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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앤더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막막하다. 갑갑하고. 영화, 드라마, 만화, 소설... 매체를 가리지 않고 회귀며 빙의가 유행한단다. 새삼스레 그러는 것도 아니고 제법 오래된 소재란다. 계보도를 그려도 충분할 그것을 더듬어보노라면 지금의 기억과 지식을 가진 채로 다시 도전한다면 더 잘 살 수 있을텐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텐데, 그 때 그 괴로움을 조금은 수월히 넘길 수도 있을 것도 같은데. 미련에 가까운, 그런 욕망은 인류보편사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야 마는 것이다.
낡고 지친 어른, 닳아빠진 어른이 만드는 세상은 하나같이 청소년기를 아름답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낭만의 시기로 그려내는데 정작 우리네 아이들은 어떤 몰골인가. 하이틴 로맨스처럼 가슴떨리는 첫사랑에 울고 웃는가? 방과후 부활동으로 잊지 못할 추억을 쌓는가? 무모한 도전에 덤벼들고 마음껏 미래를 꿈꾸는가? 아니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대다수 학생들의 삶은 공부, 경쟁, 입시 이 세 단어로 대강 설명되지 않는가.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서 학원이나 과외로, 수업 끝나면 자습, 자습 끝나면 한밤중, 조금 눈붙이고 나면 새벽같이 등교.
식용견, 불법으로 감금되고 사육되어 도축되는, '시장 보신탕집' 개들은 소리에 예민해지면 짖느라 살이 빠지니 부러 고막을 터트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좁은 우리에서 스트레스로 서로를 공격하면 '상품가치'가 떨어지기에 이빨과 꼬리를 절제당하는 돼지도 다를 바가 없다. 청춘입네 미래네 추켜세우는 청소년들을 대하는 현실이 이와 다를 바가 있는가.
우정의 소중함과 청춘의 아름다움을 외쳐봤자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간다"느니,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는 말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세상에 친구가 어디 있는가. 생활기록부 한 줄에, 시험점수 1점에 기십년의 미래가 오락가락 하는 곳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가. 한창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아야 할 시기에, 12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온통 쏟아부어 결정짓는 것이 겨우 대학이란 말인가. 겨우, 겨우 그것때문에 애써 태어나 자라는 이들이 서로를 향해 눈을 홉뜨고 경계하지 않으면 영영 패배자로 살아야한다고 여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단 말인가.
주인공 해솔은 한국의 중심, 그중에서도 가히 '교육의 성지'라고 일컬어지는 대치동 수험생이다. 가장 가까운 친구도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스토리'가 온통 입시에 맞춰진, 부모까지 입시에 올인하는 열성적인 학생이다. 그마저도 편하지만은 않다. 미묘한 신경전, 견제, 기싸움은 기본인 그런 사이. 친구라고는 하지만 정말 친구가 맞는걸까, 마음 한구석이 껄끄러운 그런 사이.
“스토리. 우리한테 필요한 건 성적이 아니라 스토리야. 대학에 가려면 학생부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있어야 돼. 그러니까 요즘은 공부만 잘해서는 안 된다는 말들을 하는 거야.”(p.11)
엄마의 재혼으로 졸지에 가족에서 떠밀려나와 호주로 유학하게 된 해솔은 한인 홈스테이 가정에 머물지만 자리잡을 생각도, 동갑내기인 주인집 딸 클로이와 친해질 생각도 없다. 그저 악물고 공부만 열심히 하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 지금까지 살아온대로, 그렇게.
엄마는 해솔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 보였다. 해솔이 호주에만 있으면, 한국에 돌아가서 엄마의 행복한 재혼 생활에 걸림돌이 되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된 것 같았다.(p.144)
주인공 클로이는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 온 학생이다. 이유는 몰라도 그래야 하니까, 착한 딸이고 엄마의 삶 또한 입시에 걸려있으니까,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엄마가 애걸해 얻어낸 우등생, 명문대 튜터에게 과외를 받고, 그렇게 의대에 가야한다고 믿는 조용하고 착한 아이. 왜 그래야만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할 기회도 다른 기회도 없었으니 그저 그래야만 하는 그런 아이. 그동안 상냥함을 내밀면 이용해먹는 친절이나마 돌아오던, 자기와는 경쟁할 수 없는 그저 그런 하숙생들과 다르게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무심하고 낯선 해솔을 만나며 클로이의 일상이 뒤틀린다. 혼란스러워진다. 자꾸만 저 아이를 미워하게 된다. 해솔과 친해지고 싶고, 그를 이해하고 싶은 동시에 밉고 싫고 자신을 불안하게 한다.
클로이는 멍하니 해솔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엄마가 한창 보고 있는 드라마를 떠올렸다. 드라마에서는 시드니 도심에 가야 볼 수 있을 크기의 건물이 학원이었다. 그 건물 옆도, 그 옆도 모두 학원 건물이었다. 깜깜한 밤까지 학원의 불빛이 환했고, 건물들 앞에는 학원 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고등학생들은 한밤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도 자신을 감금한 채 공부를 했다. 가르친다기보다 학대하는 것에 가까운 과외 선생에게 수업을 받고 싶다고 울기까지 했다.(p.51)
“저거 봐라, 한국 애들은 저렇게 공부해. 넌 쟤들에 비하면 맨날 놀고먹는 거야.”
Selective School. 선별된 학교. 선택받은 학교. OC반에서도 우수한 학생이고 학원 셀렉티브 준비반에서도 상위권이던 클로이가 셀렉티브 스쿨 시험에 떨어진 건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일까? 누구로부터?(p.115)
주인공 엘리는 호주에서 자란 한국인이다. 엄마도 아빠도 나라도 내가 한국인이라는데, '원래는 여기 있으면 안 될' 신분이라는데 한국어라고는 조금도 모른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호주에서 자랐고, 당연히 호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불법으로 개조한 차고에 세들어 살지만, 마약 판매로 용돈벌이를 하지만, 매년 익스펙션 때면 온가족이 세간살림을 싸들고 밤을 보낼 곳을 찾아야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게 다 나를 위해서란다. 내가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비자를 받아내기만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단다. 그걸 위해서.
매일 혼자 있었다. 그런데도 엄마와 아빠는 모든 게 엘리 때문이라고 했다. 엘리 때문에 집에 들어올 시간도 없이 힘들게 일을 하는 거라고. 엘리를 위해. 엘리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혼자 학교에 다니도록 하기 위해.(p.190)
모든 것이 너무나 간단하다는 듯 엘리 엄마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엘리가 (...) 그 많은 일이 이미 다 준비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 교실마다 가득 들어차 있는 애들을 보면, 부모의 욕망을 대리 충족해 주는 것을 자기 장래 희망으로 굳건히 믿고 공부하는 애들을 보면 엘리의 엄마 아빠가 바라는 것이 저런 애들이고, 결국 문제는 자신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p.222)
김혼비 작가의 추천사처럼 "꺼지지 않는 산불이 호주 남부를 집어삼키듯 하루하루 잿더미로 변해가는 세 명의 10대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정말이지 까맣게 타들어갔다". 자기만의 이야기도, 인생도, 고민할 기회와 마음놓고 자랄 환경마저도, 단 한번도 쥐어보지 못한 그것들은 연대의 싹을 잘라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여성이 서로를 향해 보내는 애정, 서로를 결국 사람으로 인정하기에, 감히 해쳐져서는 안될 존재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가능한 그 마음은 여전히 중심을 세우지 못하고 휘청이는 모든 이들을 눈물짓게 할 것이다. 그것이 단지 동정에 그치지 않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자 더이상 이렇게 잃을 수는 없다는 간절한 외침이 되기를 바란다.
깨질 것만 같은 세 사람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어쩌면 같은 이유로 처절하게 외롭고 지친 세 사람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독자를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아니, 차라리 한번은 질러야 한다고, 아니, 아니. 애원하고 갈등하게 만든다.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 까끌하고, 위태롭고, 또 찬란한 동시에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모르게 한다. 같은 시기, 같은 고통을 겪어봤기에 모른 체 할 수가 없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력하고 순진무구한 소녀들에 불과한가, 그럴리가. 술도 마시고 약도 하고 자퇴에 기물파손에... 별 걸 다 한다. 그러나, 그럴 만한 나이가 아닌가. 그럴 수 밖에 없도록 궁지에 궁지로 몰리지 않았는가. 이해해야 하지 않겠는가. 익히 알려진 문구가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부서지기 전에, 숨 쉴 틈도 없이 조여오는 세계를 부수고 날아가는 이들을 응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 소설은 응원인 동시에 위로이다. 웃을 수 있는, 행복할 수 있는 세계로 날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연대와 격려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잊지 않기를. 나도, 당신도. 행복해지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웃고, 또 웃었다. 분명히 둘은 연결되어 있었다. (p.182)
언제까지라도 계속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같이 울 수도 있을 것 같고, 왜 울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웃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시간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다. 둘은 신이니까. 해솔과 클로이는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시간 위에 서 있었다. 버림받고 나서 신이 되어 버린 둘은 그렇게 무한한 세계를 바라보며 킬킬거리고 웃었다.(p.214)
그때 해솔의 머릿속에서 구슬 목걸이가 끊어졌다. 몇 년에 걸쳐 모아온 구슬이 산산이 흩어졌다. 침대 아래로, 서랍장 뒤쪽으로, 문틈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떤 구슬도 아쉽지 않았다. 해솔은 자신이 구슬 목걸이를 직접 끊어버렸다는 걸 알았고, 그게 중요했다.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서사였다.(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