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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ㅣ 밀리언셀러 클럽 10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개인적으로 <가라 아이야 가라>만큼이나, 심리적인 충격을 준 작품이었다.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시작된 사건이, 과거에 그 탯줄을 대고 있고,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업의 인연처럼 현실을 얽고 들어가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두렵고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느낀 심리적인 충격은, 루헤인이 그려낸 인물의 악랄한 냉정함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켄지의 '영웅 아버지'에 탯줄을 대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피를 켄지가 물려 받았으며, 그러므로 그 자신에게도, 아버지다운 특성-다시 말해 폭력성, 순수하게 증오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인물이기 때문에, 켄지가 순전히 '선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전쟁 전 한 잔의 후반부에서 보여줬던 모습이라든지,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에서 보여준 어떤 모습들은, 그가 분명히, 그의 아버지의 피를,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특성을 물려 받았다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 거기에서 켄지라는 인물이, 단순히 재기 발랄한 사립 탐정에서, 어느 정도는 고뇌하는 어두운 영웅의 모습까지도, 갖춰 입게 되는 것이다. 그는 검고 뜨거운 피를 물려 받았다. 그는 속에 괴물을 품고 있다. 그가 밖으로 뿜어내는 에너지는 그리고 바로 그 괴물의 에너지에 다름 아니다. - 켄지라는 인물은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그가 어떤 헛소리를 하든 간에, 그에게, 동의와 동조의 고갯짓을 끄덕여 보일 수 있다.
♣ 앤지의 남편 필립에 대해서는, 앞뒤에서 조금 읽기는 했는데, 직접 작품 전면에 드러난 것은 처음 보았다. 그의 장례식 후에 켄지와 앤지가 나누는 대화는 퍽 인상적이었다.
(켄지) "그가 죽은 이유는, 우리를 너무도 사랑했는데 우리가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앤지)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나는 꽁꽁 언 땅의 묘지자리를 들여다보았다.
(켄지) "그의 싸움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싸웠잖아. 우리를 위해서. 하지만 우리의 사랑이 더 컸다면 그가 끼어들지 못하게 했을 거야."
♣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는, 켄지의 이 말에도 절로 동의하게 된다. 유사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싶도록, 이야기는 인간의 어두컴컴하다못해 시꺼무죽죽한 부분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인다. 씁쓸하고 쓸쓸하다.
(켄지) "우울증은 알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어요. 또 벗어나고 싶지도 않고."
(의사) "그건 왜지?"
(켄지) "그게 자연스러우니까요. 가을처럼. 내가 겪은 일을 겪어 보세요. 그런데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면 박사님은 인간이 아닙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다 읽고 나니, 켄지의 저 말이 글자 그대로 와 닿았다. 가슴은 서늘해지고 마음은 무너져 내리고.
재밌게 놀자고 읽기 시작했던 것들인데. 어쩐지 나는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읽으며, 계속, 공부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인간이라는 어두운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끔찍한데도 눈을 뗄 수 없다. 거기에는 인간이라는 어두운 책에 대한, 데니스 루헤인의 집념 같은 것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