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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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동시대) 문학에서 필립 로스만큼 지적이고 신랄한 작가가 귀한 것은 사실이다. 작가는 아무래도 장년의 나이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무언가 위대한 작품을 위한 구상에 착수한 듯하며 충분한 야심 또한 엿보이지만, 성취와 더불어 일말의 실패들과 작가적 편협함까지 함께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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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실로 2018-11-1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의 목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약 사분의 일 정도 지점까지는, 작가 본연의 탐구적이고 신랄한 비판 의식을 현란하게 형상화하며 주제를 견고히 해 나가는 데에 성공하는 듯싶다. 그리고 작품의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작가와 편집자의 영리한 계산이 작용한 듯하지만) 미국 소설의 전통과도 같은 행동 연구의 일환에서 앞서 서술된 사건에 대한 각 등장인물들의 개별적인 입장을 풀어나가면서 주제의 변주, 외연의 확장을 시도한다. 다시 말해, 소설의 중요한 인물과 사건은 전반부에 모두 소모되어 버리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하고 주도면밀한 ‘주제의 변주‘가 중후반부의 두터운 분량을 성공적으로 받쳐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오히려 전반부 이후의 이러한 전략이 작품을 견고하게 만들기는 커녕, 작품의 균열을 불러오는 단초로 작용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콜먼 실크의 출생의 비밀(이러한 반전이 굳이 필요했을까)이 제시되는 장면은, 작품에 손상이 가해지기 시작하는 시점과 정확히 일치하며, 델핀이 실제로는 콜먼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지적허영심에 가득 찬 욕구 불만의 여성으로 일관되게 형상화됨과 동시에 스스로 얼간이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장면에 이르게 되면, 이러한 서술들은 치밀한 전략을 통해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작위적이고 지리멸렬한 패착에 불과하며, 작품의 외연을 넓히기보다 오히려 세계, 그리고 인간을 편협한 이해의 틀 안에 가두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