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 펭귄클래식 98
0. 헨리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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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면 미소를 짓게 만드는 낭만적인 이야기들.....

소위 착한 소설의 전형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이 바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이다.

뭐 각자 다 다르게 느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어릴적 읽었던 비슷한 류의 단편 소설들을 떠올려 보니  안톤 체홉의 [귀여운 여인], 플로베르의 [순박한 마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뭐 이딴 소설들이 떠오른다.

읽고 나면 뭔가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런 단편소설계의 범생이(?)같은 소설들...

하지만 이런류의 소설들을 나이가 들어 다시 읽게 되면 이면에 감추어진 현실에 대한 조소나 비아냥을 발견하게 되어 씁쓸함을 느낄 때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 [순박한 마음]읽고 좋아했던 플로베르의 [보바리부인],[감정교육] ....등을 나이들어 읽고 나서 다시 읽은 순박한 마음은 더 이상 순박하지 않았다는 ㅋㅋ

 

오 헨리의 이야긴 달랐다.

[마지막 잎새]나 [크리스마스 선물]등등...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행복한 이야기 들이다.

행복한 이야기가 뭐가 나쁜가? 착하고 순수하게 살면 복 받는 다는데....

 

하지만 어린양에게 늑대의 위험성을 미리 학습시키지 않는다면 그 양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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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백작 5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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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한 세월에 대한 복수는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에드몽 당테스란 청년의 젊음을 저 깊은 암굴로 쳐박았던 네명의 악인은 단죄를 받았다.

하지만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란 냉혈한 복수의 화신은 끝내 온화한 미소를 띤 자비의 신으로 변했고 모두를 용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실 네명의 악인은 스스로의 탐욕으로 인해 자멸했을 뿐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화려한 등장에 비해 별로 한일은 없었다.

그 흔한 칼싸움 한번 등장하지 않는 이 원작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야 했을 감독의 고뇌가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이 심오하다면 심오하달수 있는 원작을 뜬금없는 액션활극으로 만들어 버린것도 너무하다 싶기도 하다.^^

결국 복수는 신의 영역이고 인간은 인간을 단죄할 수 없는 것일까?

권선징악!  악인은 언젠가는 죄를 받는다는 낭만적인 경구가 현실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나이기에 그저 알리바바와 같은 행운을 움켜쥔 한 사나이가 하고 싶은대로 모험을 즐기다 아리따운 젊은 여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같은 이야기에  잠깐 일장춘몽에 빠져든걸로 만족하고 이만 접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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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덕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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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유형....짜르의 전제정치가 맹위를 떨치던 당시 러시아에선 짜르에 대한 암살음모나 정치적 반란행위 외에 일반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사형제도가 없었다.

온갖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사형방법이 횡횡했던 당시 다른나라에 비해 러시아는 앞선 문명국이었던가?

이 소설을 읽어보고 나서 말한다면 결론은 아니올시다 이다.

시베리아 유형에 비하면 프랑스 기요틴의 칼날은 매우 자비로운 손길이다.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도스토예프스키의 그 많은 명작들을 제쳐두고 이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어도 될만한 유일한  대표작으로 꼽았다.

도덕주의자인 톨스토이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작품만큼 인간의 순수성을 고양시키는 작품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끼선생은 젊은시절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총살형의 문턱에 까지 갔다 사면되고 그 죽음의 공포를 겪은 충격으로 인한 각성으로 이후 인간심리를 파헤치는 역작들을 쏟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면 그의 문학적 자산의 기초는 그가 시베리아 유형을 통해 만나고 겪은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경구처럼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흉악범들은 시베리아라는 혹독한 환경속에 기약없는 유형생활을 하는 가련한 영혼들일 뿐이다.

다 읽고 나면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제도가  과연 인간을 단죄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풀수 없는 부질없는 고민이 들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충분히 읽어 볼만한 도끼선생의 대표작임에도 불구하고 리뷰한편 달려있지 않아 짧고 조악하나마 감상평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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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우물 1 펭귄클래식 22
래드클리프 홀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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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다룬 소설 중 내가 읽어 본 소설은 두편정도 인데 하나는 예전에 읽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모리스]이고, 나머지 한편은 이번에 읽은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이다.

E.M 포스터는 [전망 좋은 방],[하워즈 엔드],[인도로 가는 길]등을 쓴 유명한 영국작가인데 그가 생전에 쓴 [모리스]를 두고 '내가 죽던지 영국이 망하던지 둘중 하나가 아니면 이 소설은 세상에 발표되지 않으리라'고 말하며 생전에 출간 자체를 포기 했고, 그의 사후에 발표된다.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은 평생 남장만을 하고 다닌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로 불리며 당시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켰고 작가가 자신의 재산을 거의 이 소설의 판금조치를 해제하기 위한 소송에 탕진할 정도였다.

 

위의 두 작가 모두 영국의 귀족 출신이라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포스터 보다는 홀이 더 용감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근데 홀이 법정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주장한 바를  보면 이 소설이 동성애를 다룬  소설이 아니라 보통 남녀의 애정관계를 다룬 소설과 다를바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실제 자신을 모델로 삼은 주인공이 태생적으로 여성의 몸을 잘못 갖고 태어난 남성으로 평생토록 여성이란 생각을 한번도 가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작가의 주장은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동성애자들의 사회적인 입김이 세지게 되던 시절이 도래하게 되면서, 이 소설이 진정한 동성애를 대표하는 소설이 아니라는 주장이 동성애자들 스스로의 입에서 나오게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난 동성애자라고 떠올리는 순간 여장 남자나 남장 여자 부터 떠올리게되는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온전히 가지고 있으면서 순수하게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진정한 동성애자라는 관점에서의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포스터의 [모리스]를 읽는 순간 내내에도 주인공 모리스와 그의 연인 클라이브 중에서 누가 여성역할을 하는 것일까 무척 궁금해 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구체적인 애정행위에 대한 묘사도 극히 드물고 모리스와 클라이브 역시

정신적인 교감만으로 사랑을 하기 때문에 누가 더 여성적인지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대충의 스토리를 말하자면 기숙학교에서 만난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서로에 대한 사랑에 눈떠 성인이 되고 나서도 결혼하지 않은채 연인관계를 유지하나 나중에 클라이브가 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는 선언을 하고 결혼을 해 버림으로써 버림 받은 모리스가 실연의 아픔과 사회적 소외로 고통받다 자신보다 하층 계급인 젊고 아름다운(?) 청년과 사랑을 맺게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마지막에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는 그 청년역시 성향이 남성적인지 여성적인지 소설자체로서는 단서조차 찾을 수 없으니, 어쩜 [모리스]야 말로 진정한 동성애를 다룬 소설이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 모리스가 여성적 성향일지 남성적 성향일지로 고민을 한 나 자신이 동성애자를 이성애자의 보편적인 기준에서 판단하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고독의 우물]을 읽고 난 후에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어 매우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인공아버지의 지극한 내리사랑이었다.

딸을 온전하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 시키기 위해 고민한고 노력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동성애자인 자식 뿐만 아니라 부모로서 자식을 어떻게 키워하 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 것 같았고, 그 고뇌가 읽는 내내 절감되어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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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군화 잭 런던 걸작선 3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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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일련의 소설들 중에서 가장 끔찍스런 미래를 보여 준 소설이었다.

주인공 어니스트 에버하드는 1912년 부터 1932년까지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혁명가이다.

하지만 소설의 주 화자인 그의 아내 에이비스 에버하드를 통해 주로 묘사되고 있고, 이상적인 사회주의 혁명가의 전형이다.

맑스의 잉여가치론에 대해 이토록 쉽게 풀어쓴 책이 있을까?

잉여가치에 의한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인 몰락.....

하지만 그 지난한 과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소설속에서는 통일된 사회주의 세상이 소설의 주요 배경인 1910년대 부터 무려 300년이 지난 다음에 실현된다고 되어 있다.

소설의 발표된 1908년의 시점을 감안하면 이후 세계의 역사의 흐름...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잭 런던은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물론 세계대전을 노동자 계급이 총파업을 통해 막아낸다던지 미국과 전쟁의 일촉즉발 상황까지 갔던 독일이 혁명을 통해 공산화 되고 주변의 프랑스등과 오세아니아 지역이 공산화 되었다든지 하는 설정은 실제의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독일이 공산화 될거라고 예측할 것 같다.

작년에 읽었던 로제 마르텡 뒤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1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사회주의자인 주인공 자크 티보는 얼마나 고군분투 했던가...

장편 [태백산맥]에 맞먹는 분량의 장편소설인 [티보가의 사람들]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주요 내용은 1차대전을 앞둔 당시 유럽의 정세설명과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들의 이념논쟁이었다.

총파업을 통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던 아나키스트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인터네셔널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봉기시키기 위해 기울였던 수 많은 노력들...

이미 실패해 버린 혁명의 역사를 그렇게 무수한 책장을 넘기며 나 또한 자크 티보처럼 성공을 바라고 또 바랬던 기억이 난다.

앙드레 말로의 [희망]을 읽으며 스페인의 아나키스트들이 파시스트권력을 몰아내길 염원하던 그 부질없는 바램 처럼....

 

다시 [강철군화]로 돌아가 ....전쟁을 통해 잉여가치를 소비하려 했던 자본가계급은 국내의 시급한 문제로 집중 '강철군화'라는 과두 지배계급체제를 구축 철도,철강등 주요 기반산업의 노동자들을 포섭 귀족노동자계급으로 만들어 사회주의 진영을 분열시켜 양극화를 조장한다.

이건 마치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모습같지 않나?

칠팔십년대 대학생들이 노동계로 파고들어 의식화에 성공하여 노동운동을 이끌어 내지만 그 열매는 조선과 철강 금융업등의 일부 소수 정규직에게만 돌아가고 나머지 대부분의 임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몰락되어 버린....

어쨋든 그 이후의 스토리는 상상력이 끝간데 없이 미쳐...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고대 노예와 같은 상황에 처하여 계급에 따라 사는 구획이 나누어질 정도가 되어버린다.

주인공들은 신분을 위장하여 '강철군화'의 이중간첩이 되어 속고 속이는 스파이극을 벌이는데.... 시카고코뮨의 2차 봉기의 묘사는 마치 오늘날 좀비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파티를 벌이고 나서도 200여년이 더 지나서야 진정한 통일 사회주의 세상이 온다니....잭 런던은 마치 너희들 대부분은 살아생전 강철뒤축에 짖이겨져 죽을 팔자를 타고 났으니 체념하라고 조소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만약 이런 류의 주제를 가진 소설들을 모아 읽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예브게니 자마찐의 [우리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와 [아일랜드],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조지오웰의 [1984년]등이 있다.

[강철군화]를 필두로 위에 언급한 소설들을 모아서 읽고 마지막으로 이런 류의 소설을 훌륭하게 영상화 했다고 생각되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브라질]을 본다면 굉장히 즐거운 한편의 코스요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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