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공모자들 - 일본 아베 정권과 언론의 협작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어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뉴스에서 한 일본 남성이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반대하여 분신 자살을 기도한 소식을 접했다. 아베 신조 정권의 집단 자위권 행사 방침에 반대하는 1인 시위 후 치솟은 붉은 불길... 마음이 착찹했다. 최근 아베 총리의 주도로 일본은 극우 보수화되어가고 있고, 보수정권과 언론은 말 그대로 '한통속'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현실이 겹쳐져 보였다.  

 

'보수 정권의 과오를 비판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의 저자 마고사키 우케루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서 일본과 한국은 얼마나 성숙한 나라인지'를 질문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전제는 언론의 자유이고, 이것은 일본과 한국은 언론의 자유, 보도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해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어 '국경없는 기자단'이 발표한 세계 보도의 자유 랭킹에서 '보도의 자유' 국가 순위는 한국 57위, 일본 59위라고 한다(사실 기대도 안 했다.-_-;).

'일본 언론의 보도는 "무엇이 사실인가"를 전할 의도가 없다. "무엇이 아베 총리가 좋아하는 것일까" 또는 무엇을 좋아하지 않을까"가 보도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많은 일본 국민들이 그런 언론 보도를 신뢰하고 있다.'(12쪽)

사실을 전할 의무를 저버리고 정책의 감시자에서 '공모자'가 된 언론, 그리고 그런 언론 보도를 그냥 신뢰하는 국민들. 이것도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아니, 다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비슷하다.

 

일본 언론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한 이 책 곳곳에 저자의 날카롭고 통찰력있는 시각, 외교관으로서 오래 쌓아온 실무 경험을 토대로 내린 진단과 처방이 빛을 발한다. 이런 외교/안보 전문가가 이렇게 공식적으로 거침없이 비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까. 정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히면서, 아마 적지 않은 위험 부담과 여러 불이익들을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저자는 최근 자민당 국회의원에게 기피 인물로 지목당하고,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아 NHK에 출연시키지 못하도록 정부가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모든 것을 무릅쓰면서 이 책을 쓴 이유, 저자는 우리가 평소 접하고 있는 뉴스에 대해 두 가지 '의심하는' 힘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먼저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대형 미디어의 보도를 의심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대형 언론매체들이 모두 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에 초점을 맞추어 교묘하게 파놓은 함정을 저자는 감지한다. 대형 미디어들이 "달리 경기를 호전시킬 대안이 없다면,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문제는 '아베노믹스'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안들은 참의원선거에서 구석으로 밀려나 쟁점으로 부각되지도 못했다.'(16쪽)

이처럼 큰 선거를 앞두고 어째서 아베노믹스가 옳으냐 그르냐는 논란만 부각되고, 원전 문제는 시빗거리조차 되지 않는가. 저자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대형 언론매체들이 그것을 쟁점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한마디로 그들이 짜준 판에서만 놀아야 한다는 이야긴데, 이것도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정부라는 존재'를 의심하는 힘을 기르라는 것이다. 저자는 1960년대 처음 외교관으로 부임했던 소련에서의 경험을 들려준다. 언론과 보도의 자유가 없었던 소련에서 사람들은 정보가 발표하는 정보를 전혀 믿지 않았다. 당시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프라우다(진실)가 없다는 야유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 근무한 이란에서는 반체제파 신문들이 정부에 의해 차례차례 폐간당하며, 정부의 어용신문만 살아남는 상황도 지켜보았다고 한다.

정부에게 정보란 통치의 기구라고, 이것은 공산주의나 이슬람권 국가에서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고 하지만 정부는 정보를 끊임없이 통제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중-일 및 한-일 영토분쟁, 오키나와 독립에 대한 아베 정부의 주요 정책들에 대해 저자가 낱낱이 밝혀낸 일본 언론의 '공모'를 읽으면서, 자꾸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우리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서문에서 저자가 이야기했던 '세계 보도의 자유 랭킹'을 나도 인터넷으로 검색해본다. 2006년 한국의 순위는 31위였는데 8년이 지난 지금 26위 추락했다. 그 추락의 시간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눈앞의 정보를 '의심하는 것'부터가 첫걸음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지금이야말로 숱한 일들에 '성난 젊은이들'이 되어 일어날 때라고 강조한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가치관이나 관심을 공유하는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사귀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나날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생활을 하노라면 일단 마음은 편하다. 누군가와 다투고 상처받는 일 없이, 지금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당연하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우리보다 앞서 삶을 살다 간 선인들이 만들어준 환경 덕택이다. 만약 우리가 사회나 정치에 무관심하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편안한 환경은 모래알처럼 우리 손아귀에서 모두 빠져나가버릴 것이다.'(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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