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 - 통섭의 책 읽기 경계를 허무는 도서관
안정희 지음 / 알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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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도, 시간을 죽이는 도구도 아니다.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려면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그래서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책이 있어야 한다.'(218쪽)

 

도서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따뜻해지는 곳.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곳 중의 하나. 도서관과 책 읽기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 일상의 일부인 우리동네 도서관,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을 잡고 처음 가봤던 도서관, 여행 중에 만났던 여러 도서관들이 떠오른다. 모두 나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풍경들. 이 책 덕분에 그 풍경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북큐레이터답게, 이야기를 펼쳐가면서 그 주제에 맞는 적절한 책들을 친근한 어조로 찬찬히 소개해준다. 또 '통섭의 책 읽기'를 권유하면서 책의 각 주제별 컬렉션에 관해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어떤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엮는 것을 '컬렉션'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컬렉션들의 예가 무척 흥미진진하다. 도서관을 주제로 한 컬렉션, 괴물 이야기를 주제로 한 컬렉션, 탐정추리소설 컬렉션, 모든 세대를 위한 그림책 컬렉션 등, 각 컬렉션마다 굴비(?) 엮듯 여러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책들이 다채로워서 무엇보다도 좋다. 대충 셈해 보니, 읽어본 책들이 40%, 아직 만나보지 못한 책들이 60% 정도 되는 것 같다. <미스터 핍>, <기억 전달자>, <세계 도서관 기행>,<도서관 산책자>, <도도의 노래>, <체르노빌의 봄> 등 내게 특별했던 책들이 여기서 소개되니까 반갑고 다시 그 책들을 소환(?)해보게 되니까 좋고, <나 홀로 볼링>이나 <머니볼>처럼 제목은 눈에 익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던 책들은 덕분에 다음에 읽어보게 될 것 같아서 좋고(도서관에서 당장 빌려왔다), <도서관을 구한 사서>나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첼로, 노래하는 나무>처럼 아예 존재 자체를 몰랐던 책들을 처음 만나게 되어 기쁘다.

 

'만나고 싶어'하고 마음을 두드리는 책이 있으면 눈이 보일 때(^^:) 빛의 속도로 실행에 옮기자는 좌우명(?)으로, 이 책을 덮고 당장 도서관에 달려갔다. 어린이 자료실 구석에서 <첼로, 노래하는 나무>를 겨우 찾아냈을 때, 마침 한 여자아이와 거의 동시에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숲속을 그린 초록빛 책 표지가 예쁘다). 나는 웃으며 그 아이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아이가 저쪽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슬쩍 본다. 참 보기 좋다. 저자의 말대로, 이것이 도서관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집에서 책을 읽는 것과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은 다르다...(중략)... 열린 공간에서 책을 선택해 읽는 순간 시야가 달라진다. 나 중심에서 더 넓은 사회로 정신과 몸이 모두 확장되는 것이다.'(56~57쪽)

 

전자책이 등장하고, 종이책의 몰락을 성급하게 예언하는 이들도 있다. 영상의 홍수 시대, 책을 보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인간과 함께해 온 책은 앞으로도 굳건히 그럴 것이다. 때론 인간이 방황하고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어리석은 짓들도 자주 일삼지만, 그래도 인간이 책과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면 참 경이로울 때가 있다. 많이 부족한 존재인 인간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문명의 태동기때부터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도서관처럼 지극히 소수의권력자들만 도서관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었던 시기가 아닌 오늘날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에도 무한히 감사하다. 누구에게나 도서관 문이 활짝 열려있고, 누구나 책과 만날 수 있는 이 축복을 매일같이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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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공모자들 - 일본 아베 정권과 언론의 협작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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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뉴스에서 한 일본 남성이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반대하여 분신 자살을 기도한 소식을 접했다. 아베 신조 정권의 집단 자위권 행사 방침에 반대하는 1인 시위 후 치솟은 붉은 불길... 마음이 착찹했다. 최근 아베 총리의 주도로 일본은 극우 보수화되어가고 있고, 보수정권과 언론은 말 그대로 '한통속'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현실이 겹쳐져 보였다.  

 

'보수 정권의 과오를 비판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의 저자 마고사키 우케루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서 일본과 한국은 얼마나 성숙한 나라인지'를 질문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전제는 언론의 자유이고, 이것은 일본과 한국은 언론의 자유, 보도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해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어 '국경없는 기자단'이 발표한 세계 보도의 자유 랭킹에서 '보도의 자유' 국가 순위는 한국 57위, 일본 59위라고 한다(사실 기대도 안 했다.-_-;).

'일본 언론의 보도는 "무엇이 사실인가"를 전할 의도가 없다. "무엇이 아베 총리가 좋아하는 것일까" 또는 무엇을 좋아하지 않을까"가 보도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많은 일본 국민들이 그런 언론 보도를 신뢰하고 있다.'(12쪽)

사실을 전할 의무를 저버리고 정책의 감시자에서 '공모자'가 된 언론, 그리고 그런 언론 보도를 그냥 신뢰하는 국민들. 이것도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아니, 다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비슷하다.

 

일본 언론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한 이 책 곳곳에 저자의 날카롭고 통찰력있는 시각, 외교관으로서 오래 쌓아온 실무 경험을 토대로 내린 진단과 처방이 빛을 발한다. 이런 외교/안보 전문가가 이렇게 공식적으로 거침없이 비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까. 정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히면서, 아마 적지 않은 위험 부담과 여러 불이익들을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저자는 최근 자민당 국회의원에게 기피 인물로 지목당하고,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아 NHK에 출연시키지 못하도록 정부가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모든 것을 무릅쓰면서 이 책을 쓴 이유, 저자는 우리가 평소 접하고 있는 뉴스에 대해 두 가지 '의심하는' 힘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먼저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대형 미디어의 보도를 의심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대형 언론매체들이 모두 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에 초점을 맞추어 교묘하게 파놓은 함정을 저자는 감지한다. 대형 미디어들이 "달리 경기를 호전시킬 대안이 없다면,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문제는 '아베노믹스'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안들은 참의원선거에서 구석으로 밀려나 쟁점으로 부각되지도 못했다.'(16쪽)

이처럼 큰 선거를 앞두고 어째서 아베노믹스가 옳으냐 그르냐는 논란만 부각되고, 원전 문제는 시빗거리조차 되지 않는가. 저자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대형 언론매체들이 그것을 쟁점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한마디로 그들이 짜준 판에서만 놀아야 한다는 이야긴데, 이것도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정부라는 존재'를 의심하는 힘을 기르라는 것이다. 저자는 1960년대 처음 외교관으로 부임했던 소련에서의 경험을 들려준다. 언론과 보도의 자유가 없었던 소련에서 사람들은 정보가 발표하는 정보를 전혀 믿지 않았다. 당시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프라우다(진실)가 없다는 야유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 근무한 이란에서는 반체제파 신문들이 정부에 의해 차례차례 폐간당하며, 정부의 어용신문만 살아남는 상황도 지켜보았다고 한다.

정부에게 정보란 통치의 기구라고, 이것은 공산주의나 이슬람권 국가에서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고 하지만 정부는 정보를 끊임없이 통제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중-일 및 한-일 영토분쟁, 오키나와 독립에 대한 아베 정부의 주요 정책들에 대해 저자가 낱낱이 밝혀낸 일본 언론의 '공모'를 읽으면서, 자꾸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우리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서문에서 저자가 이야기했던 '세계 보도의 자유 랭킹'을 나도 인터넷으로 검색해본다. 2006년 한국의 순위는 31위였는데 8년이 지난 지금 26위 추락했다. 그 추락의 시간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눈앞의 정보를 '의심하는 것'부터가 첫걸음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지금이야말로 숱한 일들에 '성난 젊은이들'이 되어 일어날 때라고 강조한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가치관이나 관심을 공유하는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사귀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나날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생활을 하노라면 일단 마음은 편하다. 누군가와 다투고 상처받는 일 없이, 지금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당연하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우리보다 앞서 삶을 살다 간 선인들이 만들어준 환경 덕택이다. 만약 우리가 사회나 정치에 무관심하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편안한 환경은 모래알처럼 우리 손아귀에서 모두 빠져나가버릴 것이다.'(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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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늦복 터졌다 - 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가 함께 쓴 사람 사는 이야기
이은영 지음, 김용택 엮음, 박덕성 구술 / 푸른숲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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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드셨고, 이제는 몸이 아프셔서 집에 가지 못하고 병원에 계시는 한 어머니. 무료하게 계시는 어머니가 바느질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조각 천과 반짇고리를 내미는 며느리. 그리고 어머니의 손끝에서 하나씩 하나씩 탄생하는 조각보, 찻잔 받침, 홑이불, 베갯잇... 정성이 가득 담긴 섬세한 문양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참, 따뜻한 이야기다.

 

'바느질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놀랍게도 어머니 눈빛이 살아났다는 것을 알았다. 병원에서 집 생각 말고, 자식들 생각 말고, 아프다는 생각 말고, 죽기를 기다리는 거 말고, 나만 기다리는 거 말고, 다른 생각과 고민을 하고 할 일이 생겨서 어머니의 모든 신경이 살아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낸 내가 말할 수 없이 기특했다.'(11~12쪽)

 

그렇게 바느질을 시작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 며느리는 이번에는 어머니께 글쓰기를 하자고 공책을 내민다. 처음에 어머니는 못한다고, 바느질만 하자고 하신다. 그날 며느리는 그냥 돌아온다. 다음에 가서는 제일 쓰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말씀드리지만, 없다면서 안 쓰신다고 하신다. 그러자 음에는 자기가 올 때까지 '살면서 제일 좋았을 때'가 언제였는지 생각해 놓으라고 하는 며느리(은근과 끈기의 힘!^^;).

다음에 며느리가 갔을 때, 어머니는 아들이 선생 되었던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하신다. 며느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받아쓰고, 어머니는 그것을 다시 공책에 옮겨 적으신다. 한 문장을 쓰시는 데 30분도 더 걸렸지만, 손에 힘이 없어 글씨를 쓰는 손이 덜덜 떨렸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자 한 자 힘주어 당신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꺼내놓으며 얼마나 즐거우셨을까를 생각해본다. 책에 실린 할머니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정겹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실 쉽지 않은 사이지만(그리고 처음부터 이렇게 다정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힘겨웠던 시간을 슬기롭게 건너온 둘이, 이렇게 마주앉아 도란도란 정겹게 이야기 나누는 것이 보기 좋다.

 

'어머니는 몸이 아프면서 잃었던 자존감을, 바느질과 글쓰기를 하면서 회복하고 계셨다. 놀라웠다.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어머니께 잘해야 한다는 무거운 부채감에서 벗어났다.'(15쪽)

 

그동안 남편과 다른 사람들의 눈 때문에,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에 어머니께 잘하던 때도 많았다고 돌아보는 며느리는, 이제 자신의 마음이 어머니께 새롭게 가 닿는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참 예쁜 며느리다. 여든일곱에 한글을 깨치고, 침침한 눈으로 이불에 꽃잎을 흩뿌려놓으시는 어머니를 보며 이 나이에 내가 뭘 못하겠는가를 생각한다는 그녀의 생각을 따라, 나도 '이 나이에 내가 뭘 못하겠는가'하고 중얼거려본다. 글을 깨쳐서 읽어냈다는 성취감에 당신이 아픈 것도 잊어버린 채, 희열에 찬 모습으로 또박또박 당신 인생을 이야기하시는 걸 보고 며느리는 부끄러워졌다고 했다. 나도 내가 부끄러워진다. 서른을 넘기면서 몸이 이십 대 때와 다르다고 투덜거리고, 그때를 그리워하고, 마치 인생 다 산 것처럼 굴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어머니의 고운 손바느질 작품들처럼, 두 분의 다정한 시간이 오래오래 예쁘게 이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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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같은 목소리
이자벨라 트루머 지음, 이지혜 옮김 / 여운(주)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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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아버지의 시선이 내게 머물 때면, '이 여자가 누구지?'라고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아버지가 느낄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애정을 표현하려고 한다.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가 닿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와 가족들로부터 자신이 사랑받고 보호받고 있음을 그가 여전히 느낄 수 있다고. 아버지가 더 이상 의식할 수 없게 된 이 세계에서 느끼고 있을 두려움을 내가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고."(서문 중에서, 9쪽)

 

2006년 봄, '나'는 나의 여든 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 친척들과 친구들, 이웃들과 함께 있다. 모두들 나를 향해 웃음 짓고 잔을 들어 올려 건배를 나누지만 , 나는 이 자리가 불편하기만 하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고, 아내와 딸이 누구를 초대했는지도 도통 모르겠다. 사람들 앞에서 뭔가 연설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려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딸이 미리 준비한 쪽지를 건네받고서도 두 번이나 잘 못 읽고서야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글을 겨우 읽는다. 춤추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 틈에서 모든 게 시끄럽고 부담스럽고 피곤하기만 하다. 너무 더워 셔츠를 벗었더니, 아내가 '맙소사'하며 달려들어 셔츠를 도로 입힌다.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는데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목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그림자 같은 목소리'들.

참 생각할수록 잔인한 병이다. 육체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머릿속의 기억은 서서히 지워진다는 것. 가족들, 주위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차차 인내심을 잃어 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는 것. 사실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저릿해진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느 날 음성만 남고 '의미'가 사라져 '그림자 같은 목소리'가 된다는 것이.

2006년 봄에서 2014년 봄까지, 시간은 무심하게 자꾸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차 변해간다. 시종일관 '나'의 관점에서 일상의 순간들이 담담한 어조로 그려진다. 슬픔과 두려움, 때때로 찾아오는 옅은 희망과 이어지는 좌절,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무력감과 고독의 세계.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겪는 이와 그 가족에 대한 책은 몇 차례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지은이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이 좀 더 아프게 와 닿는 이유는, 첫째 '나'와 아내 힐데와의 관계의 현실성 때문이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언어능력을 상실해서 의사소통이 힘겨워지는 상황을 '나'의 무너지고 있는 언어로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번역자가 꽤 고민했을 것 같다).

힐데는 '나'와 열두 살(혹은 열세 살) 차이가 난다.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들과 놀아난 적은 없었지만,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검은 머리카락의 그녀에 대한 아내의 끝없는 질투 때문에 이혼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항상 딸을 원했던 나의 딸에 대한 애착은 또 다른 질투의 불씨가 되기도 했고, '나'와 힐데의 결혼생활을 봐 와서 결혼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딸은 독신으로 살고 있다.

힐데는 신경질적인 어조로 내가 어딘가에 둔 우편물 열쇠의 행방을 찾고, 손님이 오는 날이면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다그치곤 한다. 뭘 물어보고 싶어도 내가 아는 것이 당연하다는 둣한 눈길을 준다. "그건 방금 말했잖아요!"라는 짜증 섞인 말을 듣게 될까 봐 '나'는 종종 입을 다무는 쪽을 택하고, 힐데는 대화가 부쩍 뜸해졌다며 투덜거린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처음부터 힐데에겐 불리한 관점이다. 모든 것이 '나'의 시각에서 이해되고 서술되고 있으므로. 열두 살 연상이지만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고 잔병치레도 없이 건강했고 역장으로 승승장구했던 자랑스러운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 현실에서, 그녀가 겪었을 고통에 대해 아무도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애지중지 가꾸던 꽃밭에 남편이 눈을 퍼내어 쏟아붓는 것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슈퍼마켓에서 토마토소스를 가져오겠다던 남편이 공황상태에 빠져 잡지꽂이와 함께 쓰러지는 상황이 일상이 되버리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아무튼, 힐데는 내가 이제껏 왔던 치매 환자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한없는 배려심과 자상함과 따뜻함 대신, 짜증과 투덜거림과 다그침, 답답해하는 모습. 하지만 한편, 이런 모습이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오랜시간 살을 맞대고 살아온 배우자라 하더라도 그와 함께했던 평범한 일상생활이 조금씩 무너진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점점 상태가 심해지고 기복이 심한 '나'의 상태를 이해하면서 함께 생활해간다는 일, 슬픔을 극복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끊임없이 적응해야하는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

8년의 시간동안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그 중 가장 여운이 오래 남는 것은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날 일어났던 작은 에피소드다. '나'는 손주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인 기념주화가 든 선물상자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고 힐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다. 곰곰이 생각했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던 '나'는 망연자실한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손녀 레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레나의 인형을 위한 토요일용 드레스를 사줘야겠다고 지갑을 찾던 중, 돌연 서랍 속에서 선물상자가 나타난다. 레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내 볼에 뽀뽀한다.

"할아버지가 선물을 찾았어요!" 아이는 거실을 향해 외치며 인형을 들고 문 쪽으로 깡충깡충 뛰어갔다. "그것 보세요! 할아버지도 알고 있었다니까요!"

아이의 뿌듯해하는 목소리가 나를 기쁘게 했다. 꼬마 레나는 여전히 나를 믿고 있다. (80쪽)

누군가가 나를 믿고 있다, 여전히.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실어증, 공황장애까지 겪으며 점차 세상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나'는,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줄 선물상자를 찾을 줄 '알고 있었다'는 아이의 말에서, 그 단단한 믿음에서 기쁨과 위안을 얻는다. 그것이 '나'의 무너져가는 삶을 버티게 해 줄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알츠하이머가 비록 그의 많은 것을 앗아갔을 지라도, 지은이 이자벨라 트루머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릴 적 내게 세상을 가르쳐 준 사람, 내가 영원히 사랑하고 존중하고 존경할 사람인 아버지'(9쪽)라고.

'그림자 같은 목소리'들 틈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변함없이 믿어준다는 것은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가. 당신은 우리에게 변함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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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우아한 거짓말의 세계 - 광고의 눈으로 세상 읽기
한화철 지음 / 문이당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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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이 뭐라고 생각하나?"

짧지 않은 침묵이 흐렀고, 교수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 말씀으로 마무리 지었다.

"당연시되는 것에 대한 회의(懷疑)." (76쪽)

좋은 사회학자가 되고 싶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광고와의 만남으로 인해 '광고쟁이'가 되었다는 저자. 저자의 학부시절, 교수님과의 첫 술자리에서 '인생의 지표가 된 날카로운 기억'이 된 한 장면이다. 세상에 널려있는 '상식적',' 정상적'이라는 것, 전통적인 권위의 옷을 입고 당연시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 것. 그렇다. 사회학도 광고도, 우리의 일상에 대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새로운 발견이고 새로운 시선이라는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사회학을 진지하게 품었던, 한 광고인의 사유의 조각들이 책장마다 반짝인다. 그 반짝임은 치열하다. 그 중 밀턴 글레이저와 짐멜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깊이 박힌다.

​좋은 사회학자를 꿈꾸던 저자가 '어쩌다' 광고 회사 직원이 되면서 치른 작은 이데올로기 전쟁. 그 속에서, 디자이너와 시민, 직업과 사회에 대한 밀턴 글레이저의 진정성 있는 고민은 저자에게 큰 영감과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밀턴 글레이저의 삶을 알아가면서, 저자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광고인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과 시민이라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구별하지 않고,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자신의 일상에 관심을 기울인 밀턴 글레이저는 저자에게 일깨워 주었다. '광고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구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그 물음 자체가 심각한 오류라는 사실을. 광고 자체가 아니라 광고가 무엇을 만나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그는 거대 담론이나 철학이 아니라 생활 속 실천과 삶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치 나에게 "광고인이 투사가 될 필요는 없다네. 좋은 시민으로서 인간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네!"라고 말하며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84쪽)

저자는 20대 때 입만 열면 자본의 한계에 대해, 계급에 대해, 사적 소유와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불과 몇 개월 만에 구매율에 대해, 소비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현실이 어떠했을까. 변화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신의 20대를 배신하는 것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악몽을 꾸기도 했다는 얘기가 이해가 간다. 그 경계에서 힘겹게 줄타기를 할 때 큰 위로가 되었다는 짐멜의 '이방인'의 개념... 나 또한 위로받았던 시간이었다.

"오늘 와서 내일 머무는 방랑자라는 짐멜의 표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나의 불편한 시선에 큰 위로가 되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규정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었다. '이래도 될까?'라는 내면의 질문에 '괜찮다, 괜찮다'라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중략) 오늘 와서 내일 머무는 방랑자, 이방인에게는 자기 논리, 자기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머무는 곳의 논리와 이유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방인이기 때문에 누리는 자유는 사라진다. 자유는 자기 논리와 이유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이다."(203~4쪽)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개념을 빌어,'하나로서 다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광고인'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고 이야기한다. '광고인이 된 어설픈 사회학자'가 광고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이 목표가 제시해 주고 있다는 말이 무척 든든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라도, 목적지의 불빛이 분명히 빛나고 있으므로 그 배는 결코 좌초하지 않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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