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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강 ㅣ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임을 밝힙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니, 이 주제에 말을 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어떻게든 '나'를 제하는 사람은 있어도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생각해보자. 밴드 공연을 위한 무대가 있는 작은 펍,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고 소박한 펍은 오늘도 북적거린다. 가볍게 술이나 한잔, 좋아하는 뮤지션을 응원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둘 다. 갑자기 어디선가 탄내가 나고, 이윽고 소란이 번지더니 펍 안의 사람들이 비상구로 몰려들지만 무언가로 막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흥분보다는 광분에 가까운 몸부림 속에서 깔리고 잡아뜯기고 울부짖는 사람들. 여기까지만 보면 인재가 더해진 안타까운 사고로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일이 누군가의 범행이었다면, 방화 뿐만 아니라 아비규환 속에 깔리고 밀치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경거리, 돈벌이로 삼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결과라면? 범인은 엉뚱한 사람이 죄인으로 몰려 폭행과 위협에 노출되고 유족들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동안에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그저 냉정한 사업과 쾌락과 권력 이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면? 돈벌이가 된, 아니 그것을 위해 저질러진 참상을 소비하고 즐기고 돈까지 대주는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과연 소름이 끼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을까.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일들이 돈에 의해 이루어지고 돈을 위해 벌어지며 그것으로 인한 수익으로 더 오래,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더 큰 규모로 굴러간다. 범죄 또한. 지구촌이네 온라인 네트워크네 이제는 구닥다리 냄새가 슬쩍 풍기는 단어를 끌어모으지 않아도 우리 개인은 더이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무결하다고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어느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된 동시에 그 어느떄보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서 범죄와 악의를 일상처럼 마주해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대체 어느 진창을 헤매는 걸까. 시리즈물, 개중에서도 범죄스릴러가 늘 그렇듯 주인공에게 너무한 세상이 아니냐 대체 이렇게 살면서 제정신 부여잡고 사는 이가 몇이나 된단 말이냐 멱살이라도 붙잡고 싶지만 어쩌겠어요. 작가는 글을 쓰고 독자는 읽다 속 터져 죽는다(싫으면 책에 깔려 죽든지...).
줄거리를 적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알만한 독자는 다 알 주인공의 천재적인 재능과 바람 잘 날 없는 인생과 그의 고뇌를 지켜보는, 남의 일이 아닌 동시대인으로서의 독자, 시민의 마음을 말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역시 줄거리는 적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참극을 맞닥뜨리기를 바란다. 차마 말을 할 수 없는 충격으로 밤새 뒤척이길 바란다. 남의 일로만 넘겼던 뉴스와 기사 한구석의 범죄와 비극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소설의 형태로 소란과 경악을 불러온 이 작품이 그저 허구만은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길 바란다. 할 수 있는 일을, 지켜보고 고발하고 저지하고 소리지르기를 바란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시민인 우리가, 맞서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포식자'네 '본능'이네 거드럭거리는 추악한 이들에게서 모른척 눈을 돌리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는 글로 세상을 드러내고, 독자는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