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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 -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 ㅣ Philos 시리즈 24
데니스 덩컨 지음, 배동근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평점 :
'인덱스'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저는 책을 읽을 때 가끔 붙이는 스티커 인덱스가 떠올랐고,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라는 문안을 보고서야 아! 찾아보기! 를 떠올렸습니다.
사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든 생각은 "색인에 대해서 할 말이 이렇게도 많은가?"였는데, 이 책은 장장 488쪽의 볼륨을 자랑합니다. 저자 덩킨을 따라 고대의 석판에서부터 구글 검색창까지 이르다 보면 생각보다 방대한 색인의 역사와 현재의 우리가 가진 문제점들이 맞닿아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덱스》는 사실 표지가 귀여운데, 보통 3단으로 색인을 구성하기 때문에 삼단의 밑줄이 있고, 한 쪽 방향을 가리키는 손이 하나 있습니다. 옆에 두면 당장이라도 옆의 책장을 열라는 압박으로도 느껴지는데요, 일단 표지 은색 홀로그램 박이 눈길을 끌어 잡습니다.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책에서 색인을 눈여겨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등장하는 '주제 색인'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원고 안에서 이해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고, 주제 색인에 대한 비판점을 읽으면서 계속 용어 색인의 개념으로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번역서 아닌 한국어로 쓰인 책에서 색인을 자주 찾아보진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안 찾아본 것일수도……)
초반에 용어 개념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용어 색인은 "빈틈 없이 원문에 충성스러운 색인"(26쪽)을 말하고
주제 색인은 "원문과 원문을 읽으려는 독자 사이에서 그 충성도를 적절히 배분하는 색인"(같은 쪽)입니다.
예시가 없으면 색인을 F3 찾기 기능과 같이 사용하는 저로서는, 주제 색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저자도 이 사실을 잘 알았는지 바로 뒤에 "극단적인 주제 색인"(35쪽)의 예시를 들어줍니다.
'원고 작성자인 프리먼 교수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색인 작성자 라운드가 쓴 '프리먼 교수' 항목의 주제 색인'입니다.
프리먼 교수: 케임브리지 카운티의 토지심사과정(Inq. Com. Cant.)에 대해서 모르다 4쪽; 노샘프턴셔주 지세 명무 무시하다 149쪽; 지세 심사 과정 혼동하다 149쪽; 프리먼이 가한 경멸에 찬 비판 150, 337, 385, 434, 454쪽; 정작 프리먼 자신이 오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151쪽; (《인덱스》, 33쪽)
용어 색인은 F3 기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반면, 주제 색인은 이와 전혀 달리 색인 작성자가 원고를 읽고 그 내용에 대하여 자신의 언어로 쓴 요약이 첨부된다는 점, 그것으로 색인에 작성자의 개성이 돋보인다는 점을 가장 큰 차이로 생각하고 이 책을 시작하면 좋습니다. 이걸 전제로 하고 가야 이후에 색인에 대한 비판 지점을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책에 이런 악의적인 색인이 첨부된다고 생각하면,
남일이니까 재밌지, 내 책이라면? 하는 상상을 참을 수 없습니다. (이는 이후 5장의 주제로 다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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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는 총 9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대략 시간 순서에 기반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선형적으로 풀어가는 책은 아닙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시간 흐름에 맞춰 색인 역사를 간략히 요약해두니 헷갈린다면 그 부분을 먼저 읽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각 장의 주제가 확실해서, 꼭 선형적인 흐름일 필요는 없다고 느껴지긴 합니다.)
1장 서열화의 취지 : 알파벳순 배열에서는 "만약 색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신기하고도 불가사의한 알파벳 자모순 배열 방식의 의미를 진정 알고 싶다면 우리는 선사시대까지 파고들어야 한다"(43쪽)는 저자의 무시무시한 발언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색인을 떠올렸을 때 누구나 ㄱㄴㄷ순으로 배열된 단어의 목록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중세는 알파벳순 배열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을 이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47쪽)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ㄱ 혹은 a로 시작하는 단어가 앞에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실 이러한 배열은 "이미 배열되어 있는 것의 본질적인 특성을 무시하고 내용보다는 형태에, 의미보다는 철자에 초점을 맞추어 완전히 임의적인 우연에 내맡기는 것"(52쪽)입니다.
현대인에게 너무 익숙하고 효율적으로 여겨지는 정렬이 사실은 우연과 임의성을 기반으로 한 탈맥락화된 무의미한 배열이라는 시각이 상당히 새로웠습니다
특히 이러한 배열(답관체, 애너그렘 등등의 언어 제약적 글쓰기 방식)을 낮잡아 보는 시각이 이따금 존재했다고도 합니다.
2장 색인의 탄생 : 설교와 교육은 13세기 이미 코텍스와 알파벳이 상용화된 시기를 설명합니다. 이 시기는 대학교육기관이 신설되며 "강의와 설교의 능력을 요구하는 세태"(86쪽)을 맞이하여, "새롭고 효율적인 -책을 이용하는-독서법에 대한 요구가 증가"(87쪽)합니다.
이때 그들이 사용하는 책은 성경이었고, 그로스테스트는 성경에 대한 주제 색인 작성을 시도합니다. "개념에 대한 색인이므로, 필요하다면 동의어가 쓰일 여지도 충분"(87쪽)한 것입니다.
저자는 '노아의 방주'에 대한 예시를 들며, 이 에피소드(?)를 용어 색인이라면 "단지 분석 대상인 텍스트에 등장하는 단어"(88쪽)으로 파악하며 '노아의 방주'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색인을 작성하겠지만, 주제 색인이라면 이는 "용서, 분노 혹은 홍수에 관한 것"(88쪽)에 대한 항목에 '노아의 방주'가 포함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용어 색인-주제 색인의 대표주자는 셍셰르의 휴와 그로스테스트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색인 작성의 목표는 '풍부한 인용으로 비로소 만들어지는 멋진 설교와 강의'입니다.
2장에서 재밌는 개념은 '디스팅티오'였는데 이는 "기억을 돕는 상기물"(106쪽)이며 설교에서 옆길로 새지 않고 "내용의 정연함과 해박함을 보장해 줄 뿐 아니라 설교자가 즉석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할 제공(109쪽)합니다. 이러한 디스팅티오를 개별적으로 작성하여 사용했다는 지점도 흥미롭지만, 이제 이 '디스팅티오'가 당시의 독서법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 부분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디스팅티오는 독서에 관해 더 많은 어떤 것을 암묵적으로 말해 준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책들도 또한 발췌된 형태로 읽을 것을 요구한다. 평생을 끈기 있게 성경을 파고들면서 읽고 또 읽고 하던 수도원식 읽기의 의도적인 단조로움과는 도무지 다른 차원에서 생겨난, 각각의 디스팅티오는 그것의 사용자들로 하여금 근거가 되는 자료를 찾아 일련의 탐색-시편의 한 구절 또는 복음서 중 어떤 비유 또는 창세기의 한 순간 등등-을 하도록 만든다. (《인덱스》, 109쪽)
자 이제 색인에 대한 비판점이 어떤 형식으로 제시될지 조금은 감이 오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무언가 익숙합니다. 어떠한 책을 읽지 않고, 누군가가 길게 작성한 요약 및 서평을 읽었다면, 과연 그것을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비슷한 결을 공유하는 듯합니다.
이어 3장 그것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쪽 번호가 만든 기적에서는, 쪽 번호 등장 이전의 색인의 위치 표시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중세의 색인 작성자들은 (...) 검색하기에도 좋고 작가나 편집자가 미리 책을 분할했거나 말았거나 상관없이 기능할 수 있는 것"(142-143쪽)을 찾아 나서는데, 장이나 문장의 첫 부분을 적어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필사자들이 베껴 쓰는 동안 쪽 번호까지 동일하게 베껴 쓰지 못한 까닭에 필사본의 경우 엉터리 색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발명으로 책이 동일한 형태로 대량생산되고 나서야, 필사본에 따라 단어가 수록된 쪽수가 달라지지 않게 되자 드디어 색인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때의 색인은 "수고를 통해 부가가치를 보탠 것"(162쪽)라는 마케팅적 가치까지 얻습니다. ㅋㅋㅋㅋ
4장 지도냐 실제 영토냐 : 시험대에 오른 색인에서는 위에 은근히 등장했던 당시 색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대하여 다룹니다.
말하자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책 속에서 어떤 것을 검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의 상대적인 차이와 그런 두 가지 행위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성이 보여주는 부조화에 관한 이야기다. 책을 읽기도 전에 색인을 들춰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가? 정말 그런가? (《인덱스》, 182쪽)
현재는 색인이 원고의 맨 뒤에 수록되는 것과는 달리 예전에 색인은 책의 앞쪽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색인은 "상기를 위한 것인가 시식을 위한 것인가."(197쪽) 그리고 어떻게 색인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인가?라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과 8장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예전에는 색인을 책의 앞부분에 실었다고 합니다. 게스너는 "지나치게 색인에 의존하는 (...) 그리고 책 저자가 의도한 순서대로 철저하게 텍스트 전체를 읽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170, 게스너 재인용)이 "(...) 책이 오용되면서 그것의 가치와 유용성이 불가피하게 훼손되고 쪼그라"(171, 게스너 재인용)들게 되지 않을까 하며 게으르게 색인을 이용하는 이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여기서 색인은 "우리가 이미 숙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기억을 돕는 상기물(aidememoire)이라기보다는 책 속으로 진입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사용될 가능성"(194쪽)이라고 이야기하며, 이 색인을 먼저 찾아보는 행위를 우리가 구글에 책을 검색해 보는 행위와 등치시킵니다. 그러므로 색인을 먼저 보는 것은 "시식"이며 좋거나 나쁜 방식이라기 보다 색인을 사용하는 새로운 독서 방식이 됩니다.
이러한 종류의 비판의 시작점을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문자가 사람들의 기억력을 녹슬게 하고 우리의 주목하는 힘을 무력화하여 망각 증세를 일으킨다고 비판"(206쪽)하며 "문자는 구체화하지 못한 지식의 전시물"(같은 쪽)이라며 사람들이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결국 이런 새로운 도구를 이용할 때 드는 두려움은 인간 보편의 정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말은 오히려 가벼운 것이고, 글이 깊게 남을 만큼 밀도 높은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은 결국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요즘 와서야 조금씩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 색인만 찾아보는 '몰지각한 사람'들에 아마도 책들을 발췌독 하는 내가 포함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요즘 고민이 참 많은데, 다시금 고민에 무게를 얹어주는 게스너의 글입니다.
5장 “토리당 녀석에게는 절대 내 『영국사』 색인을 맡기지 마오!” : 색인을 둘러싼 논쟁은 색인이 이렇게까지 활용될 수 있구나,라는 다른 의미의 감탄을 이끌어내는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이 서로의 저작에, 서로를 비난하며 풍자하는 색인을 달아 이른바 색인 전투를 벌입니다.
6장 소설에 색인 달기 : 작명은 늘 그렇듯 어려운 기술이다에서는 소설에 색인을 다는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7장 모든 지식으로 향하는 열쇠 : 보편 색인에서는 모든 영역에 대한 색인, "모든 지식에 대한 포괄적인 해답"(329쪽)을 만들고자 한 색인 협회와 실제로 정기간행물의 주제와 목록을 정리하여 발간한 어느 가난한 사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알파벳순으로 분류해 놓기만 하면 가치 있는 자료가 됩니다. 보편 색인이 목표로 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배열할 수 있고, 쓸모없었을 많은 것들이 그 순간 안식처를 구하게 도비니다. 영원히 증식하면서도 결코 완성되지는 못할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색인은 모두에게 유용할 것입니다"(334, 휘틀리 재인용)라고 색인 협회장 휘틀리는 말합니다.
영원히 증식하면서도 결코 완성되지는 못할 운명, 보편 색인, 뭔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빅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완성'이라는 목표 없이 끊임없이 증식만 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8장 루드밀라와 로타리아 : 검색 시대의 책 색인에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대하여 "소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쓰기는 부주의함과 '참된 지혜가 아니라 지혜처럼 보이는 것'을 부를 뿐이라며 던진 경고와도 궤를 같이한다."(354-355쪽)이라고 말합니다.
기계식 읽기[로타리아가 컴퓨터 프로그램에 소설을 넣으면 사용빈도 순대로 일련의 단어 목록이 산출되며, 로타리아는 이 목록을 보는 것이 독서라고 한다] 방식을 독서라고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저자는 "기계-혹은 알파벳순 단어 목록-가 책의 내용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게 독서 경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354쪽)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를 검색하면 검색 엔진의 수많은 색인 목록에서 읽어 드려 배열하여 결과물을 내보이는 시대에서 색인은 어떤 형태를 띠게 될까요?
여기서 저자는 트위터(현 X)의 해시태그(#)에 대하여 말합니다. 해시태그는 "즉석에서 마련된(ad hoc) 언어적 이정표"(386쪽)로 "태그를 다는 사람은 (...) 생각을 정리하고 그런 생각을 반영하는 개념을 다변하는 최선의 표제어를 선택"(388쪽) 한다는 점에서 색인 작성자를 닮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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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부터 해시태그까지 이어지는 색인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문자와 코덱스 형식으로 제본된 현대 책의 형태, 물성, 그리고 독서 행위까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제가 발췌독을 하면서, 글에 여러 저작들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 출간된 책의 색인을 잘 활용(게스너의 말에 따르면 '상기') 하는데, 항상 책을 제대로 읽은 건지, 내가 일부를 오독하고 인용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때가 많은데, 이 책에서 주요 주제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 의문점을 다시 상기시키게 하는 지점이 꽤 많았습니다.
색인만 읽고 책을 읽었다고 하는 이들은, 왕궁의 화장실만 가보고 왕궁 전체를 설명해 주겠다고 나서는 꼴이라는 문장을 읽고, 아 이것은 나에게 하는 말일까…
예전의 지식인들이 색인에 대해서 말했다면, 최근에는 '요약본'에 대해서 비슷한 논지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약 글을 읽었을 때, 우리는 책은 아예 읽지 않은 것보다는 더 많이 알고, 그렇다고 책을 읽은 것에 비해서는 모르는 이 애매한 상태.
그러나 이 상태 자체를 고정적인 '결말'로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러한 '시식'을 통해서 실제 책을 접할 동기를 얻게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맞지도 틀리지도 않다고 답변해야 하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주제가 새로웠고,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글쓰기에 조금 익숙해지는 감이 들어서 더 쉽게 읽히는 책이라
조금 두께가 있긴 하지만 다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니,
관심있으시면 한 번 시도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