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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토닉 러브 - 지혜의 사랑과 교육의 토톨러지
조무남 지음 / 럭스미디어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합리적 이성의 바탕위에 쌓아올린 불멸의 진리체계, 플라토닉 러브
신과 인간사이에 이루어진 사랑을 뜻하는 필로소피아(지혜의 사랑)가 함축하고 있는 말이
플라토닉 러브이다. 스승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지혜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플라톤이 묘사 한 말이다.
지혜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신의 속성(지혜)을 나누어 가져야 하며 나눈다는것은 교육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철자 그대로를 해석한 정신적 사랑과 다른 차원의 말이다.
비합리적 이성에 대한 도전 / 안다는것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 당시는 자만심에 가득 찬 소피스트들이 안다는 말을 함부로 사용했고, 지혜가 있다고 소문난
정치인은 자기가 알고 있다는 지식이 참이 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앎의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반면 소크라테스는 앎의 의미를 스스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이렇게 인식론이 탄생하게되었다.
"안다"고 말하려면, 그는 먼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검증할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우리가 사용하는 '안다'고 말하는 것과 '모른다'고 말하는 인식의 기준이 되었다.
사랑은 무엇인가 / 사랑은 중간자의 논리이다.
플라톤<향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에로스의 속성으로서 '사랑'이 무엇인지 논의하고있다. 아가톤이 베푼 잔치에 소크라테스가
참석하여 사랑의 신 에로스에 대한 논쟁을 펼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에로스가 뜻하는 사랑은 중간자의 논리이다 - 귀족 포로스와 천민 페니아 사이에 탄생한 에로스는 아버지만큼 지혜롭지도
어머니처럼 무지하지도 않는 존재로 태어났다. 즉 "중간자"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다시말해 에로스는 "사랑의 신"이 아니라
"사랑 하는 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있다.
아폴론 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사랑도 같은 논리 위에 설명될수있을것이다. 에로스가 사랑한것이 포로스와 아프로디테의
세계였다면, 소크라테스가 사랑한 것은 아폴론의 이성세계였다고 비교할수있다.
사랑은 오로지 선한것을 나누는 일이고, 그것을 나누어 하나가 됨으로써 영원히 자기것으로 삼는 행위이다.
사랑은 아름다움을 향한 끝없는 등정이다.
사랑의 논리 디알렉티케(변증법)
더 높은 아름다움으로 나아가기위한 수단이 된것이 디알렉티케(변증법)이고, 소크라테스에 의해 체계적으로 발전하게된것이다. 당시 소피스트들의 말법은 수사학이었고, 그 수사학의 모순을 지적함으로서 참과 거짓을 구분해 내는것이다. 이는 사고의 질서를
바로잡아 주는 지적 치료의 과정이었다.
"합리주의"라는 거대한 서구문명의 출발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개짓을 하다" 아테나(미네르바)는 지혜의 신이다. 그 곁에 부엉이는 아테나 신을 상징한다.
부엉이의 날개 짓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합리적 이성이 눈을 뜨는 시기로 비유될 수 있다. 아마 소크라테스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지금도 앎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화와 역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소크라테스의 삶을 읽어보았다. 당시 정치, 사회, 인간 인류의 역사는 2천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인류의 속성은 너무나 동일하게 반복되는것 같다. 철학에 관한 전문지식을 가진 교수님이 써서 그런지 내용이 알차고 어려운 철학을 쉽게 해석하려고 애쓴 흔적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