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별의 유령들
리버스 솔로몬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떠도는 것에게는 떠나온 곳과 그리워하는 곳이 있다. 전자가 과거의 장소라면 후자는 미래의 장소이다. 여정이 세대를 이어 계속되는 경우에는 가본 적 없는 곳을 떠나 알지 못하는 곳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부유하는, 혹은 떠도는 존재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유령에게 도착해야 할 곳은 안식처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는 곳인가? 떠도는 별의 유령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제목의 '유령'은 무엇을 의마하는가?
봉건적 전제군주제와 견고한 계급, 성별. 빈부 차별의 요새, 여정의 끝을 바라기엔 모든 것이 알 수도 알아서도 안되는 규율과 폭력으로 가득한 우주선, 마틸다. 주인공 애스터는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머니는 죽은 지 오래, 아버지는 등장조차 않고, 무리의 여인들에게서 자랐다. 다른 아이들 또한 그러했듯이. 의료인 비슷한 지식으로 의무관 비슷한 노릇을 한다.

그나저나 세계관을 이해하기도 전에 냅다 발부터 자른다는 이 불친절한 전개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름다운 표지에 품은 작은 기대를 처음부터 말려, 아니 얼려 죽이려는 듯 작중 묘사되는 데크와 선내 생활, '경비원'들의 태도는 암울하고 또 절망적이기 짝이 없다. 그들의 폭력은 공기처럼 약자를 향한다. 그들의 권위는 단지 단발적인 시비에 그치지 않고 하층 데크 거주민의, 여성의, 어린아이, 노인, 어쩌면 '불순분자'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시작부터 이게 무슨 희망이란 말인가. 자고로 어딘가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갈 때, 이유가 무엇이든 새로운 세계를 이룩할 때는 이전보다 하나라도 나은 구석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포기하시라. 피부색도, 지식도, 인간의 존엄함을 말하는 신의 말씀까지 그 무엇도 하층민의 생존을 지켜주지 못한다. 출신, 계급, 힘과 연줄이 그 모든 자리를 채운다. 나은 것은 없다. 유토피아 내지는 협동? 질서? 꿈 깨라. 여기는 지구 ver.2다. 그것도 절망 버전이다.
이런 세계에서도 생명은 태어나고 사람은 살아간다. 멀리서 봐야 곱든지 말든지. 애스터도 그렇다. 사사건건 열받게 하는데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자매, 친구, 가족 이상의 어떤 존재, 지젤과 친구가 아닐까? 시오, 멜루신 아주머니와 비비안, 피비, '위대하신' 누구로부터 누구를 지키는 건지 너무 뻔해 신물이 다 나는 경비병들. 애스터에게 남겨진 것은, 죽은지 오래인 어머니 룬이 남겨준 일지. 수수께끼인지 신변잡기인지 종잡을 수 없는 메모들 뿐. 엄마는 왜 죽었을까. 일지를 해독해나갈 수록 하루가 멀다하고 불안해지는 선내 상황, 시시각각 달려드는 위협과 폭력, 간절한 만큼 위험천만한 희망. 애스터에게, 일지의 끝엔, 죽어가는 군주와 더욱 잔인하고 추악한 새 군주의 통치가 도래하는 날엔 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걸까. 삶인가, 죽음인가.

혼란의 1, 2, 3부를 지나 종장에 다다르면 그간의 불만이 일시에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분노하고, 비명을 지르는 이들. 저 깊은 물 아래에서 일렁이는 애스터의 분노, 웅크리고 터져나와 모든 것을 재로 돌려버리는, 그 자신은 여신의 창조라고 말하는 지젤의 분노, 신과 같은 군주와 그 권력이 흔들리는 순간 전복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하층 데크 거주민들의 분노. 작중 지배계급이 아닌 자들은 모두 분노해있다. 비명을 지른다. 비명은, 고함의 씨앗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절망의 기록으로 바스라지기 직전에 발굴된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는 독자를 달랠 생각도 없이 이야기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같은 상황을 비껴나가고 때론 휩쓸리며 종장을 향해 달려나간다. 열역학, 금속공학, 계통발생론, 우주항공학이라는 애스터의 생각을 빼다박은 소제목들과 함께. 독자는 아래 문장에서 터져나올 분노의 선언을 엿볼 수 있다.
"애스터가 소중히 여긴 것은 전부 식물관 안에 있었다 .이번에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도 그렇지만, 사람이 해낸 일을 파괴하는 것은 애스터가 쉽게 잊을 수 없는 모독이었다. 한 사람의 삶에서 남은 것은 전부 종이에, 일지로, 연감으로, 만든 물건으로 기록됐다. 그걸 없애는 건 사람의 역사를, 현재와 미래를 없애는 짓이었다."(p.467)

너무나도 선명한 은유로 가득한 작품이다. 불러오고자 하는 대상이 우리 사회여서 그렇지 . 유색인종이어서, 가난한 자라서, 저소득 노동자라서, 여성이어서, 성소수자여서, 힘이 세고 덩치가 크고 우수한 학력을 갖추지 못해 그것이 곧 부도덕함의 반증으로 불리는 이들이어서 그렇지. 괴롭다. 너무 잘 아는 고통, 너무 익숙한 멸시와 차별의 시선과 적대감이 선명하게 찌르고 누르고 조여온다. 괴롭다. 그 와중에 당연하지 않은 모성애와, 생명의 가치와 권력구조가 도덕적 정당성으로 위장될 때의 추악함까지 꼭꼭 씹어 삼키라며 들여다보는 작가의 집요함이 아주 잘 느껴진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으레 유능하고 아름다운 주인공 클리셰들과는 딴판으로 애스터는 그다지 아름답게 묘사되지도 않을 뿐더러 언어 발달이 늦었고 사회적 상호작용에 서툴거나 무심하며 특정 주제에 깊게 몰두하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애스터는 자폐인인가? 아쉽게도 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다. 정확히는 반복적으로 불편을 겪는 장면이나 이질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신경다양성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는다.
저자의 의도가 뭘까. 싶다가도 굳이 이유가 있어야 하냐는 물음이 고개를 든다. 불편을 겪을 수는 있는데, 뮤지컬 넘버처럼 대놓고 나의 삶을 사랑해! 내 이름은 애스터! 나는 자폐인! 이라고 콕 짚어 말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기실 부조리한 세계가 당연히 장애를 비난의 용어로 삼아야 할 이유도 없기는 하다. 받아들이세요.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울창한 나무를 보며 생명으로 가득한 땅에서, 바로 그 지구에서, 약속의 별에서 애스터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죽은 자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죽은 자와 함께 몸을 감싸는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야, 드디어, 독자는 이 작품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서사시다. 혹은 생명 기원의 신화이다. 약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판도를 뒤집고 혼돈을 지나 생명의 땅에 뿌리내리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사랑이 있어야만, 보살핌과 죽은 자를 쉬게 하는 연민이 있어야만, 또한 역설적으로 피와 혼돈과 분노가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느 한 쪽의 힘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약하고 어린 것은 영원하지 않다. 그들은 당신의 세계를 부수러 온다. 기억하라. 이것이 떠도는 별의 마침표이자 유령들의 이야기라고, 최초는 끝과 함께 시작된다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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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사람 - 내 삶을 바꾸는 소소한 물음들에 관하여 이매진의 시선 15
김영서 지음 / 이매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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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어디서부터 얘기할 수 있을까. 요사이 읽는 책은 주로 윤리학, 그것도 타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목놓아 부르짖다시피 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윤리학이라는 어떤 거대한 짐승에 올라탄 것처럼 순조롭게 세상을 훑고 다니던 와중에 그것이 대뜸 나를 향해 뒤돌아서서는, '그러는 너는'이라며 질문...이라기 보단 들이받는 형국에 당황스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아마도, 아니, 확실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숨길 수도 없이, 저자의 전작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아주 남 이야기로 읽었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고작 '만약'으로 시작하는 상상적 공감에만 그쳤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접하고 생각하는 세계가 다를 수 밖에 없으니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삶에는 그 정도가 한계 아니겠나,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에, 저자의 순간들과 생각을 따라가는 시간들에,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에도 마음이 복잡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대체 이 사람은 왜 쉽게 살지를 못하는가, 하는 원망이 조금 섞여 유난히 심란했던 마음도, 어쩌면.

흔히 말하는 '화려하고 잘 나가는 삶'과도, '소박하고 안온한 삶'과도 영 거리가 있는데다 대체 뭘 어떻게 하고 다니기에 하루가 멀다하고 소란이 끊이질 않는 그런 삶, 초라하다면 초라하고 누군가는 '저렇게는 안 살겠다'며 악을 써도 그렇구나. 말고는 할 말이 없는 그런 삶의 순간을 짚어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평화롭고 행복해서 모든 문장이 웃는 얼굴 이모티콘으로 끝나는 인생이 있을까? 동화에도 없을텐데. 그러니 구르고 깨지고 한푼이 아쉬워 아등바등 아끼다가 샛길로도 빠졌다가 누군가를 흘겨보고 불의에 슬쩍 눈감기도 하는 그런 삶을 감히 비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나도 진창 너도 진창, 너도 나도 조금쯤 더럽고 비굴하게 사는데 대체 무슨 질문이며 쓸 데도 없는 반성이냐, 고 묻는다면 그래서 묻는다고 답하겠다. 그래서 멈춰서고 돌아보며 질문하기를 그만둘 수가 없다고, 그래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고.

종교 에세이인가? 싶을 정도로 짤막한 글 곳곳에 신을 찾고 신의 의미를 새기는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이해할 수 없는서문에서 일러주듯 저자의 삶과 생각에 종교가 큰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한데, 과연 초월적 절대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믿음이 개인에게 위안 또는 용기로 작용하는 것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딱히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싸움을 걸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양가가 독실한 신앙인들로 가득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여전히 무신론을 말하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환대하고 그의 고통을 외면해서도, 할 수도 없는 윤리철학을 공부했다 말하는 내가 과연 뭘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는지, 누군가의 고통과 삶을 이해한다고 뻐기던 것은 아니었는지 부끄러운 마음일 뿐이다.

책을 덮으며 새로이 자라난 물음들이 마음을 소란하게 한다. 공감과 동정은 얼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을까. 에서 자랐지만 여전히 무신론적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제목의 "질문하는 사람"은 무슨 의미일까. 질문한다는 것은 의문을 갖는다는 것, 의문은 곧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당연하지 않다는 것은 외면하고 묵인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질문하는 행위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 답을 주지 않는 것을 넘어 질문하는 책이다. 나는 이랬다고, 나는 이런 사람과 세상을 이해할 수 없어 번민하고 흔들리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거기 멀거니 서서 바라보는 당신은, 아팠고 아프게했고 번민하며 흔들리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 있냐고. 어쩌면 사는 일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이 글을 읽는 이에게도, 언젠가 이 책의 내용을 되새겨볼 나에게도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로 기억될 시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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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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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푸른숲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임을 밝힙니다.

어느날, 큰 의미 없이 집어든 책이 당신에게 말을 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작가가 전하는 다정한 위로'라거나 '책과의 대화' 같은 말랑말랑 보송보송 감성이 아니라, 그 분(무생물이긴 하지만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에게 본능적으로 존칭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바선생처럼.)이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상황을 넘어 생각까지도 마치 들어갔다 나온 양 술술 읊어대고 있다면? 나였으면... 버렸어요... 나약한 코리안은 귀신들린 책이 무서워서 냅다 한강물에 집어던졌을 거라구. 물론 이런 슈퍼겁쟁이 독자만 있는 세계에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시작도 못하고 사라지거나, 첫페이지부터 "잠깐잠깐잠깐 던지지 마세요! 귀신 아닙니다! 한강물 안돼!!!!"라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소설을 소개할 때는 가급적 줄거리를 피하는 편입니다. 한 명이라도 더 이 시간의 즐거움을 공유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쓰는 글인데, 다 말해버리면 재미 없잖아요. 10분 요약! 영화 한 편! 같은 게 되어버리니까. 이것만 보면 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 유혹하는 건 수험생 요약노트로도 충분합니다. 남의 집 일이라는 뜻.

다른 건 덮어두더라도, 시작부터 참 불친절합니다. 대뜸 너만 알고 나는 모르는 얘기로 시작해 묘하게 이리저리 지적받고 나니 대체 뉘시오? 하는 말이 목구멍, 아니 손가락까지 차오르는 순간 '당신은 곧... 죽습니다...' 같은 느낌의 불안한 메시지라니요. 이거 행운의 편지 아니야? 당장 베껴서 일곱명한테 보내야 하는 건가? 칭찬입니다. 시작부터 독자를 꽉 쥐고 휘어잡는 문장에 푹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적어도 도입부에서는 제목을 알 수 없는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이 책을 가져다가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으"라고. 그말인즉슨 달리 말하면 모든 문장이 두루뭉술하게 적혀있다는 게 아닐까요? 조금 더 따라가봅시다.
주연 중 하나인 우리의 벤(어쩐지 강아지같은 이름!)은 좋게 말하면 평범하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초라한 인물입니다. 동창의 성공에 열등감을 느끼고, 뛰어난 인재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무슨 발달린 주석기계 취급인데다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들은 방대하지만 대체 쓸 날이 오기는 할까 싶게 중구난방인, 그런 소시민이지요. 그런 사람이 무작정 '너 죽게 생겼다!' 식의 위험에 휘말려버렸으니 얼마나 눈물이... 짠내가 나겠습니까... 그걸 다잡아주는 건 '이자식 묘하게 꼬인데다 찌질해...!'라는 마음의 소리겠지요, 아마도.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뭘까요? 소설을 읽는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무엇보다도 캐릭터입니다. 등장인물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면, 악인이든 선인이든 말과 행동에 전혀 공감하거나 이입할 수 없다면 영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얼마 가지 못하고 벗어던지게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껏 한 번이라도 남을 평가하고 위아래로 훑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딱히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주인공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열등감, 이기심, 오만함을 끌어안고 있거든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듯이 타인과 그들의 삶, 경험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고, 밀어내고, 맛보고, 때론 집어삼키고 싶을 만큼 욕망하는 그런 마음들.
달리 말하면 저자의 인간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란 나약하고 불완전하기에 오만하고 욕망에 휩싸인 사람일 수 밖에 없다고. 더해서, 인생이란 게 누구나 그렇게 비틀거린다고. 앞서 말한 것처럼 "필요할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뚝딱 얻을 수 있는 해답은 없다고, 완벽한 승리자의 완벽한 인생비법으로 가는 왕도같은 것은 없다고, 행복은 그렇지 않다고.
물론 악당은 있습니다. 그가 저지른 일은 용서할 수도 그래서도 안되는 악행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요. 그렇지만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독자라면 마음 한 켠에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겠지요. 무조건 너 나쁜놈! 하기 전에 그의 삶을, 고통을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는 있습니다. 공감은 그 사람의 신을 신고 걷는 것과도 같다던 어느 옛말처럼 위스키 한 잔, 어쩌면 한 방울과 함께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고통에 함께 잠겼다가 그것을 당신의 것으로 소화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새기며. 그러니 당신의 삶에도 행복이 필요하다고, 다만 이런 방식은 절대 아니라고.
삶은 어쩌면 준비된 필연과 우연의 연속이고, 행복은 삶의 아주 작은 순간에도 스며들어있으니 감사하라고, 사랑하라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삶이라고.

어떤 책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개개인들의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쓸어온 꽃처럼 끌어안고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작은 정원이 되어 있을 것이고, 또다시 어느새 그 정원 안을 헤매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고 출구 앞에서 아쉬운 마음에 발끝을 차다보면 한 폭의 그림을 안고 미소짓고 있을거라고. 이 책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이 책은 당신을 그렇게 만들거라고. 다시 한 번, 위스키, 와인, 칵테일, 어쩌면 초콜릿과 함께.
작은 팁을 드립니다. 충격적일 거라고, 이 작품의 주인은 독자가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해야지. 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가지고 노는 누군가라고. 이 글을 ,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누구든간에 한번쯤 이렇게 외칠거라고. '아니 이걸 이렇게까지 써먹는다고?'

#푸른숲북클럽 #소설 #미스터리판타지 #다가올날들을위한안내서 #요아브블룸 #푸른숲 #푸른숲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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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강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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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임을 밝힙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니, 이 주제에 말을 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어떻게든 '나'를 제하는 사람은 있어도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생각해보자. 밴드 공연을 위한 무대가 있는 작은 펍,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고 소박한 펍은 오늘도 북적거린다. 가볍게 술이나 한잔, 좋아하는 뮤지션을 응원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둘 다. 갑자기 어디선가 탄내가 나고, 이윽고 소란이 번지더니 펍 안의 사람들이 비상구로 몰려들지만 무언가로 막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흥분보다는 광분에 가까운 몸부림 속에서 깔리고 잡아뜯기고 울부짖는 사람들. 여기까지만 보면 인재가 더해진 안타까운 사고로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일이 누군가의 범행이었다면, 방화 뿐만 아니라 아비규환 속에 깔리고 밀치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경거리, 돈벌이로 삼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결과라면? 범인은 엉뚱한 사람이 죄인으로 몰려 폭행과 위협에 노출되고 유족들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동안에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그저 냉정한 사업과 쾌락과 권력 이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면? 돈벌이가 된, 아니 그것을 위해 저질러진 참상을 소비하고 즐기고 돈까지 대주는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과연 소름이 끼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을까.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일들이 돈에 의해 이루어지고 돈을 위해 벌어지며 그것으로 인한 수익으로 더 오래,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더 큰 규모로 굴러간다. 범죄 또한. 지구촌이네 온라인 네트워크네 이제는 구닥다리 냄새가 슬쩍 풍기는 단어를 끌어모으지 않아도 우리 개인은 더이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무결하다고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어느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된 동시에 그 어느떄보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서 범죄와 악의를 일상처럼 마주해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대체 어느 진창을 헤매는 걸까. 시리즈물, 개중에서도 범죄스릴러가 늘 그렇듯 주인공에게 너무한 세상이 아니냐 대체 이렇게 살면서 제정신 부여잡고 사는 이가 몇이나 된단 말이냐 멱살이라도 붙잡고 싶지만 어쩌겠어요. 작가는 글을 쓰고 독자는 읽다 속 터져 죽는다(싫으면 책에 깔려 죽든지...).

줄거리를 적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알만한 독자는 다 알 주인공의 천재적인 재능과 바람 잘 날 없는 인생과 그의 고뇌를 지켜보는, 남의 일이 아닌 동시대인으로서의 독자, 시민의 마음을 말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역시 줄거리는 적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참극을 맞닥뜨리기를 바란다. 차마 말을 할 수 없는 충격으로 밤새 뒤척이길 바란다. 남의 일로만 넘겼던 뉴스와 기사 한구석의 범죄와 비극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소설의 형태로 소란과 경악을 불러온 이 작품이 그저 허구만은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길 바란다. 할 수 있는 일을, 지켜보고 고발하고 저지하고 소리지르기를 바란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시민인 우리가, 맞서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포식자'네 '본능'이네 거드럭거리는 추악한 이들에게서 모른척 눈을 돌리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는 글로 세상을 드러내고, 독자는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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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인간입니까 - 인지과학으로 읽는 뇌와 마음의 작동 원리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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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심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오래된 격언이 무색할만큼 우리 인간이 그토록 애써왔으나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난제가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인간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분류한 지도 한참, 우리가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에 속함을 굳게 믿어온 지도 한참인데 우리는 여전히 무엇을 인간으로, 또 무엇을 인간-아님으로 부를 수 있는지 그 명확한 경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간을 모방한 기계가 나온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부여된 속성으로 인간의 경계를 유추해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 모든 시도가 안그래도 활활 타오르는 논쟁에 화력을 보태는 꼴이 된 것을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 또는 우리-아님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이것'은 인간입니까? 혹은, Are you a machine? 생물 또한 기계라는 (아까보다는 덜) 오래된 논리를 가져온다면, 무엇이 기계입니까? 기계와 기계-아님의 경계는 무엇입니까?
내가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냐고 팔팔 뛰다 못해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인 인간에게도 꽤나 큰 무기가 있다. 인간은 뇌가 있고, 자기 자신을 벗어나 스스로를 외부에 대입할 수 있는 사고능력이 있다는 것. 인간에게는 인지능력이 있고 나아가 인지과학이 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유명한 난제를 아는가. 아테네의 후손들은 고대의 영웅 테세우스의 배를 오래도록 보존하고자 낡고 썩은 판자를 새것으로 교체해가며 그 형태를 유지해왔다. 시간이 흘러 테세우스의 배는 원래의 조각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각기 교체된 시기가 다른 새 판자와 조각으로 이루어져 원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시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렇다면, 혹은 그럴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연속성은 동일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인간에서 어쩌다 고대유물까지 왔냐고 묻는다면, 어차피 생물이나 배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인간의 세포는 하루에도 수없이 죽고 탈락되고 또 교체된다. 신생아 시기의 세포가 열 살,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남아있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제, 작년, 태어났을 때와 현재의 자신을 동일한 개체로 인식한다.
신체를 구성하는 입자 대부분은 몇 달 간격으로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또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고 있는 게 아닐까?(p.93)

조금 더 기계스러운(?) 상상을 해보자. 이럴 때를 위해 철학에는 수도없이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는가. 다 쓸 데가 있다. 고마워요 전능한 외계인 (때때로 악마). 현대과학에서 인간 의식의 핵심은 다른 무엇도 아닌 뇌다. 뇌의 사고능력으로 우리는 세계를 인식하고 또 체계화하며 생의 순간들을 저장하고 또 망각한다. 솜씨 좋은 외계인이 당신의 뇌세포를 하루에 하나씩, 눈치채지 못하게 기계장치로 대체하고 있다고 해보자. 언젠가 당신의 뇌는 인체조직은 하나도 없이 전부 기계장치로 대체될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도둑맞은 뇌(!)를 알아챈 당신은 여전히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길까? 뇌 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 조직도 대체되었다면? 사지를 전부 의수와 의족으로 대체한 이는 인간일까? 뇌를 제외한 전신이 기계장치인 존재와 뇌만 기계장치인 존재 중 어느 쪽이 인간에 가까울까? 아니면 둘 다 인간이 아닌걸까? 우리는 어떻게 인간과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는 기계장치를 구분할 수 있을까? 경계라는 게 정말 실존하는 것일까?
의식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 그 대상이 감각질을 경험한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어떤 개체가 경험하는 감각질은 그에 대한 물리적 사실을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이;를 바탕으로 그의 감각질이 어떠하리라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p.159)

어쩌면 우리는 특별한 존재이고 싶어할 뿐인, 바이오동력 기계장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인간을 모방한 존재와 넘을 수 없는 경계로 구분지어져 있지만 단지 인간에 속하기에 그것을 알아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기술로도 인간의 뇌가 품고 있는 특별하고 경이로운 능력을 똑같이 만들어낼 수는 없으리라 믿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 인간과 좀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의식이란 환상일 뿐이다. 우리가 바로 좀비다.(p.195)
인간의 행동이 일관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정형화된 규칙들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 선박과 페인트, 분노와 슬픔 등에 대한 이해는 정보의 나열로 우리 머릿속에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추론은 알고리즘과 같지 않다.(p.207)

앞서 제시한 즐거운(이라고 쓰고 철학자 또는 인지과학자가 질문을 던지며 당신을 쫓아다니기 좋을) 상상 뿐만 아니라 알파고의 등장으로 한번쯤 고민해봤을 인간과 기계의 사고능력, 인공지능의 한계와 가능성을 고민해볼 수 있는 주제와 예시들로 알차게 이루어진 책이다. 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와 함께 읽기 좋을 문헌을 각 장 말미에 제시하고 있어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와 갓 전공분야 맛을 보기 시작한 독자에게도 수월히 권할 수 있겠다.
딱히 그럴 분야가 아닌 건 알지만, 사실 조금쯤 외로운 마음으로 읽었다. 타자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진정 불가능한 일인걸까? 마음을, 생각을, 의식을,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게 하는 무언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유명한 철학 논제처럼 우리는 박쥐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수많은 뇌-인지과학과 철학적 논쟁들이 그렇듯 딱 부러지는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어쩌면 영원히, 그 누구도), 의식을 가진 인간의 최대 난제인 인간의 의식에 대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대화-라고 쓰고 판 깔아주면 전공지식이 와르르 쏟아져나오는 미니 학회-를 통해 요리조리 고민해볼 수는 있겠다. 인간의 의식체계 뿐만 아니라 장차 그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추고자 하는 로봇공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깊게 보기를 권하는 영화와 함께 읽기를 권하는 책
1. 스티븐 스필버그, "A.I" (2001)
2. 알렉스 프로야스, "아이, 로봇" (2004)
3. 앨릭스 코브 저, 정지인 역, 『우울할 때 뇌 과학』 (심심)
4. 이고은 저, 『마음 실험실』 (심심)
5. 매튜 코브 저, 이한나 역, 『뇌 과학의 모든 역사』 (심심)
6. 호아킨 M. 푸르테스 저, 김미선 역, 『신경과학으로 보는 마음의 지도』 (휴머니스트)
7. 아닐 세스 저, 장혜인 역, 『내가 된다는 것』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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