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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무해하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옥성아.채한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평점 :
오늘은 위즈덤 하우스에서 나온 《다정하고 무해하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듭니다》라는 책을 가져왔습니다. 알라딘에서 경제경영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에세이에 더 가까운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표지에 '취향의 시대가 선택한 콘텐츠 성공의 비밀'이라는 문구도 보고, 콘텐츠 기획 및 제작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는 책인가 하고 읽었는데,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제작자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엮어 쓴 부분이 더 많더라고요. 그래서 더 에세이 같고, 그만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6개의 큰 목차로 구성되어 있고, 이 목차에서 저자들이 <고막 메이트>라는 디지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며 어떤 철학을 중점으로 잡았는지 키워드를 뽑아 설명을 합니다.
"진정성, 관계성, 공감, 협동"이라는 네 가지 제작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콘텐츠 <고막 메이트>는 "시청자와의 끈끈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위로와 공감의 세계관을 확장해나가는 '빛이나'는 콘텐츠로 성장"(p.203)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막 메이트>는 SBS 디지털 미디어 스튜디오 '모비딕'과 KT의 OTT 서비스 'seezn'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동 작업으로 제작되어 유튜브와 seezn에 스트리밍 되고 있는 디지털 웹 예능입니다. '뮤직 토크쇼'라는 형식으로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네 명의 MC와 게스트가 위로와 공감을 건네고, 그에 맞는 노래를 불러주는 새로운 형식의 예능인데, 이 책을 읽고 찾아보니까 캡처 본으로 SNS에서 유명했던 짤의 출처가 <고막 메이트>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옥 피디님이 이러한 콘텐츠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엄청 눈에 들어왔어요. 요즘, 검경 수사권 때문에 살짝 이슈에서는 벗어났지만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관한 이슈가 떠오르는 현실을 떠오르게도 해줬고요.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해 부모님의 차를 타고 등하교 하던 한예종 동기와,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를 떠올린 그는 다큐멘터리 수업에서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다큐를 만들기로 하고 휠체어를 타고 신이문역 종각역까지 가기로 합니다. 이러한 경험으로 "내가 피디가 된다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이 진하게 와닿았던 글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 유튜브나 디지털 플랫폼에서 성공 요인을 떠올리라고 하면, 일단 '자극적'이며 '흥미 위주'의 '짧은' 콘텐츠를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나 현재는 고자극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콘텐츠에 대한 피로도가 상승하고 있을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 인스타, 페이스북 같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소식을 듣는 사진 기반 SNS에서 네이버 블로그 같은 조금은 느리게 흘러가는 글자 기반 SNS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 틈을 잘 겨냥한 콘텐츠인가? 했는데, 제작 전부터 콘텐츠에 대한 철학이 확실하게 정해진 채로 들어갔다는 점에서 꽤 놀라웠어요.
그리고 첫 번째 챕터에서 올레 5G를 광고하기 위한 콘텐츠로 기술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콘텐츠 기획은 아예 들어 엎고 나서야 <고막 메이트>를 만들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할까?"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제작자가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 저는 사실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는데 사실 기획 단계에서 가장 잊히기 쉬운 문제더라고요. 가장 근본적이기 때문인가 봐요.
이 책에서도 기획 단계에서 아주 세부적으로 특정 지은 가상의 소비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웹 예능 <고막 메이트>의 가상의 시청자는 "입사 3년 차 27세 직장인 여성"(p.55)입니다.
출판 기획에 관한 강의를 들었을 때, 편집자 선생님들도 항상 기획 단계에서 아주 구체적인 타깃층을 정하고 한 명의 가상 인물을 창조해서 그 인물의 취향에 맞게 만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인물이 기획 의도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게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책으로 교차 검증된 이야기라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여 봅니다.
저자들이 <고막 메이트>라는 프로그램으로 쟁취하고자 하는 가치가 구체적으로 존재했기에, 이들은 자극의 대명사인 '연애, 섹스, 술'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프로그램의 지향점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을 읽었을 때, 저는 사실 어느 정도 이러한 소재를 제외하는 것도 가치를 관통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예를 들어 SNS에서 한참 '섹스로봇을 소재로 하는 SF소설은 더 이상 쓰지 말자'라는 명제로 여러 의견이 등장했을 때. 저는 당연히 '이제 그 짓거리 좀 그만하자'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반대의 의견들을 들어보니 무조건적으로 소재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요.
순한 맛, 자극적이지 않고 무해한 콘텐츠이므로 '자극적인 소재'를 아예 다루지 않겠다.
라는 주장에도 당연히 동조를 하지만, 그럼에도 다뤄지는 '방법'에 대해 논의가 급선무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SF 소설에서 등장하는 섹스 로봇이라는 소재는 일단 자극적이며, 대부분의 작가들은 혐오를 표현하기 위해 이 소재를 사용하고, 혐오적으로 이용되며 독자에게 불쾌감만을 불러 일으킬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라고 주장합니다. 혐오 없이 다룰 수 있느냐의 문제는 이제 각각 작가들의 역량 문제가 되겠죠.
이 소재로 다뤄질 수 있는 가치가 존재하는가? (제 의견은 이곳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사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소재의 사용여부보다는, 그 소재를 다루는 방향의 문제잖아요. 사실은 그 지점을 전혀 관과하게 된 논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해한 위로와 공감의 콘텐츠에서 다루는 자극적인 소재는 다루는 방식을 수정하며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어두운 주제는 어떻게 될까?
웹예능에서 다루지 않는 어렵고 무거운 소재를 꺼리지 않고 끄집는 이 제작자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라는 생각으로 두 번째 챕터를 읽었습니다.
[이 거대한 위로 퍼레이드 앞에서]에서는 '친족 성폭행'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웹예능, 그것도 뮤직 토크쇼에서 전혀 다루지 않을 듯한 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저자들은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와닿는 콘텐츠인 만큼 다양한 대중들로부터 쏟아지는 유대를 기반으로 한 '위로'와 '공감'에 초점을 맞춥니다. 아마도 실시간으로 사연을 보낸 시청자도 대중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인만큼 제작자들도 걱정을 안고 공개했다고 하는 에피소드인데, 그럼에도 사실 이 반응은 시청자 개개인에게 내제된 윤리의식만 믿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인터넷상에서 퍼져가는 속도와 방향성을 생각한다면, 저는 무언가 아직도 무섭다고 생각될 거 같기는 하더라고요. 아무리 제작자, 편집자들이 프로그램 가치에 맞는 편집방향으로 콘텐츠를 생산해 제공했다고 해도, 그 영상 자체가 다시 조작되어 유포되기 너무 쉬운 세상이니까요..
그럼에도 저자들은 이 '위로 퍼레이드'를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이후 세 번째 챕터에서는 이제 가장 중요한, 소비자층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흔히 말하는 '팬덤 형성'의 3단계를 이야기합니다.
1. 이름 부르기
2. 유대감 쌓기
3. 선순환 커뮤니티 만들기
이렇게 세 단계로 구성되는대요. 역시 이름의 힘이 중요하죠. 개인들에게 소속감을 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이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면, 당연히 그들이 점유한 커뮤니티 속의 관계들도 선순환이 되겠죠? 게다가 충성도 높은 팬덤은 자발적으로 마케터의 역할, 확성기의 역할을 해주니, 제작에서 팬덤형성이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다음 챕터에서 공동 제작사들과의 협력과 협동을 중시해야한다는, 기본적인 이야기를 이어 합니다.
콘텐츠 제작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기 보다는, <고막 메이트>라는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무자들의 노력과 철학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어요.
어렵지 않기에, 콘텐츠 제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이 처음 읽기 좋은 책이고, 또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꼭지에 실질적인 콘텐츠 제작 팁도 포함되어 있기에 한 번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또 이 책을 읽고 <고막 메이트>를 찾아 보기도 했고요.
참, 콘텐츠 만들기도 어려운데
성공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이 시대에 나는 또 어떤 콘텐츠들을 골라서 보는지 조금 되짚어 보는 책이었던 거 같아요.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