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솔드 : 흩어진 조각들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3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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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오래전에 무너졌다. 그리고 재건되었다. 이전의 평화를 되찾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평화롭고 진보된 세상으로의 진일보를 이룩하였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10대 무법자"들을, 한정된 자원을 축내는 "잉여인간"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유익한 방식으로 "재활용"할 방법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으니. 언와인드. 죽음이 아닌 분열된 상태로 살아가는 삶. 언제든 새로운 몸을, 영생을 얻으세요.

혼란한 사회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언제나 그랬듯, 자본이다. 금전적으로, 지위적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 자신만은 희생자가 되지 않을 것을 확신한 채로, 죽어도 될 생명을 추려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이들. 익숙한 도식과는 다르게, 권력은 더이상 무시무시한 이빨을 내보이지 않는다. 미소를 띄고 '공익'을 섬기는,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선구자로서 손을 내민다. 이 얼마나 선량하고 올바른지!

p.12 〈이 전쟁이 낳은 10대 무법자들에게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입법부라는 울타리 안에서 푸념한다. 아니, 교육 예산을 전쟁용으로 돌려놓고서도 이럴 줄 몰랐다는 건가? 어떻게 공교육이 실패하리라는 걸 모를 수 있단 말인가? 학교도, 직업도 없이 손에 쥔 것이라고는 시간뿐인 저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한다고?

p.571 「모두가 하트랜드 전쟁이 끝나고 10대 무법자들을 눈앞에서도, 머릿속에서도 치워 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 애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누구도 생각하려 하지 않았어. 이제는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익명의 장기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지.」


그런 이유로, '언와인드'라고 쓰고 인권 박탈이라고 읽는 끔찍한 '제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정확히는,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대다수의 성인과 소수의 자본가들의 합의로 이 사회에 무사히 정착했다. 이전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나아가 미성년자 뿐 아니라 재소자까지도 언와인드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회 시스템에 "기생하는" 이들을 '유용한 자원'으로 환원하자는 데 그 누가 반대할까.

지난 권에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능동적 시민"의 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분해되고, 완전해지지 못하고, 영혼을 부정당한 '어린 인간'들은 여전히 패배의 연속에 맞닥뜨린다. 반면 언와인드 대상을 확대하려는, 더 많은 "잉여인간"들을 거대 산업의 아가리로 밀어넣으려는 세력은 일상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누가 그들을 연민하는가. 이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대체 누가 인간일 수 있을까.

p.188 한 가지는 확실하다. 타일러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에게는 성장할 여지가 있다. 리사는 분열된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면 그들은 그냥 언와인드된 나이로 굳어 버리는 걸까. (...) 「너희는 모두 타일러가 언와인드당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뭘 원했는지에만 집착해. 왜 타일러가 3년 뒤에 무엇을 원했을지는 생각하지 않는 거야?」

p.397 하지만 소변으로 얼룩진 리와인드의 바지를 보고 냄새를 맡자 다시금 리와인드의 무력함이 떠오른다. 아전트의 지하실에 갇혀 있던 자신의 모습이. 동정심은 코너가 절대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지만, 어쨌든 느껴진다. 그 감정은 증오를 부식시킨다. 리와인드의 솔기에서 절망감이 그야말로 스며 나오는 듯하다. 코너는 이 생명체에게 고통을 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물어야 한다. 누가 이 공고한 구조에, "모두의 이익"에 반대를 말하게, 혹은, 그럴 수 없게 하는가. 누가 그들을 현재에 박제하는가. 누가 그들에게 과거가 있었음을,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있었음을 부정하는가. 누가 그들 모두에게 어른이 되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기회를 빼앗는가. 실패하고 혼란스럽게 살아갈 가능성을,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미래를, '언와인드' 바깥을 빼앗는가.

카뮈 콩프리를 보라. 가장 완벽한 존재, 인간 이상의 인간. 가장 좋은 '부품'을 한 데 모아 최고의 인간으로. 그의 존재는 과학기술의 쾌거, 언와인드의 존재의의를 증명하는 최고의 현신이다. 그는 인간인가? 적어도 그 자신만은 그렇게 믿었다. 아무렇지 않게 팔려나갈 때까지는. 그를 추앙하고, 흡족해한 이들 중 인간으로 본 자는 없었다. 단 한 명도. 그는 언제나 상품이자 물건이었고, 부품의 조합일 뿐이었다.

p.250 예전에는 의학이 세상의 질병을 고치기 위한 것이었다. 연구 자금은 해결책을 찾는 데 쓰였다. 하지만 지금의 의학 연구는 언와인드의 다양하고 잡다한 부위를 사용할 점점 더 기괴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일 뿐이다. (...) 언와인드가 유지되는 건 자식을 구하고자 하는 부모의 간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와인드가 이토록 활기차게 번성하게 된 건 그것이 허영 어린 거래이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p.463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나는 침해당했다고 느낀다. 캠이 어떻게 감히 윌의 음악으로 우나를 이렇게까지 깊이 밀어붙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윌의 음악이다. 캠은 윌의 영혼 위에 자신의 영혼을 쌓았으니까. 캠은 그를 창조한 괴물들이 깔아 놓은 토대 위에 세워진, 새로운 무언가다.


어떤 모욕에는 대단한 선언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너는 인간이 아니라는, 어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위해 소모되어도 좋다는 합의, 그걸로 충분하다. 언와인드, 반란자들의 여정을 함께해온 독자라면 여기서 다시 물어야 한다. 수요가 공급에 선행하는가, 너무 오래 닫혀있어 벽이 되어버린 문 앞의 우리는, 어떻게 다시 '바깥'을 가능하게 하는가.

가치 없는 몸이 감히 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더 귀한 생명'이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너의 생존은 이기심이다, 사회의 해악이다. 합의와 홍보의 형태로 퍼부어지는 프로파간다는 현대사회에도 너무 선명하게 재현되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무엇의 재현인가. 현실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반란의 불씨는 당겨졌고, 옳지 않음을 외면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여기서 작은 희망을 본다. 이 절망의 끝은 어디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572 「그게 끝이 아니죠, 소니아? 뭐가 더 있을 게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다면 왜 능동적 시민이 지금도 자신들이 무너뜨린 남자를 두려워하겠어요? 왜 잰슨 라인실드의 이름이 지금까지도 놈들을 덜덜 떨게 하겠느냐고요?」 이제 소니아는 미소 짓는다. 「어느 업계에서든 그 핵심에 두려움을 박아 넣는 단어가 뭘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어둠의 주문이라도 되는 듯 속삭인다. 「쇠퇴.」

p.574 소니아의 온몸이 떨린다. 약해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다. 「지금 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 걸 투자했기에, 놈들이 언와인드에 대한 해법을 없애 버렸다면?」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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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우화소설 세트 - 전3권 - 연인 + 항아리 + 조약돌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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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도 위안과 정답이 간절한 시대다. 따지자면 사람 사는 세상에 그렇지 않은 적이 얼마나 있었겠냐만은, 그렇다 쳐도 너무, 너무도 버겁고, 빠르고, 있는 힘껏 움켜쥐고 욕심껏 제 몫을 챙기지 않으면 말 그대로 손가락만 빨다 홀랑 털려먹히기 딱 좋은 세상이 아닌가. 거친 말로, 전쟁통에도 이 지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전쟁의 시대의 세계가 지금과 사뭇 달랐다는, 이렇게까지 무한이기주의가 개인과 사회 시스템에 촘촘히 스며들지는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작은 것은 짓밟히고, 약한 것은 잡아먹히며, 소박하고 고요한 것은 금세 밀려나고 잊혀진다. 세상의 많은 부분은 그런 것들이 지탱하는데도. 목소리를 높이고, 덩치를 부풀려 나를 내세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p.127 (『조약돌』). 돌맹이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사라졌다. 조금만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도 온몸이 팽팽히 긴장되었다. '돌탑이 무너지면 맨 밑에 있는 내가 그대로 깔려 죽어버릴 텐데, 이 일을 어떡하나. 무슨 수를 쓰든 써야 돼. 이대로 밑에 깔려 죽어버릴 수는 없어.' 돌맹이는 이제 어떻게 하든 미리 돌탑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p.249 (『항아리』)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대로 햇볕이 계속 내리쬔다면 강물이 말라 더 이상 거센 풍랑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갈수록 강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강바닥이 훤히 다 드러나 보일 정도로 강물은 말라버리고 말았다. (...) 이제야말로 거센 물결에 고통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은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그러나 그날부터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인 정호승은 언젠가 말했다. 외로우니 사람이라고,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그 또한 그런 대로, 이 외로운 세계를 그렇게 살아가라고(〈수선화에게〉). 또다른 날엔 이렇게 말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만 꼭 넘어진다고, 넘어지고 있을 때, 넘어져도 좋다고 생각하는 때엔 넘어지지 않는다고(〈넘어짐에 대하여〉).

그는 아득바득 붙잡고 천년만년 불타올라야만 사랑임을 증명할 수 있는 이 세상에 말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랑이 있다고, 사랑이 끝난 곳에도 스스로 사랑이 되어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고(〈봄길〉). 그런 이유로 이 시인이 전하는 이야기는 어렵다. 다 퍼주고 다 놓아주면 대체 나한텐 뭐가 남느냐고 따져묻고 싶게 한다.

p.34 (『연인』) "푸른툭눈, 자제는 내가 천 년이 지났는데도 왜 미완성 부처인 줄 아는가? (...) 그건 사랑이 미완성이기 때문이야. 이 세상에 와성된 사랑이란 없어. 사랑을 완성시키려는 과정만 있을 뿐... 그 과정의 연속이 바로 사랑이야."

p.155 (『연인』) "난 네가 원하는 대로 너를 떠나보내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너와 함께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네가 떠나려 할 때 떠나게 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 난 너를 떠나보냄으로써 진정 다시 만나게 되기를 소원했던 거야."


남의 입에 든 부스러기까지 뺏어서라도 차지하고 움켜쥐어야 할 것을 다 놓아주라니. 잘나지 않아도, 내가 나의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된다니. 자기희생에, 반대로 가는 길에 답이 있다니, 큰 뜻이라는 것이 꼭 커다란 복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니. 지금 즉시 알 수도, 얻을 수도 없는 것을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다 잘 될 거라는, 아무튼 잘 하고 있다는 위로는 온데간데 없이 너 어리석다, 지금 가는 길이 옳은지 그른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악만 쓰고 있구나, 자 이게 정답! 하고 딱 짚어주지는 못할 망정 그저 고요히 바라보기나 하니 제법 서운하고 야박한 글이 아니라 할 수 없다.

p.207 (『항아리』) "실은 나도 너 때문에 내가 아프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 서로 한 몸인 줄 모르고 널 원망한 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다들 종이 되려고만 해. 다들 종이 된다면 이 세상에 종소리는 존재할 수 없는데도 말이야." "맞아. 나 같은 종메가 있어야 이 세상에 종소리가 올려 퍼지는 거야." 나는 그제서야 나 자신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p.238(『항아리』) "그렇게 울고 있을 게 아니라, 이제부터 기다릴 줄을 알아야 해. 네가 진정 다시 땅 위로 나가길 원한다면, 네가 진정 강물 속을 헤엄치길 원한다면, 이제 가슴속에 기다림을 하나 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항상 어둠 속에서 눈물이나 흘리면서 살게 돼. (...) 그건 네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이야. 네가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며 의지라 할 수 있지."


그러나, 그 시선에, 기다림에 큰 위안이 있다. 수없이 틀리고, 실패할 텐데요, 그래도 집착을 끊어내야 할 때가 있는 거지요. 그 깨달음에 늦었다는 질책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아둔하고 모자란 인간아, 너처럼 속된 존재가 없다, 매섭게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것들의 삶을 빌어 은근한 가르침을 전하는 다정에 위로를 받는 것이다.

깨닫기를 기다려주는 것, 무조건적인 순종이 아니라 책임질 자유를 주는 것. 언젠가 말했듯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고,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산산조각〉). 세 권의 이야기에서 그 이상을 배웠다. 평온한 마음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삶이란 이런 의미겠거니, 인생의 스승처럼, 모든 것을 품는 마음으로 지긋이 전해주는 가르침이 이런 이야기겠거니. 그렇게.

p.58 (『연인』) "파도가 부서졌다고 바다가 없어지던가? (...) 죽음도 그와 같은 것이다. 바다의 파도와 같은 것이다. 파도는 스러져도 바다는 그대로 있다. 죽음이 있다고 해서 삶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부이듯이 죽음도 삶의 일부다."

p.263 (『조약돌』) 그는 벼룩을 데리고 노는 노인의 천진한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일었다. 순간,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물을 먹으려고 바가지를 쳐다보는 순간, 물 위에 잔잔히 어린 미소, 그것은 그가 평생 찾아 헤매던 부처님의 미소 바로 그것이었다.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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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몰이꾼 이기 2 - 하계의 기지로 가는 길 펑 2
허진희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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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세상, 어딘가의 외딴 섬, 보드를 타고 바다를 따라 달리며 좀비와 함께 살아가는 이가 있다. 이름은 '이기'. 손에 들린 게 채찍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밝게 웃는, 신참내기이자 단짝인 '도나'와 이기는 늘 함께다. 작고 가난한 섬, 섬 안의 좀비들을 이리 몰고 저리 몰아 관리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좀비몰이꾼들.

섬을 지배하는 것은 죽음보다 두려운 권력자, '테'와 그의 일족들이다. 섬 전체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들의 존재가 법이자 그들이 있는 곳이 곧 무법지대이다. 이 세계의 좀비는 "대체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어떠한 욕구만이 남은 채 멍하니 비틀거리며 썩어갈 뿐.

p.54(1권) 사람들을 죽인 건 좀비만이 아니었어. 이 세계를 진짜 박살낸 존재는 바로 우리, 붉게 요동치는 혈맥을 감출 수 없는 적맥인들이지. 언젠가 저 멀리 시뻘건 노을을 뒤집어쓴 테의 요새를 바라보며 우 씨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다.

p.157(2권) 겁 많은 천성을 타인을 배척하는 행위로만 달랠 수 있는 비루하고 졸렬한 존재.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공부에는 한없이 게으른 헛똑똑이. 이런 자들은 자신의 악취나는 감정을 기회만 생기면 언제고 드러내기 마련이다.


테의 섬은 꽉 닫혀있다. 누구의 침입도, 탈주도 용납하지 않는 세계이다. 절대적인 권력 아래 누구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다름을 꿈꾸지 못한다. 권태로운 일상, 언제까지나 한결같을 것만 같았던 그 세계는 느닷없이 나타난 아이 '눈'과, 돌변하기 시작한 좀비들의 폭주로 무너져내린다. 권력의 아귀다툼과 자멸은 약자들의 삶마저 뿌리채 뒤흔들기 마련. 이기와 도나, 눈은 섬을 떠나야만 한다.

이별은 죽음만큼 고통스럽다. 평생을 살아온 자리를 떠나야만 하기에. 온통 낯설고 두려운 세계로 나아가야 하기에..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그들이 당도한 오아나의 해변. 낙원처럼 보이지만 또다른 절망이었다. 권태와 공포를 벗어난 곳에 무욕과 몰개성으로 통제된, 미래도 현재도 스스로에 대한 생각조차 잊어버린 채 멍하니 거니는 이들.

p.208(1권) "우정은 끊임없이 너를 시험에 들게 할 거다. 네가 그 얄팍한 우정을 지키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저들은 끝까지 널 몰아붙이겠지. 하지만 이기 넌 결국 아무도 지키지 못하고 모두를 실망시킨 채 괴로워하게 될 거야. 내 눈엔 네 미래가 빤히 보이는구나."

p.44(2권) "아나수는... 그런 쓸데없는 욕망을 모두 잠재워 줘. (...) 욕망이 없는 존재가 얼마나 멋진 줄 아니? 아나인들을 봐. 얼마나 평온한지. 아나인들은 근심, 걱정, 두려움, 그 어떤 것도 느끼지 않아. 자기 욕구를 채우려고 전전긍긍하는 일이 없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으니 아무 것에도 실망하지 않고."


평화 이면의 실상은 또다른 통제였다. 모든 자아를 거세당한 채 행복도 갈망도 사랑도 미움도 알지 못하는 마취상태. 이곳은 낙원일 수 없다. 생각하지 않으므로 원할 것이 없다. 불만하지 않으므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 이기와 도나, 눈이 다시금 안주하지 않기로 결정한 때, 눈을 아는 자를 만나 하계의 땅으로 향한다.

과연 그곳은 종착지가 될 수 있을까? 한순간에 어린 시절을 떠나온 이기 일행은 또다시 '말 잘 듣는 아이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이 그들을 온통 뒤흔들고 끝없는 삶의 길로 떠밀게 될까.

p.44(2권) 그래. 그거였구나. 내가 아나인들을 어색해한 이유. 그 안온한 미소에 거리감을 느낀 이유. 이기는 자기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욕망마저 제거된 아나인들을 복잡한 심정으로 휘둘러보았다. 보기 좋게 그을린 살갗과 고요한 표정만이 다를 뿐, 이기의 눈에 아나인들은 각성 전의 좀비들과 다를 바 없이 보였다.

p.64(2권) "그 열매를 처음 먹은 날 밤, 우린 모든 악몽에서 벗어나 깊이 잠들었어. 악몽 없이도 잠들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이렇게 편히 잠잘 수 있다고? 그동안 내가 겪은 고통은 무엇이었나 싶어서 좀 허탈할 정도였지." (...) 그럼 그렇지. 하늘의 뜻이라는 게 그리 시시할 리가 없다. 하늘의 뜻이라는 핑계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뿐.


작중 주인공인 이기와 도나는 퍽 다른 성격의 캐릭터들이다. 내가 어떤 쪽이냐, 하면, 낯선 사람을 믿지 못하는 점에서는 이기와 같다고 하겠다. 섣부른 신뢰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탕발림이라고 믿는 사람이기에. 모험은 두렵고 타인은 의심스럽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도나와 같이, 종내에는 이기가 그러하듯이, 기꺼이 끌어안고, 환대하고, 차마 떨쳐내지 못하는 시선에 또다른 해답이 있는 게 아닐까.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닫힌 세계를 부수고 '나'에게로 뛰어드는 '너'를 향해 달려가지 않을 방법 또한 알지 못한다. 그러니 기꺼이 끌어안을 수밖에. 이 모험에 함께하는 독자가 너를 구하는 일이 나를 구하는 일임을, 세계와 세계가 맞닿는 일이 모험이자 또다른 세계의 시작임을 깨닫기를. 부디, 마음껏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두렵고 위태로운 청춘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있는 힘껏 누리기를.

p.225 (1권) 이기는 자신에게 매달린, 이 작은 존재의 떨림을 느끼며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했다. 너를 구한 날, 나는 내가 너의 운명을 만들어 줬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젠 알아. 네가 내 운명을 바꿨다는 것을.

p.199(2권) 이기. 이기. 이기. 눈의 목소리가 뜨겁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오직 자기 이름만 소리 내어 말하던 아이가 난생처음 다른 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기는 이제 그 아이를 향해 질주한다.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있는 힘껏. 눈을 향해 보드가 날아오른다.


*도서제공: 북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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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몰이꾼 이기 1 - 테의 섬을 탈출하라 펑 1
허진희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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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세상, 어딘가의 외딴 섬, 보드를 타고 바다를 따라 달리며 좀비와 함께 살아가는 이가 있다. 이름은 '이기'. 손에 들린 게 채찍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밝게 웃는, 신참내기이자 단짝인 '도나'와 이기는 늘 함께다. 작고 가난한 섬, 섬 안의 좀비들을 이리 몰고 저리 몰아 관리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좀비몰이꾼들.

섬을 지배하는 것은 죽음보다 두려운 권력자, '테'와 그의 일족들이다. 섬 전체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들의 존재가 법이자 그들이 있는 곳이 곧 무법지대이다. 이 세계의 좀비는 "대체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어떠한 욕구만이 남은 채 멍하니 비틀거리며 썩어갈 뿐.

p.54(1권) 사람들을 죽인 건 좀비만이 아니었어. 이 세계를 진짜 박살낸 존재는 바로 우리, 붉게 요동치는 혈맥을 감출 수 없는 적맥인들이지. 언젠가 저 멀리 시뻘건 노을을 뒤집어쓴 테의 요새를 바라보며 우 씨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다.

p.157(2권) 겁 많은 천성을 타인을 배척하는 행위로만 달랠 수 있는 비루하고 졸렬한 존재.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공부에는 한없이 게으른 헛똑똑이. 이런 자들은 자신의 악취나는 감정을 기회만 생기면 언제고 드러내기 마련이다.


테의 섬은 꽉 닫혀있다. 누구의 침입도, 탈주도 용납하지 않는 세계이다. 절대적인 권력 아래 누구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다름을 꿈꾸지 못한다. 권태로운 일상, 언제까지나 한결같을 것만 같았던 그 세계는 느닷없이 나타난 아이 '눈'과, 돌변하기 시작한 좀비들의 폭주로 무너져내린다. 권력의 아귀다툼과 자멸은 약자들의 삶마저 뿌리채 뒤흔들기 마련. 이기와 도나, 눈은 섬을 떠나야만 한다.

이별은 죽음만큼 고통스럽다. 평생을 살아온 자리를 떠나야만 하기에. 온통 낯설고 두려운 세계로 나아가야 하기에..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그들이 당도한 오아나의 해변. 낙원처럼 보이지만 또다른 절망이었다. 권태와 공포를 벗어난 곳에 무욕과 몰개성으로 통제된, 미래도 현재도 스스로에 대한 생각조차 잊어버린 채 멍하니 거니는 이들.

p.208(1권) "우정은 끊임없이 너를 시험에 들게 할 거다. 네가 그 얄팍한 우정을 지키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저들은 끝까지 널 몰아붙이겠지. 하지만 이기 넌 결국 아무도 지키지 못하고 모두를 실망시킨 채 괴로워하게 될 거야. 내 눈엔 네 미래가 빤히 보이는구나."

p.44(2권) "아나수는... 그런 쓸데없는 욕망을 모두 잠재워 줘. (...) 욕망이 없는 존재가 얼마나 멋진 줄 아니? 아나인들을 봐. 얼마나 평온한지. 아나인들은 근심, 걱정, 두려움, 그 어떤 것도 느끼지 않아. 자기 욕구를 채우려고 전전긍긍하는 일이 없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으니 아무 것에도 실망하지 않고."


평화 이면의 실상은 또다른 통제였다. 모든 자아를 거세당한 채 행복도 갈망도 사랑도 미움도 알지 못하는 마취상태. 이곳은 낙원일 수 없다. 생각하지 않으므로 원할 것이 없다. 불만하지 않으므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 이기와 도나, 눈이 다시금 안주하지 않기로 결정한 때, 눈을 아는 자를 만나 하계의 땅으로 향한다.

과연 그곳은 종착지가 될 수 있을까? 한순간에 어린 시절을 떠나온 이기 일행은 또다시 '말 잘 듣는 아이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이 그들을 온통 뒤흔들고 끝없는 삶의 길로 떠밀게 될까.

p.44(2권) 그래. 그거였구나. 내가 아나인들을 어색해한 이유. 그 안온한 미소에 거리감을 느낀 이유. 이기는 자기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욕망마저 제거된 아나인들을 복잡한 심정으로 휘둘러보았다. 보기 좋게 그을린 살갗과 고요한 표정만이 다를 뿐, 이기의 눈에 아나인들은 각성 전의 좀비들과 다를 바 없이 보였다.

p.64(2권) "그 열매를 처음 먹은 날 밤, 우린 모든 악몽에서 벗어나 깊이 잠들었어. 악몽 없이도 잠들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이렇게 편히 잠잘 수 있다고? 그동안 내가 겪은 고통은 무엇이었나 싶어서 좀 허탈할 정도였지." (...) 그럼 그렇지. 하늘의 뜻이라는 게 그리 시시할 리가 없다. 하늘의 뜻이라는 핑계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뿐.


작중 주인공인 이기와 도나는 퍽 다른 성격의 캐릭터들이다. 내가 어떤 쪽이냐, 하면, 낯선 사람을 믿지 못하는 점에서는 이기와 같다고 하겠다. 섣부른 신뢰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탕발림이라고 믿는 사람이기에. 모험은 두렵고 타인은 의심스럽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도나와 같이, 종내에는 이기가 그러하듯이, 기꺼이 끌어안고, 환대하고, 차마 떨쳐내지 못하는 시선에 또다른 해답이 있는 게 아닐까.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닫힌 세계를 부수고 '나'에게로 뛰어드는 '너'를 향해 달려가지 않을 방법 또한 알지 못한다. 그러니 기꺼이 끌어안을 수밖에. 이 모험에 함께하는 독자가 너를 구하는 일이 나를 구하는 일임을, 세계와 세계가 맞닿는 일이 모험이자 또다른 세계의 시작임을 깨닫기를. 부디, 마음껏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두렵고 위태로운 청춘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있는 힘껏 누리기를.

p.225 (1권) 이기는 자신에게 매달린, 이 작은 존재의 떨림을 느끼며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했다. 너를 구한 날, 나는 내가 너의 운명을 만들어 줬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젠 알아. 네가 내 운명을 바꿨다는 것을.

p.199(2권) 이기. 이기. 이기. 눈의 목소리가 뜨겁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오직 자기 이름만 소리 내어 말하던 아이가 난생처음 다른 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기는 이제 그 아이를 향해 질주한다.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있는 힘껏. 눈을 향해 보드가 날아오른다.


*도서제공: 북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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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홀리 : 무단이탈자의 묘지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2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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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와인드 대상 축소 법령이 통과된 지금, 사람들은 '언와인드 대상'들을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조율'이고 '개정'이었을까. 2권에서는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분리해낼 수 있다고, 나아가 초월적인 존재를 창조해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등장한다. 과연 믿음이 무엇이길래, 존재가치에 순위를 매길 수 있다고 여기게 하는 걸까.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에 집착하는 자들은 언제나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마치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 우리의 삶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것처럼. 반면에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에게 논리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야 한다는 것에 이유는 필요 없으니까(신철규 저, 『심장보다 높이』, 남승원 해설 중에서)".

p.56 「용서해다오.」 부모는 그녀에게 애걸하고 또 애걸했다. 종종 눈물도 흘렸다. 「우리가 저지른 이 일을 용서해 주렴.」 미라콜리나는 그들을 용서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부탁이 혼란스럽기는 했다. 미라콜리나는 언제나 십일조가 되는 것이 축복이라 생각해 왔다. 아무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의 운명과 목표를 안다니. 어째서 부모는 그녀에게 목표를 주었다는 이유로 미안해하는 걸까?

p.130 수천 명의 열일곱 살짜리들이 하비스트 캠프에서 석방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는 분명 사방에 승리감이 넘실댔다. 그건 인간의 연민이 거둔 승리, 언와인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위대한 승리였다. 하지만 그 승리감에 취한 사람들은 정작 언와인드라는 문제 전체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언와인드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제 다른 곳을 보며 자신의 양심이 깨끗하다고 믿을 수 있었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줄어드니 갈망은 커지고 '가격'은 상승하리라는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급기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죽어서 공급되어야 할 이유를, 누군가가 인간이어서는 안 될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악착같이 만들어낸 논리가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행동한 사람들을 엉뚱하게 "폭도"라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앞의 책)."

그러므로 그들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는, 누군가가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분해되지' 않게 하려는 이들은 사회의 질서를 해치고, 나아가 악에 가담하는, 아니, 악 그 자체인 존재가 된다. 살겠다는 이유만으로, 죽지 않게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수요'가 있는 한, 욕심이, 요구가 있는 한 이 지옥은 끝날 수 없는 걸까?

p.370 코너는 세상이 늘 지금 같았던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평생 세상이 한 가지 방식으로만 존재해왔기에 그게 달라질 수 있다고 상상하기란 어렵다. (...) 병든 사회가 자신의 병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건강했던 시절을 기억조차 못 할 수도 있을까? 지금의 상황을 반기는 사람들에게 기억이라는 것이 너무 위험한 것이라면?

p.382 우리는 언와인드를 멈출 수 없어. 제독이 언젠가 말했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많은 아이를 구하는 거다. 하지만 오래된 뉴스 보도를 보고 난 뒤 제독의 말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쩌면 언와인드를 끝낼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과거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1권 말미에 간신히 도래했던, 지극히 부서지기 쉬운 피신처는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찾고자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증오와 혼란에 잠식되어간다. 낙원은 붕괴되었고, 사회는 여전히 그들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급기야, 누군가는 새로운 인간을 창조해내는 지경에 이른다.

작가는 1권에서의 질문을 계속해 묻는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단순히 피와 살로 이루어져 분해 가능한 고깃덩이가 아니라면,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근원, 이를테면 영혼 같은 것이, 과연 어디에서 생겨나 어떻게 존재하는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p.96 「모든 부위는 최고이자 최상의 언와인드에게서 직접 골라낸 거야. (...) 그 가엾은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기에는 너무 불량했어. 하지만 지금은 분열된 상태에서나마 너를 통해 드디어 완성됐지!」

p.236 하지만 그에게 영혼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기자 회견에서 받았던 공격은 여전히 그를 괴롭힌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인간의 영혼이 나뉠 수 없는 거라면, 그의 영혼은 어떻게 그를 있게 한 아이들의 부분의 총합이 될 수 있을까? 그는 그들 중 하나도 아니고, 그들 모두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


이번 권의 또다른 핵심은 오만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내 뜻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자식이라는 '실패'를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 변치 않을 신념이 있다고 믿는 것, 내가 타겟이 아닐 뿐인 세상이 여전히 안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사람을 '수확'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신념만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 스스로의 삶을 타자의 뜻에 의탁할 수 있다는 믿음. 존엄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

뜻대로 이루어지리라. 그 모든 믿음이, 주어진 믿음에 의심 않는 순종이 모두 오만일 것이다. 내일을 빼앗긴 '몸'들의 내일은 어떻게 될까. 이 세계의 끝은 정녕 익숙하고 평화로운 절망일 뿐일까. 누구를 위한 안전이고, 문명이며, 합의인가. 이야기의 반을 지난 시점에서 묻는다. 말끔하게 표백된 이 세계에서 여전히 인간이어야 할 이유는 대체 무엇에 있겠느냐고.

p.268 「그러라고 해, 레브, 난 죽고 싶지 않아. 부탁이야, 레브.」 마커스가 애원한다. 「나한테 언와인드의 신체 부위를 주게 해...」 레브는 형의 손을 꽉 쥔다. 「알았어, 마커스, 알겠어.」 그렇게 레브는 운다. 형이 방금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증오하며.

p.586 「바깥의 상황이 바뀌고 있어. 사람들이 변하고 있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을지 몰라도, 분명 변화는 일어나고 있어. 나는 매일 그걸 봐. (...) 세상에는 특별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어.」 칼라는 둘에게 다시 윙크한다. 「지금 너희는 내게 그런 특별하고 평범한 사람이 될 기회를 준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너희한테 고마워해야지.」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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