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만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 - 조선어학회, 47년간의 말모이 투쟁기
이상각 지음 / 유리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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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라. 지금 강도 일본이 우리 강토를 침략했으니 앞으로 한민족의 근본을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문화요, 그 문화를 지탱하는 것이 언어다. 그러므로 저들은 제일 먼저 우리 말글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우리 말글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말모이를 만들어야지. 그래야 뒷날 어떤 일이 생겨 우리 말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되살릴 수 있는 힘이 된다. 이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너희가 힘을 합쳐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어떤 희생이 따르든 해내야 하는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우리말 어휘를 모으는 것이 급선무다."(56~57쪽, 주시경과 제자들의 대화)

 

우리말과 글. 어렸을 적부터 너무나 당연한 생활의 일부였기에, 오히려 그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존재. 마치 공기처럼 항상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를 살 수 있게 해 주지만, 그 소중함을 우리는 쉽게 잊고 산다.

책장을 넘기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만약 일제시대에 우리말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때를 떠올렸다. 페루를 여행했을 때, 잉카 인디오 출신의 한 가이드를 만났던 때였다. 그는 스페인어가 짧은 나를 위해 유창한 영어로 마추픽추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가 스페인어와 영어 둘 다를 훌륭하게 구사하는 것을 칭찬했는데, 그는 고맙다고 말한 뒤 잠시 슬픈 얼굴을 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열심히 독학한 외국어로 가이드 일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은 기쁘지만, 날이 갈수록 어린 시절에 배운 자기 부족 언어를 잊어간다고, 점점 그 언어를 아는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 언어가 사라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어떤 책에서 읽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던 그의 얼굴을, 슬픈 눈을 생각했다. 아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시키려는 일제의 침탈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민족적으로 우리 말글을 보전하기 위해서 우리말 사전 편찬은 시급한 과제였다. 그때까지 우리는 한글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소리글이라는 자부심이 있을 뿐, 그 말글을 담은 사전 한 권 마련하지 못한 처지였다. 하지만 주시경이 제자들에게 말했듯, 너무나 오랜 시간과 너무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 일이었다. 무려 47년간의 피나는 투쟁의 역사... 모진 고문을 받아 불구의 몸이 되고, 형무소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기도 했던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의 말과 글은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조선어학회의 중심인물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한 사람들까지 '대일본제국의 치안유지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악랄하고 잔혹한 고문을 받았던 이야기를 읽으면서 괴로웠다(미리 마음의 각오를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견뎠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 고통들을 이겨냈을까. 계속되는 모진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서, 좁디좁은 감옥에서 구부리고 앉아 견디면서, 이은상이 지은 시 'ㄹ자'는 그래서 더욱 마음속에 스민다.

 

평생을 배우고도

미처 다 못 배워

인제사 여기 와서

ㄹ자를 배웁니다.

ㄹ자 받침 든 세 글자.

자꾸 읽어봅니다.

제 '말' 지켜라.

제 '글' 지켜라.

제 '얼' 붙안고

차마 놓지 못하다가

끌려와

ㄹ자깥이

꼬부리고 앉았소. (216쪽, <홍원 옥중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조선어학회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아니, 부끄럽지만 알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냥, 한글을 연구하던 학술단체를 일제가 조작하여 체포했던 사건 정도로만 암기하고 있었다(주입식 교육의 부작용이다). 우리 말과 글을 지켜야 겨레가 살고, 겨레가 살면 언젠가 독립을 쟁취할수 있다는 굳은 믿음으로 일제의 탄압에 맞선 '독립 투쟁'이라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자유롭게 우리말과 글을 쓰는 것은 그냥 얻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가슴으로 기억하게 해 준 책. 그분들의 희생에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의 말과 글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고 싶다.

 

"말을 바르고 옳게 하고, 글을 바르고 옳게 써서 우리의 정신이 다 하나가 되어 우리나라를 튼튼하게 하여 우리나라의 빛이 널리 퍼지면 우리는 다 같이 그때에 우리가 우리의 할 바를 한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292쪽, <표준 조선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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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년 전 공룡오줌이 빗물로 내려요 와이즈만 환경과학 그림책 5
강경아 글, 안녕달 그림,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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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조카가 무척 기대한 책.

독특하고 재미있는 책의 제목을 되풀이해 읽다가 로고송(?)을 만들어 흥얼거리기도 했답니다.^^;

 

조카의 예상과는 살짝 달리, '공룡'이 아닌 '빗물'이 주인공이긴 했지만

그래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나중에는 저와 같이 빗물과 물의 소중함과 환경보호에 대해 토론(?)도 하고... 알찬 시간을 보냈네요.

1억년 전의 공룡의 오줌이 증발하여 비로 내리고 그 과정이 계속 이어지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지구상의 대기와 빗물의 순환이 계속되고 있고 그 덕분에 생명들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알기쉽고 재미있게 이야기 해주는 책입니다.

담백한 느낌의 일러스트도 마음에 드네요.

 

수도꼭지만 돌리면 언제 어디서든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현대인의 생활,

물의 순환에 대해서 저도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냥 물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인 것처럼 생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조카와 함께 책을 읽으며 반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구상의 물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빗물로, 강물과 바닷물로, 수증기와 구름으로,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수돗물로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고 순환해간다는 원리를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새겨 봅니다.

우리가 지금 물을 아끼고 소중히 해야 앞으로 우리도, 우리의 후손들도 깨끗한 물을 누리고 살 수 있다는 것도요.

 

시간을 거슬러 옛날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빗물을 다양하게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빗물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빗물은 그냥 흘러서 땅으로 스며들거나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고만 생각했던 조카는

빗물을 아끼고 잘 활용한 조상들의 이야기가 퍽 감동깊었나봐요.

당장 앞으로 빗물을 받아서 자기가 키우는 방울 토마토 화분에 줄 거라고 결심이 확고합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저도 어렸을 적,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답니다.

마당에 빗물 받는 항아리를 두고 그 물을 채소밭에도 주고, 청소할 때도 쓰고...

한번 쓴 물도 걸레 빨 때 재활용하거나 채소밭에 주는 등, 물을 결코 물쓰듯 하지 않으시고 소중히 아끼셨지요.

호주에서 홈스테이 생활했을 때도, 그 번듯한 2층 집에서 사는 가족이 샤워할 때도 맨날 퀵 샤워를 하고(덕분에 덩달아 저도 '3분 샤워족'으로 거듭나게 되었죠), 샤워실 안에 양동이를 두고 샤워할 때 흘린 물을 받아서 정원에 주는 걸 보며 많은 걸 느꼈던 기억도 떠올랐고요.

 

빌딩을 높이 세우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땅 속을 마구잡이로 팔 때마다 물이 얼마나 오염되고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몫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에 대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환경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떻게 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할지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도 좋았고요.

사실 물 함부로 낭비하지 마라, 아껴써라 등 잔소리의 효과는 순간적인데(혹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지요-_-;)

이렇게 원리를 알게 되고, 우리의 작은 실천이 세상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게 되면

아이들은 누구보다 훌륭한 실천가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머리로만 알고 자기변명에 능한 어른도... 덩달아 지행일치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의 <톡톡 빗물퀴즈>를 통해서 읽은 내용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시간까지 알찼던 시간!

이 책이 와이즈만 환경과학 그림책 시리즈 5권이네요, 앞의 것들도 꼭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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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마음 - 감정을 조절하여 시련을 이겨내는 자기 극복의 기술
알렉스 리커만 지음, 김성훈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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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 않는 마음. '이기는 마음'이라는 표현보다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이 '지지 않는 마음'일까? 지지 않는 마음이란 '역경으로부터 빨리 회복하고, 우울이나 불안으로 무너지는 일 없이 차분하게, 심지어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역경에 맞서는(35쪽)' 마음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장애물을 만나고, 결코 원치 않았던 실패와 좌절의 순간들을 경험한다. '지지 않는 마음'은 이 장애물과 실패를 인생의 방해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이라 여기며 헤쳐나가게 한다. '지지 않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 어떠한 장애물을 만나도 그것으로부터 일종의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다(36쪽)'는 것을, 이 책에서는 풍부한 사례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이 몰고 온 괴로움만큼은 다스릴 수 있다...(중략)... 절망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지속하기로 마음먹는 한, 어떤 형태로든 승리는 가능하다.(5쪽)"

  만약 단순히 이 명제만 읽는다면 우리 마음 속에 퍼질 파장은 아마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확신조로 무장(?)한 자기 계발서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니까. 하지만 저자가 삶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함께 고민하고, 길을 찾으려고 애쓴 흔적들을, 그들의 진짜 삶에서 건져올린 지혜와 깨달음을 전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울림이 결코 작지 않다. '의사란 환자의 건강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행복을 함께 돌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흔치 않은) 의사인 저자는, 지난 25년 동안 삶을 위협하는 여러 문제들과 맞서 싸운 수천 명의 환자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이 고통을 이겨내고 역경을 극복하도록 끊임없이 북돋아왔다고 한다. 실직, 비만, 약물중독, 인간관계의 어려움, 만성통증, 은퇴, 상실 등... 환자들이 이런 삶의 고통들을 견디고 마침내 극복해낼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었나에 대한 이야기가 담백하게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환자들의 문제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아니었던 것이 좋았다. '환자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내가 모두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그런 지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은 확신한다(책날개에서 인용)'는 태도는, 그의 정신 수양의 등급(!)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힘을 뺀 어조로 자신이 겪었던 장애물, 실수와 후회, 그로 인해 얻은 깨달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준다. 1년 반 동안 이어왔던 첫사랑과 인연이 끊어지자 우울증에 빠져서 의사면허 시험에 낙제한 이야기(물론 피나는 노력 끝에 1년 후엔 훌륭하게 통과했지만)를 통해서는 '우리에겐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바꿀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타인을 기쁘게 하느라 진이 빠진 사람들을 위해서 내놓은 처방전에는, 헤어진 후에도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전' 여자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자신의 일화가 등장한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좋은 사람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거절을 연습하고, '실망해야 할 땐 실망시켜라(무척 맘에 드는 표현이다)'는 조언을 해 준다.

  특히 기억에 남는, 저자 자신을 재료(?)로 삼은 이야기 중 하나가 '추상화의 비극'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다름 사람을 인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역할이나 그 사람에게 붙은 꼬리표로 바라보는 성향이 있다(242쪽)'는 것을 '추상화하려는 태도'라 한단다. 저자는 아이와 산책을 갔다가 돈을 구걸하는 여성을 못 본 척하고 지나쳤을 때 '그녀의 요청을 거절해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를 무시했기 때문에 밀려든 후회(241쪽)'에 대해 고백한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자기를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로 여긴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후회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 학교 탈의실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 젖가슴이 자라나 있던 한 사내아이를 놀려대던 친구들을 보며 방관자로 남았던 기억이다. 그는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헸다. 친구들의 악의적인 관심이 자신에게로 쏠릴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도 내 기억의 몇 장면을 떠올렸다. 누군가를 별 생각없이 '추상화'시켰던 나 자신을 반성했고, 인간이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불행한 성향이라고 '추상화'당했던 기억을 따뜻하게 위로받기도 했다.

 

  단숨에 읽기보다는 오래오래 곁에 두고 마음의 주치의로 삼고 싶은 책. 책장을 넘기면서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에 밑줄을 긋다보니, 어느새 책이 알록달록 화려해졌다.^^ 방금 전에 초록색 색연필로 밑줄을 그은 문장은 이것이다. 리처드 바크가 <환상>이라는 책에서 말했던 문장을 재인용한 것이다.

  "한계를 얘기하다 보면, 결국 그 한계가 자신의 것으로 굳어진다."(122쪽)

그렇다. 미리 마음의 한계를 정해서 스스로를 옭아매지 말 것. 마치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온힘을 다해 강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꾸어 가는 거다. 그렇게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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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 2 - The Brilliant Thinking 브릴리언트 시리즈 2
조병학.이소영 지음 / 인사이트앤뷰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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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창조성의 시대라고 하고, 누구나 자기 안의 창조성을 개발하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말하듯이, 놀랍고도 창조적인 생각은 어느날 갑자기 짠!하고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빛나는 생각’, 창조성을 끌어낼 것인가? ‘인류의 역사에 진보와 혁신을 만들어낸 놀라운 인물들은 생각의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9쪽)고 이 책은 말한다.

 

감각, 이성, 감성, 언어와 이미지... 생각의 구조와 창조성의 본질에 대한 흥미로운 소주제들에 대한 탐색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 영역들을 잘 키운다고 해서 누군가가 창조적이 된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각각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이고 이를 통해 상승작용이 나타나야 창조성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 상승작용을 끌어내기 위해서 명령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이성과 감성, 즉 뇌인 것이다.

 

‘감각기관은 세계를 인지하는 창의 역할을 하지만 본질적으로 육체의 일부인 이유로 게으르다...(중략)... 하지만 뇌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 새로움 속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뇌는 알고 있다. 그러니 새로운 지식이나 새로운 미래를 뇌가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13쪽)

 

즉 단순화하면 나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명령하는 주체가 육체가 될 것이냐 뇌가 될 것이냐의 문제이다. 육체가 주체가 되면 이성과 감성에 공급할 자극을 감각기관이 만들지 않아서, 뇌는 새로운 자극에 굶주리게 되고 점점 힘을 잃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악순환의 고리가 되어 감각조차 둔해져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기력한 뇌, 과거의 관성대로 살아가는 뇌가 아닌 예리한 이성과 섬세한 감성을 가진 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도 나왔듯,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뇌의 ‘밥’인 새로운 자극을 계속 주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뇌가 긴장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냥 보이는 대로 보지 말고 봐야 할 것을 자세히 보고, 들리는 대로 듣지 말고 들어야 할 것을 주의 깊게 듣고’(14쪽), 그래야만 ‘예민한 감각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뇌가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221쪽)인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1년쯤 외국에 있다가 우리나라로 돌아왔을 때가 문득 기억난다. 늘 보던 동네의 풍경도,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받아들였던 생활의 방식도 갑자기 너무나 새로운 눈으로 보였던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새삼스럽게 감사를 느끼기도 하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이렇게 바뀌면 좋지 않을까’하고 궁리도 해 보고... 아무튼, 그 이후로 일상이 지루해지거나,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내 뇌가 새로움에서 느껴지는 ‘행복’을 갈구한다고 느낄 때쯤이면 나는 ‘외국인 놀이’를 한다.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디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인 것처럼 동네를 산책해보고, 이곳저곳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놀이의 과학적 원리(?)를 멋지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소득의 하나인 듯.^^;

 

이 책에는 육체가 아닌 뇌가 삶의 주도권을 잡도록 노력한 사람들, 그럼으로써 자신의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하여 인류에게 이바지한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손이 조각할 대상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25쪽) 석고로 형을 뜨기 전에 자신이 조각하고자 하는 대상을 수도 없이 그렸던 오귀스트 로댕, ‘편한 자세에서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으므로’(28쪽) 뾰족하게 간 연필로 서서 글을 썼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확대된 꽃 속에 숨겨진 세계를 우리 눈앞에 선명하게 보여준 조지아 오키프... 그들의 창조성의 비밀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뇌의 본능에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나는 내 뇌를 어떻게 사용하고 진화시킬 것인가를 진지하게, 즐겁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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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의 소설 속 인생 - 치열하게 살고, 장렬하게 죽은 명작 속의 인생들
서지문 지음 / 이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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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 것일까? 작가가 창조한 누군가의 인생, 그 촘촘한 씨줄과 날줄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마음속에 길어 올리는 것들은 무엇일까.

 

영국의 18~20세기는 오늘날 서구를 만든 근대화의 과정인 동시에, 그 근대화의 부작용에 대응하는 기나긴 몸부림의 시기였다. 그 시기 영국에서 태어난 20편의 소설들이 우리에게 주는 다채로운 의미들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강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위대한 유산>, <1984>같이 친근한 제목들도 눈에 띄고, <클러리사 할로>, <톰 존스>, <트리스트럼 샌디>, <허영의 시장>같이 생소한 소설들도 많다. 예전에 읽어본 소설들은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하고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아직 접해보지 못한 소설들은 든든한 안내자 덕분에 읽어보고 싶어진다.

 

예전에 <더버빌가의 테스>를 읽었을 때, 나는 결혼해서 첫날밤에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버림을 받는 테스가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기만 했다(하긴 그땐 고등학생이었던가). 그러나 미혼모는 모조리 타락한 여자였던 19세기 영국에서, 하디는 테스의 이야기에 순결한 여인이라는 부제를 달았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다고 한다. 또한 미혼모의 몸인 테스가 사생아에게 세례를 행하는 모습에서 여신과 같은 기품과 위엄이 넘쳤다는 묘사는 교회의 권위에 대한 발칙한 도전이라는 맹비난을 받아야 했다. 사회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윤리와 도덕을 파괴하는 음란한 작가라는 비난에 시달리다 못해 하디는 소설 쓰기를 그만두기까지 했다니... 한 시대의 소설을 올곧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 시대적 배경,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시대마다 동시대인들의 가장 절실한 관심사를 다루면서 인간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내면을 풍부하게 했’(62)던 소설에서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즐거움을 맛보고, 또 공감과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19세의 메리 셸리는 자신에게 닥친 공포와 비애를 프랑켄슈타인의 흉측한 괴물에게 투여하며 불행한 삶을 견뎌낸다. 요크셔 지방 황무지의 목사관에서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살았던 브론테 자매들은, 제인 에어와 히스클리프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막막한 삶을 승화시킨다. 여성의 고등 교육과 사회 진출이 봉쇄되어 있던 사회에서 독학으로 여러 언어와 학문을 공부했던 조지 엘리엇은, 남다른 지식욕과 감수성을 가진 소녀 매기가 세상의 오해와 박해 속에서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게 한다. 우리의 삶은 한 번 뿐이지만, 이런 훌륭한 문학작품들 덕분에 우리는 다른 시대, 다른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냈던 삶들과 이렇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삶이 나에게 울림을 줄 때마다 한 뼘씩 자란다.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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