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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킬조이 - 쉽게 웃어넘기지 않는 이들을 위한 서바이벌 가이드 ㅣ Philos Feminism 9
사라 아메드 지음, 김다봄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2월
평점 :
북서퍼로 받게 된 마지막 도서는 사라 아메드의《페미니스트 킬조이》 입니다.이 책은 실물로 보았을 때 표지의 홀로그램 덕분에 엄청 눈이 가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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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아메드의 《감정의 문화정치》를 읽고 싶어 하던 와중, 같은 저자의 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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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핸드북'이라고 묘사하고 책의 목차 또한 '페미니스트 킬조이로 살아남기', '페미니스트 킬조이 문화비평가/철학자/시인/활동가'와 같이 구성되어 있어 언뜻 보면 정말 쉽게 읽히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읽고 나면, 그 문장이 나의 삶에 끼워지는 순간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굉장히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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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나의 삶에 구멍을 낸 채로, 언젠가 이 구멍을 틀어막아 줄 문장을, 단어를, 언어를 찾고 싶다는 열망으로 책을 읽어 왔던 경험이 차르륵, 눈앞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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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북'이라는 게 학문 분과 중 하나의 '여성학/페미니즘'의 고찰과 분석 그리고 비평이 아니라 우리가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마주쳐야 할 일상의 순간들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 일상에서 '반사적으로 사용해야 할 기제'들이 무엇이 있는지,그리고 보이지 않던 이들이 사실을 다른 곳에 존재한다는 걸 아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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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킬조이'란 단어를 역자는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옮겨두었습니다. 한국어로 '킬조이'를 번역하자면, '산통 깨는 사람' 요즘 말로 하면 '갑분싸', 혐오 표현을 곁들이자면 '선비충'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 앞에 '페미니스트'가 붙는다면,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무슨 의미가 더해질지 말 안 해도 아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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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는 이렇게 페미니스트 킬조이로 살아남기 위한, 격언, 진실, 다짐, 등식을 정말 실용서처럼 정리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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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여전히 '콧물이 흐르는' 상태에서, 당신은 그렇게 느끼도록 조종당했음을 깨닫게 된다. 메임에 따르면 '부인의 순간'은 이전의 수용을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이 긴밀한 연관성은 양가감정의 원천이 된다. 양가감정은 당신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감동했으면서 그 사실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한 사람 안에 공전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킬조이는 복잡함 그 자체이자 복잡한 느낌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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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문화 비평-칼럼을 작성하면서, 과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현재 사회에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수천 번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콘텐츠를 바라보는 나의 감상과 감정,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콘텐츠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나'라는 새로운 서술자를 상정하면서 나의 감정이 도무지 정확히 하나로 정리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아메드의 묘사처럼 '감동했으면서 그 사실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 이 느낌이 지금껏 내가 느꼈던 감상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앞서 말한 커다란 빈칸이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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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순간, 아마 독자가 100명이라면 100개의 인생 문장이 생겨나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연대감을 잃어서 힘들었거나, '왜 나만 이렇게 예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분들이라면 정말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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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킬조이》로 북서퍼 마무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양질의 책을 읽으면 너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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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퍼 질문]
저자는 페미니스트 킬조이가 되는 경험이 자원이라고 묘사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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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항상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야 '아 그때는 내가 이렇게 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를 고민하는데, 언제나 킬조이처럼 생각만 하고 실제로 페미니스트 킬조이가 돼 본 적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했습니다. 제가 페미니스트 킬조이가 되는 순간은 언제나 글을 쓸 때뿐이구나, 하는 자책과 함께... 저번에 다 썼지만 차마 게재하지 못한 원고도 이와 같은 이유인데, 그때 한 걸음 더 나가보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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