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운명의 두상'에서는 도입으로 '셜록 홈즈'라는 도시 설화folklore를 이야기합니다. "텍스트에서 빠르게 분산(또는 확산)되어 다른 작가들도 이를 차용"(63쪽)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텍스트를 벗어나 "대중의 상상 속에 위치"(같은 쪽)하는 존재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도입에서는 셜록 홈즈가 '아서 도일의 소설 속 주인공'에서 벗어났다, 텍스트 밖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아서 도일의 소설은 '원천'이나 캐해를 위한 "고전적인 레퍼런스"가 됩니다. ㅋㅋㅋㅋ좀 너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머릿속에 베이커 가 221번지 B호의 인테리어가 주는 이미지는 아마 비슷할 것입니다. 셜록 홈즈의 집이라고 했을 때 그 집을 구성하는 오브제들은 '과학 실험 도구가 놓인 탁자, 바이올린, 범죄 기사가 실린 스크랩북, 파이프' 그리고 2장의 주제가 되는 '홈즈 자신의 흉상'입니다.
대븐포트는 탁자에 놓인 흉상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를 셜록 홈즈에서부터 "피카소와 브라크의 전형적인 큐비즘 정물화의 구성"(65쪽)에서 "중세 전통의 성 제롬의 서재"(같은 쪽)까지도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때부터 진짜 무서워졌습니다. 어디까지 가겠다는 것입니까.
사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부서졌다'라는 특성입니다. "지난 백 년 동안 고대 미술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산산조각 부서진 모습"(67쪽)이었으며 "부서진 파편은 바로 과거라는 조건 자체"(같은 쪽)입니다. 고대의 토르소는 얼굴, 팔, 다리가 없는 몸통뿐입니다.
여기서는 '너무 흔해진 흉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너무 흔한 '나폴레옹 흉상'은 상징성이 고갈되며 의례의 장소에서 신성함을 주던 예술품에서 집안의 장식품으로 흉상을 부순 범인의 편집증적 성향을 나타내는 소설적 장치로 사용됩니다.
벤야민은 이에 대하여 "실내(그러니까 가구를 들여놓은 실내)는 우주일 뿐 아니라 사적인 개인이라는 사건이다. 거주한다는 것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라며 탐정 소설이 19세기 실내의 산물"(72쪽)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소설 속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 인물이 거주하는 실내의 사물을 하나하나 읊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어 2장에서는 에드거 엘런 포의 '몸이 없는 머리만 있는' 상태의 인물, 이어 참수당한 신화에서 몸과 머리를 드디어 동시에 갖춘 사람 레오포드 블룸(제임스 조이의 1922년 소설 『율리시스Ulysses』의 주인공)을 만들어냅니다.
참수의 신화를 "세례 요한의 컬트"(102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척 신랄합니다.
"두상이 인류의 운명의 상징으로 출현한 것은 동물의 형상을 통해서"(103쪽)였는데, 이는 능력이 극대화되기를 원하는 신체 부위를 동물의 형태로 변환하는 것(머리가 새의 형상이라던가)으로 나타났습니다.
언제나 메멘토 모리를 떠오르게 하는 몸 없는 잘린 머리는 우리의 전통이며, 이 "정물이 지속되는 한, 두상이 우리의 운명"(107쪽)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