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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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채, 한홍구 지음.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창비, 2020.

 

한일관계 이전에 남북협력의 길로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는 일본은 왜 침략전쟁을 일으킨 역사를 인정하고 정중하게 사죄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인임에도 반일 종족주의와 같은 책을 어떻게 쓸 수 있으며 그에 동조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질문의 맥락에서 이 책은 어느 정도 충실한 답변을 하고 있다.

일본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오래지만, 오늘날의 험악한 관계에 이르게 된 직접적 원인의 근원을 이 책에서는 19458월로 지목한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연합국의 일본 전후 처리 문제, 대한민국의 미흡한 친일 청산 문제가 크다. 연합국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음을 간과하고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한반도를 분할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국제적으로 한반도가 일본영토라는 잘못된 인식을 낳게 되며, 일본에게도 이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또한 대한민국 초기 정권은 친일 권력이 그대로 계승되는 구조였다. 1970년대까지 계속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까지 일본 군국주의 체제를 이어갔다. 이는 공공연히 회자되는 내용이었으므로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이 책에서 새롭게 주목할 만한 내용은 야스쿠니에 관한 일본인들의 입장을 서술한 부분과 재일조선인에 대한 문제였다. 실질적으로 유골이 묻혀있지 않음에도 명단에 올라있기만 하면 야스쿠니 신사에서 그 혼이 신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얼마나 편리한 사고방식인가 싶기도 했고, 합사 명단에 오르기만 하면 원호금을 받을 수 있으니 수용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만, 합사되었다고 명단에 오른 조선인과 대만인들은 재외국인으로 원호금을 받지 못한다는 대목에서 일본인들의 비논리적인 태도와 사고는 그들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할 때는 일본인이고, 불필요할 때는 외국인으로 치부하며, 그 비논리성이 반박당할 때는 아예 외면하는 게 그들의 특징이다. 그러니 그 와중에 애를 먹는 건 재일조선인들이다.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인들은 남한도 북한도 선택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그들은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 부분은 처음 듣는 얘기라 놀랍고 비참했다.

대부분의 논의가 합당하고, 한일관계가 어떤 연유로 지금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비교적 객관적 거리를 두고 서술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다만, “열사 정신을 계승한다는 논리와 누구의 희생 위에 현재의 우리가 서 있다고 보는 관점이 희생의 논리를 강조하는 야스쿠니 사관과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며 고 노무현 대통령의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추도사를 비판하는 다카하기 교수의 말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열사 정신과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천황이 참전을 유도하는 야스쿠니 사관의 희생 논리는 비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층위를 지닌다. 불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항거하는 주체와 전쟁을 일으킨 주체의 죽음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다만, 누군가의 죽음, 그 희생을 계승해야 한다는 논리는 부당하다는 것은 동의한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전후 불안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조선인들의 행태에 배신감을 느끼고 그런 조선인들에게 미움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는 부분 역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이 감정적으로 그럴 수는 있으나, 결코 배려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어째서 일본인들은 조선인에 대해 맹목적인 적의를 갖고 있는가? 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일본인들에게 조선인은 그들을 앞질러서도 그들의 뜻에 반해서도 안 되는 존재인 것처럼 인식된다는 느낌이 크다. 그 이외에는 납득될만한 합당한 이유가 없다.

저자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결국, 국가 대 국가로서가 아닌 시민사회와의 협력, 연대이다. 소극적이고 협소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우선 협력과 연대의 시작을 우선 시민사회로 열어보자는 차원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은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더 크게 포용하면서도 엄격하고 분명한 태도를 유지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저자들의 말대로 과거사에서 시작된 현재의 문제를 과거사로만 풀려고 해서는 끝이 나지 않는다. 과거에서 시작된 문제라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지혜로운 처신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남과 북의 평화적 분위기를 실질적으로 발전시켜 한반도가 더 이상 일본이 넘볼만한 수준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남과 북이 더 큰 시야에서 먼저 협력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한일관계 협력보다 남과 북의 협력 위에 일본을 아우르는 정책으로 나아가는 게 상책이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통일의 약속과 그 위에 중국과 일본을 상대하는 큰 그림이 절실한 시기다. 당장 4월 총선에서 아베 정권과 협력하려는 무리를 물리치는 게 큰 그림의 첫 단계가 될 터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처지가 있을 터이나, 그 처지라는 것은 정의인권과 같은 합리적인 기준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익에서 비롯된 행동, 주관적 감정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라 해도 그것까지 헤아리고 배려할 수는 없다. 바로 그 이익주관성에서 불의와 폭력이 자행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동아시아는 이룩되어야 하겠지만, 한국이 일본의 도움 없이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가기 힘들다는 이 책의 주장보다는 북한과 한국의 적극적인 협력 속에서 한반도가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이끄는 주역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쪽이 지금 내겐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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