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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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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 메리 티론.
 

 

어린 시절이 행복하고 좋았다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참 다양하거든요. 하지만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던 사람도, 더 나아가 트라우마로 범벅이 된 사람도 많기는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이라는 문제적 시절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는 것들 투성이임에도, 우리 자신의 많은 부분을 제멋대로 결정해버리기 때문입니다.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저항할 능력이 없어 마냥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 시기인 거죠. - 있음으로든 없음으로든, 상처의 중심에는 가족이 놓여 있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이 문제적 시기였던 사람들에게 있어 가족이란, 간혹 트라우마 그 자체, 혹은 적어도 문제의 핵심이 되기도 합니다.

 
'트라우마 그 자체, 혹은 적어도 문제의 핵심'이라고 써놓았지만, 이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아서, 도대체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매듭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황을 드러내고 정리해 보려고 하는 노력 자체가 하나의 진단이 되고 치료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대 받거나 방치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쥐어 주며 놀아보라고 하는 장면들이 종종 연출되지요. 아이들은 인형을 가지고 머릿속의 상황을 재현해 냅니다. 그리고 그 상황극은 그 가정이 처해 있는 상황을, 또 아이가 받은 상처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유진 오닐,은 제임스 티론, 메리 티론, 제임스 티론 2세(제이미), 에드먼드 티론이라는 인물들을 데리고, 자신의 내밀한 가족사를 들려줍니다. 

 
아버지는 어쩌다 가족을 그 지경으로 몰아갔으며, 어머니는 어쩌다 그 몰골이 되었나, 또 형은 어째서 그 꼬라지인가를 이해와 연민의 시선을 담아 들려줍니다. 이미 결과가 다 나와 있는 상황이므로, 이들이 어떻게 극복을 했다든가, 이들이 어떻게 희망을 갖게 됐다든가 하는 내용은 담을래야 담을 수가 없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작품의 포커스는 그게 아니라, '그 지경과 그 몰골과 그 꼬라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몸부림과, 그들을 그리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 아둥바둥 치는 발버둥에 맞춰져 있으니까요. 

 

그만큼 작품은 암담하고, 암울합니다. 이해와 연민과 사랑은, 모두 절망과 체념의 노예가 되어서, 아무도 그 지경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죽음만이, 그들을 용서하고 잠재울 수 있을 뿐이죠.

 

가족들 모두가 죽고 난 이후에, 그것도 시간이 많이 흐른 이후에 유진 오닐은 고통스럽게 이 작품을 짜냅니다. 그 오랜 시간으로도 모자라 사후 25년 동안 이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도록 족쇄까지 채워놓지요. 그래 놓고 나니 맘이 좀 편해졌을까요? - 글쎄요, 무덤에 누워서라도, 이 작품 생각이 나면 눈이 번쩍 떠지고 입속에 가득 든 흙을 뱉어내고 싶지 않을까요?

 

<밤으로의 긴 여로>는, 그만큼 고통스럽습니다. 괴로운 부분들에 대한, 예민하고 예리한 이야기이니까요. 단단히 오하고 읽으셔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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