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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 한 잔 ㅣ 밀리언셀러 클럽 4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전쟁 전 한 잔>은 시리즈의 첫 편으로서 켄지와 제나로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또 서로 어떤 맥락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도 이 작품에서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들의 아슬아슬하면서도 아릿아릿한 관계가 아니라, 뜻밖에도 집요한 의문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켄지와 제나로와 더불어 루헤인을 괴롭히는 의문이 아니었을까도 싶은, 그런 의문이었는데, 어쨌거나, 그것은 바로 "증오와 분노"에 대한 것이었다. 폭력적인 아버지로 대변되는, 사회에 대한 증오와 분노.
켄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저지른 폭력으로 인해, 세상의 혹독하고 참혹하며 비정한 면을 봐버린 롤랜드는, 그래서 켄지의 그림자와도 같이 여겨진다. 켄지가 '문명'쪽이라면, 그 인물은 '폭력'쪽에 서 있다. 그래서 하나는 스스로의 증오와 분노를 의식적으로 알고 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 짜안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고 비극적이기 또한 둘 다 마찬가지이다. 편하게 늙어 두 다리 뻗고 자기는 틀렸다는 점에서도 둘은 마찬가지의 신세다.
어쨌든 간에 그런 인물들을 도드라져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증오와 분노"라고 할 수 있을 듯한데, 그래서 작품 중간 중간에, 그것에 대한 루헤인의 '의문'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것이 어디에서 오고, 그것이 어떻게 스스로를 드러내며, 그것은 어떻게 잦아들어 가는가(혹은 그럴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이야기의 틈새에 자꾸만 끼어들어, 한낱 추리 소설에 불과한 것을, 적어도 그 이상의 어떤 것이 되도록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서, 켄지와 제나로의 농담 따먹기는, (이상하게도 뒷쪽 작품들을 읽을 때는 -아마도 잘 몰라서 그랬겠지만- 크게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시리즈를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 그것들은 도리어) 썩 괜찮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들이 처해 있는 지긋지긋하도록 냉혹하고, 지긋지긋하도록 혐오스러운 환경 속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툭툭 던져내는 시답잖은 소리들이, 그들이 처해 있는 냉혹하고 혐오스러운 현실을 두드러지게 강조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시답잖은 농담들이, (작품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스타일을 더 하드보일드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을, 똥그란 눈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머쓱하고도 머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