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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우아한 거짓말의 세계 - 광고의 눈으로 세상 읽기
한화철 지음 / 문이당 / 2014년 6월
평점 :
"사회학이 뭐라고 생각하나?"
짧지 않은 침묵이 흐렀고, 교수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 말씀으로 마무리 지었다.
"당연시되는 것에 대한 회의(懷疑)." (76쪽)
좋은 사회학자가 되고 싶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광고와의 만남으로 인해 '광고쟁이'가 되었다는 저자. 저자의 학부시절, 교수님과의 첫 술자리에서 '인생의 지표가 된 날카로운 기억'이 된 한 장면이다. 세상에 널려있는 '상식적',' 정상적'이라는 것, 전통적인 권위의 옷을 입고 당연시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 것. 그렇다. 사회학도 광고도, 우리의 일상에 대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새로운 발견이고 새로운 시선이라는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사회학을 진지하게 품었던, 한 광고인의 사유의 조각들이 책장마다 반짝인다. 그 반짝임은 치열하다. 그 중 밀턴 글레이저와 짐멜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깊이 박힌다.
좋은 사회학자를 꿈꾸던 저자가 '어쩌다' 광고 회사 직원이 되면서 치른 작은 이데올로기 전쟁. 그 속에서, 디자이너와 시민, 직업과 사회에 대한 밀턴 글레이저의 진정성 있는 고민은 저자에게 큰 영감과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밀턴 글레이저의 삶을 알아가면서, 저자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광고인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과 시민이라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구별하지 않고,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자신의 일상에 관심을 기울인 밀턴 글레이저는 저자에게 일깨워 주었다. '광고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구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그 물음 자체가 심각한 오류라는 사실을. 광고 자체가 아니라 광고가 무엇을 만나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그는 거대 담론이나 철학이 아니라 생활 속 실천과 삶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치 나에게 "광고인이 투사가 될 필요는 없다네. 좋은 시민으로서 인간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네!"라고 말하며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84쪽)
저자는 20대 때 입만 열면 자본의 한계에 대해, 계급에 대해, 사적 소유와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불과 몇 개월 만에 구매율에 대해, 소비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현실이 어떠했을까. 변화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신의 20대를 배신하는 것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악몽을 꾸기도 했다는 얘기가 이해가 간다. 그 경계에서 힘겹게 줄타기를 할 때 큰 위로가 되었다는 짐멜의 '이방인'의 개념... 나 또한 위로받았던 시간이었다.
"오늘 와서 내일 머무는 방랑자라는 짐멜의 표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나의 불편한 시선에 큰 위로가 되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규정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었다. '이래도 될까?'라는 내면의 질문에 '괜찮다, 괜찮다'라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중략) 오늘 와서 내일 머무는 방랑자, 이방인에게는 자기 논리, 자기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머무는 곳의 논리와 이유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방인이기 때문에 누리는 자유는 사라진다. 자유는 자기 논리와 이유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이다."(203~4쪽)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개념을 빌어,'하나로서 다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광고인'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고 이야기한다. '광고인이 된 어설픈 사회학자'가 광고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이 목표가 제시해 주고 있다는 말이 무척 든든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라도, 목적지의 불빛이 분명히 빛나고 있으므로 그 배는 결코 좌초하지 않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