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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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부수는 해러웨이,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오늘의 책은 도나 J. 해러웨이의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입니다. 


이 책은 해러웨이의 1978년에서 1989년까지 쓴 논문 10편을 모은 책입니다. 해러웨이의 가장 유명한 글인 <사이보그 선언문> 또한 이 책의 3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라는 개념을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은유로 사용합니다. 특히 해러웨이가 집중하는 부분은 '경계'인데, 기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위계 관계를 해체하자는 주장이 주를 이룹니다. 


1부에 수록된 논문은 "원숭이와 유인원을 연구하는 과학에 내포된 생명정치적 서사에 주목"(11쪽)하고 있습니다. 이때 기존의 생물학, 동물사회학의 이론을 살피고 이때의 과학이 

어떻게 부계를 계승하며 이 과학 연구들과 당시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만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습니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서사를 통하여 남성 중심적인 생물학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해러웨이는 여성들의 '이종어(heteroglossia)'에 대하여 말하는데, 


"인간에게 언어는 실재를 생성하는 데 주요한 기능"을 하며 "권력의 맥락 속에서 실재를 생성"(142쪽)한다고 말합니다. 이름짓기는 언제나 권력의 특권이었기에, 이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름짓기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렇다면 세상을 전혀 인식할 수 없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4장.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생물학 이론의 창세기'가 재밌었는데, 이 논문의 도입부에 해러웨이 특유의 여러 학문을 꿰뚫어 사회주의 페미니즘적 입장을 주창하는 논리구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길버트와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밀턴의 딸들'(에밀리 브론테와 메리 셸리)을 가져와서 '밀턴의 과학적 딸들, 밀턴의 페미니스트 딸들'이라고 풍자해서 쓰는데, 유쾌함에 웃음이 났습니다. 


"발화의 조건(terms of speech)을 설정하고자 경합하는 수사학적인 전략은 자연과학 분야의 페미니스트 투쟁의 핵심이다"(130쪽)라는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에게 받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의 시작은 이 언어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라는 점, 솔직히 여성주의적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처지에서 깊이 공감했씁니다. 


3부에서는 '타자'의 존재를 정의하고 그들을 재현하려는 논문들이 실려 있습니다. "나선의 춤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328쪽)는, 해러웨이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문장으로 끝나는 <사이보그 선언문>이 이 3부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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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를 읽기 전과 후의 글쓰기에 스스로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러웨이가 끊임없이 말한 '사이보그, 키메라가 사용하는 이종어'라는 개념으로 왜 내가 사회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사용할 언어가 없는지를 이해했고, 저는 이제 해러웨이의 단어와 문장, 논리를 인용하지 않고서는 글을 쓰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분법의 경계를 사이보그라는 은유로 해체하고, 그 개념을 '느슨한 그물망'으로 엮어내 타자의 존재를 포용하는 하나의 단어로 만들었다는 점과, 이런 이론의 기반이 해러웨이가 가진 생물학, 영장류학과 같은 언제나 남성중심적이던 생물학계(특히 진화 이론에 있어서 남성 중심 시각이 주류라고 생각하는데)의 사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벼락 맞은 것처럼 눈을 뜨게 해줍니다. 특히 일원론적 합일이 아닌, 해체 자체를 긍정하는 시각도 제게는 큰 새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질적인 이종어의 집합으로서의 사회. 상상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해러웨이가 새로운 사이보그의 신화로 제시하는 페미니즘 SF들도, 계보와 신화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꼈던 저한테 정말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열쇠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해러웨이가 많이 인용한 마지 피어시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를 읽고 있습니다. (솔직히 러스, 《여성인간》 번역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3년의 세상은 SF 앞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렇다면 사이보그로서의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해러웨이가 필수적이지 않을까, 이미 모두가 사이보그가 되어버린 현재에 계보 없는 이종어를 사용하는 사이보그이자 키메라이자 잡종이자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다! 해러웨이다! 라고! 주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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