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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그리고 향기 - 향수 만드는 남자의 향기 이야기
임원철 지음 / 이다미디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향기는 추억을 부른다. 마들렌을 홍차에 적시며 유년기를 기억해 냈던 마르셀처럼, 누구에게나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부르는 향기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향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조향사이다. 직업상 향기를 탐색하고 연구하는 그는, 항상 향료들이 탄생한 곳, 그 자연과 토양에서 형성되는 특징들이 궁금하고 신기했다고 한다. 향기라는 것이 지역과 식물에 따라, 바람과 흙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라벤더는 프로방스 지방으로 여행하는 느낌을 주고, 샌들우드는 인도, 베르가못은 이탈리아 남부 카랄브리아, 바닐라는 마다가스카르, 파촐리는 인도네시아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로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8쪽)'. 이 구절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 본다. 그러고보면, 여행을 하면서, 항상 낯선 땅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가장 먼저 다가왔던 것은 '익숙하지 않은 공기의 냄새'였던 것 같다.
하지만 '향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일 줄 알았던 나의 기대와는 살짝 방향을 틀어, 이 책은 뉴욕, 런던, 파리와 밀라노, 도쿄의 대표적인 명품 향수들에 이야기의 초점를 맞춘다. 명품 향수들의 탄생 배경,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과 얽힌 일화... 유명한 향수들에 숨겨져있던 다채로운 스토리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물론 이 명품 향수들이 세계 향수 시장을 거머쥐고 있으니, 향수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지역과 식물에 따라, 바람과 흙에 따라' 달라지는 향기들의 속내를 엿보고 싶었던지라,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마지막에, 에르메스의 전속 조향사인 장 클로드 엘레나가 했던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꼭 만들고 싶은 향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바람의 향기'라고 대답했다는...
또 책에서 소개된,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로 유명한 레이 가와쿠보의 향수의 재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불에 탄 고무향, 모래언덕과 불이 붙은 바위향을 이용해 '흙과 나무로 만든 집'을 연상시키는 향이라니 무척 궁금하다. 향기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상상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지, 얼마나 무궁무진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낀다.
인간은 오랜 역사를 통해 향기에 심취했고, 수많은 향수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제 바람의 향기, 물과 흙의 향기를 만들어내고 싶어한다. 자연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향수들... 앞으로는 또 어떤 향수들이 세상에 태어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