크와 중동 관련 정치 사건들도 에어컨은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속 불가능한 경향으로 가득 채워진 사회를 창조하는 중요한 도구’(8쪽)로서의 에어컨의 역할에 대해 저자는 정말로 치밀하게 설명해 준다.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이 앎의 괴롭고도 황홀한(?) 기쁨이란. 앎의 기쁨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에어컨을 이용해 공기를 냉각시키고 싶을 때마다, 더위에 적응하며 살아보려는 실험에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와 싸워야 할 테니까. 그래도 기꺼이, 피하지 않고 즐겁게 싸워볼 생각이다. 이 책 덕분에 내 안에 ‘세포 분자가 간직한 여름날의 기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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