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인간입니까 - 인지과학으로 읽는 뇌와 마음의 작동 원리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2년 7월
평점 :
절판


*출판사 심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오래된 격언이 무색할만큼 우리 인간이 그토록 애써왔으나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난제가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인간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분류한 지도 한참, 우리가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에 속함을 굳게 믿어온 지도 한참인데 우리는 여전히 무엇을 인간으로, 또 무엇을 인간-아님으로 부를 수 있는지 그 명확한 경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간을 모방한 기계가 나온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부여된 속성으로 인간의 경계를 유추해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 모든 시도가 안그래도 활활 타오르는 논쟁에 화력을 보태는 꼴이 된 것을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 또는 우리-아님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이것'은 인간입니까? 혹은, Are you a machine? 생물 또한 기계라는 (아까보다는 덜) 오래된 논리를 가져온다면, 무엇이 기계입니까? 기계와 기계-아님의 경계는 무엇입니까?
내가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냐고 팔팔 뛰다 못해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인 인간에게도 꽤나 큰 무기가 있다. 인간은 뇌가 있고, 자기 자신을 벗어나 스스로를 외부에 대입할 수 있는 사고능력이 있다는 것. 인간에게는 인지능력이 있고 나아가 인지과학이 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유명한 난제를 아는가. 아테네의 후손들은 고대의 영웅 테세우스의 배를 오래도록 보존하고자 낡고 썩은 판자를 새것으로 교체해가며 그 형태를 유지해왔다. 시간이 흘러 테세우스의 배는 원래의 조각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각기 교체된 시기가 다른 새 판자와 조각으로 이루어져 원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시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렇다면, 혹은 그럴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연속성은 동일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인간에서 어쩌다 고대유물까지 왔냐고 묻는다면, 어차피 생물이나 배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인간의 세포는 하루에도 수없이 죽고 탈락되고 또 교체된다. 신생아 시기의 세포가 열 살,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남아있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제, 작년, 태어났을 때와 현재의 자신을 동일한 개체로 인식한다.
신체를 구성하는 입자 대부분은 몇 달 간격으로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또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고 있는 게 아닐까?(p.93)

조금 더 기계스러운(?) 상상을 해보자. 이럴 때를 위해 철학에는 수도없이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는가. 다 쓸 데가 있다. 고마워요 전능한 외계인 (때때로 악마). 현대과학에서 인간 의식의 핵심은 다른 무엇도 아닌 뇌다. 뇌의 사고능력으로 우리는 세계를 인식하고 또 체계화하며 생의 순간들을 저장하고 또 망각한다. 솜씨 좋은 외계인이 당신의 뇌세포를 하루에 하나씩, 눈치채지 못하게 기계장치로 대체하고 있다고 해보자. 언젠가 당신의 뇌는 인체조직은 하나도 없이 전부 기계장치로 대체될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도둑맞은 뇌(!)를 알아챈 당신은 여전히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길까? 뇌 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 조직도 대체되었다면? 사지를 전부 의수와 의족으로 대체한 이는 인간일까? 뇌를 제외한 전신이 기계장치인 존재와 뇌만 기계장치인 존재 중 어느 쪽이 인간에 가까울까? 아니면 둘 다 인간이 아닌걸까? 우리는 어떻게 인간과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는 기계장치를 구분할 수 있을까? 경계라는 게 정말 실존하는 것일까?
의식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 그 대상이 감각질을 경험한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어떤 개체가 경험하는 감각질은 그에 대한 물리적 사실을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이;를 바탕으로 그의 감각질이 어떠하리라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p.159)

어쩌면 우리는 특별한 존재이고 싶어할 뿐인, 바이오동력 기계장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인간을 모방한 존재와 넘을 수 없는 경계로 구분지어져 있지만 단지 인간에 속하기에 그것을 알아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기술로도 인간의 뇌가 품고 있는 특별하고 경이로운 능력을 똑같이 만들어낼 수는 없으리라 믿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 인간과 좀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의식이란 환상일 뿐이다. 우리가 바로 좀비다.(p.195)
인간의 행동이 일관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정형화된 규칙들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 선박과 페인트, 분노와 슬픔 등에 대한 이해는 정보의 나열로 우리 머릿속에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추론은 알고리즘과 같지 않다.(p.207)

앞서 제시한 즐거운(이라고 쓰고 철학자 또는 인지과학자가 질문을 던지며 당신을 쫓아다니기 좋을) 상상 뿐만 아니라 알파고의 등장으로 한번쯤 고민해봤을 인간과 기계의 사고능력, 인공지능의 한계와 가능성을 고민해볼 수 있는 주제와 예시들로 알차게 이루어진 책이다. 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와 함께 읽기 좋을 문헌을 각 장 말미에 제시하고 있어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와 갓 전공분야 맛을 보기 시작한 독자에게도 수월히 권할 수 있겠다.
딱히 그럴 분야가 아닌 건 알지만, 사실 조금쯤 외로운 마음으로 읽었다. 타자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진정 불가능한 일인걸까? 마음을, 생각을, 의식을,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게 하는 무언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유명한 철학 논제처럼 우리는 박쥐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수많은 뇌-인지과학과 철학적 논쟁들이 그렇듯 딱 부러지는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어쩌면 영원히, 그 누구도), 의식을 가진 인간의 최대 난제인 인간의 의식에 대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대화-라고 쓰고 판 깔아주면 전공지식이 와르르 쏟아져나오는 미니 학회-를 통해 요리조리 고민해볼 수는 있겠다. 인간의 의식체계 뿐만 아니라 장차 그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추고자 하는 로봇공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깊게 보기를 권하는 영화와 함께 읽기를 권하는 책
1. 스티븐 스필버그, "A.I" (2001)
2. 알렉스 프로야스, "아이, 로봇" (2004)
3. 앨릭스 코브 저, 정지인 역, 『우울할 때 뇌 과학』 (심심)
4. 이고은 저, 『마음 실험실』 (심심)
5. 매튜 코브 저, 이한나 역, 『뇌 과학의 모든 역사』 (심심)
6. 호아킨 M. 푸르테스 저, 김미선 역, 『신경과학으로 보는 마음의 지도』 (휴머니스트)
7. 아닐 세스 저, 장혜인 역, 『내가 된다는 것』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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