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언스 - 의식의 발명 Philos 시리즈 22
니컬러스 험프리 지음, 박한선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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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유입니다. 



오늘 가져온 책은 니컬러스 험프리의 《센티언스》입니다. '의식의 발명'이라는 부재가 붙어 있습니다. 표지의 색감과 가름끈의 색상이 잘 어우러지는 책입니다. 



포스팅 제목을 도발적으로 지어보았습니다. 



인간-비인간, 포스트휴머니즘 논의가 대두되는 와중 완전히 인간을 중심에 두고 지각이 있는지에 따라 종을 가르는 책이 있다? 


당당하게 문어보다 개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물론 험프리는 "윤리에 관해 과학은 할 말이 없다. 과학은 다만 제안할 뿐이다. 사려 깊은 개인으로서 각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307)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문어보다 개를 더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개는 문어와 다른 방식으로 개 자신에게 중요하기 때문"(306)입니다. 개는 '현상적 자아'를 가지고 있고, 문어는 '현상적 자아'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시 반복하자면, 개는 지각 동물로 감각 자극을 현상적 깊이를 가지고 고유한 형태로 표상 가능하며 인간처럼 자아를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며 문어는 감각 자극을 인식하고 의식이 필요한 지능적 행동은 가능하지만, 상대에게 자아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서브센티엔트, 즉 하위 지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나'와 '나'가 나라는 것을 아는 '나'는 다른가? 



의식에 관한 질문은 고대 철학에서부터 유구히 이어진 질문입니다. 근대 이후 '자아'에 대한 탐구에 몰두하며 데카르트의 '의심하는 나' 존재 증명에서부터 진화생물학까지, 험프리는 철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의식'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것을 남들도 같이 느끼며, 남들도 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뇌의 생물학적 단위를 뛰어넘은 의식적 창발성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지각, 의식, 자극, 감각, 인식, 현상"과 같은 얼추 비슷한 범주처럼 보이는 단어 각각을 모두 구분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센티언스》에서 길을 잃고 싶지 않은 분들은 이 각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개념을 정리하여 두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험프리는 감각을 "주체의 감각기관에서 발생하는 것과 관련된 정신 상태"(89)로 인식은 "외부 세계 대상의 존재와 관련된"(89)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 둘이 우리 의식에 독립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합니다.  자극→감각 →인식의 선후관계가 아니라, 독립적인 영향이라는 점이 직관적으로 전혀 이해 가지 않습니다. 



험프리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감각 없는 인식인 '맹시'와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내 엄지손가락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를 제시하고, 인식 없는 감각으로는 '오르가즘'을 제시합니다. 



아! 우리는 감각과 인식이 동시에 발휘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둘이 함께여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던 것입니다. 



특히, 맹시 개념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시각이 없지만, 뇌의 오른쪽 시각피질을 제거한 상태임에도 어떻게 환자는 빛이 나타난 곳을 알 수 있을까요? 맹시는 "무감각 시각 능력"입니다. 



험프리는 이어 "만약 주체가 이러한 자극을 다르게 평가한다면 이것은 인식이 아닌 감각 때문"(89)이라 말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뇌는 두 가지 별도 표상"(120), 즉 감각 표상과 인식 표상을 만들어내는데,



감각 표상은 "달콤한 맛을 느끼면 기분이 좋아지고 날카로운 소리를 들으면 불쾌해"지는 것이며, 인식 표상은 "달콤함을 느끼며 꿀이라는 것을 알고 날카로운 소리를 들으며 아기가 운다는 것을 안다"라는 것입니다. 



감각은 내적 속성이며 험프리는 "뇌의 감각 표상에 관한 표상 매체가 사실은 은폐된 신체 표상의 한 형태"(120)라고 하며, 이는 반복하자면 "일어난 일에 관한 인식과 달리, 자신에게 비춰지는 감각을 스스로 느끼면서 이를 통해 그러한 일이 가지는 의미를 스스로 읽어 낸다고 주장"(121)하는 것이며 "즉 자신이 느끼는 감각은 일어난 이에 관해서 자신을 향해 말하는 내적 언어라는 것"입니다. 



이게 단번에 이해된다면, 의식에 대한 책을 찾아볼 것이 아니라 당장 의식 분야에 뛰어들어 연구를 해야 합니다. 



자, '빨간' 사과가 있습니다. 여가서 사과는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우리가 볼 수 있고 머리로 표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빨갛다'라는 속성은 어떨까요? 



'빨갛다'라는 감각은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빨갛다고 할 때, 도대체 그 '00가 빨갛다'의 '빨갛다'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의 '빨강'이 당신의 '빨강'과 같을 수 있을까요? 내가 '빨강'을 보고 얻는 감각 표상과 당신이 '빨강'을 보고 얻는 감각 표상이 일치할까요? 그렇다면 이 '빨간 감각'은 도대체 우리의 내부에 있는 것일까요? 외부에 있는 것일까요?


"감각은 우리의 감각기관에서 발생하는 일과 그에 대한 감정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이는 뇌에서 자극에 의해 유발되는 운동 반응을 추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은 숨겨진, 실현되지 않은 신체적 표현 행태로 존재한다. 그다음 단계로서 이는 현상적 속성을 얻게 된다. 이 속성은 환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관한 느낌의 진실한 특성이다.


《센티언스》, 156쪽


험프리는 "감각은 항상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경험"(164)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감각에 대한 반사행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참조 가능한 여러 정보를 저장하는 과정에서, 점차 복잡한 환경에 적응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의 반응을 모니터링하여 자극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파악"(158)하는데, 이러한 피드백 과정의 신호를 "원심성 사본"이라고 하고 이를 역으로 읽어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는지를 표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 슬슬 이해가 안 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자기 모니터링 행위를 역으로 읽어내 스스로 반응과 감정에 대한 표상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을까라고 저자는 슬그머니 자신의 주장을 제기합니다. 



생물은 자극에 적응합니다. (빨간빛은 위험함-뒤로 물러서는 행동)


그러나 환경은 변화합니다. (빨간빛이 안 위험함)


기존의 적응한 신체 행동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빨간빛이 안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서는 행동이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음)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빨간빛이 자신에게 감각된다는 사실과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함)


그렇다면 "반응을 내부화하거나 사적화"합니다. (감각 신호를 신체 지도를 대상으로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빨간빛이 감각되었을 때, '나'는 뒤로 물러서는 행동으로 대응해야겠다'라는 계획을 세움. 그러면 빨간빛이 자신에게 감각된다는 사실과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계속 알 수 있음)


풀어 이야기하면 "내 몸의 이 부분을 이용해서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응한다"라는 도상 계획으로 대응합니다.



자 여기서 갑자기 '피드백'이 생깁니다.



대뇌수준에서 나가는 운동 신호와 들어오는 감각 신호의 순환이 일어납니다. 



들어오는 감각 신호와, 신체 지도를 대상으로 대응하는 운동신호가 끊임없이 반복하여 루프를 형성합니다. 



이 변화는 루프에서 안정화되고  '끌개attractor' 상태가 됩니다. 



이를 입선드럼ipsundrum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상적 감각의 매개체입니다. 



다시 풀어 반복합니다.



이 일련의 상황에서 입선드럼이 생성되면, "감각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적 느낌으로, 즉 고유한 양식 특이적질modality-specific qualities로 물들게 된다. 주관적 현재의 두꺼운 시간에 뿌리를 둔, 비물질적이며 정신적인 것들immaterial mind stuff로 이루어진 것처럼 경험된다. 간단히 말해서 현상적인 경험"(163)이 시작됩니다.



자 이제 중요합니다. 



이렇게 입선드럼을 통해 우리는 "감각이 자아 감각에 기여하는 방식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을 위해 달려왔습니다.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표상하는 행위에서 '나는 무엇인가'라는 감각을 채워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센티언스》, 164쪽


이러한 입선드럼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험프리는 뜨거운 피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온혈동물은 신체 유지 비용은 증가하지만 뇌의 유지 비용은 감소합니다. "포유류와 조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의 에너지 추가 지출을 통해 더 크고 복잡한 뇌를 지탱해 낸다는 뜻"(215)입니다. 



'나'의 존재를 아는 것, 그리고 '나'의 지속성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상대에게도 자아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상대에게도 자아 감각이 있기 때문에 나와 같이 느낄 것이라는 것. 



이렇게 어떻게 의식이 탄생했고 지각 동물이 만들어졌는지를 아주 광범위한 과학적 사실들로 설명하는 책입니다. 



23장에서 기계도 감각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SF적 상상력이 발휘된 질문을 던지는데, 이는 엔지니어의 설계, 즉 지각 동물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가진 동물의 두뇌가 자극을 느낄 때 하는 일을 똑같이 해내는 로봇 뇌를 설계하는 것"(295)에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로봇이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우리가 알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노벨상을 받고 더 이상 쟁취할 것이 없어진 과학자는 종종 두 길 중 하나를 택한다. 세계 평화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강연회를 다니거나 혹은 의식 연구에 빠지는 것이다"(333)라는 문장을 보고 진짜 웃음을 터트린 것처럼, 



의식 연구는 여전히 그 누구도 알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매력으로 과학자들을 수렁에 빠트리는 분야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겠습니다. 



웃음을 터트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장에서는 여러분이 기대한 것 이상의 지식과 흥미를 얻게 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의식은, 내가 나임을 나는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전혀 해결되지 않는 물음에 다시 뛰어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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