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섬 웅진 모두의 그림책 41
다비드 칼리 지음,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이현경 옮김, 황보연 감수 / 웅진주니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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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장르라는 편견을 깨게 해준 다비드 칼리와 섬세하면서 개성적인 그림체의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자의 섬’은 ‘누가 진짜 나일까’ 이후에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책으로는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번역되어 나온 책입니다.


사실 ‘그림자의 섬’도 ‘누가 진짜 나일까’도 초등 고학년은 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고 오히려 어른이 봤을 때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림자의 섬’이란 제목과 본문에 등장하는 그림자의 섬 형태는 명백하게 스위스의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작품 ‘죽음의 섬’을 오마주했습니다. 2015년 베를린의 구 국립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접했을 때 갑자기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섬뜩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책 속 그림자의 섬은 그저 황폐하고 무서운 공간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슬프고 안타까운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때는 지구상에서 생명이던 것, 모든 종이 다 멸종한 다음에 닿는 공간이 바로 그림자의 섬이니까요. 악몽을 치유해주는 왈라비 박사도 칠흑같은 암흑에서 생명을 되살려낼 순 없었습니다.


어쩌면 인간도 언젠가 그림자의 섬의 주민이 될지 모르죠. 지금처럼 무분별한 환경 파괴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말이죠. 이미 그림자의 섬으로 간 생물종은 다신 만날 수 없을지 모르나 더 이상 그림자의 섬으로 가는 생물을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비드 칼리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는 아름다운 글과 그림으로 무겁지만 눈 돌리면 안될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문화충전 200%' 카페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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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 당신이 커피에 관해 알고 싶었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개정증보판
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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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의 인스타그램 이벤트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에 국가와 농장까지 따져가며 커피를 즐기는 사람인지라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새끼 손톱만한 이 작은 열매에 얽히고 설킨 갈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정확한 숫자나 통계까지 접하니 매일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커피가 향기롭지만은 않더라고요.
저자는 커피가 인간에게 발견되어 산업이 되기까지의 1천 년이 넘는 역사를 꼼꼼하고 치밀하게 톺아봅니다. 커피를 자주 마시지만 즐기지 않는 사람에겐 조금 지루한 이야기일수도 있어요.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고 미국 커피 산업 발전을 설명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합니다. 생소한 회사들의 각축 자체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고 오히려 커피 산업에 영향을 끼치는 외부 요인과 커피가 경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흥미진진했어요.
커피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이며 주요 생산국은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대륙에 위치합니다. 반면에 주요 소비국은 이른바 북반구의 선진국들이죠. 커피 생산국은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배를 받던 국가들이었죠. 주로 대농장에서 재배되는 커피는 원주민의 피(은유적 표현이 아닌 진짜 피)와 땀으로 일궈낸 작물입니다. 식민 지배, 독재, 내전, 자연재해 등 커피 한잔이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까지 정말 멀고 먼 길을 돌아와야 했습니다.
다행인 건 공정무역, 노동환경 개선 등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실제로 생산자 들의 삶의 질 역시 향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산림 파괴, 수질 오염 등 커피 재배에 따른 환경 오염 역시 사람들의 인식 개선과 기술의 발전으로 많이 줄어 들었다고 합니다. 책을 통해 ‘버드 프렌들리’ 커피에 대해서 알게 됐는데 ‘버드 프렌들리’ 인증을 받은 커피를 우리나라에서도 마셔볼 날이 하루 빨리 오면 좋겠어요.
분량이 많아(본문 736쪽) 누구에게나 추천하긴 어려운 책이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내앞에 놓인 한잔이 더욱 귀하게 느껴질 거예요. 책을 읽는 내내 마신 커피가 그랬고 앞으로도 커피를 마실 때마다 많은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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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간 훌리안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I LOVE 그림책
제시카 러브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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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를 믿나요?>의 제시카 러브의 사랑스러운 신작. (어쩜 성도 Love...) 내용은 차치하고 그림이 정말 화사하고 독특해서 들춰보게 됐는데 긴 글 없이도 전해지는 메시지가 묵직해서 단 한 권 만에 작가의 팬이 되었다. 그림책이라는 특성 상 10분도 안 돼서 완독할 수 있는데 <결혼식에 간 훌리안>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그림과 단단한 내용으로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훨씬 더 큰 만족감을 주는 책이다.

 

(요즘도 그런 경향이 남아 있긴 하지만) 여자아이는 분홍, 남자아이는 파랑이 마치 공식과도 같은 시절이 있었다. 생물학적 여성/남성의 구분이 자연스레 사회적인 여성/남성의 역할로 굳어져 각자가 가진 꿈과 재능을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고 틀에 갇혔던 시절. 이젠 여성 경찰관, 남성 간호사가 예전에 비해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은연중에 고정된 남녀의 성역할을 기대할 때도 있다.

 

<결혼식에 간 훌리안>에선 두 명의 신부와 서로의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눠입는 어린아이들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봐주는 어른들이 등장한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가타부타 말없이 그저 흥겨운 결혼식의 모습의 시간을 독자도 즐기며 자연스레 단단하게 고정된 성역할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동부터 성인까지 어느 연령대의 독자가 읽어도 좋고 해석은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제시카 러브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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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식탁 - 돈키호테에 미친 소설가의 감미로운 모험
천운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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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고전이 있다. 예를 들면 돈키호테라든가, 돈키호테라든가, 돈키호테라든가.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는데, 줄거리 정도는 대충 얼버부려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주변에 돈키호테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네? 흠, 그도 그럴 것이 (시공사 판본 기준) 분량이 1,696쪽? 이건 정말 ‘각 잡고’ 읽어야 할 분량이잖아? 근데 이를 어째 <돈키호테의 식탁>을 읽은 그대여, 어찌 <돈키호테>를 읽지 않을 수 있으리.
소설을 잘 안 읽는 편이라 <돈키호테의 식탁>의 저자인 천운영 소설가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클래식 클라우드 세르반테스 편을 준비 중인 사람이구나, 정도? 책 날개에 쓰인 저자 소개를 읽고 아니, 뭐 이런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다 있어! 싶었다. 돈키호테에 푹 빠져 2년 동안 스페인을 오가며 돈키호테에 나온 음식을 찾아 다녔다니! 작가 자신이 무모하게 돌진하는 허랑한 기사 돈키호테 그 자체라니. 저자는 돈키호테 속 문장을 빌려 세르반테스를 찬양하는데 전 그 문장을 다시 빌려 천운영이란 사람을 찬양하고 싶다.
오 천운영이여! 어쩜 이리 맛깔난 서술 구조를 가진 수필을 쓰셨단 말입니까! 오래도록 칭송받으시길! 오 천운영이여!
저자는 ‘돈키호테의 식탁’이란 이름의 스페인 음식점(지금은 폐업 ㅜㅜ)을 운영한 적도 있을 정도로 스페인 음식에 해박하다. 식재료의 특성, 조리법, 맛나게 먹는 방법까지, 아니 이렇게까지 알려줄 일이야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알려줘서 책 읽는 내내 한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한손으론 주전부리를 손에 쥐고 입으로 가져가고 그 와중에 책이나 이불에 안 떨어뜨리려고 조심하고 내가 돈키호테인가 돈키호테가 나인가...
소설 <돈키호테> 속에는 케레손 치즈, 파에야, 하몽 뼈다귀 등 어디까지나 스페인스러운 음식 뿐만 아니라 삼겹살, 대구, 청어, 도토리, 가지 등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은 식재료와 음식도 등장한다. 그럴 때면 <돈키호테의 식탁>엔 여지없이 저자의 옛 기억이 불려나오곤 한다. 어머니의 북어 무곰은 울 할머니의 북엇국이 생각나는 그런 맛일게다
책을 읽는 내내 입에 침이 고이고 다 읽고 나면 아무튼 뭐든 먹고 싶어진다. 우울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땐 곡기를 끊는 돈키호테가 아니라 뭐라도 채워넣는 산초처럼. 유럽 음식은 너무 짜서 내 입엔 좀 별로야, 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돈키호테의 식탁>을 들고 스페인 여행을 하고 싶어지는 마법에 걸렸다. 그리고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 그 마법에 걸리면 좋겠다. 소설가 천운영이 부린 그 마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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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로컬 콘텐츠의 힘
모종린 지음 / 알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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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모종린 교수님이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사람은 절대 쓸 수 없는 보석 같은 내용이 가득 담겨 있다. 도시와 골목을 거쳐 작년에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를 통해 결국 개인으로 수렴했던 담론은 이번 책에서 서로 얽히고설킨다.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 19 때문에 ‘동네 소비’가 늘었다는 사실은 뉴스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홈 어라운드’ 소비가 증가한 원인이 단순히 코로나 19 때문인가? 책에서는 또 다른 책을 언급하며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가 바뀐 것’이라며 코로나 19가 아니었더라도 로컬 콘텐츠의 확장이 나아가야 할 길이고 나아가고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또한 현재의 상황을 ‘오래된 미래’라고 표현한다. 공방, 상업시설, 주거지 등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중세 도시의 광장 혹은 시장의 모습이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책에서는 머물고 싶은 동네에는 네 종류의 매력적인 가게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바로 커피전문점,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 베이커리다. 서울의 홍대 앞(좀 더 구체적으로 연희동, 연남동, 서교동, 합정동 등으로 나눌 수도 있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강릉 명주동, 수원 행궁동, 경주 황남동 황리단길 등이 해당한다. 얼마 전에 1박 2일로 강릉에 다녀왔기 때문에 이러한 정의가 더욱 실감나게 와 닿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 기업, 그리고 동네가 전 세계의 로컬 문화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미국의 포틀랜드처럼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책 앞표지에 온라인은 로컬 컨텐츠의 힘을 대체할 수 없다고 믿는다.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알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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