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전쟁 - 우리가 몰랐던 에어컨의 진실
스탠 콕스 지음, 추선영 옮김 / 현실문화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냉방을 통한 온도 조절은 에너지 사용이나 탄소 배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에어컨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여러 차원에서 형성해왔다.’(95쪽)

‘창문을 열고 에어컨의 스위치를 끄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는 에어컨이 유발한 폐단을 바로잡을 수 없다. 온도 조절에 관련된 여러 가지 딜레마는 사회구조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원래 상태로 돌이킨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64쪽)

 

덥다. 정말 지구온난화가 심각한가보다. 그렇지만 차가운 물 한 잔을 들이켜고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이 책을 열심히 읽는다(빠져서 읽는 동안은 찜통더위를 잠시나마 잊는다).

이 책은, 단순히 에어컨이 여러 가지 폐단을 양산한다고 비난하거나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려는 책은 아니다. 에어컨이 점점 늘어나는 복잡한 환경문제, 사회문제, 경제문제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의 원인과 결과를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단순히 에어컨 사용을 금지한다고 해서(금지하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충분한 수준의 정치, 경제, 사회, 환경적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그리고 에어컨이 여러 차원에서 형성해온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겹겹을, 냉방과 에너지와 환경의 삼각관계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찬찬히 설명해준다.

 

어렸을 적, 처음 에어컨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울 정도로 실내 공기를 차갑게 만들어주는 신기함보다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실외에 달린 상자의 팬에서 나오던 숨 막히는 열기였다. ‘에어컨이 안은 시원하게 해 준대도, 바깥을 더 뜨겁게 만들잖아!‘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어렸을 적 느꼈던 그 의문, 혹은 분통(?)에 대한 엄청나게 상세한 답을 듣는다.

놀랍다. 막연히 생각해왔던 것보다 에어컨의 영향력은 막강했고, 에어컨으로 인한 전반적인 사회의 변화는 실로 광범위했다. 에어컨 때문에 실내 생활과 실외 생활의 불균형이 커지게 되고, 건물들의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고, 교외화가 진행되고(이건 미국의 경우지만), 자동차가 커지고, 생산과 소비가 분별력을 잃고 가속화되고... 심지어 최근 수십 년 사이 벌어진 이라크와 중동 관련 정치 사건들도 에어컨은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속 불가능한 경향으로 가득 채워진 사회를 창조하는 중요한 도구’(8쪽)로서의 에어컨의 역할에 대해 저자는 정말로 치밀하게 설명해 준다.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이 앎의 괴롭고도 황홀한(?) 기쁨이란. 앎의 기쁨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에어컨을 이용해 공기를 냉각시키고 싶을 때마다, 더위에 적응하며 살아보려는 실험에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와 싸워야 할 테니까. 그래도 기꺼이, 피하지 않고 즐겁게 싸워볼 생각이다. 이 책 덕분에 내 안에 ‘세포 분자가 간직한 여름날의 기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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