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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 함께 우는 존재 여섯 빛깔 무당 이야기
홍칼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평점 :
*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시작에 앞서, 무속 및 민간신앙을 포함한 모든 유신론자들에게 양해를 구해야겠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고민해봤지만 강경한 무신론자이자 초월신 신앙에 부정적인 사람이다, 나는. 이는 종교의 순기능이나 신에게 의지하는 마음에 대한 부정과는 다르다. 나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를 자청하는 모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신의 이름을 빌어, 혹은 공유하는 믿음과 가치에 기대서라도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결국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일부가 공유하는 믿음에 불과하지 않는가.
이쯤해서 잊을만하면 한번씩 꺼내드는 모 평론가의 글을 떠올려보자.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손에 쥐고 환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은 다른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나또한 그렇다. 초월적인 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내세나 거대한 순리에 대한 믿음을 비웃을 권리가 아니라 기댈 존재가 없기에 사람이 사람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져야할 의무이다. 그 무게를 잊지 않고서야 비로소 믿음의 체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짊어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굿을 하고 부적을 쓰고 치성을 드려 복을 얻으라는 '팁'이 아니라 우리 곁에 직업인으로서,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여러 무속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이다. 영화 "만신"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진 고 김금화 만신의 제자부터 성소수자, 시각장애인, 나라의 이름으로 가해진 폭력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무당, 무당을 위한 무당 등 "무당"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무속인들과의 문답을 통해 그들의 내력과 세계관을 듣는다. 그 사이사이 저자가 독자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통해 읽는 이를 곁으로 부른다.
어쩌면, 여기서만은 당신의 이야기를 놓고 가도 좋을 거라고. 우리는 속죄도 회개도 요구하지 않으며 그저 큰 흐름이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의 조언을 줄 수 있을테니, 천지만물에 깃든 신에게 당신 몫의 기원을 전할테니 마음 편히 머물다 가셔도 좋으리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아 아 젊은 사람들이 이래서 무속신앙을 찾으러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여러 에세이를 읽고나서 무속신앙에 대한 믿음이 생겼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한번쯤 타로나 괘를 뽑아 나온 결과에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아니다. 여전히 본인도 믿지 않는 무형의 힘에 영험한 효능이라도 있는 양 퍼트려 돈과 시간을 갈취하는 일에는 분노가 치솟고 저것이 사회악이지 다른 것이겠냐고 화를 내지만 어쩌겠는가. 무엇에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 스스로가 믿는 축복과 기원의 힘을 타인을 위해 쏟아붇고 나누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끈질기게 존재해왔고 나는 그것을 사랑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신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신의 품안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과 살아가는 방법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사람 위에도 아래에도 다른 것이 없으니 귀하고 천한 것이 따로 없어 모두를 각자의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존재로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나의 좁은 식견에 드넓은 세계를 끼워맞추지 말자고, 모든 시간 모든 대상에게서 배우기를 멈추지 말자고, 다만 그것이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믿는 오만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잊지 말자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맑은 물을 떠놓고 신령의 이름으로 기원했을 이들에게서 배운다. 그렇게 살아가는 마음을 잊지 말자고.
함께 읽기를 권하는 책
1. 로렐 켄달, 『무당, 여성, 신령들』 (일조각)
2. 홍칼리, 『신령님이 보고 계셔』 (위즈덤하우스)
3. 손노선, 『한국무당의 신들림과 무업의 사회적 실천』 (민속원)
4. 도우리,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