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강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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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임을 밝힙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니, 이 주제에 말을 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어떻게든 '나'를 제하는 사람은 있어도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생각해보자. 밴드 공연을 위한 무대가 있는 작은 펍,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고 소박한 펍은 오늘도 북적거린다. 가볍게 술이나 한잔, 좋아하는 뮤지션을 응원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둘 다. 갑자기 어디선가 탄내가 나고, 이윽고 소란이 번지더니 펍 안의 사람들이 비상구로 몰려들지만 무언가로 막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흥분보다는 광분에 가까운 몸부림 속에서 깔리고 잡아뜯기고 울부짖는 사람들. 여기까지만 보면 인재가 더해진 안타까운 사고로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일이 누군가의 범행이었다면, 방화 뿐만 아니라 아비규환 속에 깔리고 밀치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경거리, 돈벌이로 삼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결과라면? 범인은 엉뚱한 사람이 죄인으로 몰려 폭행과 위협에 노출되고 유족들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동안에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그저 냉정한 사업과 쾌락과 권력 이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면? 돈벌이가 된, 아니 그것을 위해 저질러진 참상을 소비하고 즐기고 돈까지 대주는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과연 소름이 끼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을까.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일들이 돈에 의해 이루어지고 돈을 위해 벌어지며 그것으로 인한 수익으로 더 오래,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더 큰 규모로 굴러간다. 범죄 또한. 지구촌이네 온라인 네트워크네 이제는 구닥다리 냄새가 슬쩍 풍기는 단어를 끌어모으지 않아도 우리 개인은 더이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무결하다고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어느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된 동시에 그 어느떄보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서 범죄와 악의를 일상처럼 마주해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대체 어느 진창을 헤매는 걸까. 시리즈물, 개중에서도 범죄스릴러가 늘 그렇듯 주인공에게 너무한 세상이 아니냐 대체 이렇게 살면서 제정신 부여잡고 사는 이가 몇이나 된단 말이냐 멱살이라도 붙잡고 싶지만 어쩌겠어요. 작가는 글을 쓰고 독자는 읽다 속 터져 죽는다(싫으면 책에 깔려 죽든지...).

줄거리를 적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알만한 독자는 다 알 주인공의 천재적인 재능과 바람 잘 날 없는 인생과 그의 고뇌를 지켜보는, 남의 일이 아닌 동시대인으로서의 독자, 시민의 마음을 말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역시 줄거리는 적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참극을 맞닥뜨리기를 바란다. 차마 말을 할 수 없는 충격으로 밤새 뒤척이길 바란다. 남의 일로만 넘겼던 뉴스와 기사 한구석의 범죄와 비극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소설의 형태로 소란과 경악을 불러온 이 작품이 그저 허구만은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길 바란다. 할 수 있는 일을, 지켜보고 고발하고 저지하고 소리지르기를 바란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시민인 우리가, 맞서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포식자'네 '본능'이네 거드럭거리는 추악한 이들에게서 모른척 눈을 돌리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는 글로 세상을 드러내고, 독자는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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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인간입니까 - 인지과학으로 읽는 뇌와 마음의 작동 원리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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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판사 심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오래된 격언이 무색할만큼 우리 인간이 그토록 애써왔으나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난제가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인간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분류한 지도 한참, 우리가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에 속함을 굳게 믿어온 지도 한참인데 우리는 여전히 무엇을 인간으로, 또 무엇을 인간-아님으로 부를 수 있는지 그 명확한 경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간을 모방한 기계가 나온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부여된 속성으로 인간의 경계를 유추해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 모든 시도가 안그래도 활활 타오르는 논쟁에 화력을 보태는 꼴이 된 것을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 또는 우리-아님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이것'은 인간입니까? 혹은, Are you a machine? 생물 또한 기계라는 (아까보다는 덜) 오래된 논리를 가져온다면, 무엇이 기계입니까? 기계와 기계-아님의 경계는 무엇입니까?
내가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냐고 팔팔 뛰다 못해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인 인간에게도 꽤나 큰 무기가 있다. 인간은 뇌가 있고, 자기 자신을 벗어나 스스로를 외부에 대입할 수 있는 사고능력이 있다는 것. 인간에게는 인지능력이 있고 나아가 인지과학이 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유명한 난제를 아는가. 아테네의 후손들은 고대의 영웅 테세우스의 배를 오래도록 보존하고자 낡고 썩은 판자를 새것으로 교체해가며 그 형태를 유지해왔다. 시간이 흘러 테세우스의 배는 원래의 조각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각기 교체된 시기가 다른 새 판자와 조각으로 이루어져 원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시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렇다면, 혹은 그럴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연속성은 동일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인간에서 어쩌다 고대유물까지 왔냐고 묻는다면, 어차피 생물이나 배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인간의 세포는 하루에도 수없이 죽고 탈락되고 또 교체된다. 신생아 시기의 세포가 열 살,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남아있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제, 작년, 태어났을 때와 현재의 자신을 동일한 개체로 인식한다.
신체를 구성하는 입자 대부분은 몇 달 간격으로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또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고 있는 게 아닐까?(p.93)

조금 더 기계스러운(?) 상상을 해보자. 이럴 때를 위해 철학에는 수도없이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는가. 다 쓸 데가 있다. 고마워요 전능한 외계인 (때때로 악마). 현대과학에서 인간 의식의 핵심은 다른 무엇도 아닌 뇌다. 뇌의 사고능력으로 우리는 세계를 인식하고 또 체계화하며 생의 순간들을 저장하고 또 망각한다. 솜씨 좋은 외계인이 당신의 뇌세포를 하루에 하나씩, 눈치채지 못하게 기계장치로 대체하고 있다고 해보자. 언젠가 당신의 뇌는 인체조직은 하나도 없이 전부 기계장치로 대체될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도둑맞은 뇌(!)를 알아챈 당신은 여전히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길까? 뇌 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 조직도 대체되었다면? 사지를 전부 의수와 의족으로 대체한 이는 인간일까? 뇌를 제외한 전신이 기계장치인 존재와 뇌만 기계장치인 존재 중 어느 쪽이 인간에 가까울까? 아니면 둘 다 인간이 아닌걸까? 우리는 어떻게 인간과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는 기계장치를 구분할 수 있을까? 경계라는 게 정말 실존하는 것일까?
의식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 그 대상이 감각질을 경험한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어떤 개체가 경험하는 감각질은 그에 대한 물리적 사실을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이;를 바탕으로 그의 감각질이 어떠하리라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p.159)

어쩌면 우리는 특별한 존재이고 싶어할 뿐인, 바이오동력 기계장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인간을 모방한 존재와 넘을 수 없는 경계로 구분지어져 있지만 단지 인간에 속하기에 그것을 알아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기술로도 인간의 뇌가 품고 있는 특별하고 경이로운 능력을 똑같이 만들어낼 수는 없으리라 믿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 인간과 좀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의식이란 환상일 뿐이다. 우리가 바로 좀비다.(p.195)
인간의 행동이 일관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정형화된 규칙들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 선박과 페인트, 분노와 슬픔 등에 대한 이해는 정보의 나열로 우리 머릿속에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추론은 알고리즘과 같지 않다.(p.207)

앞서 제시한 즐거운(이라고 쓰고 철학자 또는 인지과학자가 질문을 던지며 당신을 쫓아다니기 좋을) 상상 뿐만 아니라 알파고의 등장으로 한번쯤 고민해봤을 인간과 기계의 사고능력, 인공지능의 한계와 가능성을 고민해볼 수 있는 주제와 예시들로 알차게 이루어진 책이다. 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와 함께 읽기 좋을 문헌을 각 장 말미에 제시하고 있어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와 갓 전공분야 맛을 보기 시작한 독자에게도 수월히 권할 수 있겠다.
딱히 그럴 분야가 아닌 건 알지만, 사실 조금쯤 외로운 마음으로 읽었다. 타자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진정 불가능한 일인걸까? 마음을, 생각을, 의식을,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게 하는 무언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유명한 철학 논제처럼 우리는 박쥐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수많은 뇌-인지과학과 철학적 논쟁들이 그렇듯 딱 부러지는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어쩌면 영원히, 그 누구도), 의식을 가진 인간의 최대 난제인 인간의 의식에 대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대화-라고 쓰고 판 깔아주면 전공지식이 와르르 쏟아져나오는 미니 학회-를 통해 요리조리 고민해볼 수는 있겠다. 인간의 의식체계 뿐만 아니라 장차 그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추고자 하는 로봇공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깊게 보기를 권하는 영화와 함께 읽기를 권하는 책
1. 스티븐 스필버그, "A.I" (2001)
2. 알렉스 프로야스, "아이, 로봇" (2004)
3. 앨릭스 코브 저, 정지인 역, 『우울할 때 뇌 과학』 (심심)
4. 이고은 저, 『마음 실험실』 (심심)
5. 매튜 코브 저, 이한나 역, 『뇌 과학의 모든 역사』 (심심)
6. 호아킨 M. 푸르테스 저, 김미선 역, 『신경과학으로 보는 마음의 지도』 (휴머니스트)
7. 아닐 세스 저, 장혜인 역, 『내가 된다는 것』 (흐름출판)

#푸른숲북클럽 #이것은인간입니까 #심심 #인문학 #인문서 #인지과학 #인공지능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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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발리 카우르 자스월 지음, 작은미미 외 옮김 / 들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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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책은 수없이 쏟아져나오고 있기 때문에, 감히 추천을 쉽게 말할 수 없다. 사회고발, 도전, 사랑과 가족, 우정을 하나의 작품에 녹여낼 수 있다는 게 믿어지는가? 여러 장르와 메시지를 하나의 작품에 담아내는 건 분량에 관계없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여성문학을 추천하라면 주저없이 이 소설을 말할 수 있겠다.

*함께 보기를 권하는 작품들
1. 영화 "아쉬람"
2. 카르마 브라운,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미디어창비)
3. 전혜진, 『여성, 귀신이 되다』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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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최신 신경생물학과 정신의학이 말하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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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출판사 북클럽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트라우마에 빗댈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비, 그것도 끊임없이 내리는 비다. 처음에는 가랑비처럼 느껴지지만, 아무런 보호막도 없다면 우리는 뼛속까지 푹 젖게 되고 물은 계속 주위에서 차고 올라와 결국 고통의 강이 되어 우리를 휩쓸어 간다. (p.64)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아직도 밤마다 꿈을 꾼다. 돌이켜 짚어보면 딱히 닮은 점을 찾을 수도 없는데 찰나에 겁을 먹고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고 도망친 적도 부지기수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느낀다. 툭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밤새 웅크려있는 삶은 여전하다. 꿈이 두렵고 잠이 안 오고, 잠을 못 자니 하루종일 피로에 시달리고 규칙과 기억에 집착한다. 이런 삶을 살아내야할 이유가 있을까.
언젠가부터 트라우마와 PTSD는 꽤나 친숙하고 가벼운 개념이 된 것도 같다. 굳이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 PTSD온다~"는 식의 우스개를 들으면 네가 내 삶을 알기는 하냐고, 알고도 그렇게 편하게 떠들 수 있겠냐고 멱살이라도 틀어쥐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리니. 세상에 쉬운 삶 하나 없고 편하게만 사는 사람은 없다고들 하지만 개중에는 회복할 수 없거나 적어도 그렇다고 느끼게 하는 사건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에게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할 수 있다느니, 소중하다느니, 긍정적으로 살라느니... 찬사와 응원을 늘어놓는 건 역시나 독일테다.

안다. 스스로를 용서하라느니 용기를 가지라느니 입에 발린 싸구려 위로는 자기혐오를 보태줄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용서할 수도, 그래서도 안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주저앉고 헐떡이고 비명을 지르는 삶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바뀌지 않고 달라진 것도, 바꿀 수 있는 것도 없는데 개인의 시선만 달랑 바꾼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안다. 그렇기에 트라우마를 피상적이고 얄팍한, 자고 일어나면 털어버릴 수 있는 고민 정도로 치부하는 온갖 자기계발서에 넌덜머리가 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이 책은 제목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이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져내리고 전능한 의학, 햇살같은 자기긍정이 그 시궁창을 얼마나 멋지게 구해내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제목처럼 트라우마가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지, 왜 떨쳐내기 어려운지, 어째서 개인이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지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운영 편의에 치우친 의료시스템이 환자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복지체계와 아동청소년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헛물만 켜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어떤 트라우마는 심리적 손상을 의도한 폭력의 결과물이고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이 얼마나 문제적이며 어떻게 변해야하는지도, 개인과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을. 그 모든 것을 때로는 관련 분야 전문가와의 대담으로, 저자 자신을 포함한 개인들의 사례로, 의료시스템의 일원으로, 심리사회전문가의 시선으로 설득력있게 풀어나간다.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 겪는 수많은 트라우마는 실제로 그 안에 심리적인 의도가 있다는 거죠."(p.176)
"(...)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힘의 일부는 사람들의 심리를 바꾸는 데 들어갑니다. 그 이유는 트라우마를 겪으면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한 인식은 물론 세계관도 바뀌기 때문이죠."(p.177)

당신은, 나는, 우리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적어도 모두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뭐라도 해야하고, 어떻게든 변해야 한다. 고통을 또다른 고통으로 앙갚음하며 모두를 트라우마의 교묘한 술책 속에 던져주지 말아야한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트라우마를 전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 사람은 죽고, 차 사고는 발생하며 질병을 얻는 것은 생물학적인 팩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불필요한 트라우마가 우리를 죽이지 못하도록, 우리의 삶을 주도하지 못하도록 지금보다 훨씬 더 자신의 몫을 잘 해나갈 수 있다.(p.197)

책에 쏟아진 찬사를 나열하지는 않겠다. 누가 얼만큼의 고통에서 "구원"받았는지 감탄하고 싶지도 않다. 누구라도 개인의 고통을 부수고 구해낼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이 되지 못한 울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운지를 안다. 때문에 이 책이 당신을 빛처럼 찬란한 세상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장담하지는 않겠다. 다만, 삶에 짓눌리고 더는 갈 곳도 다른 삶을 기대할 수도 없다고 느낄 때 당신을 도울 책이 될 거라고, 최소한 고개를 들고 상처를 움켜쥘 마음이 들게 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가 전능하고 위대한 위안의 신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신과 같이 부서지고 회복되지 못한 삶을 끌어안고 있다고, 당신이 스스로가 얹어주는 고통 속에 버티려고 애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푸른숲북클럽 #트라우마는어떻게삶을파고드는가 #심심 #인문학 #인문서 #심리학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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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 인류의 생존을 이끈 선택과 협력의 연대기
앨리스 로버트 지음, 김명주 옮김 / 푸른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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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푸른숲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임을 밝힙니다.

#푸른숲북클럽
#세상을바꾼길들임의역사
#심심 #푸른숲

인류는 홀로 생존할 수 없다. 굳이 철학적 의미까지 끌어오지 않더라도 혼자, 단지 자기 종 하나만으로 생존하며 유지될 수 있는 종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가 서로의 생명에 빚지며 살아간다. 살아있는 것의 제1원칙이다. 더군다나 인간은 여기저기 자연에 흩어져 살면서 잔디나 뜯어먹고 살지 않는 이상 더더욱 그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원시 수렵시대 이후 무리지어 자리잡고 살아 지금의 문명을 이루는 동안 인간이 일상적으로 먹고, "사용하는" 동식물 중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고 야생의 그것과 달라지지 않은 게 있을까.

늑대와 유전자형이 거의 일치하는 개는 본래부터 그렇게 애정이 넘치고 눈의 움직임이 잘 보이던 동물이었을까? 공룡의 후예인 조류, 그 중에서도 닭은 원래 그렇게 수없는 알을 낳고 급격히 비대해지는 동물이었을까? 소는? 말은? 우리 인간은?
식물은 또 어떠한가? 감자, 옥수수, 쌀은 태초부터 그렇게 크고 풍성하게 열렸을까?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데다 심기만 하면 온 동네를 먹여살리고도 남을 만큼 실한 열매로 번성했을까? 사과는 원래 그렇게 빨갛고 광택이 돌거나 새콤달콤하고 부드럽거나 아삭한 과육을 지녔던걸까?

당신은 인류와 함께, 정확히는 인간에 의해 인간의 필요에 따라 변화해온 동식물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발견해온 여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림책으로 봐온, 식탁에 오르는 "친숙한" 것들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이 책은 인류학과 생물학, 고고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파헤치고, 설명하고, 기원을 찾아내는 여정을 모험기처럼 그려낸다. 이만하면 『총, 균, 쇠』, 『사피엔스』를 잇는 대작이라는 평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 않겠는가.
현재는 과거의 반영이다. 미래는 또한 현재의 연장선이다. 우리의 현재에 어떤 계보가 있는지, 어떤 역사와 치열한 과정과 거짓말같은 우연이 있었는지, 그 의미를 깨닫는다면 기후위기, 식량위기에 인재도 이런 인재가 없는 이 난리통 세상에서 무엇을 꿈꿀 수 있는지 그 해법을 도모해 볼 수도 있겠다. 더해서, 예나 지금이나-라던가 이렇게 처절한 역사가 무색하게도 폭격 한 번에 사라져버린 현재를 생각하며 그저 쓴웃음만 날 지도.

불쑥 등장하는 리센코라는 이름에 소름이 끼칠지도, 약탈과 침략의 역사에 슬그머니 팝콘을 내려놓게 될 지도 모른다. 인간이 없으면 그 많은 젖을 감당하지 못해 퉁퉁 불어 고통스러워 하는 소, 너무 비대해 제 명을 다 살기도 전에 다리가 부러진다는 닭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면 인간의 잔인함에 고개를 돌리거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대체 무슨 용기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입에 집어넣고 보는 고고학자들의 열정에 웃음과 박수를 참지 못할 수도 있고.
"몬테베르데를 발굴한 고고학자들은 야생 감자를 직접 맛보고 싶었다. 그들은 덩이줄기 한 개를 얻어 그것을 30분쯤 끓인 다음 먹어보았다. 실로 용감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p.257)."

"개는 늑대가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과 눈을 맞춘다. 게다가 개는 어떤 식으로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신호를 이해하도록 진화했다(p.62)."
"농업이 시작되면서 개가 인간에게서 얻을 수 있는 먹이의 구성도 바뀌었을 것이다. (...) 대부분의 현대 개들은 녹말 소화효소를 지정하는 아밀라아제 유전자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 (...) 시간이 흐를수록 개의 식생활은 육식의 비중이 줄고 잡식이 되어갔다. 인간 친구들의 식생활과 비슷해진 것이다(p.75)."

"초기 농부들은 밀을 재배하기 시작했을 때 그 옆에서 특정 식물들이 잘 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잡초였다. 그리고 그런 잡초들 중 몇몇도 결국은 작물화되었다. 야생 호밀과 귀리는 둘 다 밀밭과 보리밭에서 흔한 잡초였다(p.101)."

"중국에 있는 닭의 절반이 아버 에이커 계통의 자손이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다. 육종이 닭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렇게 완전하게 바꾸었는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p.294)."

"인간은 다른 종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종이 아니며, 인간 존재는 상호 의존에 기대고 있다. (...) 우리 가 '인위선택'이라고 불러온 행위는 실은 인간이 매개하는 자연선택에 지나지 않는다(p.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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