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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식탁 - 돈키호테에 미친 소설가의 감미로운 모험
천운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제목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고전이 있다. 예를 들면 돈키호테라든가, 돈키호테라든가, 돈키호테라든가.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는데, 줄거리 정도는 대충 얼버부려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주변에 돈키호테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네? 흠, 그도 그럴 것이 (시공사 판본 기준) 분량이 1,696쪽? 이건 정말 ‘각 잡고’ 읽어야 할 분량이잖아? 근데 이를 어째 <돈키호테의 식탁>을 읽은 그대여, 어찌 <돈키호테>를 읽지 않을 수 있으리.
소설을 잘 안 읽는 편이라 <돈키호테의 식탁>의 저자인 천운영 소설가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클래식 클라우드 세르반테스 편을 준비 중인 사람이구나, 정도? 책 날개에 쓰인 저자 소개를 읽고 아니, 뭐 이런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다 있어! 싶었다. 돈키호테에 푹 빠져 2년 동안 스페인을 오가며 돈키호테에 나온 음식을 찾아 다녔다니! 작가 자신이 무모하게 돌진하는 허랑한 기사 돈키호테 그 자체라니. 저자는 돈키호테 속 문장을 빌려 세르반테스를 찬양하는데 전 그 문장을 다시 빌려 천운영이란 사람을 찬양하고 싶다.
오 천운영이여! 어쩜 이리 맛깔난 서술 구조를 가진 수필을 쓰셨단 말입니까! 오래도록 칭송받으시길! 오 천운영이여!
저자는 ‘돈키호테의 식탁’이란 이름의 스페인 음식점(지금은 폐업 ㅜㅜ)을 운영한 적도 있을 정도로 스페인 음식에 해박하다. 식재료의 특성, 조리법, 맛나게 먹는 방법까지, 아니 이렇게까지 알려줄 일이야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알려줘서 책 읽는 내내 한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한손으론 주전부리를 손에 쥐고 입으로 가져가고 그 와중에 책이나 이불에 안 떨어뜨리려고 조심하고 내가 돈키호테인가 돈키호테가 나인가...
소설 <돈키호테> 속에는 케레손 치즈, 파에야, 하몽 뼈다귀 등 어디까지나 스페인스러운 음식 뿐만 아니라 삼겹살, 대구, 청어, 도토리, 가지 등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은 식재료와 음식도 등장한다. 그럴 때면 <돈키호테의 식탁>엔 여지없이 저자의 옛 기억이 불려나오곤 한다. 어머니의 북어 무곰은 울 할머니의 북엇국이 생각나는 그런 맛일게다
책을 읽는 내내 입에 침이 고이고 다 읽고 나면 아무튼 뭐든 먹고 싶어진다. 우울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땐 곡기를 끊는 돈키호테가 아니라 뭐라도 채워넣는 산초처럼. 유럽 음식은 너무 짜서 내 입엔 좀 별로야, 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돈키호테의 식탁>을 들고 스페인 여행을 하고 싶어지는 마법에 걸렸다. 그리고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 그 마법에 걸리면 좋겠다. 소설가 천운영이 부린 그 마법에.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