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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고혈압이 시작되는 마흔의 습관혁명 : 실천편 - 건강의 경계에 선 마흔의 필독서!
조병식 지음 / 아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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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건강에 대한 책을 읽지 않는다. 관심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더 이상 건강이 내 삶의 기본값이 아니라는 느닷없는 깨달음.

  그 깨달음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건강한 몸으로 늙어가고 싶을 때,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에 따르면,

  내 몸은 태어나서 오늘날까지 내가 먹고, 행하고, 생각하며 보내온 그 모든 시간의 결과물이다.

  현재, 내 몸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면,

  또는 건강한 몸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면,

  몸에 좋은 습관으로 내 일상을 채워 나가야 한다.


  이 책은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을 아주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매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나아가, 자연을 즐기며 함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까지 내 몸에 축적된 독소를 어떻게 배출해야 하는지


  좋은 습관을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쌓아가는 일상을 살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준다.

  건강을 위한 단단한 기반을 마흔부터 쌓기 시작한다면

  그 인생보다 막강한 게 무엇이랴.


  건강은 결코 기본값이 아니다. 또한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은 건강하게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에게만 귀하게 주어지는 것이 건강이다.

  

  마흔을 앞두고 있다면, 

  건강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면,

  건강해지고 싶다면, 

  아픈 몸으로 살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처음엔 우리에게 좋은 습관을 선사하고,

  종국엔 우리에게 건강을 선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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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고혈압이 시작되는 마흔의 습관혁명 : 실천편 - 건강의 경계에 선 마흔의 필독서!
조병식 지음 / 아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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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읽어볼 책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 책을 읽어야 일상이 좋은 습관으로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은 이 책에서 알려주는 올바른 방법으로 좋은 습관을 쌓아 나갈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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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이론의 모든 것 - 프랑크푸르트학파부터 지구화론까지
앤서니 엘리엇 지음, 김봉석.박치현 옮김 / 앨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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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이론의 첫 걸음

 

 

솔직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이론들을 읽으며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내 무지의 소치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짤막하게 한 학자의 이론을 요약하고 곧이어 비판하는 과정에서 오는 무리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면서 과연 인간과 사회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질문이 이어진다. 이 책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삶의 방식에 대한 여러 가지 중요한 평가들을 담고 있다. 프랑크프르트학파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지구화까지 인간이 형성한 사회는 기술발전과 더불어 급속도로 변모하고 있다. ‘사회이론이 늘 내 시선을 붙잡았던 이유는 한 존재의 일상과 이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어떻게 서로 긴밀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회이론은 그냥 봐서는 잘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구조적 방식을 찾아내려 애쓴다”. 그 방식이 흘러온 역사를 짚으며 사회이론을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그런 면에서 흥미롭다.

 

근대적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계의 모험, 권련, 쾌락, 성장, 변화를 약속함과 동시에 우리가 가지고 있고 알고 있으며 우리 그 자체인 모든 것을 파괴하려 위협하는 환경에 처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근대성의 핵심은 고정된 사회적 지위와 견고한 권력위계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이론이야 어찌됐든 사회학적 관점에서 주요하게 논의되는 것은 개별 주체 간의 커뮤니케이션과 그 이전에 개인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냐 이다.

 

이번 책을 읽으며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6장 구조화 이론이었다.

 

꿈처럼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주변의 사회적 사물들과 협상하는 다양한 재주를 가진 개인으로 생각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편으로 우리 대부분은 거의 모든 시간에 걸쳐 주변 세계와 타인에 대한 자연적 태도를 채택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생활이 다양한 꿈과 같은 속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이 종종 꿈과 같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은 물론이고 우리가 그 일을 왜 하는지가 대부분 신비롭다는 말이다.” 반복은 일상생활의 주기적 흐름을 한데 묶는 사회적 접착제라 할 수 있다. 일상적 반복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사회 전체의 조직화에 영향 받는지의 문제에 주목한다.”

 

이 책은 광범위한 설명을 요약해 넣으려는 상황에서 한 학자의 다양한 면모를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는 단점을 갖는다. 다만, 이 책의 효용성은 사회학에서 사회학의 이론이 어떻게 발달되었으며, 나아가 이런 사회학 이론이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가에 관해 숙고한다는 점이다.

 

더 많은 숙고와 앎이 필요하다. 내가 이 사회에서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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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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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영채, 한홍구 지음.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창비, 2020.

 

한일관계 이전에 남북협력의 길로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는 일본은 왜 침략전쟁을 일으킨 역사를 인정하고 정중하게 사죄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인임에도 반일 종족주의와 같은 책을 어떻게 쓸 수 있으며 그에 동조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질문의 맥락에서 이 책은 어느 정도 충실한 답변을 하고 있다.

일본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오래지만, 오늘날의 험악한 관계에 이르게 된 직접적 원인의 근원을 이 책에서는 19458월로 지목한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연합국의 일본 전후 처리 문제, 대한민국의 미흡한 친일 청산 문제가 크다. 연합국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음을 간과하고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한반도를 분할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국제적으로 한반도가 일본영토라는 잘못된 인식을 낳게 되며, 일본에게도 이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또한 대한민국 초기 정권은 친일 권력이 그대로 계승되는 구조였다. 1970년대까지 계속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까지 일본 군국주의 체제를 이어갔다. 이는 공공연히 회자되는 내용이었으므로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이 책에서 새롭게 주목할 만한 내용은 야스쿠니에 관한 일본인들의 입장을 서술한 부분과 재일조선인에 대한 문제였다. 실질적으로 유골이 묻혀있지 않음에도 명단에 올라있기만 하면 야스쿠니 신사에서 그 혼이 신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얼마나 편리한 사고방식인가 싶기도 했고, 합사 명단에 오르기만 하면 원호금을 받을 수 있으니 수용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만, 합사되었다고 명단에 오른 조선인과 대만인들은 재외국인으로 원호금을 받지 못한다는 대목에서 일본인들의 비논리적인 태도와 사고는 그들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할 때는 일본인이고, 불필요할 때는 외국인으로 치부하며, 그 비논리성이 반박당할 때는 아예 외면하는 게 그들의 특징이다. 그러니 그 와중에 애를 먹는 건 재일조선인들이다.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인들은 남한도 북한도 선택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그들은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 부분은 처음 듣는 얘기라 놀랍고 비참했다.

대부분의 논의가 합당하고, 한일관계가 어떤 연유로 지금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비교적 객관적 거리를 두고 서술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다만, “열사 정신을 계승한다는 논리와 누구의 희생 위에 현재의 우리가 서 있다고 보는 관점이 희생의 논리를 강조하는 야스쿠니 사관과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며 고 노무현 대통령의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추도사를 비판하는 다카하기 교수의 말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열사 정신과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천황이 참전을 유도하는 야스쿠니 사관의 희생 논리는 비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층위를 지닌다. 불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항거하는 주체와 전쟁을 일으킨 주체의 죽음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다만, 누군가의 죽음, 그 희생을 계승해야 한다는 논리는 부당하다는 것은 동의한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전후 불안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조선인들의 행태에 배신감을 느끼고 그런 조선인들에게 미움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는 부분 역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이 감정적으로 그럴 수는 있으나, 결코 배려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어째서 일본인들은 조선인에 대해 맹목적인 적의를 갖고 있는가? 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일본인들에게 조선인은 그들을 앞질러서도 그들의 뜻에 반해서도 안 되는 존재인 것처럼 인식된다는 느낌이 크다. 그 이외에는 납득될만한 합당한 이유가 없다.

저자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결국, 국가 대 국가로서가 아닌 시민사회와의 협력, 연대이다. 소극적이고 협소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우선 협력과 연대의 시작을 우선 시민사회로 열어보자는 차원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은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더 크게 포용하면서도 엄격하고 분명한 태도를 유지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저자들의 말대로 과거사에서 시작된 현재의 문제를 과거사로만 풀려고 해서는 끝이 나지 않는다. 과거에서 시작된 문제라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지혜로운 처신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남과 북의 평화적 분위기를 실질적으로 발전시켜 한반도가 더 이상 일본이 넘볼만한 수준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남과 북이 더 큰 시야에서 먼저 협력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한일관계 협력보다 남과 북의 협력 위에 일본을 아우르는 정책으로 나아가는 게 상책이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통일의 약속과 그 위에 중국과 일본을 상대하는 큰 그림이 절실한 시기다. 당장 4월 총선에서 아베 정권과 협력하려는 무리를 물리치는 게 큰 그림의 첫 단계가 될 터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처지가 있을 터이나, 그 처지라는 것은 정의인권과 같은 합리적인 기준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익에서 비롯된 행동, 주관적 감정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라 해도 그것까지 헤아리고 배려할 수는 없다. 바로 그 이익주관성에서 불의와 폭력이 자행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동아시아는 이룩되어야 하겠지만, 한국이 일본의 도움 없이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가기 힘들다는 이 책의 주장보다는 북한과 한국의 적극적인 협력 속에서 한반도가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이끄는 주역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쪽이 지금 내겐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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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하는 기계는 생각하는 기계가 될 수 있을까? - 인공지능을 만든 생각들의 역사와 철학 Editorial Science : 모두를 위한 과학 2
잭 코플랜드 지음, 박영대 옮김, 김재인 감수 / 에디토리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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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네이버 카페 <원탁의 서평단>에서 진행하는 서평이벤트로 읽게 된 책이다. 순전히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내게 큰 호기심의 대상이 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으로 이벤트에 참여했다. 그런데 저자의 이력이 남다르다. 저자인 잭 코플랜드는 로봇공학자도 뇌과학자도 아닌 논리학을 가르치는 철학자다. 다만, 그는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을 창시한 영국의 논리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앨런 튜링 연구 전문가다. 이 책의 제목도 앨런 튜링의 논문인 <계산하는 기계와 지능>의 시작 질문에서 가져왔다.

나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숙고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앞으로 인공지능의 혁신이 어떻게 일어날 것이며, 그런 혁신이 이 사회를 얼마나 놀랍도록 변화시켜 놓을 것인가 하는 (적어도 내가 기대했던) 일차적인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 책을 감수한 철학자 김재인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마음의 특성을 다 지니지는 못하는 것일까?

인간의 몸과 마음을 이루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결국 물리-화학적 현상으로 환원되는 것일까?

인공지능은 자유의지와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끝없이 제기되는 물음들은 결국 인간을 더 잘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새로운 현상과 맞닥뜨렸을 때면 늘 인간을 다시 물어왔던

역사의 반복이기도 하다.

 

요컨대, 이 책은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을 더욱 섬세하고 자명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인공지능의 역사적 개요를 시작으로 컴퓨터와 프로그램의 다양한 종류들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왔는가를 살핀다. 그리고 3장에서 첫 번째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생각에서 의식은 필수적인가?

논리학을 가르치는 철학자답게 저자는 생각과 의식의 개념을 쪼갠다. 이 질문은 인공지능 연구자들 사이에서 실험의 타당성을 인정받는 튜링 테스트에 관한 논의를 전제로 한다. 테스트는 간단해 보인다. 질문자가 오직 대화를 통해 어느 쪽이 사람인고, 컴퓨터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된다. 컴퓨터는 입력된 기호를 패턴화시켜 대응하는 패턴 일치의 기술로 대응하는데 이 때, '일라이자'라는 프로그램은 패턴 변형 리스트와 연결되어 입력된 문장을 변형시키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일라이자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생각이 반드시 의식을 수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동시에 인간과 컴퓨터를 유사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이제껏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 즉 "생각하는 존재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유기체에게만 적용된다"는 편견을 깨버린다. 그리고 바로 "제대로 된 인공물에 '생각하다'라는 용어를 온전히, 문자적 의미 그대로 적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입증"한다.

간단한 예로 우리는 잠을 자면서도 생각을 할 수 있다. 즉, 의식을 하지 못하면서도 생각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 '생각한다'와 '의식적으로 생각한다'를 같은 의미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단지 '생각한다'와 '자신이 생각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를 혼동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컴퓨터의 기호체계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설명한다. 4장은 특히, 기계치에 논리치인 내가 읽기 힘들었던 부분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많다. 4장뿐 아니라 컴퓨터의 알고리즘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이에 반박하는 내용을 서술한 대부분을 충분히 납득하기는 힘들었다. 그저 인공지능에 대한 "실패한 예측과 과장된 주장"이 현재 인공지능에 대한 심각한 반발을 양산한다는 것, 그래서 인공지능에 대한 다른 관점의 이해와 사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할 뿐이다.

 

특히, 지식의 문제에서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기 위해 "객체의 기본 유형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되었다는 부분, 그리하여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요하게 다룬 "기본 범주"를 명확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해 졌다는 부분은 이제껏 인공지능을 그저 기술의 발전으로만 보아온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실체를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공간, 관계, 양 등의 범주를 통해 앎에 도달하고자 했던 아리스토렐레스의 철학 자체가 오늘날 인공지능의 시스템 구축에 필수적인 과정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존재론과 인식론, 논리학이 컴퓨터과학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했던가? 컴퓨터는 스스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물음 과연 인간은 자명한 답을 할 수 있는가?

자유의지에 관한 주제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컴퓨터과학과 인간 모두에게 딜레마다. 자유의지가 환상이라고 믿는 다수의 사람들은 결정론에 이론적 근거를 둔다. 컴퓨터의 시스템은 예측가능하니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결정론자들과 같다. 그러나 전통적인 양립가능론자들은 결정이 자유로우며 동시에 예측가능함을 설득력있게 주장한다. 놀랍게도 비선형 방정식의 컴퓨터 모델링은 예측할 수 없는 결정론적 시스템을 기술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아가 저자는 정해진 미래라 해도 삶에 기회는 충분히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어떤 생동을 취하든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을 흔히

우리는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신의 미래에서 일어날 많은 사건들은, 정확히

당신이 그 사건을 일으키고자 어떤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정된 미래는 사건의 흐름을 무기력하게 경험하는 미래가 아니다." 그리고 로봇에게도 이런 차원에서 자유가 존재한다.

이제 저자는 Qualia 퀄리아 개념을 내세워 의식에 대해 더욱 파고든다. 그러나 저자는 "퀄리아에 관한 한 아무도 모른다"라는 결론으로 독자를 이끌며 "비물리적 특성(퀄리아)들이 자연적인 뇌에서 생성된다면, 그것이 적합한 종류의 인공적인 뇌에서는 왜 안되겠는가?"라는 반문을 한다. 이는 "인공물이 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저자의 논의는 일관적이다. 즉, 우리가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하고 인공지능을 인간보다 하위의 물질적 존재로 규정지으려는 모든 생각과 태도에 대해 인간만의 것이라 거론되는 생각, 의식, 느낌, 실체 등이 과연 자명한가? 질문하고, 인간에게 자명하지 않다면, 인공지능과 인간이 다르다는 주장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컴퓨터가 처리하지 못하는 맥락, 통찰, 직관 등을 논의한다.

그리고 로젠블랫의 아이디어를 되살린 '병렬분산처리'가 어쩌면 인공지능의 새로운 발전을 일으키는 키워드가 될지 모른다는 희망적인(?) 전망으로 책을 끝맺는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기계다.

Cogito ergo sum machina.

 

저자의 관심사는 처음부터 인공지능로봇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는 컴퓨터과학과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자 했다. 그런 저자의 논의를 인내를 가지고 따라가다 보면, '컴퓨터'라는 기계가 왜 탄생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책을 읽게 된다. 한 마디로, 인간은 자기를 닮은 기계를 만들어 내고, 발전시켜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더욱 정교하고 섬세한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나의 결론은 이것이다. 저자가 인간 존재가 기계 자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를 닮은 기계를 만듦으로써 생각하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다고.

처음 계산하는 기계를 만들때부터 우리는 우리의 사고의 흐름을 연구하고 그 순차적 논리를 분석해서 계산기라는 것을 만들 수 있었다. 그 다음엔 사고의 범주화를 인식하고 그에 맞는 카테고리를 기호화 하여 기계에 입력했다. 컴퓨터라는 단어는 이런 식으로 점차 인간화되어온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유가 명확하게 제시된 순차적 기호의 흐름뿐 아니라,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은 것들, 맥락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때로는 전혀 다른 범주와 범주를 건너뛰며 마치 도약하듯이 통찰의 사유가 이루어진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순차적 알고리즘을 넘어서는 다른 방식의 입력과 출력 시스템이 필요하게 됐다. '병렬적분산처리'는 바로 이런 사유의 도약과 범주의 교차 등에서 착안된 개념일 터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두려워할 필요도, 과도한 희망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가는만큼 세상은 변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우리에 대해 아는만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우리 모습 그대로일 터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가 곧 기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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