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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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하면 유관순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권비영저자는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 씨가 쓴 '여성을 넘어 아낙의 너울을 벗고'라는 책에서 생소한 이름 하란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조선의 독립운동가 하란사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하란사라는 이름은 처음 접했다는 것만으로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어떤 일들을 했는지 궁금하다.

하란사는 1872년 평양의 전주 김씨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1893년 아버지의 사업을 위해서 나이도 많고 사별한 전가처 낳은 자녀가 4명이나 있는 인천항 감리서 고위관리 하상기와 결혼을 했다. 하상기는 어린 하란사를 위해서 해줄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며 뒷바리지했다. 여성들도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남편 덕분에 이화학당에 들어가서 공부할 수 있었다. 선교사가 낸시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한문으로 바꿔서 란사로 하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때문에 김씨 성을 버리고 남편의 하씨 성을 따르며 하란사가 된다. 하란사는 불우한 처지의 여성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열심히 공부했다. 일본 유학 1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에 있는 감리교 계통의 웨슬리언 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 나라 최초로 미국 문학사 학위를 받은 여성이다. 귀국 후 영어 학교 교사가 되어 목표로 했던 불우한 환경에서 허덕이는 기혼 여성들을 위해서 헌신했다. 나라의 장래와 여성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대한독립을 위한 자금을 모으며, 나라를 위한 일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미국 유학을 하면서 만난 의친왕과 그 일을 함께 한다. 하란사는 그를 애정하는 마음이 컸지만 그림자 역할을 자처하며 묵묵히 그와 함께 동역한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 참석을 위해 베이징으로 향하게 된다. 하란사와 의친왕은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서 압록강 철교를 건너 만주 안동역에 도착했으나 의친왕은 일경에게 잡혀 국내로 송환되었다. 함께 동행한 하란사, 병수, 이보게는 어떻게 되었을까? 책에서 의친왕을 대신해 하란사와 동행한 이보게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어서 궁금하다.

그녀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화영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욕쟁이 사감, 멋쟁이 신여성, 한국 최초의 여학사, 독립운동가, 영원한 친구.....(P)

여성과 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하란사.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친 이름도 빛도 없이 떠나간 이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새겨본다. 자신의 나라에서 높은 지위와 명망을 가지며 편안하게 살았을 수많은 선교사님들에게도 감사하다. 그들을 통해서 교육의 폭이 넓어졌고, 병원을 세워 헌신하면서 수많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18년 봄에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김란사'라는 이름으로 위패가 봉인되었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찾아가보고 싶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곳에 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것!

나는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될지니.(P.17)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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